1989년 8월 12일 오후 1시경, 충남 연기군 소재의 집앞에서 혼자 놀고 있던 7살 여자 유치원생.
이때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던 17살 남자 청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아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그 아이가 먼저 자전거를 태워달라고 졸랐다며, 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서는 약 30분 간 동네 야산 중턱까지 올랐다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리며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 이에 발각될까봐 아이의 목을 졸라 살해합니다.
동네 어른들에게 본인의 성범죄 미수가 들킬까봐 무서워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시신을 그대로 두고 산에서 내려온 그 청소년은 약 1시간 반이 흐른 뒤 다시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신문기사: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아이를 살해했던 산으로 다시 올라가 미리 준비해 간 흉기로 아이의 목 등 온몸을 찌른 뒤 깊이 20cm의 웅덩이를 파고 묻었다고 말했다.'
확인사살까지 자행한 후 하산하는 이 청소년을 한 동네주민이 목격합니다.
덕분에 검거된 이 청소년, 오 군을 조사하던 경찰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살인 범행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일곱 달 전인 같은 해 1월 11일 오후 4시경 오 군은 같은 동네 주민 69세의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야산으로 끌고가 성폭행하고 목을 찔러 살해한 후 암매장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5월 24일 저녁 7시쯤엔 금강변 하천부지에서 밭일을 하던 62세 여성을 성폭행하고 전과 동일하게 목을 찔러 살해했습니다.
그때 그 62세 여성의 시신은 발견됐지만 당시 오 군은 수사 용의선상에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선 17세의 청소년이었고 순한 성격이라는 동네 평판 덕분이었습니다.
69세와 62세의 여성, 요즘 60대 나이 정도면 크게 늙어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골 바깥에서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요즘이라도 세월의 풍파가 얼굴에 크게 나타날 나이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노인들을 성폭행했던, 그리고 어리디어린 유치원생을 성폭행하려 했던 오 군을 보면 그무렵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성연쇄사건과의 유사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네, 리틀 이춘재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1986년 2월부터 연쇄 강간에 들어갔던 이춘재는 같은 해 9월부터 연쇄살인을 시작합니다. 당시 첫 살해 희생자의 나이는 72세.
오 군이 이춘재에 비해 나이도 더 어리고 범행의 시작도 3년 정도 더 늦었습니다.
차이라면 이춘재는 공소시효까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 군은 3번째만에 꼬리가 잡혔습니다.
오 군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범행 수법의 동일성 등으로 보아 그 후로도 연쇄살인범으로서 추가 범행을 이어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을 받았던 오 군은 당시 미성년자가 받을 수 있는 최장기인 15년형을 받고 2005년에 출소합니다.
그리고 출소 후 2년도 채우기도 전인 2007년 4월 15일, 대전광역시 신탄진동의 한 다방에서 영업준비를 하고 있던 여성을 칼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쓰러진 그 여성의 목을 다시 칼로 갈라 확인사살을 합니다.
또한 시간 차를 두고 다방에 들어온 종업원인 다른 여성까지 칼로 배를 찔러 상해를 입히고 달아났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그 종업원은 살아남았습니다.
네, 2022년 9월 29일 어제 방송됐던 꼬꼬무에 나왔던 사건의 주인공 오 씨, 오이균의 이야기입니다.
오이균 살인사건은 한국의 수사 역사에 있어 큰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Y염색체를 통해 성씨를 추론할 수 있는 수사기법을 처음 시도해 성과를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수사기법은 2012년 청주 분평동 해장국집 종업원 살인사건에도 활용돼 검거 성과를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이 수사기법에 큰 조명이 가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연쇄살인범이었음에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신문보도에서도 그저 한 꼭지만 차지하고, 소년범이기 때문에 그 젊은 나이에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사실에도 조명이 더 갔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더욱이 반사회적 인격장애임을 알고 있었어도 치료감호 외에는 아무런 사후 대처가 없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생각합니다.
이른바 초포식자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잔혹했던 다방 살인사건의 범행수법에도 '잘못을 뉘우친 점, 교화 가능성이 있는 점,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다는 점'을 꼽으며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법원에도 의문을 표하고 싶고요.
첫댓글
어제 꼬꼬무 보면서 음.. 그냥 무력했어요
사회시스템이 미비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하고..
이제는 이정도까지 가지는 않겠지요... ㅜ
2월에 했던 소년심판을 보면서 가장 생각났고 당시 소개하고 싶었던 인물이 이 오이균이었거든요. 이런 예외적인 인물에 대해선 너무 획일적으로 대응하면 위험성이 있다 생각해서. 이제 연쇄살인이 일어나기 힘든 환경의 한국이긴 하지만요.
저 정도 연쇄살인마에게 15년형이라니..
출소후 사망사건은 판검이 공범수준이네요. .
당시 소년법으로는 맥시멈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판사고 검사고 본인이 가진 권한의 최대치인데 별수 없죠.
범인인거 확신해도 공소시효 1초만 지나도 못잡는거처럼요.
출소후 2차 사건 피해자들은 정말 안일한 사법시스템때문에 희생당한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