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소비도 고작 0.4% 성장 || “쉼 없이 일해도 남는 돈 없어” || 폐업자수 100만명 육박 최대
폐업 공제금이 1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26일 신촌의 한 골목에 가게들이 한집건너 한집이 폐업을 했을 정도로 문 닫는 소상공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현장 경기가 꽁꽁 얼어붙은 데 이어 내년 경기도 깊은 불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26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최근 기업들이 느끼는 현장경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준선(100)을 넘지 못해 부정적 경기전망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90을 웃돌았던 BSI가 12월 들면서 가파르게 하락했다. 4년9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할 정도다. 탄핵정국과 이후 금융시장 불안이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1월 BSI전망치를 내수부분만 떼어보면 52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고, 수출도 51개월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제조 세부업종 10개 중 호조 전망은 전자·통신장비(105.3) 1개에 그쳤다. 그나마 보합을 보인 의약품(100.0)을 제외하면 8개 업종은 모두 업황 악화를 전망했다. 특히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석유정제·화학(85.2), 중국발 덤핑 공세로 어려운 철강 등 금속·금속가공 제품(82.8) 업종이 대표적으로 경기 악화를 전망했다.
한문선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은 “지금 석유·화학 업계는 사실상 고사 직전”이라며 “지금 업황만 보면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든 수준이 맞다”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석유·화학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여수는 아예 지역사회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며 “업계 사람들도 일제히 지갑을 닫아서 소비가 얼어붙고 골목 상권까지 파급 효과가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화학업계 관계자도 “2021년 3분기에 시작된 다운사이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가동률 조정 등을 통해 버티기에 돌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전방 산업 부진에 시름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가 최악이 될 것”이라며 “철강 업황은 전방산업이 잘 되어야 좋아지는데, 3대 수요 산업인 건설, 자동차, 조선이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건설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이와 관련한 철강 수요는 최소 내년 상반기까진 부진이 심각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정유업계는 업황 둔화와 원화값 급락에 따른 리스크까지 동시에 맞고 있다. 대한석유협회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둔화가 예상되고 이에 따라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정유사들 수출감소도 예상된다”며 “원화값 하락세가 지속할 경우 환차손 등 영업 외 리스크가 커질 우려까지 있다”고 강조했다.
내수경기 부진으로 돈이 돌지 않으면서 국내 소매유통시장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소매유통업체 300개를 대상으로 시행한 ‘2025년 유통산업 전망조사’에서 내년 소매시장은 올해 대비 0.4%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응답기업 중 66.3%는 내년 유통시장이 올해보다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2년간 경기도 소도시에서 배달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던 A씨는 “쉬는 날 없이 주 7일을 일해도 임대료에 배달수수료를 내고 나면 가져가는 돈이 0원인 경우가 허다했다”며 “직장생활 3년차에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창업했는데 장사는 이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씨 가게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서 1000개 이상의 리뷰를 받을 정도로 평가가 좋았지만 결국 지난 8월 폐업했다.
실제로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발표한 ‘최근 폐업사업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는 98만6000명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많았다. 폐업률도 9.0%를 기록해 7년 만에 상승 반전했다. 특히 음식업(16.2%), 소매업(15.9%)처럼 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업종의 폐업률이 높았다.
국내 중고차 업계도 울상이다. 케이카에 따르면 12월 국산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1.4%, 수입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1.1% 하락했다. 내년 1월에는 하락폭이 더욱 커져 국산 중고차는 전월대비 1.6%, 수입 중고차는 1.7% 하락할 전망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서 원래 연말은 비수기가 맞지만 올해는 감소폭이 특히 크다”며 “최근 내수 감소와 혼란한 정치상황 등이 더해져 소비자들이 더욱 지갑을 닫는 것이 체감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내년에도 어려움이 이어질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