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민주와는 너무 먼 당신
비민주...획일적 강요...독선적 구조...부패의 복마전
이명주 기자 mj213@chollian.net
올해로 교직 생활 28년째인 필자는 사립학교에서만 근무해 왔다. 중학교 한 군데, 인문고 한 군데, 실업고 한 군데를 거쳐 지금은 남자 중학교에서 오래 머물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 여덟 분의 교장을 만났다. 그 가운데 교단 선배답다는 생각이 드는 분은 한 분 정도였다.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교장이라든지 교육이라는 말과 연관시키기엔 '너무나 먼 당신'들이었다.
▲ 서울 상문고 교사 50여 명은 지난 2월 9일부터 '부패재단 복귀 저지'를 위한 무기한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 즐거운뉴스 권재현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교장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 소양마저 의심스러운 수준인 경우가 상당수였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인사 구조를 알게 된 뒤부터 그것은 대단한 수수께끼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분들과 생활해온 과정을 돌아보면 거의 개싸움판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신산스럽고 고단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현실은 바로 오늘까지 생생하게 이어지고 있다.
만 9년만에 맡은 담임...다시 담임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지난해에는 만 9년만에 학급 담임을 맡았다. '교실붕괴'니 뭐니 난리굿인 판에 맡은 중학교 2학년. 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이해심이 풍부했고 사리 분별이 빠삭했으며 저희들 아껴주는 낌새를 금방 알아차리고 착착 안겨왔다. 그 덕에 일년 동안 서로 죽고 못사는 꼴로 붙어산 셈이다.
종업식이 끝나고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새학기에 3학년 담임을 하겠다는 희망원을 써냈으니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해두었다. 그러나 이 말은 곧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새 학년도 담임 발표가 나온 순간, 일년만에 다시 담임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지난해에 처음 생긴 사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를 상당수 학교에서 파행적으로 구성했는데, 필자가 있는 학교도 역시 그랬다. 그때 이에 항의하여 규정에 있는 최소한의 절차를 거쳐 바르게 구성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 이사장과 교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운영자의 절대 권위에 순응하지 않은 죄값으로 인사 보복을 당한 셈이다. 물론 그 덕분에 올 한해를 담임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또다시 편하게 지내게 되긴 했다. 요즘처럼 담임 기피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때에 결과적으로는 보복이 아닌 특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특혜'를 기뻐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서울 강북의 허름한 변두리 지역에 있는, 조용하고 얌전한 시골학교 같은 곳이다. 아이들 속어로는 아주 '꼬진(형편없는)' 학교다. 시설이 낡고 보잘것 없기 때문에 이런 소릴 듣지만 겉포장이 안 좋다고 해서 안의 내용물까지 반드시 헐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순박하고 착한 편이어서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학교 건물이며 시설이 아마도 시내에서 가장 낙후된 학교일 것이다. 언젠가 이 학교 출신의 유명 성우 한 분이 학창시절의 선생님을 찾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바람에 방송국 촬영 팀이 들른 일이 있다. 학교 건물을 본 그들이 뭐라고 했겠는가? 이런 학교가 서울에 하나 정도는 있어야 몇십년 전 장면 찍을 때 필요하다는 거였다.
컴퓨터 배정으로 이 학교에 오게 된 많은 신입생들이 낙담하여 흔히 눈물바람을 한다. 올해도 신입생 배정을 받은 학생들 가운데 여럿이 교육청에 재배정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거 누가 책임져야 하나?
"직원조회 때는 일절 질문을 할 수 없다"
이 학교엔 재단 전입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완전히 학생 등록금과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여 운영되고 있다. 사립학교 운영자라고 해서 전혀 큰소리칠 이유가 없는 학교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몇해 전 직원조회 시간에 한 교사가 교장(학교 주인이면서 교장이었다)에게 해외연수와 관련한 간단한 질문을 했다가 "직원조회 때는 일절 질문을 할 수 없다"고 한 교장의 '방침'을 어겼다고 해서 파면을 당한 일이 있었다.
▲ 아이들 교육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사학재단 운영자들의 생리는 이미 일반화된 지 오래다. ⓒ 즐거운뉴스 권재현
재심청구 등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구제되긴 했지만, 이런 해괴한 일이 학교라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사립학교에서 평생을 보낸 필자는 이런 비극적인 코미디를 일상적으로 누려왔다. 따라서 그런 얘기들을 무진장으로 써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정도의 일화들은 사립학교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이런 곳에서 민주 교육을 꿈꾸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아이들 교육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사학재단 운영자들의 생리는 이미 일반화된 지 오래다. 단지 예외가 있을 뿐.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가 특별히 극성스러운 학교만을 골라서 근무해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신문 지상을 덮는 악명 높은 사학 비리 속에는 가히 목불인견의 드라마들이 매장되어 있을 터.
이 나라 사립학교 재단의 부조리와 부패는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 '일부'의 사립학교가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져 있다. 지난 3년 간의 시·도 교육청 감사 대상 사립학교 전체에서 회계부정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이 땅에는 사학재단쪽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건전한 사학'이란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패 사학'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건강한 자율 능력을 갖춘 사학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사립학교법 개정, 사학재단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아야
얼마 전에 텔레비전 심야토론에 나온 사학재단쪽의 주장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내세우는 얘기가 참으로 위선의 극치였다. 그들은 자유민주사회의 다양성과 자율성과 기회 균등과 시장경제의 논리를 얘기한다. 그러나 사립학교야말로 비민주와 획일적 강요와 독선적 구조로 짜여진 부패의 복마전임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유보되었다고 한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제대로 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통렬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사학 재단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면, 우리 교육에 희망은 없다. 그리고 그 절망은 단지 자녀의 교육 문제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려는 젊은 학부모들을 더욱 격렬하게 자극할 것이다.
교육은 명백하게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라는 세 주체를 중심으로 가치 판단을 세워야 한다. 절망적인 교육 현실 때문에 몸부림치며 고통받고 있는 국민의 편에 설 것인가, 부패로 얼룩진 대다수 사학재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 줄 것인가?
사립중·고 운영비의 98%, 대학은 95%가 국민의 세금과 학생등록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사립학교는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교육 기관인 것이다. 사학의 비리와 부패의 밑바탕에는 부실한 사립학교법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는 당장 국민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2001.02.20 ⓒ 즐거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