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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 약어 정리는 http://cafe.daum.net/Europa/3L0P/4213 참조
레닌의 이름 아래 제2차 5개년 계획을 위하여!
제5개년 계획의 목표치들은 소련 경제의 수용치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투자된 돈의 양을 제외하고 모든 핵심 경제 영역에서 계획 성과들은 미달되고 있었습니다. 제2차 5개년 계획은 더 누그러진 기세로 잡혔습니다.
전통주의적 분석에 따르면 제1차 5개년 계획의 이런 비현실적인 모습은 스탈린과 그의 정치적 부하들의 작품이었고, 이때 계획에 맞추어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던 지방 및 정부부처는 제2차 5개년 계획에서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를 누그러뜨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모습은 정반대였습니다. 지역 지도자들은 제1차 5개년 계획이 제시한 초고속 공업화에 대한 가장 열정적인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지역들은 각각 자신들의 경제적 의제들을 갖고 있었고, 중앙 투자의 쇄도만이 지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지도자들은 미달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비난을 피해가는 것으로 사태를 보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5개년 계획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미달에 대한 중앙의 답은, 계획의 목표치를 매우 온건하게 잡는 것이었습니다. 지역 지도자들은 이에 많은 불쾌감을 표시하고 당황하였는데, 투자와 건설이 축소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죠. 하지만 목표치를 낮게 잡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지역 지도자들은 새로이 중앙에서 시작된 자신들에 대한 비난과, 제2차 5개년 계획에서의 철저한 계획 달성 요구를 보며 혼란에 빠집니다. "어? 예전엔 안 이랬는데?" 중앙에서 새로이 보내온 기준치들은 제2차 5개년 계획에서의 실패 = 너 뒈짖으로 읽힐 수 있는 아주 살벌한 물건이었습니다.
제1차 5개년 계획에서 제2차 5개년 계획으로 가는 길은, 명령-행정 경제의 수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경제의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근대적 관료제에서 요구하는 책임도 따라오는 것이었죠. 제1차 5개년 계획을 해나가며 각 기관들은 치고 박고 싸우고 지들끼리 비난을 해댔지만 그런 과정은 모두, 러시아 역사상 존재해본 적 조차도 없는 경제활동과 행정에서의 "룰"을 정립해나가는 것이었죠.
우랄은 제1차 5개년 계획 동안 새롭고 현대적인 지역 경제를 만들 기초를 닦을 수 있었습니다. 1934년 1월, 스베르들롭스크 주 당 회의에서 제1서기 카바코프는 "과거의 낡은 수공업자들에서 우랄은 소련 경제의 가장 강력하고 현대적 산업 중심지 중 하나로 탈바꿈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단순히 알멩이 없는 자화자찬은 아니었죠. 카바코프는 그렇게 말할 만한 근거가 있긴 했습니다. 1920년대부터 모두가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러시아 전체에 걸쳐 우랄 경제의 후진성은 유명했죠. 200년 된 목재고로를 돌리는 농민의 계절성 고용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우랄의 산업을 맨날 깎아내리던 흐렌니코프는 이제 수감자 신세가 되었고 우랄은 러시아에서 가장 진보한 철강 및 중공업 단지가 되었습니다. 1933년까지 우랄 산업은 37억 루블의 투자를 받아 천 건이 넘는 건설 프로젝트들이 가동되었죠.
마그니토고르스크 금속 콤비나트는 이제 전설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미국의 최신 기술을 도입해 전유럽의 단일 철강 기지로서 가장 거대한 장소를 만들고자했습니다. 거기에, 니즈니타길과 시나라, 페르보우랄스크는 철을 이용한 모든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농업 및 광업 장비나 생산하던 기계공장들은 이제 우랄마쉬로 탈바꿈하여 크레인, 굴착기, 철도 등 중공업의 핵심적인 기계들을 찍어냈습니다.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은 대규모 농업을 위한 농기계들을 생산했고 비철금속 단지도 세계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진보중이었습니다. 아연과 구리 산업은 사실상 맨 땅에서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펄프, 종이, 화학 산업단지도 제1차 5개년 계획 중 건설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산업들은 모두 새로 건설된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후진적 공장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신경제정책 시기에 우랄의 골칫거리로 여겨진 "과거의 낡은 수공업자들"은 이제는 진짜 말 그대로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선 연재물들에서 끊임없이 나왔듯이 지역에서 무리하게 따낸 투자의 결과였습니다. 결국 우랄은 그들이 감당 못할 계획을 제출한 것에 대한 결과를 눈으로 보아야 했습니다. 제1차 5개년 계획의 모든 해에서 우랄은 계획에 미달합니다. 철 생산은 거의 70% 밖에 못 채웠고, 건설 현황은 그보다 더 낮아 1천개의 건설 프로젝트 중 1932년까지 완료된 건 오직 620개가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중앙에서 이에 관해서 제기하는 비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랄플란의 의장은 1931년 1월에 고스플란 상무회로 가서 "1년 반 전에, 우리들은 "거대한 우랄계획"을 제출했습니다. 1930년의 건설 프로그램들을 고려했을 때 750만 톤의 선철을 1932년까지 생산할 수 있다는 계획이었지요. 이제, 계획 상 지연 때문에 이 수치들이 낮아지는 건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존나 당당하네
같은 달, 주 공산당은 전연방 소브나르콤의 검증위원회(Kommissiya Ispolneniya)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우랄스키 라보치(우랄의 노동자들)와 자 인두스트리알리자찌유(산업화를 위하여)라는 지역 신문에 실었습니다. 이 내용은 우랄 경제 계획의 승인을 제깍제깍 안 해주는 베센하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지역 지도자들은 그리고 현재 생산 문제는 교통 관리가 개판이어서 생긴 것이라고 투덜댔습니다. 중앙 경제 기관들에 보내는 연례 보고서들에서 우랄의 기업들은 항상 보급 부족으로 계획을 못 맞춘다고 징징댔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1930년 12월에 지역 관료들은 중앙위에서 보급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레닌그라드 대표는 "우리는 항상 약속 받은 물건들의 50% 밖에 못 받습니다. 우리는 보급이 조직되는 시스템을 철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존 시스템은 계약 문제에 대해 모든 개념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이 불평들은 모두 진지하게 검토되었습니다. 안드레예프는 미달에 수송 시스템의 잘못이 분명 있음을 시인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소련의 명령-행정 경제는 차츰차츰 발전해나가고 경제 행정의 중앙화는 높은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1929년 스탈린은 제1차 5개년 계획 프로젝트들의 모든 핵심 영역에 대한 통제를 확대했습니다. 그 때, 지역 지도자들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역들 간의 경쟁에서 투자 우선권을 따내기 위해서 감수해야할 불편한 일 정도로 여겼지요.
하지만 세부 운영에 대해서는 불평들이 꽤 있었습니다. 아직 능숙치 못한 사실 1991년까지도 그랬던 것 같지만 중앙의 경제 행정은 많은 실수를 내기도 했고, 쿠이븨셰프가 가급적 지역의 모든 편의를 중앙이 세심하게 다루려고 노력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만 지역의 불평이 잦아들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베센하가 다루던 곳에서의 운영미숙이 가장 욕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이자 정치국 국원이던 추바리는 1930년 12월 중앙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경제의 집중화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것이 경제 발전에 의해 만들어진 실질적인 자본 투자를 우리가 받을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성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이 중앙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런 개판 상황이 지속되자 중앙 관료들은 자신들이 능력이 닿지 않는 데까지 확장을 했다고 시인하기도 합니다.
지역 지도자들은 집중화를 해도 결국 발생한 운영 상의 대혼란 속에서 그들이 꿀을 빨 수 있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라, 이 집중화가 영속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 다시 말해 스탈린이 주도한 경제의 집중화를 큰 위협으로 보지 않은 것은 이 떄문이었습니다. 재정 부문에서의 집중화도 강한 저항에 직면하지는 않았습니다. "통합된 국가 예산"이라는 것은 마치 제 몸이 칼로리를 분배하듯이 세입의 50%를 지방으로 분배하는 1920년대의 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입의 절대다수가 모스크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만큼 소련 중앙 은행은 신용에 더 관대해졌죠. 이제 지역에서는 자신들의 지역 기업에서 나온 이윤들로 예산 운영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돈을 받으면 편하지 왜 사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몇몇 사람들은 경제의 집중화가 지역 기업들의 자율성을 빼앗는다고 비판하기도 했고, 에스테오는 1931년 기업들에게 그들이 환수한 10%의 자본은 자율적으로 써도 된다고 당근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중앙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우랄에는 더더욱 그랬죠.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자율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에 비해 수십년 뒤떨어져 있었고, 10년 안에 이를 따라잡아야 했죠. 그들은 차라리 자율성을 좀 포기하더라도 스탈린의 손바닥 속으로 들어가 재정권을 모스크바에 이양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씨익~
1930년, 막대한 성과 미달이 전 경제 영역에 있었음에도 분위기는 그럭저럭 낙관적이었습니다. 쿠이븨셰프는, "특정한 계산 착오와 실패가 있었지만 우리는 막대한 전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당이 교통 수송 및 연료 산업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면 이 경향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1931년의 통제 수치는 전 해 대비 생산 영역에서 45% 성장으로 올랐습니다. 우랄 관료들은 아직까지는 중앙과 이런 열정을 공유했습니다. 걱정도 좀 있었지만요.
속편하게도 계획을 못 맞춘 건 딱히 걱정은 아니었고... 제1차 5개년 계획의 혼란스러운 성격이 거대한 우랄계획을 진행할 투자가 끊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유발했던 거죠. 우리의 인기스타 쿠이븨셰프는 그래도 카자흐스탄, 우랄, 시베리아가 막대한 투자를 받을 것이라고 설명해줍니다. 전연방 투자의 28%를 먹게 될 것이고, 그 중 우랄은 단독으로 17.5% 정도 먹게 될 것이었습니다. 우랄쿠즈네츠크 콤비나트(UKK, Uralo-Kuznetskii Kombinat) 특별 회의 의장은 1931년 1월에 고스플란 상무회의에서 개회사를 장식했는데, 거기서 계획 기관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 기관들도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으니 걱정 ㄴㄴ 라고 달래주기도 했지요.
우랄의 관료들은 일단 믿어주기로 합니다. 중앙에서의 지시가 부재한 상태에서, 제1차 5개년 계획의 마지막 2년 동안 우랄플란은 제2차 5개년 계획을 위한 윤곽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931년 1월에 제출된 초기 계획은 "거대한 우랄계획"을 가히 판타지 소설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르면 우랄 산업은 1932년 시점의 생산량을 1937년까지 1,000% 늘리고(...) 70%도 못 채운 1931년 계획의 1,800%로 늘리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선철 생산량은 150만 톤에서 2,000만 톤으로 늘리겠다고 하고, 구리 생산은 같은 기간 동안 1,100%, 전기 생산은 1,600%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합니다. 우랄에 전에 비슷한 거라도 해본 적이 없는 자동차 산업이나 니켈 채굴과 같은 완전 새로운 산업들도 1937년까지 엄청난 규모로 늘리겠다고 올려보냅니다. 제2차 5개년 계획에서 우랄이 제출한 목표치는 그야말로 얘들이 목표치 미달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랄은 이제 과거 자신들과 힘을 합쳤던 다른 지역들과의 경쟁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사실 우랄에 철강 산업을 박아준다고는 말 안 했고, "동쪽에 건설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시베리아, 카자흐스탄, 바쉬코르토스탄 등을 신경 써야만 했습니다. 우랄에서는 "우랄은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생산 사이클의 모든 것에서 자급자족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랄의 자연자원을 최고로 합리적으로 쓸 수 있는 방식입니다!"라고 땡깡을 부립니다. 다른 지역들은 우랄쿠즈네츠크 콤비나트의 그저 자원 보급창 정도만 맡으면 된다는 식이었죠.
그러나 이렇게 계속 달라고만 하기에는 성과가 그다지 시원치 않았습니다. 철 생산량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감소까지 보여줄 기세였습니다. 지역에서는 이게 다 교통부 새끼들이 처놀아대서 생긴 일이다. 얘들 중에 나라의 경제를 교란시키는 인민의 적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면피하려고 시도합니다.
1931년 가을은 소련 경제 계획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우랄에서 제출한 저 야심찬 계획에 대한 고스플란의 반응은 얼핏 보기엔 나름 괜찮았습니다. 저 미친 제철 계획도 25% 밖에 삭감이 안 되었고, 다른 영역들은 크게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랄은 게다가 니들 열심히 노력했어! 하면서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앙이 우랄에게 보낸 진짜 메시지는
엿이나 먹으렴 ㅇㅇ.. 이었습니다.
계획 밖의 방탕한 지출에 질려버린 중앙에서는 이미 역공을 가했습니다. 그동안 이제 나르콤핀의 차례가 찾아왔습니다. 나르콤핀의 요청에 따라 에스테오는 1931년 6월, 중앙에서 투자한 돈을 더 잘 쓰도록 요구할 수 있게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나르콤핀이 발견한 건 중앙에서 보내준 자본금이 단순히 경제 운용에만 착실히 쓰이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낭비되고 있었습니다. 나르콤핀이 특별 권한을 받고 조사를 해봤는데 승인된 계획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거의 지들이 계획을 알아서 만들어 굴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비용 상관 없이 건설 시작하면 언젠가 돈 들어오겠지 ㅎㅎㅎㅎㅎㅎ 이런 마인드였죠.
"계획 규율 위반"의 예를 들어보죠.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롭스크의 페트롭스키 공장은 4분기 지출 계획을 630만 루블로 잡았는데 실제 쓴 건 960만 루블이었습니다. 이런 예들이 무수히 나왔습니다. 교통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물자가 부족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중앙에서는 수합하고 검토한 계획에 따라 보내고 있었는데 지방에서 이런 식으로 지출을 하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죠. 즉각적인 조치는 거의 취해지지 않습니다만, 모스크바는 슬슬 감을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나르콤핀 조사 결과는 1931년 가을에 실시된 체카카와 랍크린(중앙통제위원회-노동자농민감독회)의 합동 조사로 인해 더욱 보강되었습니다. 이번 조사는 베센하의 상부를 타겟으로 삼고 진행한 것이긴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의 일들도 줄줄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요.
" 산업체들의 행정 현황은 다루기 불편하고, 복잡하고, 느리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들은 종합적 계획이나 생산과정 준비, 혹은 생산 자원의 효율적 사용에 기반하지 않아 상점의 와해를 초래하고 있다. (중략) 장비, 노동 등의 부적절한 사용. (중략) 생산 프로그램의 성취에 대한 통제만큼이나 제품의 질에 대한 기술적 통제는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생산이 실패하기 시작했을 때 적절한 시기에 신호가 보내지지도 않으며, 이러한 실패들을 교정할 필요한 조건들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중앙 관료들은 대규모 투자가 낭비되고 있거나 무능하게 쓰이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교통부 쪼인트를 까고 돈만 들이붓는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님도 깨닫습니다. 1931-2년 겨울, 경제 정책을 짜는 것은 이제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일단 여러 면에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이제 전속력으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1차 5개년 계획의 슈퍼스타들, 즉 마그니토고르스크와 쿠즈네츠크의 금속 콤비나트, 드네프르 수력발전소, 투르케스탄-시베리아 철도 등이 기지개를 키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로 인하여 눈치 빠른 사람들은 변화가 필요함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변화가 있어야할지 명확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아직 없었습니다. 고스플란은 일단 1932년 통제 수치 발표를 일주일 연기합니다. 1931년 12월 고스플란 상무회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관료는 "고스플란의 비밀주의 때문에 우리의 자원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투덜댔고, 서시베리아 대표는 "우리가 산업 부문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은 4개, 5개, 심지어 11개의 버전을 들이 밀고 어느 게 채택될지는 자기들도 모른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의 대답은 역시
정확힌 패스트 모션은 훼이크일려나...
이전보다 훨씬 축소된 수치가 발표되었습니다. 1931년에서 1932년 사이의 자본 투자금 증가액은 161억 루블에서 211루블로 50억 루블 정도였습니다. 루블에 목 말라하는 수많은 지방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증가분이었고 대부분의 지역이 이번에도 거세하고 반발합니다만 중앙에서는 이제 급진적 정책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획 달성치도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우랄 중공업은 1932년 1월과 2월 동안 계획의 67%만을 달성하여 미달 행진을 계속 이어갔고, 철광석 공급도 떨어져갔습니다. 고로는 수리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도 계획 미달성에 대해 다른 목소리들을 내기 시작합니다.
지역의 신용이 떨어진 대신 나르콤핀과 랍크린, 그리고 중앙통제위원회의 영향력이 늘어났습니다. 1931년, 소브나르콤은 계획에 미달하면 돈을 더 줬지만 1932년에는 분기마다 연 평균 계획을 낮춰서 돌려보냈습니다. 제2차 5개년 계획에 대해 고스플란이 일련의 회의들을 열 때까지, 이런 정책전환들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게 명확해졌습니다. 우랄쿠즈네츠크 콤비나트 5개년 계획 회의에서 고스플란 상무회의 로모프는 개회사를 판타지 소설 쓰던 지역 인사들을 까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양을 향한 질주는 매우 자주 우리 사업의 질에 손상을 주었소." 그리고나서 우랄을 딱 지목해서 다음과 같은 예시들을 들어줍니다. "질 떨어지는 계획 때문에 돌아가지도 않는 발전소를 짓는 데 수백만 루블이 투자된 것. 기업체의 산업재해의 증가, 소름끼치는 노동 조직화 및 장비 사용 실태, 늘어만 가는 실패들"
고스플란은 우랄의 건설 계획들을 엄청나게 깎아버리고, 1937년까지의 선철 생산 목표를 2천만 톤에서 1천만 톤 이하로 반토막을 내버립니다. 기계 제조는 50억 루블에서 30억 루블로, 구리 생산은 75%까지 깎았습니다.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전부 취급하는 독자적인 우랄의 경제 왕국 건설은 훅 날아가버렸습니다. 비철금속과 화학산업에 대한 신규 투자는 카자흐스탄으로 갔습니다. 교통, 농업, 채광에 쓰일 새로운 기계공장은 서시베리아로 갔습니다. 우랄의 관료들은 결국 "아니 우랄이 너 왜 이래 다 알만한 사람이. 우리 다 통할 수 있는 처지 아냐?"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우랄 관료들은 격노했습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죠. 그들은 우랄쿠즈네츠크 콤비나트에 소속된 다른 지역 인사들과 힘을 합쳐 고스플란에 공격을 가했습니다. 지금 니들은 1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가 결정한 "동쪽으로의 대전환" 슬로건을 망치고 있다. 좋은 말 할 때 다시 원상복구 시켜놓으라고 말이죠.
고스플란의 답변은...
엿이나 먹으렴
고스플란은 "지금 니들 ㅅㅂ 내가 비용 편익 분석도 안 하고 프로젝트 올려보내면 다 승인하는 호구인 줄 알어?"라고 응수하죠. 그리고 "지역 애국주의"에 대해 비판합니다. 떡밥이 화르륵 불타오르면서 미친듯한 키보드 배틀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든 회의에서 결국 풀지도 못했죠. 고스플란은 제2차 5개년 계획에서 우랄을 조진 걸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랄의 계획가들은 그들의 시각대로 다시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우랄쿠즈네츠크 콤비나트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소브나르콤에게 건설 및 투자계획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지역은 중앙에서 내려주는 돈 줄이 마르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따지고보면 1920년대에도 그랬지! 중앙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면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지요. 실제로 중공업인민위원회(NKTP, Narodnyi Komissariat Tyazheloi Promyshlennosti, 엔카테페)는 소브나르콤에서 작금의 계획 미달이 나르콤핀의 재정 정책 때문이라고 욕했고 나르콤핀은 소브나르콤에서 이미 예산 깎는 거 다 인정했구만 뭐 ㅋ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초고속 산업화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던 랍크린이 갑자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랍크린은 소브나르콤에서 나르콤핀 편에 붙으면서 지금 경제 운용이 개판이라 철강, 채광 영역에서 엄청난 손실이 있고, 과도한 생산 비용을 감당해야하며 생산은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고 극딜했죠. 1932년 가을 중앙위에서 중공업인민위원(엔카테페 인민위원) 세르고 오르조니키제는 공업화 속도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쎄게 나섭니다.
오르조니키제에 따르면 심각한 미달에도 불구하고 산업은 계속 위로 올라가야했습니다. 1932년 계획의 미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멀리 왔어!"라고 아마이하게 말하는 자들이고 이들은 "볼셰비키적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역 관료들은 어느 때보다 더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다시 그들은 보급 문제와 예산 삭감을 비난해댔지만, 논조는 정말 적대적이었습니다. 중앙흑토지역의 제철소 건설 떡밥이 나오자 지역 당서기인 바레이키스는 니들 지금 우익 기회주의자들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고, 마그니토스트로이 담당자는 "모든 사람이 세르고 오르조니키제 동지가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업 행정은 좋지 않다고 하죠. 저는 여기, 중공업인민위원 동지께서 있는 자리에서 행정이 수월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돈을 받는다면 공장이 지어질 것이라는 것을 선언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랍크린의 루드주탁, 일전에 좌익반대파와의 논쟁이 있었을 때 지역으로 직접 가서 "에이 우리들도 공장을 지어줄 수 있어 ㅋㅋㅋ"라고 말하던 그 루드주탁은 미달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는 시도를 더이상 관대해질 수 없다고 하며 "우리 공장에서의 실패는 노동력이나 원자재의 부족으로 야기된 것이 아닙니다. 기업체에서의 기술적, 경제적, 행정적 리더십이 제기능을 못해서 생긴 결과죠."라고 지역을 공격합니다.
오르조니키제 자체가 워낙 거물이라 그의 말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긴 합니다. 산업의 "상승세"는 장기적인 국면에서는 당연히 지속해야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상승세"는 계획 미달이 늘어감에 따라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승자는 루드주탁이었죠. 자기들이 실패한 것 가지고 자꾸 중앙에 징징대는 지역 징징이들에 대한 루드주탁의 빡침은 국가정책에 반영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모스크바에서 진행한 경제의 중앙화 등 변화된 지방-중앙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으로부터 전보가 날아옵니다. "즉시 5일 혹은 10일에 한 번씩, 관련 사안들에 대해 엄격한 조치와 보고서들을 가지고 올 것. 이 일들은 모두 특정 주 공산당 당서기의 개인적 책임이 될 것임."
이제 계획 미달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아 잘 봤습니다. 이제 우랄관료들의 운명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아직 죽이려면 많이 남았는데 다들 죽인다 죽인다 얘기만 하는 ㅠㅠ
@첝 저는 개인적으로 글에서 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서 발악하는게 워낙 좋와서....(?)
그나저나 저번에 아랫 댓글에서는 이러한 우랄의 계획이 '항상되어 보이는 것' 이라고 하는데 여기 본문에서는 발전되고 있다고 말하네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줄 수 없을까요?
@Vv아마게돈vV 댓글 내용이 이해가 안 가네요
@첝 향상 ㄴㄴ "향상된 것처럼 보이는 것" - 거대한 우랄 산맥 5 댓글 중 일부....
하지만 이번 본문에는 저러한 대립 자체가 소련의 진보(?)로 해석하는데 이게 모순적인거 아닐까해서요.
@Vv아마게돈vV 진심 이해 안 가는;
@첝 제가 적은 글이 있죠. '그래도 지역 간 경쟁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는 걸 보니 마치 공산체제가 아닌 것 같아연 뿌잉뿌잉'에 대해 첝 님이 '향상되어보이는 거지 향상된 거 아님 ㅎㅎ'라고 답하신 바가 있어서요. 그거 말씀하시는 듯.
@인생의별빛 아 뭔지 알 것 같네여
@Vv아마게돈vV 우랄 지역당에서 제출한 계획이 잘 수행되었다는 차원에서의 '발전'이 아니라, 제1차 5개년 계획을 거치면서 중앙과 지방의 행정 권한 다툼, 예산 다툼을 하는 와중에서 근대적, 제도적 형태의 "룰"이 잡혔다는 의미에서의 발전입니다.
우랄에서 한 건 이러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이, 룰을 무시하고 일을 했기 때문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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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렇게 바쁘진 않고 다 영어공부의 일환이거니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왤케 길어...
취소선드립들이 일품이군요~
분량 조절 실패로 다음화는 많이 짧아질 례정입니다
결국 책임성확보는 통제력증대와 상호작용하면서 향상되는군요. 저런 엄청난 시행착오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는건 실로 대단한 것인데, 대단하다는 말은 중의적으로 쓰일 수 있을거 같습니다. 성과 자체가 대단하기도 한 것이고, 그 전의 러시아 제정시기는 저런 대단한 잠재력을 엇다 대단하게 팔아먹었던건가? 하는 의미에서도...--
따지고 보면 저런 터무니없는 목표의 70%"씩이나" 달성했다는 것도 대단한거 아닌가 싶기도... 물론 계획경제의 특성상 계획의 미달 자체가 스텝을 꼬이게 하는 것이기에 용인될 일은 아니라는게 이번화의 이야기긴 하겠습니다만서도
아 왜 이런 관점으로는 생각 못했지... 제 좁은 시각에 자아비판을 탁치고 갑니다
@첝 자아비판을 못하게 되어버린 심영동지... ㅋㅋ~
계획경제가 시행착오를 거쳐가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제대로 드러난게 이번 화일듯. 물론 그 이야기의 시발이긴 하겠지만요
1000프로 오버라니...진짜 판타지 소설이네요. 양판소 영지물처럼 동네 뒷산 드워프 소비에트라도 결성되지 않는 이상
이계에서 고등학생이라도 와야하는데 말이죠
이번화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지름들이 자신들의 목을 서서히 졸라오는 상황이 되어가는거군요. 뭐 개구리 삶아가는 방법인듯....지역 깡패들을 향해 서서히 서서히 온도를 올려가는 중앙에 위치하신 서기장동무....가 느껴지면 이상한건가요......
가라 엔카베데!
동네 평범한 찌질이 소년 우랄은 어느 날 "레닌은 살아있다!"라고 지저귀는 올빼미로부터 '5개년계회그와트'라는 학교의 입학 초대장을 받는다. 모스크바 크렘린 역에서 '20과 사반세기 정거장'을 통해 5개년계회그와트행 열차에 오른 우랄은, 쿠즈네츠크 기숙사에 소속되어 마법 공부를 시작한다. 지팡이를 휘두르면 철강 생산량을 1000%나 증대시키는 놀라운 마법으로 학교의 비밀을 파헤치는 우랄, 하지만 불로장생의 약 '짜르의 돌'을 찾으려는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고스플란 교수, 그는 우랄의 아버지가 200년 전 인물인 표트르임을 밝히고, 학교를 위협하는 어둠의 제왕 '분파주의'와 손을 잡으면 산업화를 보장해주겠다고 유혹하는데...
한편 스탈린 교장의 총애를 받는 남부 기숙사 소속의 우크라이나 역시 우랄과 친구들에게 깐죽대며 투자를 독점하려 노력하지만, 우랄은 "입닥쳐 우크라이나!"를 외치며 정작 그 옆에 쭈그려있던 교통국의 뺨을 때린다. 결국 결투가 성립된 우랄과 우크라이나,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마법으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뱀을 소환했을 때, 우랄은 놀랍게도 뱀의 언어로 뱀을 제압한다. 그렇다. 뱀의 언어는 사실 '분파주의'가 쓰던 '200년 된 목재 고로'였던 것이다! 우랄은 분파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되고, 정체성에 위기를 느낀 우랄은 쿨라크들을 대거 타이가로 보내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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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 제2의 미국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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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
저와중이 홀로도모르가 일어나고있는 중이란걸 생각하면-_-... 집단화도 그렇고 소련이 다수를 위한 체제라는 제 같잖은 환상은 아주 가루가되고있습니다.
입 터는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를 때 그 간극에는 interest가 있다고 쉐보르스키 선생께서 교시하신 바가 있습니다
이제 중앙이 경졔계획에 직접 조정을시도하려는것인가 ㅌ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