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가 두 달 동안 펼친 ‘노인건강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출입문을 들어서자 중년여성 둘이 작은 탁자에 붙어 앉았다가 반색을 하며 볼펜을 내밀었다. “여기 서명 한번만 해주세요.” “그게 뭔데요?” “네, 사인만 해주시면 기업체에서 협찬을 받아 어린이들을 도울 수가 있어요.” 마음이 쫓기는 세밑에 밖엔 을씨년스러운 겨울비까지 추적대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아동전문NGO인 ‘라이프오브더칠드런’에서 나온 이들이었다.
내가 흔쾌히 볼펜을 받아들자 그들은 비로소 제대로 안내했다. “하루 300원이면 돼요.” 한 달 10000원을 친절하게도 날짜로 계산한 금액이었다. 난 지금까지 전쟁피해 아동의 구호와 저개발국 아동의 복지향상을 위해 설립된 국제연합 특별기구 유니세프만 알았지 이쪽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리라 믿었는지 이들은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는 걸 거듭 강조했다. 마침 너나없이 온정을 베푸는 세밑이었다.
하지만 내가 흔쾌히 그 요청에 응한 것은 2004년 봄에 나온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이 떠오른 때문이다. 책에 실린 눈물겨운 사연을 이 카페에다 전하고자 책장에서 책을 뽑아 며칠째 다시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월드비전 코리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신교 자선단체인 월드비전은 선진국에서도 유명 연예인이 이미 단체의 일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 월드비전은 6.25때 미국 목사 밥 피어스가 우리나라 고아와 과부들을 돕기 위해 세계에 호소한 것이 시초였다.
월드비전은 세계에 104개 지부를 두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1년까지 도움을 받는 나라였다가 저자가 친선대사로 나선 1992년부터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고 첫 번째 방문지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였다. 책 속엔 뉴스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비참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읽다보면 때론 분노와 절망감도 함께 느끼게 된다. 몇 편을 골라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곳 카페에 소개키로 하고 책이 나올 당시 작가를 격려한 세 분의 글을 우선 싣는다. 세 분 중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추기경님은 부산교구장 착좌식 등 행사에서 두세 차례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 당시 가톨릭신문 지역기자를 맡은 덕분이었고 추기경님도 신문사 초창기에 사장을 역임한 덕분인지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박 소설가는 따뜻한 봄날 아차산 자락 그의 전원주택을 찾아 딱 한 차례 만난 인연이 있다. 유일한 생존자인 정호승 시인은 작은 사진 한 장을 받고도 작품집을 보내올 정도로 인정이 많은 분이다. 직접 출판사를 경영하다보니 그럴 정도의 여유도 있었는지 모른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들은 가난한 아이들을 보듬어주어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