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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압선이 지나가면 소송감이고 전봇대는 처치 곤란하다 하여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일본 방송에서 유라시아를 오토바이로 일주하는 여행프로를 본 적이 있다. 중국 국경을 넘어 막 몽고에 들어섰는데 비포장 길이 나오더니 급기야 끝없는 평지가 황사에 덮여 길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일행이 울란바토르까지 따라간 것은 기나 긴 전봇대 행렬이다.
전봇대는 문명의 상징이고 번영을 말한다. 해외 여행길에선 전봇대 유무내지는 생김이나 행렬만을 봐도 그들의 생활수준을 짐작하게 된다. 태국에서는 전봇대가 네모나다. 이는 뱀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한 방편이다.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전봇대는 어디가나 모양이 거의 같고 특징이 없다. 특징이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큰 결함이다.
쓰러져 죽을 때까지 제 본분을 다하지만 평소 장애가 된다는 느낌 뿐 이야기꺼리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는 전봇대. 그나마도 전선줄을 올라탄 참새들 모습은 먼 기억이지만 정겹게 다가온다. 참새는 처음부터 일시에 몰려들지를 않는다. 한 마리가 올라 감전이 안 된다 싶으면 우르르 전선줄에 몰려들어 출렁출렁 남사당 패 줄타기하듯 놀다가는 한마리가 나서면 또 우르르 쫓아간다.
다들 어디에 숨었는지 그러한 정경을 요즘은 보기가 쉽지가 않다. 요즘은 차 안전이 문제라고 몸체에 부딪치는 충격시험까지 서슴지 않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창밖 가로수들 사이에 외롭게 선 전봇대. 태풍이 온다하여도 힘겹지만 나무와는 달리 흔들려도 졸아서도 안 된다. 이 문명 세상에 전봇대만한 알짜 충신이 있는가싶다. 양팔에 출렁되는 줄을 나신으로 꿋꿋이 혼신을 다하여 지켜 선 직업. 벼락을 맞아도 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변압기를 짊어진 전봇대는 70년대 우리네 멋 모르는 삶을 닮고 고된 산업 역군을 그대로 닮았다. 예비군복을 입고 열사의 중동 땅을 거침없이 활보하던 역군들. 중동은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모래, 자갈이 지천에 깔렸으니 그런 일터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참고 견뎌내는 것도 그렇지만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해내는 성심을 더덜뭇한 요즘 세상이 감히 근접이나 할까.
그들 덕분에 비싼 전선줄은 산골까지 길어졌고 세상은 빨리 환해지고 좋아졌다. 얼마 전 이라크에 파견한다는 인력 모집 광고를 보았다. 그 시절의 그들이라면 아마도 두려움 없이 거뜬히 해낼 것인데 겁만 잔뜩 는 요즘 전선이나 다름 없는 그곳에 수급이 가능할까 싶었다. 늘 그 위치이고 무표정하여 아무 뜻도 두지 않던 전봇대인데 오늘 옥상에 올라 보니 전봇대가 안 보인다. 내가 전봇대로 본 것은 전등 하나 달랑 달고 전봇대에 붙어살았던 가로등이었다.
모양 꾸민 가로등이 번듯하여 보기에도 그만이다. 예쁜 가로등을 보니 정녕 구박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는 지중화 덕분으로 설 자리도 잃은 전봇대이다. 그러고 보니 내 신세도 세월 따라 전봇대처럼 변해간 것 같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는 날 전봇대 밑에서 고사에 잔치도 벌이고 환한 얼굴 들이대며 복판에서 살던 호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나도 아들 선호에 힘입어 떡두꺼비같은 놈이 태어났다고 집안의 경사로 여겼고 호강을 누렸었다. 이제는 이 나이 힘겨운데 힘겹다 말 못하듯 숨죽여 조용히 사라지던 차 차량충돌을 견디는 신세로까지 전락을 하고 말았으니 '전봇대와 나' 참 기구하다못해 속이 쓰리다. 이를 동병상련이라 하던가. 그렇다하여 흘러간 세월을 누가 탓하랴. 아무튼 세상 참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