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동 마봉산 등정기
봄이 오는 길목 이월 둘째 일요일은 엊그제 내린 눈에 이어 강수가 예보되었다. 낮에는 하늘이 흐려졌다가 비는 밤늦게 올 듯했다. 가끔 산행이나 트레킹을 함께 가는 대학 동기와 정해진 일정으로 하루를 보낼 계획이다. 내가 맡은 도시락은 반송 시장 노점 김밥으로 대체해 진해 용원으로 가는 757번 직행버스를 탔다. 미리 연락이 닿은 동기는 상남동에서 그 버스에 합류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남산동 터미널에서 안민터널을 지나 진해구청 앞을 거쳐 대발령을 넘었다. 웅천에서 최근 입주가 끝난 진해 남문지구 아파트단지를 둘러 용원을 앞둔 웅동에 닿았다. 농협 앞에서 내려 산행 목적지가 될 마봉산 산행 초입을 찾았다. 거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에게 길을 여쭈니 자세히 몰라 어림짐작으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외딴집이 나와 되돌아왔다.
친구는 휴대폰을 펼쳐 지도 검색 애플 도움으로 초등학교 근처로 내려가 산언덕 교회 곁으로 올라 등산로 초입을 찾아냈다. 웅동에서 제법 알려진 산이어서인지 등산로는 반질반질했다. 편백나무 조림지에 이르러 건장한 사내가 올라와 마봉산과 두동고개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멧돼지를 만나거들랑 가만히 멈춰 비켜주라고 일러주었다.
길을 안내 해준 사내를 앞세워 보낸 뒤 우리는 운동기구가 설치된 산마루 쉼터로 올라 배낭을 벗어 쉬려고 했다. 곁에는 커다란 빗돌의 무덤이 있어 다가가 보니 창녕 조씨 무덤이었다. 친구가 먼저 다녀온 사람 산행기에서 봤다는 절충장군 주의수 무덤은 그보다 아래쪽에 있는 듯했다. 주의수는 정유재란 때 제포만호 직을 수행하다 순절해 전후 일등 공신에 오른 이로 알려졌다.
쉼터에서 친구가 가져온 담금주를 두어 잔 비우고 마봉산을 향해 오르니 소나무 숲길이 나왔다. 엊그제 내린 비로 습기를 알맞게 머금은 솔갈비는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폭신했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 더미가 나오고 진달래는 꽃망울이 부풀어 연방 꽃잎을 펼칠 듯했다. 점차 해발고도를 높혀가니 불모산이 시루봉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는 천자봉과 만장대가 진해만으로 향했다.
웅동의 소사와 대장의 두 자연마을은 최근 뚫린 도로망에 포위된 듯했다. 굴암산 밑으로는 고속도로 진출입 터널과 시루봉 아래는 도심을 우회한 2번 국도 터널이 생겨났다. 용추폭포 곁으로는 장유로 가는 신설 도로 터널까지 뚫려 예전에 농사를 짓던 시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인적이 드문 산 너머 골짜기는 해군 신병들의 기초군사 교육장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앞장선 친구가 손뼉을 치면서 나아가니 멧돼지는 부석거리며 사라졌다. 숲길에서 잎맥이 파란 춘란을 여러 포기 만났다. 전망대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신항과 입전한 넓은 매립지와 섬들이 보였다. 아까 산행 초입에서 사내가 이르길 먼저 나오는 봉우리는 가짜 마봉산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진짜 마봉산이 나온다더니 사실이었다. 정상에는 시멘트로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정상에서 배낭을 풀어 가져간 김밥을 먹으면서 남겨둔 담금주를 마저 비웠다. 이후 보배산으로 이어지는 두동고개로 향해 가니 불모산에서 굴암산을 거쳐온 산등선과 만났다. 산꾼들 사이에 신낙남정맥으로 불리는 산줄기로 보배산을 거쳐 봉화산에서 맥이 멈춘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높은 산마루에는 묵혀진 무덤 여러 기가 흩어져 있었다. 산비탈을 한참 내려가니 두동고개였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용원 망산도에 닻을 내린 허황옥이 두동고개를 넘은 명월사에서 김수로왕과 첫날밤을 보냈다고 전한다. 명월사는 흥국사로 바뀌었는데 산비탈을 더 올라가야 해서 고개에서 두동으로 나갔다. 두동마을 주민들은 개발의 뒤안길에 뿔뿔이 흩어지고 항만 배후 물류기지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로 바뀌었다. 웅동으로 나가 낙지전골로 맑은 술을 몇 잔 비웠다. 2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