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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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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참여마당 스크랩 재조지은 (再造之恩) 그리고 소중화(小中華)의 나라
요동킴 추천 0 조회 147 12.10.03 01:06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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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지은
[再造之恩: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

 

1.망하기 일보직전에 고구려에게 은혜를 입은 신라(신라 구원전쟁)

이때 고구려의 총사령관은  광개토대왕이다


신라를 멸망직전까지 괴롭힌 가야와 왜는 고구려에게 치명적인 물리적 타격을 입고 패퇴하면서 그세가 서서히 약해졌다

[펌]광개토대왕비문에는 399년 신라의 내물왕이 고구려에 급하게 사신을 보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신은 광개토대왕에게 신라영토 내에는 왜인이 가득하고 성지는 파괴되었고 태왕의 신하인 신라왕은 천민으로 변해 태왕께 귀의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태왕은 인자히 그들의 충성을 칭찬하고 사신에게 밀개를 얘기하고 돌려보냈다.’ 라는 뜻의 기록이 있다. 밀개를 주어 신라의 사신을 보낸 광개토대왕은 그 이듬해 신라를 구하기 위해 5만의 군사를 파견했다.
고구려의 군대는 신라를 침공한 왜와 가야지역까지 단숨에 진격해 내려갔다. 고구려군은 전투마다
승전고를 올렸고 마침내 광개토대왕의 군대는 한반도 남쪽에서 가자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철의 나라
금관가야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렸다. 이것이 400년 신라구원전쟁이었던 것이다. 이 전쟁을 계기로
신라왕은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였고 신하의 나라로써 예를 갖추게 된다.

2.망하기 일보직전에 중국 당나라에게 은혜를 입은 신라(신라 구원전쟁)

 이때 중국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대의  총사령관은 소정방이다

 

남북조 시대:통일신라(후기신라:남3한통일-백제/신라/가야)

                  vs 통일발해(후기 고구려:북방부족인 남고구려(북한)+북고구려(요동+만주+몽골)지역의 통일

백제 의자왕의 남3한통일의지로 전면전 공격에 의한 신라의 40여개의 성을 빼았겨 사직이 위태로웠던 

신라는  오늘날의 미국과같은 당나라의 국제질서 재편작업와중에서 당나라의 군량미(식량파트너)로서  손을 잡아 기사 회생한다

때마침 동아시아의 강국 통일 당나라가 동이족(고구려,백제,신라)  섬멸작전 차원에서 수나라에 이어  고구려와 100년전쟁을 치루었지만 한번도 이겨보지 못하자 ,기어코 신라를 끌어들여 소정방을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명하고 신라왕을 우이도총관으로 삼아

식량보급부대 역할을 떠맡겨 그동안 장거리 전투로 인한 식량문제로 패했던  것을 일거에 해결했다

백제를 급습하고 고구려를 유린하였다 결국 중국 당나라는 백제의 수도 사비(오늘날의 부여)와 고구려의 평양성을 점령해

오늘날의 일본군의 조선총독부와 같은  웅진도독부(백제지역),안동도독부(고구려),계림도독부(신라)를 설치하였다

결국 백제의 지배층은 당나라로 1만오천명이 끌려가고 남아있던 지배층이 백제가 만든 백제의 또다른 나라 왜로 넘어가 "일본"을 세운다

당나라에게 고구려 역시 지배층과 저항세력의 주도층 30여만명을 강제 이주당했지만,이에 굴하지 않고  고구려의 대조영을 비롯한  유민들이 남아있던 고씨 귀족 세력과 힘을 합쳐 후고구려인 "고려(중국 당나라는 발해라고 책봉)"라는 이름으로 30여년뒤에 보란듯이 부활한다

중국역사책은 발해는 고구려가 아니고 말갈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국사교과서도 궤를 같이한다

중국은 눈에가시인 불구대천의 원수인  고구려가 망했다고 사서에 남기고 싶었고 ,신라의 3국통일을 주장하고 싶었던 후대의 그릇된 사가들의 오판으로 후고려인 발해를 이민족 취급했던 것이다

중국 수,당의 오랜 숙원은 고구려를 멸망시켜 국제질서의 킹으로 남고 싶었지만 고구려는 후고구려인 발해로 화려하게 부활 오히려 중국을 위협했다

고구려의 품안에 있던 만주족 일대의 여러 부족들간의 싸움은 중국의 전쟁술책인 "이이제이"전술에 놀아난것에 불과하다

결국은  오늘날 만주족으로 일컫어지는 여진족, 몽골족 또한 부여나 고구려의 후예라고 단언한다

중국 고대국가들은 고구려가 영원히  망했다고 역사에 남기고 싶었지만 "겨울잔디가 한겨울에는 죽어있는 것처럼 메말랐으나,

봄에 다시 소생하듯이" 고구려의 후예(거란족,여진족,몽골족)들은 오히려  중국본토를 침략하여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를 세워 무려 500여년 이상 중국을 식민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의 국사책도 일본의 역사왜곡을 탓하기전에 하루빨리 우리의 역사왜곡을 시정해야한다

요즈음은 일부 신라와 발해를 남북조시대로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3국통일의 위대함만을  버젓이 가르치고있다

그 3국통일이라는 곳은 백제와 가야 ,신라지역인 남3한땅에 불과하다

결국 오늘날  남북조 시대를 인정하면서도 고구려가 망했다라고 하는 3국통일 강조하고 있는 이상한 이중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님들께 무릎꿇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당나라 시각의 신라와 발해를 주장할 게 아니라

후기 신라와 후고려(고구려)라고 하루 빨리 국사책을 정정해야한다 이것이 바로 동북공정을 이기는 길이기도 하다

백제나 고구려가 결국 당나라에 의해 망했다는 분명한 사실도 신라에 의해서 망했다라고 왜곡한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야간의 내분도 동족상잔으로 규정해야한다

현대사의 6.25 또한 동족상잔의 슬픔이 있지않는가?

언제까지 "성공한 쿠테타는 법으로 처벌할 수없다"는 오늘날의 태도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앞에 부끄러움 알때 참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3.망하기 일보직전에 중국 명나라에게 은혜를 입은 조선(후기 조선 구원 전쟁)

이때 중국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군대의 총사령은 이여송이다

 

1592년 조일전쟁으로 조선의 선조는 요동으로 망명을 요청했으나 명나라는 국제전쟁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하여

요동성주로 하여금  거절하게한다

중국 명나라는 이여송을 명조 연합군 총사령관 삼아 조선을 지원하게된다

불행중 다행으로 망국으로 치닫던 조선은 명나라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다

결국은 조선의 왕 선조는  "재조지은"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패전의 책임,부패,무능을 감추려고 재조지은을 강조하면서

임진왜란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전라좌수영과 우수영의 수군들의 공적,의병과 승병 그리고 포수들의 공을 덮는다

 

 

4.망하기 일보 직전에 고구려 만주족(후금=청나라)에게 사직을 보존받은 후기 조선

이때 고구려 만주족이 만든 청나라의 총사령관은 용골대이다

 

남북조시대:고구려만주족과 몽골족 vs 고려,후기 조선

 

명나라가 흔들리고 장백산민족(백두산민족)이라고 불리워지는 고구려의 후예인 여진족들의 세가 다시 뭉쳐

고구려 몽골족들과 힘을 합쳐 중국한족들을 몰아내고 후금 즉 청나라를 세워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한다

재조지은의 이데올로기속에 소중화를 자처하던 조선은 청나라의 위협속에서 광해군의 등거리외교로 버티다가

재조지은을 앞세운 인조반정으로 고구려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오랑케라고 여기면서

다시 청나라와 등을 지게되어 조청 전쟁을 초래한다

고구려 만주족의 나라인 청나라의 공세(청태종과 총사령관 용골대)앞에 무릎을 꿇은 인조는 신하의 예를 갖춰 사직을 보존하게되어

청나라를 재조지은의 나라로 모시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5.망하기 일보 직전에 대한민국을 구한 미국(대한민국 구원전쟁)

이때 미국과 연합군대의 총사령관은 맥아더이다

 

남한과 북한간의 통일전쟁으로 내전을 치르던중 남한이 북한의 공세에 초반부터 끝없이 밀리다가

부산을 제외한 전국토가 북한의 수중에 들어갔다

사실상 전쟁이 끝난거나 다름없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다

 

 

6.망하기 일보 직전에 북한(조선)을 구한 중국(현대 조선 구원전쟁)

이때 중국군의 총사령관은 팽덕회이다

 

북한또한 초반의 승세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대의 반격을 받고

역전패를 당하여 신의주까지 밀려갔다가 중국군의 도움으로 다시 기사회생하는 은혜를 받았다

중국모택동은 오늘날의 동북3성(만주지역의 고구려 만주족)의 청년들을 의용군으로 징집하여  전선에 투입

휴전협정에 이르게 된다 

 

재조지은의 주역들

 

고구려 광개토 대왕

중국 당나라의 소정방

중국 명나라의 이여송

고구려 만주족의 청나라 용골대

중국군의 팽덕회

미국군의 맥아더

 

후기(後記)

 

태극기의 원조 3태극기 임에도 박영효등이 일본으로 가는배에서

3태극기는 중국스러워 2태극으로 그렸다고 한다

2태극 빨강(고구려 군사 깃발색)과 파랑(신라 군사 깃발색)

빨강과 파랑 =>증오와 분열을 통한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색

3태극기의 빨 ,파, 노中 노랑색(마한백제)은 평화와 화합 그리고 창조의 한류 바이러스를 불러 일으킨다

 

고구려는 절대로 중국과 신라에 통합된 적이 없다

고구려의 합중국인 여러부족들중에서 고구려는 말갈이라고도 불리워 졌고,고구려가 망하고 ,

발해가 망하자 그뒤를 이어  거란이 나오고 ,몽골이 나오고 ,여진족(만주족)으로 분화했다

누가 감히 여진족(만주족)과 고구려가 다르다고 하는가?

동아시아에서 中의 사상을 가진 중국 고대국가는 高의 사상을 가진 고려(고구려)에 식민지배를 당했다

高의 사상을 가진 고구려의 후예들(장백산=백두산민족)들이 중국을 500여년이상 식민지배한 쾌거의 역사가 있으나,

중국은 화화 일통주의로 이민족을 하나의 민족으로 깔아 뭉개고 있는 것이 동북공정(만주공정)이다

신라의 3국 통일이라는 용어선택도 잘못되었다 .민족간의 동족상잔이요,그 3국이라함은 당나라에 의한 강제합병이라 할 수 있는

남한3한(백제,신라,가야)간의 통일에 불과하다

후기신라는 후고구려인 발해와 남북대결을 벌였고 ,남고구려(고구려의 수도 평양성 중심세력)에 의한 고려에게 후기신라가 망하고 ,그 이후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북한지역까지 확대되었을 뿐, 후고구려인 발해의 수도 상경(홀한성)중심의 만주지역세력에 의한 고구려 만주족(여진족)이 중국한족을 식민지배를 하면서  금나라,청나라가 세워졌으며,고구려 몽골족에 의해 원나라가 금,청 이전에 세워졌다

백제 또한 당나라에 의해 멸망에 이르자,그 지배층의 일부는  당나라에 귀순했고,660년이후에도 당나라와 끝까지 대당 무장 독립투쟁을 벌였던 지배층은 전세가 여의치 않자 당시 백제의 식민지인 왜로 넘어가 10여년 뒤에 일본이라는 국호를 내세워 다시 백제를 세운다

따라서, 만주지역과 한반도, 일본은 만조사관이나 동조동근론에 입각해보면 하나의 형제인 셈이다

물론 일본의 군부세력들이 조선의 역사왜곡을 만선사관을 통해 식민지를 정당화한 측면이 있지만,

잃어버린 우리의 고구려 만주역사를 일깨운 점 또한 부정할 수가 없다

광개토대왕비도 일본인 역사학자가 발견하여 세상에 첫모습을 보인 것도 아이러니하다

일본의 후손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망각했다 그들의 조상이 만주지역에서 태동한 부여이며,백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후손들이 다시 한반도를 접수하고 만주지역을 접수한 것을 보면 그들의 태동적  뿌리가 어디인지 짐작이 간다

다만 침략에 따른 만행을 돌이켜볼 때 우리로서는 치가 떨릴 뿐이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는 중국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똑같았고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간의 동족상잔 또한 그 처참하고 잔악하기가 별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일제에 의한 침략에 따른 잔혹상이나 남북한의 625 전쟁도 그 참혹하기가 이를데가 없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다만 우리가 그 아픔을 잊었을 뿐이다

 

안따깝게도 백제는 역사를 잃어버렸고,일본은 역사를 잊어버렸다

일본과의 화해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역사를 일깨워 줄 때 역사화해가 이루어 진다

그렇다

역사란 승자는 역사를 만들고,패자는 역사를 잃어버린다,망자는 역사를 잊어버린다

 

요동과 만주중심의 무장 세력들이 만주지방과 한반도에 부여와 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세웠고,그 이전  한반도는 나주지방 중심세력이 마한 통일 제국을  형성해왔다는 사실이다. 그 마한 통일제국은 고대국가의  왕릉이라할 수있는 지석묘라고 하는 거대한 고인돌을  통해 알 수 있다

전세계 4만기중 2만기가 나주지방과 전남북 지방에 산재 되어 있음을 예의 다시 한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영산강유역의 장구형 왕릉(전방후원분)은 고대국가의 강력한 왕들의 무덤이며 ,일본 고대국가의 천황들의 왕릉도 전방후원분이다  

요동지역의 신흥 북방 유목 무장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그들은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사실확인이 좀 더  필요하지만 일본의 고대국가의 수장들의 묘(고인돌,고분,왕릉)가 한결같이

호남지방을 향해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흥망에 따라 일본으로 마한제국이 최초로 넘어가고,가야가 넘어가고,백제와 고구려가 넘어가고

신라가 넘어가서 오늘날의  일본이 탄생했다

 

우리는 동족간에 국가를 달리할 때는 서로 "오랑캐"라고 지칭했으며,

후기 신라가 발해(후기 고구려)에게,발해가 신라에게 적대적인 표현을 했다

오늘날에는 남북한 끼리도 서로 미제의 주구,앞잡이,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후기 신라는 정작 발해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선언했음에도 중국 당나라와 더불어 발해라는 중국식의 명칭을 고수했다

오늘날 남한은 북한을 조선이라고 이라고 불러주지 않고,북한은 남한을 대한민국이라고 하지않고 남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동족간의 서로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통일"이라는 꼼수를 통해 남북한 백성들을 옭아매고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권력에 반대하는 자를 역적이라고 했고

오늘날 남한은  반대자들을 종북좌파,북한은 반대자들을 반혁명분자라고 지칭하여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을 이런식으로 탄압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이 것을 깨달을때

이 것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실천 하는 길이다

우리 아리랑 민족끼리  지역분쟁(남북)을 종식시키고 ,만주족과 몽골족의 본향이 고구려임을 일깨워서

진정으로 남한과 남고구려(북한)와 북고구려(몽골+만주)가

진정한 통일을 이루고 일본과도 진정한 역사화해를 이루어

중화를 넘어서 미합중국을 능가하는 도덕을 가진 패권국가로 자리잡아

우리 배달민족의 국시인 홍익인간의 단군 이념을 세계 만방에 널리 반포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

.

.

.
저는 역사를 비전공한 평범한  시민입니다

하심(下心),겸손(謙遜) ,이타(利他)의 마음가짐으로
더욱 역사공부에 매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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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0.03 06:14

    첫댓글 짝짝짝!! 선생의 통합적인 민족사 인식에 동감하며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 작성자 12.10.03 18:31

    귀한말씀 고맙습니다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문득 고민고민 했던 점을 적었습니다

  • 12.10.03 13:40

    여러가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 작성자 12.10.03 18:32

    귀한말씀 감사드립니다 좀더 고민을 깊이있게 해보겠습니다

  • 12.10.07 12:27

    요동킴 님 !!! 일관성있는 우리역사 정리..멋쪄부요....

  • 작성자 12.10.07 13:48

    고맙습니다 역사를 제나름대로 정리했습니다만
    뜨겁게 우리의 역사 또한 사랑합니다

  • 12.10.07 16:54

    잘읽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 12.10.08 21:34

    잘읽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고, 또한 앞으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10.11 22:40

    고맙습니다 더욱더 하심,이타,겸손으로 공부 매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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