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용서만이 살 길이다. 세 가지 이유로 그렇다.
첫째, 용서하지 않으면 그 분노와 미움이 독(毒)이 되어 본인을 해치기 때문이다. 용서의 길을 몰라서 화병(火病)이 들어 죽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독한 미움이 암(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미움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용서다.
하버드 대학의 미틀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이 두 배나 높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이 생명의 단축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실험 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둘째, 용서해야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신약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용서'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자신을 풀어주다, 멀리 놓아주다, 자유케 하다' 라는 뜻이다.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못하도록 과거에 매달려 수없이 되뇌이며 딱지가 앉기 무섭게 뜯어내는 것이 바로 '원한'이다.
미국으로 이민한 한 랍비가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 오기 전에 아돌프 히틀러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새 나라에 까지 히틀러를 품고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용서를 통해서 '치유' 받는 최초의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이다. 진실한 용서는 포로에서 자유를 준다. 용서를 하고 나면 자기가 풀어준 ''포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셋째, 용서가 죄의 악순환을 끊는 길이며 서로가 사는 상생(相生)의 길이다. 용서만이 복수와 원한의 사슬을 끊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하는 것이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용서하기 전에는, 두 개의 무거운 짐이 존재한다.
즉, 한 사람은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한 사람은 '원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용서는 그 두 사람을 모두 자유롭게 한다.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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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과 바라는 마음을 제거하자
가슴 답답함이 사라진 체험
2023년 10월 12일
글/ 샤오메이(小梅)
[명혜망] 나는 원망하는 마음, 특히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원망이 많이 사라져 원망하는 마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고, 바쁘지 않을 땐 가래 같은 것을 한 무더기 뱉었는데 냄새가 역할 때도 있었다. 때론 트림을 하면서 매우 불편했다.
안으로 내 집착심을 찾고 마음 속으로 사부님께 가지해주실 것을 청했지만, 상태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는 청나라 시대에 관리인 것 같았는데, 한 사람을 심문하다가 너무 화가 나서 수건으로 그 사람의 입과 코를 막아 질식시켜 죽였다.
잠에서 깨어난 후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인의 큰 업력을 쌓았는데, 이생에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나를 제도하지 않으셨다면, 내가 빚진 생명의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이미 제자의 업력을 많이 제거해 주시고 조금만 감당하게 하신 것인데, 우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기분 나빠해서야 되겠는가?
한번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흡기가 너무 불편했고 코와 목이 아프고 통증이 너무 심해 잠도 못 자고, 누웠다가 앉아있다가 하면서 나에게 상처받은 생명과 소통하면서 그들과 선해(善解)하려 했으나 여전히 불편했다.
다음날 코에서 걸쭉하고 진한 노란색의 화농성 가래가 많이 나왔다. 나중에 코가 막힌 것 같았고 밖으로 풀어봤더니, 코에서 콩알만 한 동그란 것이 나왔는데 좀 딱딱하고 탄성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그런 것이 나왔는데, 그후 코가 한결 나아졌다.
나는 고등학교 때 코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공부할 기운도 없었는데, 법륜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그것이 모두 내 업력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 출근해서는 침을 뱉지 않고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는데,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때면 가래를 뱉었고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고 트림을 했다.
이런 상태가 몇 년간 지속됐다. 나는 단지 내가 업력이 크다고 생각했기에 이 문제에 대한 원인을 더 깊이 찾지 않았다.
최근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외울 때 사부님께서 나를 깨우쳐 주셔서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원망하는 마음을 찾았다.
예전에 내가 가진 돈으로 어떤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예전에 그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옷을 사주고 돈도 주었는데, 지금 잘 살고 부자가 돼도 찾아와서 고마움을 표할 줄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대방에게 보답을 바라고 감사를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받지 못하면 불쾌해하는 불만이 바로 원망하는 마음이 아닌가?
그리고 안으로 많은 원망을 찾았다. 남편이 나를 위해 이것저것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불쾌해하는 이것이 바로 원망이 아닌가?
아이를 타이를 때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언짢아했다. 이것이 원망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짢아했는데, 이것이 원망 아닌가?
때로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해서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情이 많아서 가족에 대한 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론 정을 담담히 보았다고 느꼈지만, 실망해 상심하기도 했다. 이제 나는 그것이 모두 원망심 때문이라는 것을 문뜩 깨달았다.
진정으로 情을 내려놓으면 그것은 자비심으로 바뀌고, 남을 대할 때 내심으로부터 잘 대하고 진정으로 남을 생각해야 옳은 것이다. 나의 무관심은 선량함이 아니고 완전히 원망이다.
더 깊이 깨달은 것은 내가 당신에게 잘해줬으니 당신도 마땅히 나를 잘 대해야 한다는 이치로 항상 다른 사람에게 요구했다.
예를 들어, 너는 내 딸이니 나를 존경해야 하고, 당신은 내 남편이니 마땅히 나를 돌봐야 한다는 등이다.
혹은 누군가의 말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면 누군가의 성품이 좋지 않아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등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맴돌았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사람 사이에는 업력윤보의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남을 위해 선을 행하더라도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하고,
남이 나를 나쁘게 대할 때 우리는 과거에 빚진 것을 갚으면 되고, 원망이나 미움 없이 남을 잘 대하고 남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선량함이다.
깨닫고 나니 마음에 원망이 생기지 않았다. 연공할 때 사부님께서 내 몸속 깊은 곳의 냉기를 배출하도록 도와주셔서 가슴이 더는 답답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정진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한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6일
첫댓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