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 신헌철 SK(주) 사장‥ "다른사람이 1m도 못뛰어 주는 마라톤처럼.."
신헌철 SK㈜ 사장이 마라톤을 시작한 사연은 길다. 1996년부터 과로로 인해 시작된 퇴행성 관절염이 빌미였다. 1998년부터는 병원을 다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난간을 잡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출근하는 신 사장을 보면서 신 사장의 부인은 툭하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신 사장은 완치를 위해 별짓을 다했다. 운동,약,치료 등 좋다는 것은 빼놓지 않았다. 헬스클럽에서 자전거 타기는 365일 매일 한다는 각오로 365회,33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스트레칭은 33회를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주최한 국제아동돕기 행사에서 한국암웨이의 김희진 부사장을 만났다. 역설적으로 퇴행성 관절염에는 마라톤이 좋다는 김 부사장의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해부터 마라톤을 하기로 마음먹은 신 사장은 맹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3.6km 정도를 45분에 뛰었다. 하프코스를 뛰어보라는 권유에 7.2km,다음에는 왕복을 두 번 해 15km를 연습했다. 신 사장은 곧바로 모 신문사 주최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도전했다. 걸어서라도 들어오자는 심사였다. 첫 완주 기록은 4시간39분.신기하게 다리의 통증이 없어졌다. 이후 마라톤은 신 사장과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운동이 됐다. 단지 운동이 아니라 신 사장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그 무언가가 된 것.신 사장은 마라톤과 경영에서 큰 공통점을 발견했다. 마라톤과 경영은,다른 사람이 단 1m나 한순간도 안 도와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라톤이든 경영이든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내야 하죠.실행에 옮기면서 마무리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대신 해줄 수 없죠.마라톤도 그렇고 경영도 마찬가지죠." 신 사장은 요즘도 각 부문장들에게 "결국 결정은 나한테 미루는구먼.정말 고독해"라고 농을 건넨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신 사장 혼자만의 고민이 있다는 얘기다.
신헌철 SK(주) 사장 ‥ "여덟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955년.신헌철 SK㈜ 사장에겐 잊을 수 없는 해다.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며 배를 탔던 신 사장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신 해이기 때문.신 사장에게 가장 어려운 삶의 고비였다. 당시 신 사장의 나이는 여덟 살.지금도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눈시울을 붉힌다. 당연스레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당시 남동생 우철씨는 여섯 살이었고 여동생 홍란씨는 돌잔치를 하기도 전이었다. 당시 남은 건 시골집과 밭 8마지기가 전부였다. 신 사장은 하숙집을 하던 어머니를 돕기 위해 여객터미널을 오가며 호객행위를 했다. 손님을 모셔오다 중간에 여관으로 손님을 뺏기면 한숨을 쉬곤 했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부산 해운대로 이사했다. 어머니와 행상을 하기 위해서다. 신 사장의 유년은 그랬다. 가난 때문에 신 사장은 인문계를 포기하고 부산상고에 입학했다. 장학제도 때문이었다. 은행원의 꿈을 안고 신 사장은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방학 때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은 계속 어려웠다. 대학은 서울대를 목표로 했다. 아쉽게도 1964년 서울 상대에 떨어지고 부산시립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이듬해 또 낙방했다. 결국 3수를 하고나서야 1966년 부산대학교에 들어갔다. 신 사장은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병대에 입대했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다. 육군보다 2개월 짧았던 복무기간도 한 몫했다. 하지만 신 사장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제대를 4개월 앞둔 1968년 초 북한의 김신조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면서 복무기간이 무기한 연장된 것.결국 예정기간인 26개월보다 7개월 많은 33개월이 지나서야 제대했다. 제대 후 고시도 생각했었지만 형편상 취직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가난,3수,해병대,군복무 연장….어쩌면 일찍 여읜 아버지로 인해 신 사장의 고난이 커진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신 사장은 원망이나 그리움을 넘어 또 하나의 교훈으로 삼았다.
'마라톤 CEO' 신헌철 SK(주) 사장
# 경영은 솔선수범 “윗사람이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조심해야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술이나 여자도 조심해야죠.술이나 여자 문제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 많아요.” # 편지쓰는 CEO “자주 쓰죠.조만간 직원들에게 띄울 것도 써야 하는데.해마다 오징어도 함께 보내죠.” # 인생은 풍류가 있어야 “옛 사람들 말을 좋아해요. 풍류를 생각할 줄 알아야죠.” # 문학에 대한 미련 “가끔 글도 쓰고 일기도 쓰고 시조를 읊조리게 되죠.문학 미술 등 다양한 방식은 사회생활의 근본을 이룰 수 있죠.”
신헌철 SK(주) 사장 ‥ "初心잃지 않으려 35년된 입사통지서 지니고 다니죠"
지난 13일 오후 5시께 서울 남산순환도로 입구에는 신헌철 SK㈜ 사장(62)과 한국경제신문 기자,SK㈜ 임직원 20여명이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모였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신 사장이 이색 '러닝 인터뷰'를 제의했기 때문.봄기운이 완연해진 7.5km 남짓한 순환로를 뛰면서,신 사장은 마라톤에 얽힌 자신의 삶을 솔직 담백하게 털어놨다. 오르막 길에서는 힘찬 구령을 선창함으로써 동반 러너들을 배려하는 자상함도 드러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18일 신 사장은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풀코스(42.195km)를 3시간57분13초 만에 주파,자신의 종전 최고기록(4시간5분대)을 경신했다. 62세로 4시간대 벽을 깨고 보스턴마라톤대회 출전 자격을 얻은 것.앞서 신 사장은 지난 6일에도 중림동의 한 감자탕집에서 한경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4시간여에 걸친 술자리는 드라마 같았던 인생 스토리에 신 사장 특유의 입담이 더해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남산에서 지난 13일 서울 남산에서 마라톤을 제안한 신 사장을 비롯해 SK㈜ 임직원 10여명과 한국경제신문 기자 10여명이 만났다. 서울 중구 회현동 남산순환도로 입구의 조지훈 시비 앞에서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해 장충동 국립극장까지 뛰어갔다 돌아오는 코스로 약 7.5km를 50분 동안 뛰었다. 구호는 신 사장이 "한국"을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경제"를 외치는 식이었다. 본지의 제호를 구호로 외치는 동시에,한국 경제를 생각하자는 신 사장의 배려였다. -마라톤 풀코스 최고기록이 4시간5분인가요. "네 맞아요. 4시간12분이면 시속 10km인데,1km를 5분40초 정도에 뛰는 셈이죠.완주는 열세 번 했는데 기록이 안 줄어집디다. 3시간59분 내로 들어 올 수가 없어요. (신 사장은 남산 마라톤 이후인 지난 18일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3시간57분13초를 기록해 보스턴마라톤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다)." -흐트러짐 없이 잘 뛰시네요. "제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때마다,기부 의사를 전달한 임직원들의 이름을 번호판에 적고 뜁니다. 완주하면 그 임직원들의 성금에다,매칭펀드를 적용해 기부금을 내죠.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기부를 약속한 임직원들을 떠올리며 끝까지 피니시 라인을 향해 가죠." # 감자탕집에서 만난 '아저씨 신헌철' -음식은 뭐 좋아하세요. "촌놈이 다 좋아하지 뭐.그래도 옛날에 어머니께서 장에 가시면,제가 음식을 해 먹어서 그런지 직접 만든 김칫국이 좋아요. 그냥 김치 송송 썰어서 끓이면 되죠.국수도 있으면 기가 막히죠." -주량은요. "평소에는 술을 거의 안 해요. 어쩔 수 없을 때 가끔 하죠.지난 1월에 우리 회사 부문장들과 회의를 끝내고 올해 처음으로 술 한 번 마셨죠.한 일곱 잔 마셨나. 다음 날 고성에서 마라톤을 뛰었는데 고생 좀 했죠.일곱 잔….내가 교회 장로인데,목사님이 근신 처분을 내릴려나. (좌중 웃음)."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시죠. "술,골프 다 소질이 없으니까. 그냥 운동 좀 하고,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입니다. 저녁 9시 뉴스 보고,새벽 4시20분에 일어나요. 휴대폰 알람이 늘 그렇게 맞춰져 있죠." -요즘도 편지를 자필로 씁니까. "많이 쓰죠.조만간 직원들에게 띄울 것도 써야 해요. 최근 명함 준 사람들에게도 한 번씩 썼죠.그중에 한 사람은 답장도 왔어요." -해마다 오징어와 함께 자필 편지를 동봉해 지인들에게 전달하신다고 들었는데. "예,고맙다는 뜻이죠.요즘은 오징어가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아서….(신 사장은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뭐죠. "항상 지니고 있는 건데.35년 전 입사통지서,신입사원 임명장 같은 거죠.초심을 위해서 지니고 다닙니다. 그리고 명함철도 있어요. 이게 제가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바꿀 때마다 모아 놓은 명함이죠." -굉장히 꼼꼼하시네요. "에이,별로 꼼꼼하진 않아요. 특히 우리 집사람한테는….(웃음)." # 인생의 스승들 -당시 대한석유공사를 어떻게 선택하신 거죠. "그때 고민을 많이 했죠.대한석유공사에 갈지,국민은행에 갈지 고민하던 터에 당시 부산 지사에 계셨던 황두열 대리(현 한국석유공사 사장)를 처음 만났죠.그분이 다녀보다 은행가도 되니까 일단 입사하라고 하시더라고.입사 후에는 두 번이나 제 직속 상관이 되셨죠.참 신기한 운명이야."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인생에 영향을 미친 분들을 꼽는다면. "첫번째는 고(故) 최종현 회장님이죠.61개월간 사장실에 있으면서 많이 뵙기도 했고,저를 미국으로 공부하게 보내주신 분이기도 하죠.SKMS(SK경영관리시스템) 기법을 같이 개발하고 1989년에는 SUPEX(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 개념을 만들면서 그분에게 많이 배웠어요. 다음은 황두열 사장이죠.SK 입사도 그분의 조언 덕분이었고.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까. 마지막으로 아랫사람 대하는 것은 이봉환 전 상무를 통해 많이 배웠어요. 제가 모시고 있는 2년간 부하관리 면에서 참 스승이었지요. 황두열 사장과 조헌제 사장도 이분 밑에서 다 컸어요. 그리고 친한 친구인 부산상고 동기 이성태(한국은행 총재)도 배울 점이 많아요. 서울대 상대를 수석 입학했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고.안목을 가진 위인이지." -직장 부하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부하 관리요.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되는 거죠.밑에 사람 입장에서 상사가 항상 생각해주는 거예요. 제가 신입 때 엄청 큰 사고를 냈어요. 차를 몰고 가다 굴렀거든요. 입사 동기는 사고 때 죽었죠.이름도 안 잊어 버려요. 하여튼 그때 얼마나 겁이 나고 덜덜 떨렸던지….당시 황두열,조헌제 과장이 다 뛰어 나오고.같이 나온 지사장님이 와서 자기 차에 나를 딱 앉히고 점퍼를 입혀주는 거예요. 괜찮냐고 물으면서.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이번 사고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가만 안둘 거라고 하시더라고.나중에 보니까,그 지사장님이 집에 있는 직원 가족들을 생각했더라고요. 사고났다고 소문이 퍼지면,나중에 모든 부인들이 남편이 늦게 들어올 때마다 다 사고난 줄 알테니까….그렇게 배려를 하더라고요. 쉽지 않은 거지요." # 수지 맞은 직장인 -연봉이 억대가 넘어간 건 어느 때부터죠. "국제전화사업을 하는 SK텔링크 사장을 제가 3년 했는데,아마 그때일 겁니다." -직장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글쎄요. 지나간 걸 비교해 본 적은 없어요. 내가 낙천적이라서.근데 이건 비밀인데….SK 다니면서 신입 연수받고 있을 때,국민은행에서 계속 신원보증서가 빠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찾아갔지.SK에 먼저 다니게 됐는데,개인적 욕심이지만 다녀보고 국민은행 다니려 했었다고 했어요. 사실대로 말하고 그냥 왔죠." -입사 초기는 어떠셨어요. "회사에 와보니까 마케팅 업무를 한다고 차를 한 대 주더라고요. 1974년께 4만2500원 정도 봉급을 받을 때였죠.그래서 그런지 후회는 안 했죠." -옛날 회사생활 좀 얘기해 주세요. "직장생활 다 비슷하죠.그러고 보니까 수지 맞은 적이 있네요. 임원 되기 전인 1989년도에 사장실 팀장을 했었는데,보통 3년 정도 하면 이동이 이뤄집니다. 근데 저는 61개월 했어요. 드디어 다음 보직 발령이 났는데,당시 너무도 가고 싶었던 직매부장 자리로 옮기게 됐죠.발령까지 다 받았는데,그만 사정이 생겨 못 갔어요. 대신 경영기법 개발부 부장으로 갔죠.지금의 SKMS를 다루는 거죠.그게 제 운명의 갈림길이었죠." -이유가 뭐죠. "하고 싶던 장사꾼 보직은 아니었지만 최종현 선대 회장님의 경영기법을 마무리해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죠.결과적으로 수지가 맞은 거예요. 당시 저에게는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 뒤에는요. "SK가스에서 5년 정도 있다가 SK텔레콤으로 갔죠.당시 SK텔레콤으로 옮긴 것 역시 큰 기회였어요. 당시 삐삐 012 가입자가 350만명에서 400만명 할 때였죠.015가 400만명으로 시장을 50 대 50으로 양분하던 시절이니까. 남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리는 일이어서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당시 SK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과감히 기술도 개발하고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도 밀어붙였죠." -힘드시지는 않았나요. "SK에서만 이 모든 걸 해낸 것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죠.1996~97년도 당시 CDMA가 새로 나왔을 때는,직원들과 같이 야전 침대를 사서 사무실에 놓고 지냈어요. 새벽에 자고 아침에 회의하는 식이었죠.1주일에 반은 그랬어요." # 솔선수범 경영론 -사장님이 보시는 사장님 스타일은 어떠세요. "제 장점은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뭔가 맡겨주면 전심전력을 다하는….제가 아직 제 장점에 대해 답을 안 했습니다. 묻지를 않으니까….(좌중 웃음) 솔직히 욕심이 없어요. 정말 욕심 안 내죠.내 재물을 헛되이한 사람도 원망 안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에 친구한테 돈을 빌려줬어요. 2000만원 정도.마누라 몰래 대출해 빌려줬는데,이 친구가 못 갚고 날렸죠.당시 저한테는 큰 돈이었죠.그래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다 사정이 있겠죠." -신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경영론이 있다면. "뭐 경영론까지야…. 무엇보다 비전을 줘야죠.말로써만 주는 게 아니라 가시적으로 한 2,3년 지나면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요. 특히 퍼스펙티브(perspective)하게 본다고 해야 하나,조감적으로 보는 능력을 갖고 모든 사업에 접근해야 돼요. 나는 좀 부족한 것 같애.그리고 나서 추진력이 필요하죠.정열과 열정이 없으면 안 될 겁니다." -특히 강조하는 덕목이 있으신가요. "솔선수범이죠.윗사람이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조심해야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술이나 여자도 조심해야죠.술이나 여자문제로 인생 망친 사람들 많아요. 돈 문제 역시 마찬가지죠.이런 말 하면 뭐하지만,제 손으로 감옥에 직원 하나 보냈어요. 한 2년 살았는데,이제 나왔는지 모르겠구먼.이런 부분도 우리 후배나 부하 직원들이 알아야 합니다. 골프도 예외일 수 없죠.적당한 선을 지켜야 합니다. 한창 불붙으면 눈에 골프만 보여요. 그러면 자기 돈으로 가겠어요. 뭔가 엮고,끼고 하게 되죠." - 사장님이 강조하시는 도덕성인 건가요. "사장 정도가 아니더라도 임원부터는 유혹받기 쉽죠.골프채나 심지어 돈다발까지 갖고오는 사람도 있어요. 요령있게 피하면 되죠." -후배들 보면,CEO나 임원감이 보이나요. "분명히 보이죠.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 오르겠다 싶은 생각은 들죠.참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도 티내면 안 되죠.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사장 정도 되면 돈도 있고 제 자리에서 권한도 있어 임원들 줄 세우기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맘에 드는 놈 매일 불러주고,안 드는 놈은 쳐다보지도 않고.그러면 안 되잖아요." # 세상을 읊조리다 -옛글을 잘 외우신다는데. "그냥 옛사람의 풍류를 생각하는 겁니다. (신 사장은 흥에 겨운 듯,송강 정철의 시조를 읊조렸다)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놓아 지즐타고,아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얼마나 운치가 있습니까. 또 좋아하는 시로는 조지훈의 승무가 있습니다. (신 사장은 승무도 연이어 읊조렸다)" -문학에 소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가끔 글도 쓰고 일기도 쓰고 시조를 읊조리게 되죠.서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문학 음악 미술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거고,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생활의 근본을 이룹니다." - 이효석씨의 '메밀꽃 필 무렵'도 다 외우신다고요. "그건 지난해 송년 임원 연극 때문에 알려진거고.사실 지난해 두바이 출장갈 때 비행기 안에서 각본을 기획했죠.항상 내 가방 안에는 헤진 '메밀꽃 필 무렵' 책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책을 가지고 나오려고 했는데,너무 헤져서 새 책을 샀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