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포 강가에서
이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월요일이다. 간밤부터 내린다는 비는 그 양이 아주 적었으나 새벽녘부터 오전까지 부슬부슬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내리는 비는 산불 예방은 물론 농사에도 도움이 크다. 자연 생태계에선 수목의 맹아나 꽃눈을 부풀게 하는데 더더욱 요긴하다. 삼사월이면 내가 산자락을 누비면서 마련할 산나물의 생육에도 이월에 내리는 비는 성장 촉진제나 마찬가지다.
아침 식후 산책을 미루고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을 두 권 펼쳤다. 저자는 나와 한 번도 면식이 없는 권택영의 ‘생각의 속임수’와 김영민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둘 다 나라 밖으로 나가 학위를 취득해 관련 분야 저서나 강의로 명망이 있는 분이었다. 초야에 묻혀 사는 학생에겐 활자로나마 그들의 사상과 사유의 세계를 접할 수 있어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강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승객은 좌석을 다 채웠더랬다. 시내 할머니들이 주남저수지 근처 오리식당으로 찾아가는 걸음인 듯했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 사무소 앞은 새로 뚫는 우회 지방도에서 화목을 거쳐 봉강까지 구간은 완공되어 개통을 앞두었다.
몇 해 사이 토목 공사 현장은 복잡하고 어수선했는데 뒷정리가 되어 말끔했다. 거리에는 지역민들이 내건 펼침막이 눈길을 끌었다. 환경 단체 갑질 때문에 주민들이 못 살겠다는 구호였다. 그 가운데 지역민은 쓰레기 줍고 환경 단체는 버린다는 내용도 있었다. 철새 보호를 두고 환경 단체와 동읍 주민들의 갈등은 뉴스거리가 충분한데도 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아 의구심이 들었다.
주남저수지에서 들판을 지나 대산면 소재지 가술과 모산을 거치니 제1 수산교였다. 강변 마을에서 가장 끝인 종점 신전에서 마지막 승객으로 내렸다. 들녘에서 창원 시민들의 식수원인 대산 정수장을 지나 강둑으로 나갔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을 수산으로 유장하게 흘렀다. 비가 그치고 구름 낀 하늘이었지만 미세먼지는 사라져 대기는 쾌청하고 시야는 멀리까지 들어왔다.
북면에서 김해 한림으로 통하는 신설도로 옥정교차로에서 본포 생태공원으로 들어섰다. 가늘게 가지를 드리운 능수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연녹색으로 물들어 포물선을 그렸다. 조경수로 자라는 조팝나무 가지는 자잘한 꽃눈이 부푸는 기색을 볼 수 있었다. 시든 물억새와 갈대는 봄이 오는 모습을 느낄 수 없었으나 능수버들과 조팝나무에서는 봄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를 찾아내었다.
본포나루는 오토캠핑장이 아님에도 차를 몰아와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이들이 있었다. 본포 다리 아래는 고무보트에서 재난 구조대가 바삐 움직였다. 본포 다리로는 창녕 119구조대 소방차가 달려왔다. 강가에는 순찰차를 타고 온 경찰관도 보였다. 현장 관계자에 여쭈니 조금 전 다리 중간쯤 차를 세워둔 운전자가 보이질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수중 수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강 다리에서나 볼 수 있을 안타까운 현장이라 마음이 착잡했다. 무슨 사연일지는 몰라도 주변을 놀라게 할 일이 없었으면 싶었다. 북면으로 건너가는 수변 생태 보도교에는 두 젊은이가 강물을 퍼 올린 유리병을 옮겼다. 나는 그들의 정체와 용도가 궁금해 물어봤더니 본포 취수장 수질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수자원공사 직원이라고 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채수해 간다고 했다.
북면 생태공원으로 건너가니 타고 온 승용차를 세워두고 둔치를 거니는 몇몇 산책객이 보였다. 내친김에 명촌 앞까지 올라가 봐도 될 듯했으나 귀가가 늦을 듯해 바깥 신천에서 시내로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얼마 후 내봉촌에서 출발해 오는 버스를 타고 온천장을 지나 화천리를 거쳐 굴현고개를 넘었다. 시내로 들어와 대형 할인점에서 몇 가지 생필품을 사서 집으로 왔다. 2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