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의궤(朝鮮王室 儀軌)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에서 주요 행사나 잔치가 있을 때 그 행사에 동원된 인원, 행사내용, 사용된 재물, 행렬의 배치, 의식과 절차 등의 제반내용들을 정리한 기록물. 의궤, 조선왕조의궤라고도 불리며 유네스코에는 '조선왕조의궤'란 명칭으로 등재되었다. 다만 일반인들에게는 조선왕실의궤란 명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네이버 지식백과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은 곳에도 조선왕실의궤란 명칭이 자주 쓰이므로 나무위키에서는 조선왕실의궤로 작성하였다. 규장각, 장서각,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 13개처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국내본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의궤는 전대 왕조나 중국, 기타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조선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기록상으로는 중국의 한나라(漢) 때 처음 작성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이후 의궤 작성 문화가 실전된데다 한나라 때 작성한 의궤들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조선 세종대왕 때 국조오례의를 편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의궤라는 단어 자체가 이 조선왕실의궤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왕이 열람하던 어람용이고, 하나는 지방의 사고에 보관하기 위한 보관본이었다. 당연히 어람용이 가치가 더 높으며 종이는 모두 최고급 종이인 초주지를 사용하였고, 물감도 색이 탈색되지 않는 최고급 물감을 사용하였다. 겉표지는 어람용은 비단으로 포장하였고 보관본은 당대 일반 종이를 두껍게 겹쳐 겉표지로 사용하였다. 보관본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현저한데, 어람용에는 나와있는 것들이 보관본에서는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때문에 단순히 보관본만 보고는 진짜를 알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빠짐없이 기록된 어람용이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람용만 남거나 보관본만 남은 경우도 매우 많다. 물론 두 개 모두 남은 경우도 있다.
특히 행사 진행 과정과 장면 하나하나를 색을 입혀 매우 세밀하게 그려 놓아 시각적 효과가 매우 우수한 자료로 알려져 있으며, 수백여 년간의 생활상과 건축, 의식주, 복식, 미술 등의 변천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희귀성을 전세계에 인정받았다.
조선왕실의궤를 통해 한민족이 영원히 상실한 줄 알았던 궁중 문화의 복원과 재현이 가능했고, 창덕궁과 창경궁, 경희궁 등의 궁궐 복원도 가능해졌다. 당시의 복식과 장식품 등을 알 수 있어 복제사, 풍속 연구에도 도움이 되었고, 이두 등의 한국식 한자어가 많이 사용되어 언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의궤(儀軌)를 통해본 조선의 왕실축제
임진왜란 이전 의궤는 모두 소실된 상태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 만들어진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와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다. 전해지지는 않지만 기록상으로 최초의 의궤는 태조 이성계 4년, 정도전이 경복궁을 창건하며 그 건설과정을 기록한 경복궁조성의궤(景福宮造成儀軌)가 최초의 것이다.
현재 모든 의궤를 복사 및 데이터 베이스화하여 저장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써 의궤가 소실되어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본이 소실되어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절대로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