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우입니다.
아.. 제목이 좀 어그로인가 싶은데 마뜩한 제목이 안 떠올라서리. 요새 필요에 의해 <증언을 통해 본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1~3>(국방부 발간)를 쭉 훝고 있는데, 반복적으로 보이는 증언 정황들이 흥미로와 그냥 잠깐 쉬는 시간에 한토막 소개해봅니다.
1969년 해병 제1여단 제2대대 6중대장으로 근무했던 권영식 씨의 증언입니다. 이 분이 69년 3월 6중대장으로 부임했던 당시 중대 분위기가 살벌해다고 합니다. 부임 바로 그 직전에 제6중대에 적 포탄이 떨어진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암튼 6중대는 주이동(Duy Dong)이라는 마을 부근 40고지에 중대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답니다. 인근 강을 오고가는 베트콩들을 감시하기 위한 역할이 부여되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이를 위한 야포와 기관총이 충분히 배치되었다고 하는군요. 제가 소개하려는 상황은 이 분이 부임후 10일 뒤 발생한 일에 대한 증언입니다. 아마 1969년 4월경인 것 같습니다. 요새 재판이 진행 중인 퐁니퐁넛 학살 1년 뒤쯤이군요. 암튼 그대로 옮깁니다.
"이같이 만발의 준비를 갖춘 10여일 후 주위가 잠잠하는듯 하더니 하루는 야간에 중립지역인 앞마을(Duy Dong)에서 야간에 베트콩의 스나이핑이 날아왔다. 중대장이 즉각 병력을 배치하고, 사격명력을 내리자 모든 화기는 날아오는 쪽으로 사격을 지향하여 삽시간에 초가집 9채를 초토화시켰다.
마을은 잠잠해졌다. 익일 아침 이장이 찾아왔다. (전날 사격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베트콩의 행위로 본다. 집은 베트콩이 태운 것이다. 우리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전투력을 과시함으로써 그 후 중대진지 주변의 스나이핑은 한 번도 없었다."
요는 부임직후 중대진지에 베트콩으로 판단되는 사격이 있었고 즉각 반격하여 중대진지 전방 민가를 초토화시켰으며, 항의가 들어오자 베트콩이 했다고 둘러댄 것이고, 이를 자랑스러운 전력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밤에 민가를 초토화시켰으니 사상자가 당연히 있었겠죠.
이 증언록이 양이 많다보니 전체를 뜯어보고 있는 건 사실 처음인디...의외로 날 것 그대로의 내용이 많습니다. 따로 전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암튼 담배 한대 피고 다시 정리하러 갑니다.
첫댓글 아마 저런 행위들은 많았을 겁니다.. 반격 혹은 보복이란 명목으로 말이죠.
네. 맞습니다. 국방부 변론자료 땜시 보는디 오히려 국방부 발간자료에서 발견되니 아이러니한 일이죠.
켄 번스의 <베트남 전쟁>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한국군 뿐만 아니라 미군, 남베트남군도 비슷한 전술(?)을 구사해서 결과적으로 비극만 양산했던 것 같습니다. 외국군은 물론 자국군과 정부마저도 신뢰을 잃어버린... 이런 행위들 탓에 작전 지역 민심이 돌아섰으니, 당연히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겠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