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책마을 카페 오픈 기념 공연: 창작 판소리 <전봉준> (2)
박관장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많이 이야기를 하였다. 제법 오래 이야기하였고 상당히 여러 가지 종류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성실하게 경청하는 건데...... 그리고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를 해 두는 건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책마을? 어째서 책 ‘마을’이지요? 내가 이렇게 물었더니, 박관장은, 책마을이라는 것은 책으로 먹고 사는 마을을 의미한다고 대답하였다. ‘자립’이라는 말도 사용하였다. 관청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꾸려나간다는 뜻인 듯하였다. 박관장은, 여기에 좋은 책이 있기만 하면, 언젠가는 자립하는 마을로 자리를 잡게 된다고 말하였다. 좋은 책이 있으면, 언젠가는 알려지고, 또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감도 넘쳤다.
관청과의 협조니, 관의 지원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소신이 뚜렷하였다. 박관장의 어떤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박관장에게, K교수는 삼례발전위원회의 위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 위원회와 협력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자, 박관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문화와 예술은 무슨 위원회니, 무슨 지원단이니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관주도의 사업을 극히 경계하였다. 그는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는 지방 자치 단체의 축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수 천 개의 축제가 생겨났지만, 그 중 볼 만한 것,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우찌다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인데 제일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도 다음과 같은 내용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우찌다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의 민물고기를 조사하였다고 한다.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의 프로젝트였고, 그 결과물로, 손으로 그린 민물고기 그림 수천장이 제작되었다. 얼마 뒤, 우찌다는 일본의 대학으로 발령을 받아 돌아갔는데, 그 후 그 때 제작된 그림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언젠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박관장은 우리나라의 민물고기 그림 수천장을 입수하였다고 한다.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자료를 입수하는 것이 박관장의 전공이다. 그리고 그 자료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 이이의 전공이다. 박관장은, 자기가 입수한 이 그림들이 우찌다가 제작하였던 그 그림들, 행방이 묘연해진 바로 그 그림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 혹은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찌다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박관장은 영월의 책박물관에서 자신이 입수한 민물고기 그림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그 때 일본에서 기자들이 찾아오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일본 사람들이 전시된 그림을 보고 내뱉은 첫마디가 “우찌다다!”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박관장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우리한테 할 때도 그는 소름이 돋은 듯했다.) 그러나 그는 짐짓 태연한 척하면서, 이 그림들이 우찌다가 그린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인들 대답은, 그냥 그림체를 보면 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본에는 민물고기 동호회가 2천개가 있는데, 그 동호회 회원 중 누구한테 물어봐도 똑 같은 대답을 얻을 거라도 덧붙이기까지 하였다.
자기의 추측 혹은 기대가 맞아떨어졌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박관장은 물론 소름끼치게 기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복잡해보였으며 그의 말은 주제를 망각한 듯 조리 없게 보였다. ‘2천개’가 문제였다. 일본에는 민물고기 동호회가 2천개가 넘는다잖아요...... 분명히 2천개라고 했어요...... 열정, 자신감, 기쁨 — 이런 것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갑자기 허탈함, 열등감, 부끄러움 등이 박관장을 감쌌다. 내가 물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민물고기 동호회가 몇 개나 있나요? 박관장이 대답했다. 저도 모르지요, 뭐. 있기나 있으려나요? 민물고기 먹으러 다니는 동호회는 많겠지요.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일본 사람들은 식민지에 양곡창고를 하나 지어도 100년은 가게 지을 뿐 아니라,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 민물고기를 연구하는 아마추어의 모임을 2천개나 가지고 있다.
박관장은 그 민물고기 그림으로 책을 한 권 찍었다. 그런데, 그 책은 과연 몇 권이나 팔렸을까? 과연 책마을은 자립할 수 있을까? 박관장의 장담대로 좋은 책이 많이 있기만 하면,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어있을까? 그렇게 되는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조건은 물론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책마을만이 아니라 삼례문화예술촌 전체가 관청의 지원이 끊어지는 그 순간, 적막함으로 떨어지고, 적막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조만간 아예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나는 세 사람의 젊은 국악인의 공연을 즐기면서도 한 가지 걱정꺼리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과연 저 젊은이들이 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의 공연에 돈 내고 보러오려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나만 해도,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지 하는 핑계를 대면서 공연장을 피하지 않았는가? 서울에서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이 내려왔을 때도, 빅토리아 시대 3대 그림책 작가에 든다는 랜돌프 칼데곳의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도 말이다. 게다가 모두 무료였는데도 말이다.
소리꾼이 오른 손을 올리면 ‘얼씨구’하고, 왼 손에는 ‘절씨구’ 하게 되어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그것을 잊어버렸다. 젊은 여자 소리꾼도, 소리를 시작하자 소리 하는 데에 전념하느라 관객들의 추임새를 독려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1시간 동안 아무런 추임새 없이 공연이 진행되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의외지만, 저절로 추임새가 나왔다. 약조나 연습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나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다른 데가 아니라 전라도 삼례다. 풍류를 아는 노인네들이 내어 준 것인지, 판소리 애호가들이 내어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흥에 겨워 절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추임새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많이 놀아본 솜씨였다. 아이들도 그것을 들었을 것이며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것을 듣고 보면서 자라면 그 아이들은 커서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즐기게 되고 저절로 추임새를 넣게 될 것이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전원일기>의 노할머니가 큰 손자(김용건 粉)를 앉혀놓고 수의(壽衣)를 꺼내 보이면서 자랑을 한다. “요즘은 이렇게 좋은 물건이 안 나와.” 그리고 손자의 손을 만지면서 이런 말도 한다. “세상에서 제일로 귀한 게 뭔지 아니? 재물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야. 그저 이렇게 손잡으면 따수운 걸 아는 거. 그저 꽃 보면 좋은 줄 아는 거. 그게 젤 귀한 거야.” 노인네의 말이라고 해서, 그 말을 단지, 살아있는 게 제일 귀한 거라는 뜻으로 들으면 곤란하다. 그림 보고 좋아하는 것, 소리 듣고 좋아하는 것, 책 읽고 좋아하는 것 -- 이것이 제일 귀한 것이다. (2016, 12) (끝)
첫댓글 이제는 웬만한 시골에도 이런저런 박물관이 생기는 모양이던데..책 박물관 까페는 생소하다.우리도 밥 걱정 덜하게 되었으니 자연히 문화를 즐길만한 여유가 생겨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이런 류의 장소들의 많이 생기고 있나보다. 올바른 현상인 것 같다. 문사철도 중요하지만 음미체에도 보다 관심을 갖으면 민물고기 동호회도 생겨 나지 않을까? 영태교수 글 감사!
근데 제목에 전봉준은??
그 판소리의 제목이지.
우리나라에도 아마추어 토종민물고기 동호회가 몇몇 있을걸 ? 먹는 동호회 말고 ㅎㅎ 얼마전 TV 영재 발굴단 이란 프로에 10살인가 11살인가 민물고기에 심취한 아이가 나왔는데 개울에 나가 채집하다 민물고기 동호회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더군
아무튼 관청이나 위원회 협조 거부한 박관장 마음에 드네 !
아, 우리나라에도 민물고기 동호회가 있는 게 확실하구나. 박관장에게 알려줘야지.
'다이돌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동을 받고 기쁠 때 몸에 생성되며
저항력과 생명력과 활력을 증진시키는 호르몬..
게다가 엔돌핀의 4,000배 효과 있다고 하니
조교수의 명쾌한 결론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