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전화가 온다. 받으니 고등 동창 친구 윤모씨.
'내일 저녁에 시간이 있어?'
다행히 약속이 없는 날이다.
몇몇이 모여서 추어탕을 먹기로 하고 모인 곳이 한번 와본 이 집이다.
등산 후 왔다가는 일요일 문을 열지 않아 허탕 친 적도 있었고.
주인한테 살짝 물어 보았다.
'생긴지 얼마가 되지요?'
'거의 이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추어탕이 커다란 솥에 가득하고
시키면 덜어서 식탁위에서 다시 끓여 준다.
가격도 착하다.
기본 찬이 나오고
저건너 식탁에는 이 집을 처음찾는 손님이 길을 헤매면서 연신 전화를 해대더니 간신히 나타난다.
집 못찾아 헤매는 것이 나의 전공인줄만 알았더니 또 한사람이 있어 실소한다.
먼저 부추전 한장을 시켜 막걸리를 마신다.
너 부추, 아니 정구지를 어떻게 키우는 지 알아?
그건 대구의 우리집 옆에 정구지 밭이 있었는데 한번 자르고
거의 한치정도로 인분을 뿌려두면 금방 다시 자란다네.
하기사 요즈음은 이런 인분도 구하기 어려우니.
누가 '미나리도 더러운데서 자라 잖아.'
자기네 집이 봉산동 건들바위 밑에 있었는데 주위의 미나리 꽝을 잘 아시는 어머니가
씻고 또 씻고 하면 할머니가 '얘야 그만 씻어라' 하였다고.
옆자리에서 거든다.
'첫번째 자르는 미나리에는 거머리가 없어.
두번째부터는 줄기속에 거머리가 있거든.'
먹으면서도 밥맛떨어지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 정도로 무얼 못먹을 우리들이 아니잖아요.
미꾸라지 튀김도 바싹하게 튀겨서 좋았다.
'그럼, 미꾸라지는'
미꾸라지 양식은 전에 실업선생 성함이 김문복선생이었나? 가 말씀하시기를
마분반, 인분반에서 양식을 한다네.
이건 맛있는 걸 먹으면서 더러운 똥이야기만 하고 있네.
막걸리가 술술 넘어 간다.
츠어탕을 먹기전 다른 안주 하나를 더 시킨다.
이건 돼지고기 볶음이다.
마지막으로 나 온 추어탕은 산초가루를 덤뿍 넣고 청양고추도 조금 넣고
담백한 맛, 대구에서 먹던 맛,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하숙을 할 때 가을철이면 본가에서 선친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너 이번 주말에 시간이 있으면 대구에 내려와라.'
대개의 경우는 두가지 이유이다.
하나는 송이를 먹으러 오라, 아니면 추어탕을 먹으러 오라.
논에서 물을 뺄때 통발을 대어 놓으면 그 속에 미꾸라지가 걸린다.
이렇게 잡은 미꾸라지를 하양이나 영천 장날에 가셔서 넉넉하게 사와
소금을 뿌려 놓으면 미꾸라지들이 해감을 다 토해낸다.
이걸 푹고아 체로 걸러내고 여기에 얼가리 배추를 듬뿍넣고
붉은 통고추 넣고 나중 산초를 뿌려서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저녁을 먹고는 시간이 아홉시도 되지 않았는데 모두 줄행랑치기 바쁘다.
왕년에는 차수를 바꾸어 가며 술을 마셨고
아니면 노래방, 단란 주점, 하다 못해 커피까지는 마시고 헤어졌는데.
아, 이 친구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세월이 죄이지.
며칠 뒤 처에게 우리 전번에 말하던 경상도식 추어탕 먹으러 가자.
조금 이른 저녁시간에 마을버스를 타고와서
빈대떡이나 한장 시킬까?
추어탕만 먹자고 한다.
처가 말하기를 국물이 맑고 시원하다고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우린 대파와 씨레기만 넣어요.'
전형적인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작년 수지의 동서집부근에 먹었던 추어탕보다 값도 싸고 맛있다.
전라도식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텁텁하고
서울식은 통미꾸라지를 쓰고 꼼보추탕과 형제추탕이 유명하였는데 아직 남아 있을까?
첫댓글 유진오 씨의 글에도 출현하는 곰보추탕은 선친께서 하시던 의원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대 째까지 곰보였으나 아들이 없자 입양한 아들이 곰보였다. 사대부고를 나왔으며 나보다 몇 년 위였으므로 내가 형이라 부르면 좋아하던 사람이다. 열심히 운영하면 네임브랜드가 있어 곧잘 운영될 것을 부인에게만 맡겨놓고 자신은 두집 살림을 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때 입양도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늘 옆에서 냄새를 맡았으나 비위가 약한 나는 한 그릇도 먹어 본 일이 없다. 내 아이들은 그집에 들어가 큰 합지박에 들어있는 미꾸라지들을보며 장난질 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그것도 벌써 30 년이 지난 이야기가 되고 말았
는데 최근 들리는 바에 의하면 다른 장사가 들어섰다고 하니 삼대 가는 일이 그리 쉽겠는가? 요즘 젊은이들이 추어탕을 그리 좋아할 리가 없으니...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있는가?
추어탕은 나도 비위가 약해서 안 먹는데, 어렷을 적에 미꾸라지는 도랑에서 잡아 보았습니다.
원주 추어탕도 유명하던데, 먹어보질 않아서 맛을 모르겠지만, 색갈이 허옇지 않고 붉은 빛을 띄는 것을 보면
고추가루를 쓰는 모양입니다.
미나를들 더럽게 키우는 것은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논처럼 생긴 곳에 미나리가 있었는데, 그걸 뽑으러
들어 갔다가, 거머리가 붙었던 기억이 있네요.... 왜 미나리 있는 곳에 거머리가 많은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