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실마을로 들어
어제는 아침나절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점심때 그쳤는데 새날이 밝아온 이월 둘째 화요일은 날씨가 맑았다. 아침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지 않아 낮에는 더 포근할 듯했다. 근교 산자락에 개설된 임도를 걸으려고 아침 식후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일단 열차를 타고 얼마간 이동한 한림으로 나가 화포천 습지를 지난 금곡리에서 봐둔 작약산 산허리로 난 임도를 걸을 요량이었다.
순천을 출발해 진주를 거쳐온 무궁화호는 창원에서 진영을 지난 삼랑진역에서 경전선이 경부선으로 바뀌어 부전으로 향하는 열차다. 예전 철길은 부전역에서 해운대를 거쳐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동해남부선으로 바뀌어 울산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노선이었다. 동해남부선은 울산 태화강역까지 복선 전철로 개통되어 전동 열차가 운행된다는 얘기를 들었지 아직 타보질 못했다.
매번 집 근처 동선을 맴돌다 보니 반나절이 대세이고 어쩌다 한나절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한다. 자연학교 학생은 이른 아침 퇴촌삼거리를 거쳐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 뒤를 돌아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역무원에게 한림정역으로 가는 열차표를 한 장 끊어 정한 시각에 도착한 무궁화호를 타고 비음산터널을 지나니 진례 들판과 공장 지대를 거쳐 진영역이고 그다음 역이 한림정이었다.
한림정역은 이용 승객이 적어 이태 전부터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으로 운영했다. 역사를 빠져나가 북녘으로 난 찻길을 따라 걸었다. 부평과 시전을 지난 화포천은 낙동강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한림배수장이다. 배수장 곁 김해 생림 마사로 넘는 고개 아래는 모정마을이었다. 모정마을 들머리에서 오른쪽으로 드니 정촌마을의 예전 초등학교 터에는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가 들어섰다.
모정과 정촌은 더 안쪽 금곡리에 딸린 작은 동네였다. 김해 상동에서 대동을 거쳐 을숙도로 내려가는 4대강 사업 자전거 길이 금곡리 앞을 지나 생림 고개를 넘어가도록 설계되었다. 마을 어귀에서 현지 노인 한 분을 만나 초행임을 밝히고 길 안내를 받았다. 외지인에 경계심을 가질까 봐 내가 먼저 창원에 사는 이로 한림정에서 생림으로 넘어갈 생각으로 마을 앞을 지난다고 했다.
정촌마을 노인에게 그곳 출신으로 작년 말 급환으로 세상을 뜬 고 노옥희 울산 교육감을 언급하니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은 쇠실 노 씨인데 선대가 바깥 마을 모정으로 나가 살던 자녀라고 했다. 쇠실은 진영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과 본관이 같은 광주 노씨들의 김해 입향조 세거지며 집성촌이라 했다. 금곡마을 뒤에는 일제 강점기 금광을 채굴한 광산이 있어 우리말로 쇠실이었다.
금곡리 본동 어귀 당산나무는 여느 마을과 다른 수종인 고목 상수리나무가 대여섯 그루 되었다. 안길을 지난 마을회관에서 더 깊숙한 골로 드니 밭뙈기에는 복숭아와 단감 과수원이 나왔다. 자전거 길은 골짜기로 계속 들어가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가게 되었다. 그 고개를 넘으면 행정구역은 한림면에서 생림면으로 바뀌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넘지 않고 단감 과수원으로 올라갔다.
과수원이 끝난 산비탈에서 앞서 언급했던 작약산 산허리 임도에 합류했다. 이미 생림에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상당한 거리로 해발 고도를 높여 올라선 지점이었다. 전방 시야가 탁 트인 임도에서는 산 아래 마을은 물론 한림 들녘과 진영 신도시 아파트까지 훤히 드러났다. 인적 없는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금곡마을 뒤에서 개척 산행으로 숲을 빠져나가니 광주 노씨 선산이 나왔다.
금곡에서 오서를 거쳐 한림정으로 나가 돼지국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벌충시켰다. 한림정역에서 창원으로 복귀하는 열차를 타지 않고 화포 습지를 둘렀더니 기러기와 고니들은 귀향을 앞둔 막바지 먹이활동에 열중했다. 나는 습지로 흘러드는 개울가에서 냉이를 캐 모아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시내로 들어와 냉이 봉지를 같은 아파트단지 지기에게 건넸더니 배낭은 가벼워졌다. 2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