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숨통을 옥죄여 올 때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업무에 과부하가 찾아올 때면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한글 창제와 중대 법안 발의 등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도 그를 도울 장소가 있었다.
조선의 왕과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찾은 곳은 충청북도 청주시다. 세종대왕은 이곳에서 질병을 치료하고 훈민정음 반포를 마무리했으며,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법안도 이곳에서 고안했다. 원수들의 심신 안정을 도운 역사 속 숨은 공신, 청주시. 그곳으로 힐링 여행을 떠났다.
01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
청남대는 청주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이다. 1980년대 초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한 후 총 5명의 대통령이 20여 년간 총 88회 471일 간 시간을 보냈다. 이후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 관리권을 충청북도로 이양하며 대중에 공개됐다.
청남대의 본래 이름은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춘재였다. 이후 86년 7월 18일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로 개칭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옛 이름이 남은 까닭일까. 따뜻한 봄날 찾은 청남대는 갖은 꽃의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 대통령 기념관 별관
대통령 기념관에서는 대통령이 머문 흔적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청남대를 건립한 전두환 대통령부터 대중에게 공간을 개방한 노무현 대통령까지 청남대를 거쳐 간 대통령들의 사진과 소품을 전시한다.
골프를 즐긴 노태우 대통령의 공간에서는 갖은 골프채와 골프장 사진을, 테니스를 즐겼다는 전두환 대통령 공간에서는 테니스 채를 비롯한 용품을.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친숙한 사진을 남긴 노무현 대통령의 자전거까지 청남대에 얽힌 대통령들의 시간을 담고 있다.
△ 본관
본관은 5명의 대통령들이 가족 또는 친지들과 머물면서 시간을 보낸 장소다. 1층에는 로비와 접견실, 손님 침실 등을 두어 정사를 논할 수 있게 했고 2층에는 온전히 대통령 일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대통령 침실과 가족 침실 등을 마련해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게 했다.
본관 곳곳에는 세부사항이 숨어있다. 청남대를 개방한 시간과 그 날짜에 맞춘 달력과 시계, 역대 대통령들이 손 때를 그대로 보존한 가구와 가전 등 당시의 시대상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에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각광받는다.
△ 청남대의 자연
대통령만의 공간으로 운영되어 온 청남대. 20년간 비밀리에 감쳐있었다는 신비함도 그 역사성도 의미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청정한 자연이었다. 외부와 단절됨에서 나오는 평화와 고요함.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싱그러운 자연환경은 도시의 스트레스를 벗어던지기 충분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청남대에 머물고 휴식하며 법안을 구상했다고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금융실명제 등 법이 이곳에서 틀을 싹을 틔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용어가 바로 ‘청남대 구상’이다. 이런 풍경 속에서라면 그간의 근심과 걱정은 버리고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생각이다. 푸른 자연이야말로 그 역사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숨은 조력자가 아닐까.
청남대에는 손꼽히는 전망 명소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대통령 기념관과 본관을 연결하는 길이다. 양어장을 옆에 끼고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울창하게 펼쳐진다. 푸른 청와대의 모습을 한 대통령 기념관과 그 앞에서 요동치는 음악 분수. 그리고 푸른색 풍경을 완성하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까지. 열두 박자가 두루 맞아떨어지는 풍경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또 다른 속 시원한 풍광이 이어진다. 대통령 기념관 앞으로는 총 50여 그루, 약 860m 길이로 펼쳐진 낙우송 가로수길이 그것. 왼쪽으로는 골프장을 오른쪽으로는 내륙의 바다 대청호를 끼고 있어 산과 물을 두루 느낄 수 있다.
낙우송 길을 특히 애정한 인물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김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조깅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가로수길 변으로는 대청호를 조망하는 그늘집, 김영삼 대통령의 의전차량 들 쏠쏠한 볼거리도 전시하고 있어 가볍게 산책하며 돌아보기 좋다.
02 세종대왕의 휴식처 초정행궁
조선의 4대 국왕 세종대왕은 눈병과 피부병을 앓았다. 세종은 질병 치료를 위해 행차길에 오르는데 그 목적지가 바로 청주다. 세종은 청주에 행궁을 지어 1444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총 121일의 기간 동안 머물면서 질병 치료와 함께 한글 반포 마무리에 몰입했다.
△ 초정약수 족욕
세종이 청주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초정약수다. 초정은 산초와 같이 톡 쏘는 물이라는 의미의 ‘초수(椒水)’, 즉 탄산수가 나는 우물을 뜻한다. 탄산과 마그네슘 등 유익 성분을 다량 함유해 피부질환과 안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초정약수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초정약수 원탕에서 목욕하기 둘째 초정행궁 앞의 약수터에서 초정약수 맛보기. 마지막으로 초정약수에 발을 담그는 족욕이다. 그중에서 무료로 간편하게 경험할 수 있는 족욕을 체험했다.
초정행궁 한편에는 야외 족욕 시설, 초정원탕행각이 있다. 초정행궁을 찾은 방문객이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약 250㎡의 드넓은 부지에 조성해 붐비지 않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초정원탕행각의 족욕은 일반적인 족욕과 달리 수온이 매우 차가운 것이 특징이다. 두피까지 아리는 탄산수의 청량함도 잠시 냉수에 담근 발을 타고 피로가 싹 가신다.
△ 다채로운 체험 시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광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시설도 마련했다. 왕족과 대신들이 잠을 자고 휴식을 취했던 침전은 미디어 아트관으로 변모해 조선의 천문학을 주제로 미디어 아트를 전시한다. 아름다운 조선의 밤하늘을 담은 화려한 영상이 눈을 사로잡았다.
세종대왕이 업무를 본 편전은 천문과학관으로 꾸몄다. 측우기와 해시계 등 각종 과학기기의 원리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천문학을 전시한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VR 체험. VR 기기에 눈을 대고 바라보면 조선시대의 하늘을 관찰할 수 있다. 시선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별자리를 설명해 흥미를 더했다. 우측 벽에는 조선시대 별자리 관측 지도를 둬서 VR로 관찰한 별자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초정행궁의 체험 시설 중 단연 인기를 끄는 곳은 한옥 스테이다. 총 6개 동 12개 실 규모로 ‘세종’, ‘소헌’, ‘초정’, ‘약수’, ‘훈민’, ‘정음’ 등 초정행궁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을 갖췄다. 고즈넉한 한옥의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냉난방시설과 신식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춰 편안한 한옥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