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김미리 문화부 기자가 본 개회식
드론 1218대가 오륜기 만들고…
'백남준의 나라'답게 LED 아트쇼
한국의 둥근 멋 구현한 대서사시… 보름달 떼어 놓은 듯 원형 무대
미디어 아트를 붓처럼 활용해 2시간 동안 한국 태고·미래 연출
"구, 팔, 칠…" 우리말로 카운트다운
꽁꽁 언 땅 위에 보름달이 떴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둥근 달을 똑 떼 지상에 붙인 듯, 동그란 무대에서 2시간 동안 한국의 태고와 미래가 펼쳐졌다. 9일 밤 열린 평창올림픽 개막식은 한국의 '둥근 멋'을 첨단 기술로 구현한 대서사시였다.
◇서울 굴렁쇠에서 평창 보름달로
30년 시간이 원(圓)에서 원(圓)으로 연결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화룡점정이었던 굴렁쇠의 고요한 울림이 30년을 뛰어넘어 하얀 원형 판으로 태어났다.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오각형 스타디움 중앙에 설치된 둥근 무대는 메밀밭으로, 백두대간으로, 파란 하늘로, 끊임없이 변주하며 한국의 미를 발산하는 바탕이 됐다. 개회식 총연출을 맡은 양정웅 감독이 예고했듯 "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과 '손에 손잡고'의 오마주"가 절묘하게 펼쳐졌다. 간송미술관 탁현규 연구원은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이 달이라는 이미지와 만나 한국적인 미가 극대화됐다"며 "오륜만월(五輪滿月·오륜이 달에 가득하다)"이라는 단어로 개회식을 촌평했다.
◇미디어아트 종주국, 백남준의 나라
보름달 모양의 무대가 '캔버스'라면 '붓'은 미디어 아트였다.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나라라는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윳빛 백자 색깔을 닮은 무대에 영상을 매핑(mapping)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대를 연출했다.
9일 열린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자들이 120개의 LED 문을 들어 옮기고 있다. 오른쪽은 원형 무대 위로 58개의 LED 줄로 이뤄진 ‘미디어 링크’가 원기둥 형태로 솟구친 모습. 첨단기술로 한국 전통의 ‘둥근 멋’을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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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계절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소리꾼 김남기의 정선아리랑이 울려퍼질 땐 무대가 하얀 메밀꽃밭으로 변해 넘실거렸고, 뮤지컬 '라이언 킹'의 퍼펫 디자이너 니컬러스 마혼이 참여한 호랑이 인형은 영상과 만나면서 백두대간 수묵화로 변신했다. 영상 기술이 마술처럼 입체를 평면으로, 평면을 입체로 연결했다. 미디어 아트의 '붓 자루'를 쥔 사람은 개회식 영상감독 목진요였다.
증강현실(AR)을 활용해 은하수와 반딧불을 허공에 쏘아올리고, 드론 1218대를 공중에 띄워 만든 '드론 오륜'은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갈 법한 장관을 연출했다. 드론 오륜은 이번 올림픽 이후 최다 무인항공기 공중 동시 비행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예정이다.
◇우리 소리, 우리 글자로 짠 무대
혜곡 최순우가 "어찌 생각하면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간절한 마음 같기도 한 너무나 고운 소리였다"고 했던 상원사 동종 모형이 무대 한가운데 떴다. GU(구), PAL(팔), CHIL(칠)…. 우리 말로 카운트다운이 되자 영겁의 소리와도 같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막이 올랐다. 한글은 개회식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대표 글꼴인 고딕과 명조를 버리고 우리 글자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살린 '안상수체'를 써 한글 자모가 흩어졌다 이어지는 장면엔 문화적 자부심이 느껴졌다.
드론 1218대로 만든 오륜마크 - 개막식 하이라이트였던 ‘드론 오륜’. 드론 1218대로 연출했다. /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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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
올림픽은 그 나라 문화 유산을 집약해 보이는 무대다. 이 점에서 평창 개막식은 합격점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우리 역사에서 모티프를 끌어냈고, 22개의 문화유산을 넣었다. 무용총 벽화에서 영감받은 디자이너 송자인의 의상, 이승엽·박세리가 입은 금기숙의 누비 두루마기, 이영희의 장구춤과 태극의상은 섬세한 '붓 터치'였다.
'여백의 미'가 결여된 것은 오점으로 꼽혔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한자리에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쉬웠다"고 했다. 음악도 옥에티로 꼽혔다. 신중현의 '미인',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을 조악하게 편곡한 점, 이은미 전인권 등이 존 레논의 '이매진'을 부를 때 불협화음이 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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