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있는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황해도 해주 수양산으로부터 일곱 번째에 있는 이 섬은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이라 하여, 연평도(延坪島)라 한다. 연평도는 대연평도(면적 6.951㎢), 소연평도(대연평도 남방 6.4㎞ 지점, 면적 0.241㎢), 구지도와 모이도 등 4개의 유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흔히 부르는 연평도는 보통 대연평도를 가리킨다. 이곳은 전초방위기지로써 1999년 연평해전 이후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연평도 정상에서 본 마을 풍경, 멀리 당섬, 안목, 모이도 등이 보인다. -
한때 우리나라 제일의 황금 조기어장으로 각광 받던 섬이었으나 성시(盛市)를 이루었던 연평도가 '눈물의 연평도'가 된 것은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불면서 수백 척의 어선이 부서지고, 많은 어부들이 생명은 뒤부터였다. 게다가 어로 장비와 기법이 발달하여 조기떼들이 이른 봄(4월) 산란을 위하여 연평도에 올라오기 전, 이미 동중국해와 흑산도 근해에서 거의 다 잡히게 되자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나마 안보상의 이유로 1974년 어로저지선을 남하시킴으로써 북녘 땅 가까운 조기 밭에 들어갈 수 없게 됨으로써 연평도는 그로부터 조기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의 연평도'가 된 셈이다. 지금은 조기 어종의 고갈로 옛날의 명성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간 북한과 지척지간에 있어 지역적인 특성과 뱃길 사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던 터라 오히려 '처녀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그대로의 아름다운 해변 절경과 서해 제일의 청정 해역답게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 절경, 맛 좋은 생선, 티 없이 맑은 인심, 조용한 분위기 등으로 많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1. 당섬 공원과 전적비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은 소연평도에 손님을 내려놓고, 다시 연평도의 당섬 선착장에 도착한다. 당섬은 연평도의 관문으로 모든 여객선이 연평도 앞의 당섬(당도) 선착장에 접안한다. 여객은 주로 지역 주민들과 여행객 그리고 최전방 연평도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이다.
당섬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당섬 소공원이 조성되어 오고가는 여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당섬에서 연평도까지는 700m의 연도교가 가설되어 왕래하고 있는데,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1.5km 거리로 도보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당섬에서 연평도로 들어가는 연도교 초입, 마을 입구에는 연평해병전승비가 우뚝 서있다. 1999년 11월 11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의해 건립된 전승비는 1999년 6월 7일부터 북방한계선을 무효화할 목적으로 북한경비정이 수차례에 걸쳐 불법 침입하여 15일에는 선제공격을 해오자 우리 해군이 북한 함정 10척 중 어뢰정 1정 격침하고, 중, 소형 경비정 5척을 격파하여 북방한계선을 확고히 수호하였다.
- 연평해병전승비 옆 돌무기에, 넋을 위로하는 듯 핀 들국 -
이에 해군은 당시 전장이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국방의 의무를 다한 해군 장병의 무훈을 기리고,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자 연평 해병의 전승비를 세웠다. 바다와 어울린 연도교의 밤경치는 연평도 관광의 색다른 풍광을 제공하는데, 특히 연도교의 가로등 불빛이 장관을 연출하여 황홀한 야경을 제공해 준다. 또 북한 해주시의 야경도 좋은 볼거리이다. 또 당섬에서 마을을 연결하는 연도교는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 등대 공원과 빛을 잃은 등대
등대공원은 연평도 남쪽 해안 언덕 위에 있었다. 등대 공원에 들어서는 입구에서 먼저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 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 구나 눈물의 연평도”
어디선가 애절하고 구성진 가요 한 자락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하다. 노래비 옆에 육중한 전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고,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을 위한 소규모 놀이시설이 있다. 여기서 언덕 위로 계단을 오르면 퇴색된 등대가 홀로 서 있다.
연평도가 조기어장으로 각광을 받자 연평도는 황금의 조기 파시어장을 이루는 때가 있었다. 각 지역의 어선들이 연평도 앞바다를 메우던 시절 연평도 등대는 이들의 길잡이로서 1930년 첫 점등을 시작하여 찬란한 황금 어장을 비쳐왔다. 그러나 1974년 7월 국가 안보의 목적으로 일시 소등하게 되었고, 1987년 4월 등대로서의 용도가 폐지되면서 현재는 빛도 소리도 없이 흥청거리던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침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등대 아래 평지에는 조난어업자위령비가 외로이 서 있다. 어업에 종사하다 세찬 바람과 풍랑에 떠밀려 희생된 넋들을 위로하는 비석이 등대 옆에서 옛날을 회상하고 있는 것인가. 언제 이곳에 지난날과 같은 풍요와 자유가 찾아올 것인지, 그래서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밝은 빛을 밝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3. 조기섬 동상과 조기역사관
등대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우선 볼거리는 조기섬 동상과 조기역사관이다. 이것은 모두 우리나라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각광받던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조기섬 동상은 일종의 '조기기념비'로서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에 이르면 볼 수 있는 어선의 모양을 하고 있다. 또 조기역사관은 연평도 역사와 함께 하는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1층은 조기역사관, 2층은 전망대로 건립한 것이다. 관광객들에게는 조기 어장의 내력과 북한의 정경을 관람할 수 있도록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연평도에는 조기는 사라졌지만, 청정 해역에서는 고급 어종과 어패류 등이 지천으로 깔려 있고, 특히 매년 2월 초순부터 11월 하순까지 나오는 꽃게는 조기가 사라진 후 어민들의 주소득원이 되고 있는데 씨알이 굵고 맛이 있어 최고의 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지러운 지역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NLL(북방한계선)을 넘은 중국 어선이 저인망으로 벌 바닥까지 훑어 어족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당국을 원망하며 대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주민들은 “군·경(軍警)은 북한을 자극할까봐 단속을 게을리 하고 있고, 외교 당국은 중국과의 외교 분쟁을 우려해 중국 어선들의 불법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기역사관 앞뜰에는 두 개의 돌비가 있는데 하나는 ‘조기섬’의 내력을 적은 것이고, 또 하나의 돌비에는 연평도 고유의 민속소리인 “니나나나”와 조기를 퍼 실을 때 부르는 “배치기소리”가 양면에 조각되어 있다.
1. 샘평(소연평) 꼭대기 실안개 돌고/ 우리 집 문턱에 정든 님만 돈다. 2. 우리가 살았길래 형님 동생하지/ 우리가 죽으면 다 소용 없다네. 3. 서산에 지는 해 지고 싶어지나요/ 날 버리고 가신님 가고 싶어 갔나요. 4. 강남 갔던 제비는 다시 돌아오련만/ 황천에 가신 님 다시 한 번 못 오나 5. 뱀자(배 임자)네 이즈마이 인심 좋아/ 막둥 딸 길러 화장 아이 주었네. (후렴) 나나나나 니나나나/ 아니나 놀고 뭣 할소냐.
-민속소리 “니나나나”
1. 돈 실러 가세 동 실러 가세/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가세 2. 연평 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들이자. 3. 뱀자(배 임자)네 아즈마이 정성 덕에/ 연평바다에 도장원했네. 4. 나갈 적엔 깃발로 나가고 / 돌아올 적엔 꽃발이 되었네. 5. 연평 장군님 모셔 실고/ 연평 바다로 돈 실러가세 (후렴) 에-에헤야 에헤 에-에헤 에-에헤/ 에헤 에헤 어하요
- 배치기소리 -
그 옛날 삶의 애환이 담긴 노랫말들을 읽노라니, 조기어장으로 파시를 이루었던 그 시절의 삶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건만 그 시절의 명성을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울컥 가슴이 메어온다.
- 조기역사관 뒤의 빠삐용절벽(상)과 북서쪽으로 보이는 병풍바위(하) -
관광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왼쪽 해안으로 빠삐용 절벽이 보이고, 또 북서쪽으로 병풍바위를 비롯하여 옹돌 해변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맑은 날 북녘 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며, 1999년 6월 15일 발생되었던 서해교전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4. 북녘을 향해 서있는 망향비
또 연평도 동북쪽에는 북녘을 향하여 망향비가 세워져 있다. 고향땅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북녘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운 것인데, 고향을 기른 마음을 넘어서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는 듯하다.
어메 뜨거운 심정이 살아/ 모성의 피 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망향비 하단에 새긴 이 글은 황송문 씨의 시 “망향가” 중의 일부분이다. 늘그막엔 기필코 고향땅을 밟아보겠다는 염원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날은 안개 자욱한 날씨만큼 어둡다.
제단에는 누가 다녀갔는지 술병과 빈 잔, 북어 한 마리 그리고 배. 사과, 감을 담아놓고 접시가 놓여 있다. 아마도 북녘에 부모를 두고 온 실향민이 추석 명절을 맞아 부모를 생각하는 정을 못 이겨 이 망향의 동산에 올랐으리라.
이곳에선 옹진반도가 눈앞에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해주 시멘트 공장의 연기까지 보인다고 한다. 이곳에 서서 두고 온 북녘의 고향과 식구들을 그리워하며 애틋한 마음을 달랜 실향민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5. 해안에 즐비한 기암괴석과 오석 해안
연평도 해안 가운데 북서쪽 지역은 우리나라 해안 절경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절경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연평도 서북쪽에 위치한 병풍바위.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아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병풍바위 해안 주변은 몽글몽글한 오석(烏石)이 많아 오석해안(몽돌갱변)이라고 한다. 거북바위는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동물 형상이라 하여 연평도 주민이 신성시하고 있다.
주변에는 티타늄 광산이 있어 티타늄 조각이 마모되어 해안에 둥근돌(오석)이 생긴 것인데 썰물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검은 돌들은 가히 수석 수집가들도 탐낼 만한 명물이다. 잔 자갈밭을 맨발로 걸으면 지압효과와 찜질효과까지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이곳은 북녘땅과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북한 부포리에서 10㎞, 북녘의 대수압도까지 어선으로 15분, 경비정으로 5분 거리로 낮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 송곳바위(아이스크림바위)와 거북바위(하) -
또 동북쪽 해안에는 송곳과 같이 끝이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송곳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추운 겨울 이 바위에 눈이 내려앉으면 영락없이 아이스크림 모양과 같다 하여 일명 '아이스크림바위'라고도 한다. 그 뒤로 보이는 거북바위는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동물 형상이라 하여 연평도 주민이 신성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등대 아래 바닷가의 '안고 도는 바위'와 빠삐용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빠삐용 절벽은 연평도의 자랑거리로, 이 절벽에서 바라보는 일몰 광경은 주홍빛 바다와 하늘이 조화를 이뤄 황홀경을 연출한다. 낙조 사진 촬영대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외에도 구지도 3개 섬과 개펄 사이로 지는 저녁노을이 유명하며, 마을 앞 모이도 바위섬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은 마치 동해 바다의 일출을 연상할 정도로 장엄하다.
6. 구리동 해수욕장과 새마을 해수욕장
연평 북서쪽으로 위치한 구리동 해수욕장은 일명 구룻나루 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천혜의 자연 해수욕장으로 여기서는 북녘해안이 보인다. 백사장은 1km 길이에 200m 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암괴석, 흰 자갈, 모래가 나란히 펼쳐진 곳으로, 모래가 아주 부드럽고 해송이 어우러져 한여름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그만이다. 선착장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이며, 마을에서는 1.5㎞ 거리에 있다.
또 마을 앞쪽에 자잘한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안(1.5㎞ 정도)이 있는데, 물이 맑아 여름철 해수욕을 할 수 있다. 이곳을 새마을해수욕장이라 부른다. 특히 이 해안은 간조 때 조개, 낙지, 게 등을 잡을 수 있어 초등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7. 임경업 장군 사당 충민사와 풍어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충민사는 조선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의 사당으로 연평면 사무소 뒤쪽 산언덕에 있다.
조선 인조대왕 14년(1636년) 명장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한 후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식수와 부식을 구하기 위해 연평도에 들른 적이 있었다. 마침 간조 시에 안목이라는 곳에서 가시나무(뽀르세나무)를 꺾어 꽂았는데, 조기가 나무가시에 걸려 많은 조기를 포획한 데서 유래하여 연평도에 어부들이 몰려들어 조기잡이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그 후 연평도에 우리나라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파시(波市)가 열리면서, 전국에서 수천 척의 고깃배가 몰려들었고, 어획량이 하도 많아 '연평도 인심'이란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이에 그의 전설적인 지혜를 숭모하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 충민사이다.
- 충민사(상)와 풍어제(하) 사진은 연평면사무소 이영원시가 제공한 것임 -
해마다 음력 1월 15일을 전후하여 전 주민들이 이 사당 앞에 모여 오색만기를 내세우고, 당굿과 배굿으로 북과 징을 울리며 임경업 장군의 고마운 뜻을 기리고 풍어와 어선의 안전을 기원하는 어민 행렬이 가히 볼만하다. 풍어제를 지내는 이날은 연평도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신축을 위하여 노후한 건물을 헐어내고 지반을 다지고 있었다. 어렵게 연평도까지 와서 충민사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연평면사무소에 들렀더니, 직원인 이영원 씨가 친절하게 충민사 사진과 함께 연평도의 일출 광경을 직은 사진도 흔쾌히 제공해 주었다.
8. 연평도 삶의 현장-안목 어장
연평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살은 당섬과 모니섬 사이 안목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 숲이 우거진 모니섬은 당섬과 연륙되어 이어진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연평항으로 들어서서 뱃전의 왼쪽 방향이고, 마을에서는 당섬으로 이어지는 연도교 끝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소연평도 쪽으로 거대한 어살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안목 어살이다. 임경업 장군이 뽀르세나무를 꽂자 가시마다 조기의 눈이 꿰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그 현장이다.
안목은 예로부터 연평도 어업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연평도의 물살은 상당히 빠른데 그 중에서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길목이 가장 가파르다. 그 물목에 길이 100여m의 어살을 설치하였다. 이 어살은 현재 12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는 17인이 공동으로 소유했는데, 고기가 들지 않자 차차 소유권을 정리해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은 어살의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유권을 사고파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다.
안목어살은 조기가 많을 때는 수확량이 너무도 많아 ‘안목은 고기 반 물 반’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조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어 농어 같은 고기가 워낙 많이 잡혀 등짐으로도 지고 오지 못할 정도였는데, 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3∼4일에 광어 한 마리도 안 걸린다고 이곳 어부들은 푸념이다. 간재미나 병어 한두 마리가 어쩌다 잡히는 정도란다.‘삼마이그물’이 들어와 20년이 넘게 불법으로 바다를 훑어대 고기씨가 마른 탓이다. 그러나 그물에 걸린 잔챙이들을 먹이로 삼는 바다갈매기들은 여전히 이곳을 좋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8. 천혜의 바다낚시터
낚시 포인트는 안목 어장, 선착장 주변과 주변 갯바위가 모두 낚시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지도(일명 토끼섬), 소연평 주변에선 배를 띄워 놓고 하는 채낚시가 성황을 이룬다. 바다에 낚시를 담그기만 하면 올라오는 손맛에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이다.
낚시철은 5월∼11월 중순까지이며, 물때의 최적기는 매월 음력 8∼12일, 23∼27일,(조금-세마)이며, 적기는 매월 음력 7∼14일, 22∼29(열세마-다섯마)이다.
잡히는 주요 어종은 5∼10월은 우럭, 9∼10월은 농어, 7∼9월은 준치, 수조기, 민어가 잡히며, 그 외에도 광어, 장어, 도다리, 숭어, 장대, 돌돔 등이 있다. 조황이나 출어는 현지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문의 032-831-2921)
사리 때 연평도를 방문한 사람은 야심한 밤에 썰물 때에 손에 랜턴이나 플래시를 들고 안목어장으로 나가 볼 것을 권장하고 싶다. 박하지(바와지)라는 돌게가 널려 있는데 소라, 낙지를 비롯해서 꽃게철이면 꽃게도 잡을 수 있다.
10. 주변 소연평도
대연평도에 딸린 작은 섬(대연평도 남방 6.4km거리)이라 하여 소연평도라 부르는 이 섬은 214m의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4.7㎞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바다낚시 장소가 많아 100여명의 주민들은 농어, 민어, 준치, 우럭 등을 비롯하여 주변 해역에서 굴, 소라 등 패류를 다량으로 어획하고 있다.
경사진 밭에서 재배되는 연평도 고구마는 타지역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달고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산에는 억새풀이 너무 많아 1년 연료로 충분하며 지붕을 해서 잇거나 방목하는 가축의 사료로도 이용한다.
또 기암괴석이 많은 소연평도 동남쪽에는 소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사람의 옆얼굴과 똑같이 생긴 얼굴바위가 있다. 소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알려져 있다. 여객선을 타고 소연평도에 이르면 가장 먼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명소이다.
<정보>
* 가는 길은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진도운수에서 주 4회 운항하는 '실버스타호'(4시간 소요)를 타거나, 우리고속에서 매일 왕복 운항하는 쾌속선 '시플레인’(2시간 소요)을 타면 된다. 출항 시간은 물때에 따라 달라지므로 배편을 사전에 문의해야 한다. 배편문의 / 진도운수(032-888-9600), 우리고속(032-887-2891) 혹은 인천항 여객터미널(032-700-2223)
* 숙박은 서해장(032-831-4555), 제일여관(032-831-4363), 황해장(032-832-4707) 연평파크(032-831-2065), 송림여인숙(032-831-4675), 연동타운(032-831-3705) 해성여관(032-832-4156), 연평여인숙(032-831-4165), 옹진여인숙(032-8324193) 민박으로는 둘리민박(032-831-8902), 연도민박(032-831-2065), 신일민박(032-831-3635), 아리까리(032-831-4573) 등이 있다. 식당은 마을 안에 여럿 있어 전혀 불편함이 없고, 민박에 들면 대부분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5,000원)
- 둘리민박에서 별미로 먹었던 바닷가재탕 -
* 관광 : 연평도는 섬 전체를 도보로 관광할 수 있으며,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마을버스가 운영되지 않아 교통편은 다소 불편하지만, 숙박업소에서 이용객 편의를 위해 봉고차로 수송해 주고 있다.
첫댓글 이렇게 아름다운 연평도를 너무 아프게 했어요
속상해요
황금어장에다 멋진해안풍경을 가진 연평도가 눈물의 연평도가 되었네요...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언제 다시 연평도로 돌아갈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