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함안보를 건너
이월 셋째 수요일은 온천장을 찾으려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동네 목욕탕은 찾지 않은 세월이 오래되었다. 주기가 제법 뜸해도 북면 마금산이나 부곡 온천으로 가서 목욕하는데 북면 온천장은 이른 새벽에 나가 남들이 탕에 들기 전 깨끗한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부곡의 경우는 본포로 나가 걸어가면 반나절이 걸려 점심때가 되어 대중탕에 들어 몸을 담그고 돌아왔다.
여태 부곡으로 가는 길은 시내버스로 본포로 나가 본포 다리를 건너 학포에서 세 갈래로 다녔다. 노리를 거쳐 임해진에서 청암을 지나 온정리로 갔다. 그 길 말고 학포에서 구산을 거쳐 가기도 했다. 구산에서 밀양 초동 인교 사거리로 나가 수다를 거쳐 부곡으로 가는 길이다. 이 밖에도 학포에서 비봉리 선사유적 전시관을 지나 비봉고개를 넘어 청암에서 온정리로 가는 길도 있다.
이번에는 도보 기점을 바꾸기로 했다. 동정동으로 나가 북면 오곡으로 가는 15번 마을버스를 탔다. 화천리와 중리와 아산을 둘러 마금산 온천장을 지난 바깥 신천에서 내산을 거쳐 오곡서 내렸다. 엊그제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으로 냉이를 캐러 가던 날은 안개가 짙었는데 그렇지 않아 강변 풍광이 드러났다. 창녕함안보 공도교 남단 칠북 봉촌리에서 북단 길곡 증산리로 건너갔다.
창녕함안보가 설치되기 전 두 지역 사이는 거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었을 텐데 이제 걸어서 5분이면 닿았다. 보를 건너간 북단 길곡 하내에는 4대강 사업 공사 때 순직한 22분 이름을 새겨둔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다. 경부고속도로에도 추풍령 어딘가에 당시 시공 과정 돌아간 분들을 기리는 빗돌이 있었는데 생명을 담보하는 대형 토목 공사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했다.
길곡면 강변 둔치는 ‘노고지리공원’으로 이름을 붙였다. 봄날이면 보리밭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까던 종달새를 노고지리라 했는데 보리밭이 사라지니 흔했던 종달새도 볼 수 없으나 정겨운 이름은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한때 정치권에서 부산 시민 상수원 확보를 위해 그곳 둔치에 취수정을 뚫어 강변 여과수를 퍼 올려 끌어가려고 했는데 주민들이 원치 않아 보류된 듯했다.
둔치 노고지리공원으로 가면 거리가 멀어 면사무소가 있는 지방도를 따라 걸었다. 증산리에 딸린 하내 동구 밖은 ‘벽진 이씨 외재공파 세거지’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나왔다. 기름진 강변 들판 비닐하우스에는 특용작물을 기르고 가을에 벼농사 뒷그루로 심은 마늘은 겨울을 나고 있었다. 면 단위 관공서 거리를 지나니 낡은 초등학교는 건물 개보수 공사로 가림막이 처져 있었다.
지방도를 따라 걷다가 강둑을 넘어 둔치 자전거 길로 들었다. 강 건너는 창원 북면 최북단 명촌마을이 보였다. 낙동강 물길은 임해진 바위 벼랑 개비리길에서 각을 크게 틀어 학포로 향했다. 온정천이 샛강으로 흘러온 징검다리에서 배낭에 넣어간 도시락을 비웠다. 둔치 자전거 길 한 갈래는 부곡 온천으로 가도록 안내했다. 자전거 길을 따라 청암과 차실을 지나니 온정리가 나왔다.
온정천 둑길 따라 부곡이 가까워지니 천변 스포츠파크 야구장에는 전지훈련 온 선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연습에 열중했다. 부곡 온천장 거리와 공원에는 전국 단위 자전거 대회가 열려 선수와 임원을 비롯한 행사 관계자들로 붐볐다. 스파 호텔 가운데 내가 가끔 들린 온천장을 찾아가니 평일임에도 입욕객이 더러 보였다. 따뜻한 온천수에 한동안 몸을 담그고 사우나실도 들었다.
산과 들을 누비며 묻은 먼지와 때를 한 시간 가량 걸려 말끔하게 씻어냈다. 부곡 온천에서 목욕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니 아까 자전거 대회 행사는 종료되어 거리는 적막했다. 부곡에서 하루 몇 차례 북면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탔더니 수다와 인교를 지나 학포에서 본포교를 건너 북면에 닿았다. 마금산 온천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화천리를 지나 굴현고개를 넘어왔다. 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