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제2장 율기 6조[관리들이 지녀야 할 마음 자세들] 청탁 편지를 뜯어보지 않은 청백리
고래로 어느 나라에서든 웃전에 청탁을 올리는 일은 흔 히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청탁의 유혹을 물리치고, 더 정확하게 말 하자면 청탁을 할 때 으레 따라붙는 물질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잣 대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것이다. 중국 삼국시대 때 위나라의 진태라는 사람이 병주 지방의 태수로 있 을 때의 일이다. 서울에 있는 아는 사람들이 그에게 편지를 많이 보내 왔다. 그러나 그는 그 편지들을 모조리 벽에 걸어놓고 뜯어보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상서가 되었는데, 그때 예전에 지인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모두 본인들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또한 조염이라는 사람이 청주의 자사로 있을 때, 요직에 있는 지체 높 은 사람들로부터 온 청탁 서신을 모조리 물속에 던져 버리고 그 이름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진나라의 공익이라는 사람도 낙양령으로 있을 때 청탁편지를 받으면 그 즉시 물속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한번은 정약용이 홍주목사 유의에게 편지를 띄워 공사(公事)를 논의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유의로부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유의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정약용이 물었다. "그때 왜 답장을 주지 않았소?" 유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원래 벼슬에 있을 때는 편지를 뜯어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인에게 시켜 편지함을 가져오게 했다. 그것을 쏟으니 상 자 안에 가득 다긴 편지는 한결같이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담겨 있었다. 편지를 대충 살펴보니 거의 조정의 귀인들이 보낸 것들이었다. 정약용이 다시 물었다. "내가 보낸 편지는 공적인 일을 의논하고자 했던 것이었소. 이런 편 지들과는 종류가 틀린데 어찌 뜯어보지 않았소?" 유의가 대답했다. "그런 내용이었다면 왜 공문의로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마침 비밀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소." "비밀에 속한 일이라면 왜 비밀 공문으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약용은 그 물음에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