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쉬퍼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슈퍼모델 하이디 클룸의 임신으로, 독일의 가판대 잡지들은 난리다.
베르기슈 글라드바흐 출신인 서른 살의 그녀는 얼마 전, 23세 연상인 이탈리아의 대부호이자 르노 F1팀의 전무이사인 플라비오 브리아또레와 결혼했었다.
그녀가 며칠 전 함부르크 비키니 컬렉션에 등장하자, 찌라시들은 신바람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친 호랑이’ 슈테판 에펜베르그의 귀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일이 생기든, 슬리퍼 신고 동네에 담배 사러가는 듯한 그의 표정은 참으로 널럴하며 뻔뻔스럽다.
또 독설을 퍼부을 때의 모습은 말 그대로 미친 호랑이 그것이다.
이 별명은 보루시아 묀셴글라드바흐 시절, 그가 뒤통수에 호랑이 얼굴을 새기고 나와서 붙여진 것이다.
그의 삶과 축구에 가장 딱 들어맞는 별명이리라.
에펜베르그는 지난 2002년 5월, 세 아이를 사이에 두고 있던 마르티나와 이혼한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 동료였던 토마스 슈트룬쯔의 아내 클라우디아와 시쳇말로 눈이 맞았던 것이다.
모델 출신이었던 클라우디아는 결혼한 지 30개월 만에 이혼하고는, 세 살 연하의 에펜베르그와 동거에 들어간다.
비슷한 경험의 게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전적으로 그에게 동감한다"고 언급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당시 찌라시들은 만국공통의 기질로, 그들의 커플 문신에 문법적으로 틀린 구절이 있니 없니 해서 한동안 시끄럽게 하기도 했었다.
14년 분데스리가 생활동안 109개의 경고를 받은 것을 떠나, 에펜베르그는 특유의 독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언론을 상대하는 그의 모습은 그라운드에서의 카리스마와 다르지 않다.
독일 월드컵까지 헝가리 국가대표를 맡기로 한 로타르 마테우스 감독도 강경한 인터뷰로 유명하지만, 그는 최소한 욕을 섞지는 않는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 그는 스스로 임명한 듯 거의 클럽 대변인 역할을 했다.
온갖 기자들의 억측과 비난을 같은 방식의 독설로 맞대응했던 그는, 언제나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또 좋은 천적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24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던 2000/2001 시즌엔 8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은 뒤, 데이빗 베캄의 플레이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그는 수염 난 계집아이 같았다. 놈의 따귀를 갈기고 싶었다.”
그렇게 올라간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자, 그는 기자 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즈나 발렌시아 같은 풋내기들과 뛰느니 이게 낫다.”
그리고, 산띠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수비선이 속절없이 뚫리자, 거의 운동장 절반을 달려와 백태클로 ‘가볍게’ 루이스 피구를 담궈준 뒤 뜬금없이 스코틀랜드의 휴 달라스 주심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던 모습을 필자는 기억한다.
그 옆에서 잔뜩 얼어있던 하산 살리하미지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에펜베르그와 칸이 서라운드로 갈구면서 마치 갱단의 분위기 같았다.
완전히 미쳐있던 이 둘에 의한 동기 부여로 우승컵을 뮌헨에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던 2002년 8월에, 바이에른 뮌헨의 연습장에 몰려들어 인터뷰를 요구하는 기자떼에게 꺼지라고 소리 지른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참 착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김병현이 아니라 에펜베르그에게 걸렸어야 했다.
지난 4월 출간된, 350쪽에 달하는 그의 자서전 ‘Ich hab's allen gezeigt(난 모든 것을 보았다)’ 얘기도 안할 수 없다.
이 책의 여러 일화들엔 현재 독일 축구계와 연예계의 실세들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해 민감한 부분도 많았지만, 에펜베르그에겐 속된 말로 ‘짤’이었다.
‘슈테판 에펜베르그가 책을 내놓았다’라고만 했던 디 벨트 지의 조소어린 평부터, ‘놀랄 만큼 탁월하다’고 한 타게스슈피겔 지까지, 이 자서전에 대한 평은 다양했다.
출간 기념 기자 회견장에서 그가 보여준 강한 자부심은 짜라투스트라 이상이었다.
20유로 가까운 값에도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던 에펜베르그가 지난 11월 말에 귀국해서, 북독일의 브라운슈바이히 지방 법원에 출두한 것이다.
지난 여름, 제한 속도가 20km/h인 곳에서 32km/h로 가던 중 교통정리를 하던 여경에게 제지당하자 “Arschloch”라고 부르며 모욕적인 발언을 했던 일 때문이다.
Arschloch는 옮기기 차마 뭐한 뜻이지만, 뭐 굳이 옮기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그대로이다.
정작 그는 ‘아름다운 저녁입니다’라고만 했다고 주장했으나, 주변의 남자 경찰들과 동료 여경들의 증언은 그렇지 않았다.
공무원을 모욕한 이 일로, 그는 10만 유로의 벌금을 내라는 약식 처분을 받았다.
물론 그는 항소할 뜻을 내비추며 기자 회견까지 열었고, 찌라시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 날, 클라우디아도 증인 자격으로 출두해 법원은 더욱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는 요새 카타르에 있다.
소개가 잘 안된 그의 카타르 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볼프스부르크 시절, 위르겐 뢰버 감독과의 불화설 이후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해외 진출을 권고한 것은 오트마 히쯔펠트 현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었다.
그리고 에펜베르그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보다 카타르를 택했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카타르엔 많은 스타들이 진출해 있다.
알-알리엔 호십 과르디올라, 알 사드엔 프랑크 르뵈프와 모로코 국가대표 출신의 시포, 그리고 알 라얀엔 나이트클럽의 단골 난동꾼 마리오 바슬러가 리베로로 뛰고 있다.
게다가 카타르 축구협회의 기술 코치도 61세의 독일 노신사 만프레트 회너다.
카타르 축구협회는 이번 시즌 각 클럽이 쓴 돈이 대충 3천만 달러는 되지 않을까 추산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오일 달러의 힘이다.
에펜베르그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 연봉보다 50만 유로가 적은 에누리 없는 2백만 유로에 1년 계약으로 카타르에 이적했다.
그가 진출한 알-아라비엔, 2년 동안 5백만 유로를 받는 조건으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플레잉 코치로 몸담고 있었다.
지난 달 1일, 알-아라비는 알 사드에게 0:7로 깨지는 치욕을 당한다.
에펜베르그나 바티스투타에겐 생애 처음이자 가장 벙찐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뒤 브라질 출신 감독이었던 까를로스 알베르뚜 까브랄이 경질되고, 17일엔 독일인 감독 볼프강 지트카가 부임해온다.
바레인 대표팀을 맡았던 그가 내년 5월까지 팀을 맡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 역시 분데스리가를 연고로 하는데, 1971년부터 1987년까지의 선수 시절엔 헤르타 베를린과 1860 뮌헨, 베르더 브레멘에서 미드필더로 뛰며 통산 333경기에 44골을 기록했었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베르더 브레멘 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이 49살의 감독은 알 샤말과 데뷔전을 치렀고, 지난 12일엔 알 이테하드와의 경기에서 3:2로 이겼다.
지트카의 세 번째 승리였는데, 이 경기에서 에펜베르그는 오른쪽 허벅지 근섬유 부상을 입어 3주 동안의 강제 휴식에 들어갔다.
재활까지 치면 당분간 그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보긴 어려울 듯 하다.
카타르에서의 계약 기간이 반 년 정도 남은 그는, 이제 서서히 은퇴를 생각할 나이다.
시간은 흘러, 그가 풋내기들이라고 불렀던 아이마르나 리오 퍼디낸드, 해리 키웰은 이미 베테랑의 경지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에펜베르그가 감독을 하리라는 생각은 안든다.
하긴 그 까칠하던 마티아스 잠머도 감독 생활을 하지만, 벤치에 정장이나 두툼한 점퍼를 입고 앉아있는 에펜베르그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인구 45만의 머나먼 도시 도하에서 보내는 요즘이 그의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 시간들이라고 봐야겠다.
둔탁한 카리스마로 모든 테크니션들을 처리하던 그의 플레이가 그립다.
10여 년 동안 꾸준히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물러난 선수들을 우린 ‘레전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는 독일은 물론 유럽, 아니 세계 축구의 이번 세기 최초의 레전드다.
마지막으로, 발렌시아를 꺾고 우승한 뒤 그가 했던 단 두 마디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마칠까 한다.
"누가, 우리가 질 꺼랬냐! (Wer zweifelt, hat verloren!)"
by 김영주
첫댓글 에펜베르크! 타고난 성격 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마지막 말.. -_-...
저거 뻑큐하는거 교체당할때 벤치에다 그런거죠? 우리나라랑 경기할때 맞나..월드컵에서..아님 낭패-_-;;
다좋은데 베컴욕하네 ㅡㅡㅗ
요새 에페 자료 많이 올라오네,,,
계집이란말 쓰지마세요
독일산 호랑이란 말듣고 대략 예상했3ㅋㅋㅋ
저는 호랑이 때문에.. 슈바인슈(타이거)준 알았어요 ㅠㅠ
Arschloch<-- 푸하하하 이 대목에서 쓰러졌음.
독일에서는 굉장히 심한 욕 ㅋㅋㅋㅋ 영국의 Fuck you 수준보다 심하다고 하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해석하면 @#$@$라는 뜻;
미친 다음 왜이래...사진이 안떠.........며칠에 한번 꼴로 이러네.........
에페없는 바이에른... 진짜 한동한 허전했다. 정말 그립다. 그리고 에펜베르크의 플레이를 봤다는 자체만으로도 진짜 영광이다... 특히 00~01시즌. 저렇게 말하는게 쌍스럽긴 하지만 실력이 뒷받침 되주니까...ㅋ
역시 미친 호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