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최강의 진영이었다.
PG 이상민
SG 우지원
SF 문경은
PF 김재훈
C 서장훈
으로 짜여진 연세대의 진영은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비록 서장훈이 지금과 같은 위용은 아닌채로
무적휘문(박준영-현주엽-서장훈-석주일)시절의 그저 키만 큰
센터에서 비로소 소프트웨어를 갖춘 센터로 성장해 나아가던
시기로서 다소 207cm의 신장에는 미흡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당시부터 공룡센터로 불리어지며 당시 쌍돛대를 이루던
김유택-한기범의 기아자동차에 손색이없는 골밑장악력을 이미
1학년 때 부터 선보였었다.
더구나 이 시절의 문경은은 그야말로 이충희와 김현준의 계보를
잇는 특급 슈터였다. 지금 현재로서도 다소 과장해서
아시아최고슈터로 불리는 문경은이지만 문경은의 최전성기는
바로 이 시점이었다. 이 때 농구대잔치에서는 3점슛 14개를
몰아넣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우지원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슈터였지만 가능성을 보여주는
보조슈터였고, 이상민은 기대만큼이나 당시 전성기였던 강동희
아성을 위협하는 초절정 가드였다. PF인 김재훈은 당시 4학년.
서장훈 입학 이전에 정재근과 함께 연대의 골밑을 굳건히
지켜내던 센터로서 사실 프로농구의 출범과 함께 용병이 없었담
김재훈-조동기-이은호-이창수-표필상 이런 센터들은 지금도
대단한 네임밸류를 가진 센터였을 것이다.
2. 고려대
92년에 전희철김병철박준영의 이른바 빅3를 한손에 틀어쥔
신흥강호였다. 물론 고려대의 전통에 입각하면 신흥강호라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기나긴 침체기를 감안한다면 신흥강호라기에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고려대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정인교와 윤호영이 각각 산업은행-삼성전자로 입단함과 함께
전력이 마이너스 되리라는 전망을 무참히 씹어버리며
멀티플레이어 김병철과 전희철이 안팎에서 폭죽같은 미사일포를
쏘아올리며 고려대의 중흥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G 김병철
F 양희승
F 이지승
C 전희철
C 박재헌
사실 시즌 초반엔 베스트5가 달랐다. PG에 김승민을 넣고
김병철을 주슈터로 양희승이 보조슈터, 전희철과 박재헌이
골밑을 맡는 포지션이었으나 김승민-김병철의 투가드가
경희대의 Top drop zone 디펜스를 뚫지못해 급기야 베스트를
갈아치우기에 이르렀고 수비전문인 이지승은 사실상 라이벌
연세의 문경은을 막기위한 대안인 셈이었다.
고대의 가장 큰 특징은 포인트가드 없는 농구였다.
PG없는 농구를 했다는 건 그만큼 득점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고,
그것은 철철콤비의 개인기에 의존한 팀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고려대는 고비를 넘지못해 패하는 일이 굉장히 잦았다.
그러나 본업이 SG인 김병철은 PG로서도 이상민과 대학최고를
다투는 가드였으며, 콤비인 전희철의 센터-포워드 능력 등
어느 위치에서든지 이들은 전문 포지션의 선수들을 능가했다.
누가봐도 김병철과 전희철의 더블에이스체제인 이 상황에서
사실 무게는 김병철쪽에 맞춰져 있었다. 첫째로 당시 한국농구는
전형적인 3점농구였다. 둘째로 전희철은 해마다 부상을 비켜
가지 못하고 있는데(올해도) 이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당시 전희철이나 김병철이나 완성품은 아니었다.
전희철은 중거리에서 빙글 돌며 터닝슛을 주무기로 했었고
김병철은 지금과 마찬가지의 공격루트를 보였지만 상당히
거칠었다. 다만 오른쪽 사이드로 몰고간 후 보여주는 개인기는
고교no1 김병철의 위력을 완벽히 재현하는 전성기보다 더욱
대단한 위력을 지녔었다. 이 두선수의 힘은 어쩌면 이 때가
가장 힘이 실렸었는지 모른다. 이후의 철철콤비는 다른 정상급
팀동료와 항상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김병철이 농구대잔치
득점5위(어시스트3위), 전희철이 득점7위에 올랐었다.
센터에서 막 슈터로 전환한 양희승이나 박재헌역시 미숙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사족 : 연세-고려-중앙의 대학 3국지 중에서도 포커스는
연-고대 쪽이었다. 실력을 떠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팀은
사실상 이들이었으며 여성팬과 남성팬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띄었다. 또한 고려대는 침체기 끝에 92년부터 서서히 연세대를
잡아내기 시작했고, 특히 93년 10월의 농구대잔치 출전티켓이
걸린 가을연맹전에서 연세대를 개박살내며 연대선수 전원을
삭발 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 연세대가 한결 견고해졌으니
연대의 농구대잔치 우승에는 고려대가 상당히 일조한 셈이다.
참고로 농구대잔치에서 두팀의 전적은 118:99로 연세대가
승리했으나 스코어 차이와는 별도로 공격농구의 명승부였다고
평가되어지고 있다. 문경은이 29득점, 김병철이 31득점(3점8개)
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3. 중앙대
대학3국지의 마지막 주자인 중앙대는 80년대중반-00년대초반과
함께 이때를 3대 전성기로 꼽을 수 있다.
PG 김승기
SG 홍사붕
SF 양경민
SF 김영만
C 조동기
특히 김승기는 이때가 최절정에 이른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터보가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가대표에도 생애 유일하게
발탁된 시기였다. 프로농구 시기인 현재에는 김승기의
'머리보단 몸이 앞서는' 저돌적인 스타일이 통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김승기의 패기는 상상을 초월했고, 야생마같은 김승기를
홍사붕이 좀 더 안정적으로 보좌하는 형국이었다.
이에 김영만과 양경민이 쌍포로 활약했는데 김영만은 물론
이 당시에도 단골 국가대표로서 최정상급 포워드로 분류되고
있었다. 양경민은 우지원과 비슷했다 보면 맞을것이다.
조동기는 비록 신장은 190대에 머물렀지만 전희철-서장훈과 함께
대학농구의 빅3 센터로서 김영만과 거액에 기아에 입단한
황금시기였다. 김유택을 이을 센터로 주목받았었다.
4. 경희대
대학3국지를 위협하는 최강의 다크호스였다.
PG 최명도
SG 김광운
SF 손규완
PF 윤영필
PF 장창곤
으로 짜여진 경희대는 주전 5명이 모두 3점슛에 일가견을 가진
당시로서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팀이었다. 예나지금이나
최명도의 건실하고 무리하지 않는 플레이는 여전했고, 3점슈팅
역시 정확한 PG였다. 김광운은 프로에서 PG로 활약한 것과는
다르게(사실 김광운과 김병철이 동양 초창기에 모두 SG였지만
김병철의 공격력을 더욱 살리기 위해 김광운이 자폭한 셈이다.
회상해보면 김병철이 PG로 돌았으면 김병철이 망가졌다.)
파워있는 돌파력과 정확한 3점을 가진 슈팅가드였다. 최근의
KBL에서의 조상현의 폭발력과 흡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손규완에게는 비애를 느낀다. 손규완의 슈팅감각은
내가 볼 때는 국내 최정상급이다. 만약 손규완이 슈터가 없는
삼성으로 당장 간다면 삼성은 독주채비를 갖출거라고 본다.
(돌파력은 김희선이 낫지만 지금 삼성에 필요한건 3점 한방이다)
전반적으로 스타성이나 끼는 없지만 성실한 선수들을 최부영
당시 경희대 감독이 상당히 짜임새있게 조련했다고 생각된다.
5. 명지대 - 건국대 - 한양대
이 3개 대학은 공통적으로 에이스 의존도가 강했다. 물론
고려대역시 철철콤비의 개인기에 상당히 의존했다 하지만
그들이야 차세대 한국농구의 에이스로 각광받던 인물임과는
다르게 한수 아래의, 그러나 대학농구는 주름잡는 에이스
한두명의 능력에 의존했던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농구를 펼치던 팀은 명지대였다.
조성훈-조성원-고상준의 3가드 시스템이 그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조조쌍포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었다. 조성훈은 PG로
활약했고 고상준도 보조슈터에 머물렀지만 현재 LG의 간판인
4학년 조성원은 그러나 당시에도 2학년인 고려대의 김병철을
따라잡진 못했다. 지금의 김병철과 황진원사이의 갭이라고 보면
맞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학농구 가드들에게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김병철과 조성원을 가장 막기 힘든 가드로
입을 모을 것이다. 두 슈터의 공통점은 빠르고 정확하고
체공력이 길다는 점이었다. 조성훈은 PG로서 빠르지는 않았지만
돋보이는 슈팅을 가진 선수였고, 고상준은 3점슛외엔 별볼일이
없었다(삼성전자에서 후보에 머물다가 은퇴후 주무를 역임했다)
한양대는 고려대와 비슷한 팀컬러였다. 추승균이 슈터로
활약하고 골밑은 이흥섭이 맡는 식이었으며 훗날 이들을
정락영이 지휘하며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나 한양대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3점슈터 부재였다.
이상영이나 정재훈, 이현주로는 한계가 있었다.
추승균 또한 당시로서는 슛리치가 길지 않은 선수로
전희철쯤의 중거리슛 적중률을 보이던 선수였다.
이 당시에도 추승균의 페이드어웨이슛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건국대는 정진영 원맨팀이나 다름없었다.
김병철이나 조성원과 마찬가지로 번개같은 돌파와 정확한 3점을
무기로 하는 슈팅가드였다. 건대에서의 정진영은 전성기 때의
마이클조던을 능가하는 의존도를 가졌었다. SG로서 김병철과
함께 자존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코트에서는
역동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어느 강팀이든지 건국대가 위협이
될만한 전력은 아니었지만 정진영 하나에 농락 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랬던 정진영도 현재 모비스에서는 거의 출장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씁쓸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