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 포구로 나가
입춘이 지나 우수를 사흘 앞둔 이월 중순이다. 남녘에도 아침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긴 해도 계절의 순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오는 주말 강수가 예보된다는 유튜버 기상 정보는 방송과 절연한 나의 일상에 도움이 된다. 작년 한 해 우리 지역에는 비가 몹시 귀했는데, 그걸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이 올해는 오랜 가뭄을 해갈시켜 줄 비가 잦아 농사나 산불 방재에 마음이 놓인다.
목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나설 자연학교 등교를 미루고 집에서 미적댔다. 도서관에서 빌려둔 권택영의 ‘생각의 속임수’를 마저 읽었다. 그 밖에도 세 권은 독파했으나 ‘하버드 의대 수명 혁명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은 ‘노화의 종말’은 읽지 못한 채 반납 기한이 다가왔다. 점심 식후 대출 도서를 껴안고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으로 나가 책을 반납하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산책을 나설 걸음이라 책을 빌리지 않고 그냥 나와 호수를 한 바퀴 거닐었다. 한때 강추위가 엄습했을 때는 수면은 얼음이 얼어붙었던 호수는 구름 사이 햇살이 비쳐 고요하기만 했다. 호숫가 둘레길에서 용호동 상가를 지나 정류소에 진해로 가는 버스를 탔다. 풍호동을 지난 장천에서 지선 버스로 갈아타 행암으로 갔다. 포구엔 임자를 만나지 못한 낚싯배들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문득 내가 25년째 사는 창원이라는 도시가 내게는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지나친 용지호수도 그렇고 발품만 팔아 나서면 어디나 호수나 강이고 바다를 접할 수 있어서였다. 주남저수지가 멀지 않고 낙동강 강가로도 자주 나간다. 구산이나 진동의 갯가로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해발 고도가 그리 높지 않은 근교 산자락은 내가 오르내리기는 힘에 벅차지 않아 알맞다.
산책객이 아무도 없는 행암 선창에서 수치로 가는 차도의 보도를 따라 걸었다. 군부대와 예비군 교육장이 위치한 언덕길 벚나무 가지는 미세하나마 꽃눈이 부푸는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지표와 가까운 철쭉은 겨울에도 가지마다 잎을 달고 있어 꽃눈의 개화 조짐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산마루로 올라 합계로 가는 산등선으로 가니 진해만과 거가대교 연륙 구간이 드러났다.
횟집이 몇 채 들어선 합계 포구로 가는 산등선은 차량도 인적도 없는 호젓한 길이었다. 합계는 마산의 합포만과 다른 임진왜란 당시 합포해전 전승지다. 그곳에서는 ‘학개’라고도 불리는 포구인데 정식 지명으로는 합계인 듯했다. 언덕을 내려가니 ‘임진장초’를 바탕으로 합포해전 전승을 기리는 내용이 빗돌에 새겨져 있었다. 옥포해전에 이어 조선 수군이 거둔 두 번째 승전보였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와 가까운 안골포는 왜구의 소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7년간 전쟁을 치르면서 안골포와 웅천에 왜성을 쌓아 장기전을 대비했다. 진해만 맞은편 거제 장문포에도 왜성을 쌓아 배후 기지로 삼았는데 통영과 여수를 거점으로 삼은 조선 수군 통제부의 이순신도 이를 잘 알고 대처해 바닷물 흐름과 지형을 이용해 전선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로 이끌었다.
합계 포구에서 연안으로 난 산책 데크를 따라가니 군데군데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소개한 알림판이 있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현대에 와서 해안선 간첩 침투를 대비해 군인들이 지켰던 콘크리트 초소도 나왔는데 산책 데크는 거기까지라 되돌아왔다. 합계 언덕에서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수치 해안으로 작은 포구 곁의 조선소 도크에는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용접 불꽃이 튀었다.
한때 조선 경기가 위축되어 도크는 빈 채로 크레인이 멈추었는데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듯했다. 수치 연안 도로에는 조선소 직원들이 타고 온 차량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었다. 조선 산업이 불황이었을 때는 거리에 차를 볼 수 없었다. 수치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경화시장에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백화점에 들러 트레킹화를 한 켤레 장만해 용지호수를 지나왔다. 23.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