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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저주
탤런트 김 혜 자
1941년생 탤런트 김혜자가 '월드비전' 한국측 친선대사를 맡아 내전중인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생생하게 체험한 기록. 그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책 속에 수록된 이 글의 원제는 <피의 다이아몬드>였지만 옮긴이가 읽는이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글의 제목을 바꾸어 보았다.
신의 축복이라는 다이아몬드. 하지만 시에라리온에선 어느 날부터 다이아몬드광산이 재앙이 되고 말았다. 이곳에서 다이아몬드는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미 바닥이 드러난 광산에서 아이들은 온종일 광주리에 흙을 떠다가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흔들어댄다. 그렇게 흔들면 다이아몬드 알맹이가 가운데로 모이기 때문이다. 광산주는 물론 따로 있다. 아이들은 고인 물속에서 계속 일을 해서 그런지 온몸에 좁쌀만 한 종기들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은 마치 내 몸에 종기가 난 것처럼 괴롭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고작 하루 한 끼 밥을 얻어먹으면서 중노동울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광산 곳곳 웅덩이마다 아이들이 올챙이 떼처럼 바글거린다.
1972년 밸런타인데이에 시에라리온의 국립다이아몬드광산의 선별공장에서는 일상적인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자와 공장 보안책임자는 테이블 위에서 무언가 커다란 물체를 보았다. 처음엔 누구도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보려고 테이블 위로 달려들었다. 그곳에는 계란크기만 한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놓여있었다. 다이아몬드를 급히 저울에 달아보니 무려 968.90캐럿이나 되었다. 그것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원석이며 퇴적광산에서 발견된 것 중에는 가장 큰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발견인가를 깨닫고 나자 직원들은 엄중한 감시 하에 그것을 수도인 프리타운으로 보냈다. 대통령은 그 거대한 보석에 ‘시에라리온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에라리온과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3국에서 유혈내전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나라들은 모두 풍부한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데다 반군세력들이 무기를 사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캐내고 있었다. 이들은 다이아몬드를 돈줄로 삼아 탱크와 소총 군복 맥주까지 구입하고 있었다.
반군통일혁명전선이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반군들은 포로로 잡힌 사람들의 손가락과 손, 입술, 귀 등을 즐겨 절단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들 희생자 중에는 서너 살짜리 아기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한 사건으로 알려진 이 내전으로 약 20만 명이 사망했으며 수만 명이 사지를 절단당하거나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강간이 전국적으로 저질러졌고 아이들이 반군병사로 징집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반군이 내전을 시작했을 때 이들의 숫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 반군이 다이아몬드광산을 수중에 넣자 그 숫자는 1만 5천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다이아몬드 거래는 무기구입을 가능케 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지게 만들었다.
시에라리온에서 캐낸 다이아몬드는 이웃나라 라이베리아로 옮겨진 뒤 유럽으로 흘러들어간다. 반군혁명세력이 생산한 다이아몬드 중 많은 양이 미국 뉴욕의 보석가게들에까지 흘러들어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온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도 그곳 다이아몬드 매장량에 눈독을 들인 르완다와 우간다 군대가 몰려든 때문이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앙골라의 유니타반군으로 하여금 무려 28년 동안이나 내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모든 여성이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보석 다이아몬드는 이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와 눈물의 결정체다. 내가 직접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다이아몬드가 모든 대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다이아몬드가 대단히 슬픈 보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도저히 다이아몬드를 몸에 지니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이아몬드에는 그곳 아이들과 여성들의 피가 묻어있는 것이다.
합법적인 다이아몬드 거래의 경우에는 혜택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 돌아가지만 현재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오히려 치명적인 위해가 될 수 있다. 반군들은 광산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 다이아몬드는 대량살상무기로 바뀐다.
다이아몬드는 넘쳐나는데 밥을 굶는 나라. 이 어처구니없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다. 피의 다이아몬드가 현지인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손과 발이 잘린 시에라리온 사람들이 말해준다. 반군들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주민들을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에서 몰아내기 위해 사람들의 손을 잘랐다. 이웃나라 라니베리아는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총기 마약 돈세탁과 관련된 다이아몬드 범죄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다이아몬드가 시에라리온과 앙골라, 콩고에서 아이들의 손가락과 손을 자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 인권단체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당신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다이아몬드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이 흘리는 고통의 피눈물이라는 것을 아는가?”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이후 내전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는 앙골라에서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0만 명이 내전으로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반군단체가 다이아몬드를 팔아 사들인 최신무기로 무장해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반군단체인 ‘앙골라의 완전독립을 위한 국민연합’이 내전기간 동안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모두 37억 달러에 이른다. 더욱 끔찍한 일은 그들이 구입한 무기 가운데는 무차별 인명살상의 우려 때문에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대인지뢰가 대량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앙골라 곳곳에는 1천만 개의 대인지뢰가 묻혀있어 피해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1998년부터 반정부운동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적어도 주변 6개국 군대가 뒤섞여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불과 1주일 만에 민간인 6백 명이 사망하고 3천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을 이끌어가는 막대한 전쟁경비의 원천이 바로 다이아몬드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 15위를 차지하는 국가들 중 9개 나라가 정치체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시에라리온도 마찬가지다. 코이두와 통고필드 등 다이아몬드가 대량으로 나오고 있는 지역들은 반군들이 대부분 장악해 어린이와 여자들까지도 강제로 다이아몬드 채광에 동원해 노예처럼 부려왔다. 시에라리온에서 5만 달러에 산 다이아몬드 원석이 런던에서 가공과정을 거치면 4백만 달러에 거래될 정도로 그 이익은 막대하다.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생산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다이아몬드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 국가들의 생활이 나아지면서 너도나도 다이아몬드를 혼수품으로 원하게 되고 그것이 아프리카의 내전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다이아몬드 수요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와 같은 거대한 시장에서마저 점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결성된 한 시민운동단체는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감시하기 위한 대표단을 파견하고 내전중인 나라에서 캐낸 다이아몬드는 사지도 팔지도 말 것을 대중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이들이 펼치고 있는 운동은 ‘반다이아몬드운동’이 아니라 ‘반전운동’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전쟁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아프리카대륙에서도 머지 않아 총성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모하메드는 다이아몬드광산에서 일하는 소년병 출신 남자아이다. 가끔 저 먼 곳에 시선을 주는 모하메드는 이미 열여덟 살짜리 소년의 눈이 아니다. 이 아이는 치유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다. 가엾고도 무서운 일이다. 소년병 출신 아이들이 거의 다 이런 상태일 것이다. 모하메드가 들려주는 얘기는 도저히 인간의 귀를 갖고선 들을 수 없다. 너무 일찍 군인이 된 아이들이 마구 사람을 죽이고 팔다리를 자르고 여자들을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모하메드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재미로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을 들기 전에 무슨 약을 나눠주었다고 했다.
다시 그러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모하메드는 담담하게 말한다. 군인이 되면 먹을 것도 주고 총이 있으니까 힘도 생기기 때문에 또다시 반군이 될 것이라고. 내가 너무 놀라 물었다. “그럼 또 그런 나쁜 짓을 하겠네?” 모하메드가 대답했다. “아뇨. 나도 이제 컸으니까, 그런 일은 소년병들에게 시키면 돼죠.” 컸다고 해도 열여덟 살에 불과한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레베카를 만난 것은 모하메드와 만나고 나서 성폭행당한 소녀들을 위한 재활센터로 갔을 때였다. 재활센터라고 해봤자 재봉틀 3대를 놓고 자수 놓는 법만 가르치는 곳이었다. 배워야할 사람은 많고 장소는 비좁았다. 레베카는 차례를 기다리는 많은 여자들 틈에서 긴 다리를 쭉 뻗고 한쪽 젖을 아이에게 물린 채로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 옆엔 뜨거운 햇볕에 변색돼 머리카락이 노래진 5살짜리 여자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서있었다.
그녀가 눈에 띈 건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 흑인여자들 틈에서도 눈에 띄게 예뻤고 또 꼬물거려 살을 파고든다는 머리카락을 깔때기 모양의 쇠붙이로 올올이 말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표정 없는 얼굴이 더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냥 사람들 틈에 앉아있는 것이지 무슨 목적이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왔다 갔다 해도 아무 관심도 없고 보채는 아이에게 가끔씩 젖을 바꿔 물려줄 뿐이었다.
열여덟 살의 레베카. 그녀는 열세 살 때 반군이 칼로 엄마와 아빠의 목을 친 뒤 발로 차는 것을 보았고 뒤이어 그들이 언니의 팔을 끊은 뒤 성폭행하는 것을 보았다. 언니도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 그런 다음 반군은 열세 살짜리 그녀를 집단 윤간했다. 소녀는 마침내 기절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반군대장 앞에 끌려가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예뻐서 대장의 다섯 번째 아내가 되었다. 다섯 번째 첩이니까 온갖 궂은일을 시키고 밤마다 담뱃불로 지지고 때리고 성폭행을 일삼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레베카는 담담하게 담뱃불에 지져진 허벅지와 가슴팍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5년이 흘렀고 아이가 생겼다. 지금 옆에서 손가락을 빨며 서있는 여자아이가 바로 그 아이였다. 그러다가 정부군이 쳐들어왔다. 정부군 대장은 레베카가 보는 앞에서 5년 동안 함께 살았던 반군대장의 목을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레베카를 보호해주겠다고 데리고 가서 또 몹쓸 짓을 했다. 그래서 생긴 아이를 지금 레베카는 젖을 물리고 있었다.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소녀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통을 다 겪은 것이었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나는 늙어서 죽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래서 열아홉 살까지만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 어느 비 오는 날 동네약국 열두 군데를 돌며 수면제를 사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사치스럽던 열여덟 살이었다. 그런데 레베카는 차마 영화로도 만들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겪고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오, 하느님! 세상은 왜 이리도 불공평한 걸까요?
이제 전쟁이 끝나고 레베카는 아이들과 함께 친척집에 얹혀살고 있다. 나는 그 집에 가보았다. 모든 것이 파괴된 상태라서 그저 3면벽밖에 없는 한 평 남짓한 방에 달랑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서 친척과 아이가 자고 자기는 땅바닥에서 아이들과 함께 잔다고 했다. 너무 좁아 친척이 나가라고 하지만 갈 곳이 없다. 이 넓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레베카는 갈 곳이 없었다. 등에 업힌 아이는 이마가 불덩이 같다. 어디가 아픈 걸까.
나는 이 열여덟 살짜리 소녀에게 삶이 고통만 계속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어쨌든 잠깐만이라도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그녀에게 벽이 있는 방을 반드시 마련해주겠다고. 그리고 몇 달 먹을 양식 흙바닥이 아닌 침대와 예쁜 색깔의 침대시트까지도. 내가 그 결심을 말해주자 레베카는 그저 남의 얘기인 것처럼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1분쯤 지나자 그녀는 그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라는 걸 알았고 정말 열여덟 살 소녀가 되어 손뼉까지 쳐대며 웃었다. 눈은 반짝이고 얼굴은 생기를 띠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면서 모두가 행복한 눈물을 지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 건너편에 벽만 남은 두 평 정도의 집이 있었다. 레베카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약속대로 당장에 그녀의 소망을 이뤄주었다. 다 허물어져가는 벽을 다시 쌓아주고 침대와 가재도구를 사주고 여섯 달치 식량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레베카와 작별했다. 뿌연 먼지를 날리며 내 모습이 아득히 사라질 때까지 레베카는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레베카와 완전히 작별할 수 없음을 안다. 왜냐하면 시에라리온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레베카가 있으니까. 수많은 모하메드가 있으니까.
어느 인도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만일 길에서 화살에 맞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는 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화살대를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 화살촉은 무슨 금속인지 또 화살 맞은 사람이 무슨 계급인지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질문을 퍼붓는 대신 서둘러 화살을 빼주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