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월 8일
이삿짐 트럭을 하나빌려 이삿짐을 가득 싣도
수유리3동 파출소 옆에 차를 세워두고 나는 마지막 밤을 지냅니다.
내 피아노 학원은 후배 처녀에게 물려주고
다음날 차를 타고 서울을 떠납니다.
동네 부인 여러명이 나와서 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짓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나에게 와서 피아노를 배운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떠나지 않기를 바랬지만 나는 서울이 싫어 그곳을 떠납니다.
나는 운전자 옆에 앉아 한남동을 지나 한강을 건느는데 너무 이른 새벽이라서 한강물이 보이지 않습니다.`한강아 잘 있거라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것 같구나 !`나는 눈을 감습니다.
태백에 이르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차가 통리에 이르자 아에 폭설입니다.운전자가 뒷바퀴에 체인을 감습니다.
그리고 99구비의 통리재를 넘는데 너무 경사진 길이라서 운전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차를 모는데엉덩이가 들려있습니다.
간신히 밑으로 내려와서는 `휴` 하고 깊은 숨을 쉽니다.우리가 풍곡에 이르자 눈이 발목을 덮습니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운전사가 말 합니다.
나의 집은 풍곡에서 삼거리를 지나 경북 석포로 가는 산길로 해서 산판도로를 달려 800m가 넘는 산속을 한참 누비다가 덕풍마을의 망가진 계곡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려 놓고
거기에서 1km떨어진 우리집까지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이를 어쩌나 ! 아주 난감합니다.``하느님 도와주소서`(계속)
첫댓글 고행길이 걱정됨니다만.
미래가 있겠지요.
어서오세요 똘망똘망님 감사합니다.
글이 작아졌네요"
또고생길닥처군요
서울 에서어떡케알구 덕풍계곡까지가셨데요
감사드려요
제가 서울 수유리에서 피아노 학원을 할 때
우리3층 건물에는 3층과 지하실에는 전라도 젊은이들이
그1986년에는 우리니라 편물산업을 그들의 주도하였는데
우리건물에는 화장실이 우리피아노방 엎 한개뿐입니다.
지하도와 3층에어 일 하는 전라도 청년들은 예의를 모르고 화장실을 아주 지저분하게 사용합니다.
내가 매일 청소를 해도 그들은 똥을 가득 싸놓고 치우지도 않고 밖에서 오줌을 내 깔리면 오줌 줄기가 층계를 타고 내려 갑니다.
그리고 망치로 바닥을 탕탕 치면 우리;아이들이 피아노를 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주말이면 전국의 오지마을을 돌아다닙니다.
내가 서울을 떠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