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그리스도가 누구이길 이런 간절함이 있는가?
사도 바울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다.
- 전에는 그도 외식의 신앙인이었다.
그럴듯한 스펙으로 겉으로만 치장하였던 거다.
잘못된 선민사상으로 주님의 긍휼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었다.
나는 어떠한가를 묻고 있다.
주님을 위한다면서도 실상은 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러지 않았다면 왜 저들이 몰라줄 때 서운하였는가 말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왜 내 이름이 불려질 때 어깨가 우쭐하였던가 말이다.
역시 이름만 그럴듯한 크리스천은 아닌가 말이다.
모태신앙이며 그것도 3대째 신앙의 집안이라고 말이다.
교회의 담임 목사요 박사라고 말이다.
성경 공부도 한 것도 한두 가지 아니라고 말이다.
성경 읽기도 몇 독을 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이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계산도 안 된다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사도 바울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을 거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거다.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곳에 있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은 거다.
우주의 작은 행성 속 티끌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
이제는 철저하게 주님의 뜻 아래에 머물리라.
오직 나의 왕 나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만 위해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