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용삭(龍朔) 원년(문무왕 원년: 661)
9월 27일에 백제부흥군의 옹산성이 함락시킨후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는 당나라 소정방군에게 군량을 보급하기 위한 가운데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庾信 旣受命 至懸鼓岑 之岫寺 齊戒
卽靈室閉戶 獨坐焚香 累日夜而後出 私自喜曰
吾今之行 得不死矣
(유신공은 이미 명을 받고 현고잠(懸鼓岑)의 동굴 안의 절(岫寺)에 가서 재계하였다.
곧바로 영실(靈室)에 들어가 문을 닫고 홀로 앉아 분향하여 여러 날 밤을 지내고 나와서
사사로이 홀로 즐거워하며 말하기를 "나의 이번 행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왜 김유신 장군이 "나의 이번 행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 의미가 무었일까요?
이건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더구나 연개소문 장군이 이미 주필산 전투에서나 안시성 전투등에서
철저하게 보급로 차단의 전술로 인해 당나라군대를 물리친 연개소문 장군의
전투수행 능력을 김유신 장군 역시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정예군대로 맞서는 것도 아니고 보급 수송의 임무를 띠고 고구려 심장부 까지
보급의무를 수행하면서 그것도 적지에서 연개소문 장군과 대적했을시
그 임무수행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에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을 것인데.....
이듬해 662년 정월과 2월에 수송작전이 이루어지는데
이 시기에 연개소문 장군이 평양성 아래 사수(옥저도 행군)에서 당나라 방효태군을
전멸시키고 전과를 올린 바로 그 시기입니다.
부근을 지나야 하는 김유신 장군의 군량미 수송작전을 왜 막질 못했는지?
김유신장군은 "왜 "나의 이번 행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라고 기뻐 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연개소문 장군과 때어 놓을 수는 상관 관계로써
1)김유신 장군은 당의 방효태 군과 연개소문 장군과 전투를 예견(이미 당나라의
심장부에서 숙위하고 있던 김인문과 그의 아들 삼광등으로 하여금 침공 계획 및
작전기밀 정보등 입수가능)하여
직접 연개소문 장군과 마딱뜨리지 않는다는 전술적 확신을 가졌던지?
2)삼국사절요의 기록 처럼 662년 정월과 2월에 연개소문 장군이 사수전투에
직접 참여하여 방효태를 전사시키고 그 군사를 격멸시켰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는 이미 연개소문 장군의 변고를 비밀에 붙이고 연개소문 장군의 위용으로
방효태군을 격멸시킨것인지?
그런 정보를 661년 김유신 장군이 기도드린 시점 (661년 10월~11월쯤)에 잇어서
첩자를 통해 연개소문 장군의 변고소식을 알고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확신 한 것인지?
참으로 저토록 큰 사건을 앞두고 말한마디, 행동의 기록 하나가 예사롭지 않기에
이처럼 여러가지 가설과 궁금점이 생기나 봅니다.
참고로 연개소문장군의 생몰년도
삼국사기 및 당서 ; 666년
일본서기 : 664년 10월
조선상고사 ; 657년
새로쓰는 연개소문전 : 663년 10월로 추정 (여러가지 당시 상황및 사건을 참고로
문헌 고증 및 참고가 잘 설명되어 있음)
사실은 "새로쓰는 연개소문전"(김용만 저/바다출판사)을 사서 읽고 있는데
본의건 본의 아니건 난세의 격동기에 자신이 이끌어가야할 숙명의 대고구려 운명을
한몸으로 그 웅장한 역사를 쓰게한 연개소문 장군의 행적이 감명깊게 잘 설명되고
매우 사실적이며 고증적인 문헌 참조도 빠뜨리지 않아 여러 사서들을 일일히
찾아야 하는 수고도 덜어준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은 저에게 역사인식을
올바르게할 수 있는 안목을 넓혀준 감명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앗! 그렇네요 물론 질문도 되고 마지막에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은 독후감입니다. 헷갈리게 했네요..죄송합니다. 분명한 것은 연개소문장군의 생몰년대가 가장 궁금한데 위의 2가지 의문점에 대해 다른 분들의 고견도 듣고 싶고 아니면 제가 괜한 생각을 할 수도 잇는 문제도 될 수있기에 보다 역사학을 전문으로 하시는 우리회원님들께서는 저런 질문을 받았을때 어떠한 생각을 가지는지도 궁금하구요!!!..그냥 배우는 입장인데 제가 좀 애매하게 했나 봅니다.
첫댓글 질문인가요, 독후감인가요?
앗! 그렇네요 물론 질문도 되고 마지막에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은 독후감입니다. 헷갈리게 했네요..죄송합니다. 분명한 것은 연개소문장군의 생몰년대가 가장 궁금한데 위의 2가지 의문점에 대해 다른 분들의 고견도 듣고 싶고 아니면 제가 괜한 생각을 할 수도 잇는 문제도 될 수있기에 보다 역사학을 전문으로 하시는 우리회원님들께서는 저런 질문을 받았을때 어떠한 생각을 가지는지도 궁금하구요!!!..그냥 배우는 입장인데 제가 좀 애매하게 했나 봅니다.
그리고 만일 2번째 의문점이 신빙성 있다면 김유신장군이 기도후 살아돌아올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661년 10월경이 되므로 연개소문 장군의 신변의 변고나 생몰년도가 또 다를 수 있기에 심각할 정도로 궁금하답니다..
아..; 고구려 말기에 관해 관심만 있고 실력은 없습니다만, 정보 중에서는 허위정보도 있을 수 있다는걸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가 언제 죽었든 간에 연개소문 장군의 변고 소식은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역사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역사서 내용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퍼즐을 맞추듯이 조립해 나가는 과정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봅니다. 연개소문 장군은 워낙 행적의 선이 굵어서 생몰년대에 따라 그에 따르는 업적과 사건들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는지라..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