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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우 展
“도시의 축제”
도시의 축제_162x97cm_technical mixture_2011
유아트스페이스 1, 2전시실
2011. 7. 5 (화) ▶ 2011. 7. 23(토) Opening : 2011. 7. 5 (화) PM 5:00 갤러리콘서트 : 2011. 7. 21(목) PM 8:00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01-6 | T. 02-544-8585
JAZZ_72.5x90.5cm_technical mixture_2011
유아트스페이스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주력해오고 있는 작가 신흥우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그의 작품은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그만의 테크니컬 믹스처 (technical mixture)로 탄생시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화를 이뤄내 하나의 우주를 형성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짙은 명도의 전체적 색채 위에 다양한 표정의 각각의 개체로서 도시를 표류하기도 하고 연주를 하기도 하면서 캔버스 위를 서성이기도 합니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 작가는 인간에 대한 정관적 관조와 애정 어린 시선으로써 인간 자아의 내향적 투시를 통해, 객체로써의 인간들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색의 앙상블(ensemble)인 동시에 어릴 적 동화 속 어른들처럼 자아를 찾는 다른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층 더 발전된 그의 작업을 만나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JAZZ_162x97cm_technical mixture_2011
얼굴 - 그 창조 프로젝트의 집합코드
윤우학 (미술평론가)
생체정보인식 가운데서 최첨단 기술로 알려져 있는 얼굴인식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오랜 연구과정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얼굴에는 미묘한 변수가 엄청나게 많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인식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 조그마한 면적에 참으로 다양한 변화가 잠재해 꼭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게 만들어진, 신기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 바로 사람의 얼굴이다. 뿐더러 그렇게 다양함을 지니면서도 그 하나하나가 소유자 자신들의 내면 모습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또한 얼굴이라고 한다면 얼굴이야 말로 인간창조에 있어서 조물주의 숨은 뜻이 집약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당연하다. 작가 신흥우의 작업은 바로 이 인간의 얼굴이 갖는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방식의 구조를 나름의 작업적 문맥으로 전환시켜 신의 창조가 갖는 신비의 코드를 우리에게 수신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실 사람의 성격적인 특징은 얼굴에 집중적으로 나타내게 마련이며 얼굴이야 말로 그 사람의 내면상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적 차원을 묘사 할 때면 언제나 얼굴이 그 묘사의 중심을 이루게 마련이며 초상화의 장르는 그러한 내면상의 묘사를 통해 현상의 배후에 잠재하는 정신적 영역을 지향한 까닭에 나름의 위상을 확보 했을 뿐 아니라 사진기의 발명 후에도 꾸준하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유지하여 왔던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 이 정신적인 차원의 강조가 역설적으로는 육체라는 신체와 그 현상적 의미를 억압한 채 신체와 정신의 균형된 모습의 일탈해 왔다는 반성의 시각에서, 보다 즉물적이고 육질적인 얼굴의 묘사를 강조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던류의 접근방식을 우리는 한편에서 보다 쉽게, 보다 자주 접하게 되었다. 신흥우의 얼굴 작업도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흥미와 함께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비밀의 관계를 푸는 실마리로서 새로운 의미를 한편에 던지고 있다. 실리콘 주사로부터 즉흥적으로 뿌려진 채 얼굴이 갖는 섬세한 표정은 물론 주름살마저도 삭제하여 던져지는 그의 얼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내면상으로 보다는 오히려 조물주의 창조 프로젝트로부터 쉴 사이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일련번호를 달리하는 하나의 보편성으로서, 무심하게 채취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JAZZ_162x97cm_technical mixture_2011
“사람 만드는 과정 동안에 천차만별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과거로부터 흘러 들어와 느린 그때 만났던 하나하나 각인된다. 그때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의 기억들이 몇 가락의 선으로 형상화되어 토해진다......” 아마도 작가는 사람 얼굴이 갖는 보편성과 더불어 인종, 민족, 성별, 나이, 혈맥 등에 따라 유사해지는 유형,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하게 꾸려지는 개성이라는 그야말로 복잡하게 짝이 없는 상관관계를 오히려 즉물적이고 즉흥적인 행위 속에서 대비시켜 조물주의 창조이념을 상징화 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 ... 피카소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일그러진 얼굴이건 두 살 때 그렸던 내 딸의 그림 속 인물이건 그야말로 범 코스모스적인 누구나 아무 얼굴이나 순간순간 떠오르는 대로 그려낸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무엇이 될 수도 있는 내 작업은 그런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뒤섞여 만나는 하나의 순간(운명, 인연)이다.” 작가의 최근 작업 속에는 서로 다른 많은 얼굴들이 만나 또 다른 하나의 얼굴을 형성하는 기묘한 집합관계가 다양한 색채의 혼합과정과 더불어 독특한 의미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개념의 동어반복과 같은 일련의 의미구조가 바로 그것이며 이 구조는 결국 세계로 향한 작가의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눈길이 깊고 무한한 창조프로젝트의 신비 속으로 뛰어든 채 인간에게 주어지는 숙명의 과제들을 풀어 나가려는 작가 자신의 끈기 있는 노력과 시도의 한 단편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시쉬포스의 신화처럼 끊임없는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고통을 작가에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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