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나무 자생지를 찾아
고립과 고독은 동일선상일 수도 있지만 현상학적으로는 다르다. 주변과 어울릴 수 없는 불가피한 외부 상황이 빚은 결과는 고립이고, 스스로 고요한 침잠의 세계에 잠겨보려는 의도는 고독이다. 같은 산중이라도 눈이 와 길을 잃은 등산객은 구조대가 출동해야 하지만 산사에서 수도 정진하는 스님에게 외부인이 접근함은 결례지 싶다. 이 대목의 등산객은 고립이고 스님은 고독이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낸다만 가끔 한 대학 동기와 산행이나 트레킹을 나서기도 한다. 이월 셋째 금요일은 그 동기와 길을 나섰다. 지난해 여름 퇴직한 동기는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해 주중은 그곳에 머물다 주말을 앞두고 도시로 들어와 지기들과 어울려 보낸다. 지난주는 진해 웅동의 마봉산을 올라 신낙남정맥을 따라 두동고개에서 명월산으로 가질 못하고 웅동으로 나왔다.
이번 주는 전원주택을 지어 시골로 귀촌한 벗이 그곳 어디엔가 심으려는 음나무 묘목을 구하는 걸음이다. 신축 주택의 준공검사를 충족해야 하는 조경수와는 달리 벗이 관리해야 하는 산지에 심을 묘목이었다. 이미 매실과 오가피를 비롯한 몇 종의 유실수 묘목은 구해 놓았다고 했다. 벗으로부터 새순을 데치면 좋은 산나물이 되는 음나무를 가꾸어보려는 구상을 들은 바가 있었다.
음나무라면 창원 동읍 신방리 천연기념물 군락지가 있더이다. 거기서 멀지 않은 구룡산의 그윽한 골짜기에서도 수령이 오래된 음나무를 본 적이 있다. 현재 육군 정비창 군부대와 인접한 곳이라 등산로도 없고 산행객이 지날 수 없는 골짜기다. 나는 그곳 말고도 지난날 봄에 북면 감계 신도시와 가까운 조롱산에 자생하던 음나무 새순을 채집해 식탁의 찬거리로 삼은 적도 있다.
음나무 순은 두릅 순만큼 봄이면 인기를 끈다. 산나물 제왕인 두릅에 버금간다고 엄나무 순은 개두릅이라 했다. 산나물은 다양하기에 그 종마다 사람들은 호불호가 엇갈려 두릅보다 엄나무 순을 좋아하는 이도 봤다. 나는 한 뼘 텃밭을 소유하지도 않으면서 봄날이면 두릅이나 엄나무 순을 데쳐 맛을 봐 왔다. 창원 근교 야산에서 두릅과 엄나무 자생지도 훤히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월 셋째 금요일 아침 구산면 갯가로 가는 버스를 환승하려다 놓쳐 마산합포구청에서 만났다. 현관 로비에서 안부를 나누고 구산 옥계로 가는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한 시간 뒤 마산역 광장에서 출발한 62번 농어촌버스를 타고 댓거리와 밤밭고개를 넘어 구산면 소재지 수정에서 안녕마을을 지나니 바다가 드러났다. 버스는 해안선을 따라 더 나아가 옥계에 이르렀을 때 내렸다.
옥계는 합포만 바깥에서 규모가 큰 어항으로 겨울에는 물메기가 많이 잡혔다.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들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예전 초등학교가 폐교된 터는 주민복지관이 들어서 있었다. 외딴곳의 횟집을 지나 인적 없는 임도를 따라 걸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벗이 가져온 담금주와 삶은 달걀을 까먹었다. 이후 임도가 끝난 숲길로 드니 우리가 할 일이 기다렸다.
옥계에서 난포로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랐다. 바위 더미에 자갈과 함께 섞인 땅이라 생육 상태는 부실해도 둥치가 작아 우리가 캐기로는 수월해 좋았다. 먼저 무섭게 보이는 가시를 제거했다. 벗이 가져온 괭이와 내가 챙겨간 전정 가위를 이용해 음나무를 캤더니 뿌리가 쉽게 드러났다. 주변에서 묘목으로 삼기 알맞은 음나무 예닐곱 그루를 손쉽게 캤다.
둘이서 캔 음나무를 자루에 담아 손에 들었더니 무게는 가벼웠다. 숲길을 빠져 해안가로 내려가니 갯바위가 나왔다. 바다는 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떠 있고 가끔 어선이 물살을 가르며 지났다. 바다 바깥은 거제도와 거가대교 연륙 구간이 보였다. 남겨둔 담금주를 마저 비우면서 김밥을 나누어 먹고 해안선을 따라 난포로 나갔다. 정자나무 밑에서 원전 종점을 출발해 온 버스를 탔다. 2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