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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후 수백 년이 넘도록, 역사가들은 람세스와 히타이트 간의 전투가 대략 그 시에서 묘사한 방식대로 벌어졌었다고 믿었다(물론 신으로의 변신까지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집트가 승리한 것은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것이야말로 이들이 참고할 만한 유일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역사학자들은 파라오가 승리했다고 알려진 이 전투 이후에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왕 하투실리 3세 사이에 오간 100통 이상의 사적인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전투에 관해서 하투실리 3세가 람세스에게 쓴 편지 가운데 한 통의 내용을 요즘 말투로 옮기자면, 결국 이런 질문이었다. “야, 카데시 썰을 푼다면서 왜 계속 구라만 치냐?”-36쪽
마리와 루이 13세 사이의 소책자 전쟁은 가짜 뉴스도 특정 독자를 상정하고 작성했을 때에 가장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기가 이미 찬동하는 정보를 더 기꺼이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루이의 논증이 더 성공적이었던 까닭은, 사람들이 이미 마리에 대해서 생각하던 바를 그 내용이 강화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궁정은 예전부터 항상 외국인을 의심해 왔기에, 이탈리아 출신인 마리를 분수에 맞지 않게 권력에 굶주린 외국인으로 채색하기는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그의 소책자는 또한 그 당시의 성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즉 여성은 감정적이고 나약한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남성은 전사라는 것이었다. 대부분 남성이었던 귀족을 대상으로는 이것이야말로 승리를 보장하는 메시지였다.
그해 4월에 허스트와 퓰리처는 자신들이 원하던 전쟁을 얻었다. 쿠바 독립을 위한 전투에 대한 미국의 개입, 즉 이른바 스페인-미국 전쟁은 불과 10주 만에 스페인의 항복으로 마무리되었다. 미국은 2억 5,000만 달러의 (오늘날의 가치로 거의 80억 달러의) 비용과 3,000명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 대가로 스페인은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의 통제권을 미국에게넘겨주었다. 쿠바는 190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미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 허스트와 퓰리처가 미국을 참전하게끔 ‘만든’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들이 여론을 움직이는 걸 도왔음은 확실했다. 이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가짜 뉴스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렸을 때에 가장 성공적이다. 강력한 감정은 사실의 부정확성이라든지, 썩 옳은 일로 들리지는 않는 것들이라든지, 일반적으로는 적신호가 될 법한 것들을 사람들이 지나치고 무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03~104쪽
해외 신문이나 기자가 정권에 대해 뭔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때면, 나치는 이들을 ‘뤼겐프레세Lugenpresse’, 즉 ‘거짓말 하는 언론’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은, 나치가 정말로 가짜 뉴스와 싸운 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가짜 뉴스야말로 그들의 전략에서는 불가결한 일부였다. 그와 반대로 그 단어는 독일인들이 ‘진짜’ 사실을 말하는 뉴스를 불신하여 보도 내용을 믿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사용된 것이었다. 나치의 입장에서 뤼겐프레세는 이후 나치 정부나 히틀러에게 찬동하지 않거나 비판을 표시하는 언론인 (나중에 가서는 일반적인 사람) 모두를 뜻하게 되었다. -111쪽
우리는 정부나 미디어에 대한 불신을 이용하려고 노리는 가짜 뉴스 유포자들의 손쉬운 표
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어두운 골목에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꼬드기는 영화 속의 악당과도 유사하다. “이쪽으로 와요! 내가 진짜 진실을 알고 있으니까!” 가짜 뉴스는 정부가 전쟁에 이기도록 도와줄 수도 있지만, 정부가 대중을 대상으로 가짜 뉴스를 사용할 경우, 정부는 다른 싸움에서는 패배할 수도 있다. 바로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한 싸움 말이다. -119쪽
소수자 집단은 종종 가짜 뉴스의 표적이 되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변화의 시기에는 특히 그렇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 헤매는데, 헛소문은 그들을 적대하여 음모하는 사악한 세력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개의치 않고 음모론을 전달할 때, 이 음모론은 가짜 뉴스로 변모한다. -127쪽
하지만 이런 불신은 그 당시 양대 정당 간에 조성된 심각한 긴장의 결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 선택한 대통령 후보에게 워낙 헌신한 까닭에, 자기네 후보에게 긍정적인 내용은 뭐든지 진짜라고 믿었던 반면, 부정적인 내용은 뭐든지 가짜 뉴스라고 믿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사실만을 보도할 뿐이었던) 정상적인 미디어 업체를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고, 또는 가짜 뉴스라고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아울러 이들은 어떤 일에 대한 각자의 개인적 의견이 현실보다 더 중요하고 타당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탈진실post-truth”을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이를 가리켜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이 그저 감정과 개인적 믿음에 호소하는 것보다 오히려 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과 관련된, 또는 그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210쪽
이 연구에 따르면, 어느 정당의 지지자이건 간에 참가자들은 각자의 정치적 믿음에 호소하는 진술을 사실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와 비슷하게, 각자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의 진술을 의견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예를 들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태어났다”라는 진술은 사실이고, 이는 그의 출생 증명서를 찾아보기만 해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민주당원의 89퍼센트는 이를 사실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 가운데서는 63퍼센트만 그렇다고 답했다. 공화당원들이 이 내용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을 터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다음과 같았다. 즉 공화당원들은 단지 오바마가 민주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가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믿기 쉬웠기 때문이다. -222쪽
우선 여러분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일단 기사를 읽고 나서도 단지 감만 믿어서는 ‘안 된다’. 제15장에서 논의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온갖 개인적 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에,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를 알아내는 일에서만큼은 우리의 감조차도 항상 신뢰할 만한 것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를 읽고 나서 ‘그래, 내가 듣기에는 옳은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고 넘어갈 경우, 자칫 여러분이 읽은 내용이 실제로는 진실이 아니라는 그 모든 신호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라고 해서 대뜸 가짜 뉴스로 일축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렇게 행동하도록 자연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어떤 기사나 정보를 곧바로 일축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경우, 그러지 말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과연 그 내용들이 사실은 우리가 줄곧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는지 여부를 진심으로 고려해 보라. -269~270쪽
소셜미디어는 가짜 뉴스의 생성과 확산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비록 봇과 트롤과 외국 정부가 관여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책임은 개별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에게 있다. 2016년 12월에 수행된 퓨 리서치 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 가운데 23퍼센트는 소셜미디어상에서 날조된 뉴스 기사를 공유한 적이 있다고, 때로는 심지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시인했다. 그 정도면 아주 나쁜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전 세계에서 현재 활동 중인 페이스북 사용자가 거의 25억 명에 달하고, 트위터 사용자는 거의 3억 3,000만 명이며, 사람들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이 두 가지 말고도 더 있다는 점이다.7 결국 최소한 4억 9,910만 명이 가짜 뉴스를 공유한 적이 있다는 뜻이 되는데, 그나마도 그렇다고 솔직히 시인한 사람만 이 정도이다! -329쪽
정보 분석가는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실을 깎아내리지 않게끔 각자의 편향까지 고려한다. 그들은 자기가 정보를 얻는 곳이 어디인지를 충분히 시간을 들여가면서까지 확인한다. 그들은 모든 정보를 잠재적으로 유용하다고 간주하지만, 사용하기 전에 먼저 그 정보를 검증한다. 정보 분석가는 거짓 정보를 발견하면 보고한다. 여러분도 이런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그러고 나서 여러분의 친구와 가족도 똑같이 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울 수 있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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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가짜 뉴스를 사랑한 토머스 제퍼슨
-정치와 가짜 뉴스의 상관 관계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는 말로 유명한 토머스 제퍼슨은 사실 미국 가짜 뉴스의 선구자였다. 그는 신문 편집자인 필립 프레노를 시켜 《내셔널 가제트National Gazette》라는 신문을 창간하게 해 가짜 뉴스를 퍼뜨렸는데, 주요 타깃은 당시의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정치적 경쟁자인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해밀턴도 지지 않고 다른 신문에 돈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싣게 했다.
미국의 2대 대통령은 존 애덤스가 되었지만,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짜 뉴스로 애덤스를 공격했다. 제퍼슨은 애덤스가 아들 가운데 한 명을 영국 왕 조지 3세의 딸과 결혼시켜서 미국이 영국에 지배당하도록 계획했다는 이야기를 퍼트렸다. 애덤스 역시 해밀턴에 반격했는데, 애덤스의 정당인 연방당이 운영하는 신문에서는 만약 해밀턴이 대통령이 된다면 “살인, 절도, 강간, 간통, 근친상간을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실행할 것이며, 공중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하고, 땅에는 피가 흠뻑 배어들고, 온 나라가 범죄로 물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짜 뉴스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트럼프와 힐러리가 맞붙은 2016년 대선 이후이지만, 이렇듯 정치 과정과 선거에서 가짜 뉴스가 활용된 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였다. 특히 선거는 가짜 뉴스의 온상이라고 할 만한데, 정치인 스스로나 지지자들이 선거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온갖 가짜 뉴스를 뿌릴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 유리한 뉴스(그리고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뉴스)는 진위를 묻지도 따지지 않고 그냥 믿어버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 뉴스를 볼 때면 자신의 선호로 판단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부인이 조직한 흑인들의 반란?
-편향을 이용하는 가짜 뉴스
1940년대 미국 남부에서는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흑인 여성들의 비밀 클럽을 조직해 봉기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남부 지역의 여러 신문들이 이 소문에 대해 보도를 했으며, 급기야 백악관이 FBI에게 이 소문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까지 했다. 물론 이 소문은 어떤 근거도 없이 퍼져 나간 가짜 뉴스에 불과했다.
어째서 이런 소문이 퍼진 걸까? 당시 남부는 중대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고서 수백만 명의 흑인이 군에 입대하고,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이는 흑인들의 지위 향상으로 이어졌는데, 기존의 인종차별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변화였다. 흑인들의 봉기에 대한 소문은 그들에게 흑인들의 지위 향상이 사악한 음모 때문이라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공해 주었고, 덕분에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나치는 유대인이나 장애인 등 자신들이 제거 대상으로 삼은 집단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뜨렸는데, 이 역시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편견에 호소한 덕분에 잘 먹힐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가짜 뉴스는 보통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으려고 의도하지는 않는다. 대신 가짜 뉴스는 단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내용을 말해 줌으로써, 우리의 시각을 더 굳히려고 노력할 뿐이다. -62쪽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난민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가짜 뉴스를 믿기 쉽다. 동성애를 죄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동성애에 부정적인 가짜 뉴스는 아무 생각 없이 믿을 것이다. 물론 그 역도 사실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방향이든 편향돼 있기 마련이고, 편향은 각자의 의견을 재확인해 주는 정보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동시에, 각자의 의견과 상충하는 정보는 외면하게 만든다. 가짜 뉴스가 우리를 속일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가짜 뉴스가 사람도 죽인다
-감정을 이용하는 가짜 뉴스
대형 마트에서 파는 바나나에 누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입해서 그 바나나를 사 먹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기사를 봤다고 생각해보자.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내용이기에 일단은 기사를 클릭해 읽어 볼 것이다.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바나나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는 가짜 뉴스는 수시로 인터넷에 떠돌아 수천 회씩 공유되었다.
2018년 멕시코 중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왓츠앱을 통해 “지난 며칠 동안 4세, 8세, 14세의 어린이들이 사라졌으며, 그중 일부는 장기가 제거된 흔적과 함께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메시지가 나돌았다. 장기 밀매 범죄가 관련돼 있을 거라는 이 소름 끼치는 메시지는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그러다 어느 소도시에서 외지인 두 명이 범인으로 지목당했고, 군중이 모여 들어 이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
가짜 뉴스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해서 클릭을 유도하고 믿게 만든다. 공포와 분노가 가짜 뉴스가 주로 이용하는 감정들이다. “우리는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기사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종말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를 클릭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초창기에 다들 메신저나 SNS로 이런 저런 가짜 뉴스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지의 질병에 대한 공포가 컸기에 사람들은 별 근거 없는 이야기도 쉽게 받아들였고, 다른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런 식으로 가짜 뉴스는 확산된다. 그러니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볼 때면 놀란 마음으로 바로 공유하지 말고, 그 내용이 정확한지 확인해 보는 습관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C9FLO1TyM
KGB의 가짜 뉴스 대작전
-가짜 뉴스에는 의도가 숨어 있다
1980년대 소련의 KGB는 미국 정부를 겨냥한 대대적인 가짜 뉴스 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에이즈라는 새로운 질병이 출현했는데, 이 병은 미국 정부가 생물병기 제조를 위해 만들었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려 전 세계가 전 세계가 미국에 등을 돌리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작전의 첫 단계로 소련은 자신들이 자금 지원을 하는 인도의 작은 신문에 “에이즈가 인도를 침략할 가능성 있어: 미국의 실험으로 야기된 수수께끼의 질병”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게제했다. 그리곤 다른 여러 나라에도 라디오, 포스터, 소책자 등 다양한 형태로 같은 주장을 내보냈다. 그렇게 가짜 뉴스가 퍼지자 진짜 뉴스 미디어도 관련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로 KGB는 공신력 있는 생물학자에 접촉해 에이즈 바이러스를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가짜 증거를 제공했으며, 그 생물학자는 가짜 증거를 토대로 미국 정부가 감옥에 있는 남성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실험해서 에이즈를 만들어 내고 확산시켰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작전은 매우 큰 성공을 거두어서 여러 나라에서는 미군 병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미국 내에서도 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상당수 생겨났다. 2005년의 여론 조사에서도 에이즈를 인공 바이러스라고 믿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거의 50퍼센트에 달했다.
가짜 뉴스를 퍼뜨리려는 이들은 중립적인 매체인 듯 위장하여 자신들의 진짜 의도를 숨긴다. KGB나 소련 정부가 직접 에이즈를 미국 정부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면,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흡연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큰 담배회사들도 같은 식의 전략을 사용했다. 담배 산업 연구 위원회(Tobacco Industry Research Committee, TIRC)라는 조직을 만들어 연구자들을 고용하고, 흡연과 폐암 사이의 사이의 인과관계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물을 내게 했다. 물론 그 뒤에 담배회사의 후원이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감추었다. 1999년에 법원 판결로 중단되기 전까지 이들의 거짓말은 4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중립적인 채 가장하는 연구기관이나 연구자를 이용해 명백한 사안을 논쟁적인 것처럼 만드는 이런 전략은 담배회사 말고도 지금도 여러 산업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 어떤 정보를 볼 때 그 정보를 내놓은 사람이나 단체의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실을 찾는 건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가짜 뉴스가 퍼뜨리려 하는 선정적이고 분열시키는 이야기가 어떤 종류인지를 안다. 우리는 가짜 뉴스가 감정을 이용함으로써 사람을 속인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가짜 뉴스가 인종차별주의, 정치적 분열, 음모론 같은 것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가짜 뉴스가 거듭해서 거짓말을 퍼부으려 시도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가짜 뉴스를 더 많이 보고 들을수록 거기 넘어갈 가능성도 더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모든 세대의 사람들도 이와 똑같은 가짜 뉴스 문제를 겪었으며, 모든 세대마다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배웠다. 따라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367쪽
저자는 이 책에서 가짜 뉴스의 기술적 측면보다는 그것의 인간적 측면에 주목한다. 가짜 뉴스는 어떤 신기술로 인해 생겨난 오늘날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인간이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짜 뉴스는 존재했으며, 인간의 감정과 편향과 믿고 싶은 대로 보려 하는 심리에 기대 퍼져 나간다. 그렇기에 가짜 뉴스는 정부나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금씩 책임을 지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저자가 일한 CIA의 로비에는 “너희는 진실(truth)을 알라. 그러면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탈진실’의 시대에 사람들은 이제 진짜 진실이 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혹은 진실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진실을 찾는 건 어렵지만 항상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유가 그 보상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이 가짜 뉴스와 싸우고 진실을 찾는 법을 알려 주는 가이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