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야기]무더운 이집트 오후는 박물관과 맥도날드에서...
카이로는 본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도시가 아니었다. 천여 년 전 이곳까지 진출한 파티마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도시라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성곽이 도시를 둘러싸고 모스크가 세워진 이슬람 도시이다.
미단 타흐릴 근처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 가면, 그 옛날 파라오 시대의 귀중한 유물들을 만나볼 수가 있다.
아침 날씨는 제법 선선하더니, 해가 떠오르자마자 따갑게 살갗을 자극한다. 급기야 오후가 길어지면서는 점점 찜통더위로 변하면서, 마치 뜨거운 찜질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몸에 와 닿는 바람은, 어쩌다 상점 앞을 지나다가 뜨끈한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맞는 느낌이었다.
미단 타흐릴 건너편으로 보이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차들이 광장 거리를 꽉 메우고 미친 듯이 달려든다. 마치 하노이 거리를 메뚜기 떼처럼 휩쓸고 다니던 오토바이 떼와 흡사했다.
처음에는 이 도로를 횡단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지만, 한두 번 길을 건너다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긴다.(처음에는 이집트 사람 건널 때 같이 묻어서 건너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길거리에서 얼굴에 그림을 잔뜩 그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을 만났다. 아이들 얼굴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이 귀여워, 길을 가다 말고 말을 붙여 보았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아이 아빠가 예지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렇잖아도 나도 그러고 싶던 차에 잘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을 보면 대개가 도망치듯 피하고 마는데,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한 번 붙여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들도 한 장, 우리도 한 장씩 사이좋게 찍고 그렇게 헤어졌다.
“꼬마 친구들, 안녕~~~”
예지와
같이 사진찍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왜? 그저 외국인이라서?
박물관
입구에서 검색대를 두 번이나 지나고,
카메라는 입구 보관소에 맡기고,,,,
입장이
보통 까다로운게 아니다.
얼마전까지는 박물관 내부에서도 마음대로
사진을 찍은 모양인데,
이제는 사진 촬영이 아예 허락되지 않는다.
박물관
앞에 스핑크스가 젊잖게 지키고 있다.
잠깐 기대서서 사진 찍다가
예지 엉덩이 화상 입을뻔 했다.^^
그래도 미술이 전공인지라, 평소 유적지에 관심이 많은 나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이제라도 박물관 관리를 철저히 하고,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박물관을 지어 이사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지금은 새로운 박물관으로 입주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단순히 파라오 후손들의 밥벌이 수단이 될 수만은 없다. 실제로 그동안 이집트 관리들은 외화 벌이를 위해, 수천 년을 어렵게 버텨온 이 유물들을 전시라는 명목으로 해외로 해외로 많이도 돌아다니게 했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150년 전에 프랑스 학자 마리에뜨의 유언에 의해 세워진 박물관으로, 2층 전시실은 나중에 증축된 부분이다. 당시는 유럽 열강들이 이집트의 고대 문물을 마구 가져가기도 하고, 이집트의 지도자와 관리들은 자국의 고대 문화유산을 지키는데 너무 의식이 박약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리에뜨가 이집트의 이들을 설득하여 건립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무분별하고 조직적인 고대유물의 약탈은 멈추게 되었다.
이집트에 거의 미쳐있던 마리에뜨는 고대 상형문자를 보고 벅찬 감격을 얘기했다. 상형문자에 많이 등장하는 오리 모양의 글자를 보고는, “이집트의 오리는 매우 위험합니다. 오리 부리에 물리면 평생을 이집트 연구에 바칠 수밖에 없는 열병에 걸리기 때문입니다.”(『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시공사)
결국 그 오리가 마리에뜨에게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이집트 연구에만 매달리는 치명적인 병을 주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그 오리는 이집트에게는 너무나도 큰 행운이 되었다.
박물관 정면에는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와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로터스(연꽃)가 심어져 있어, 통일된 이집트를 상징하는 듯했다.
1층 전시실에는 수많은 고대 유물이 연대별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유적과 무덤이 후손들에 의해 도굴 당하고, 서구 열강에 빼앗기며, 어디에 가 있는지조차도 모를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얼마만큼이나 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만 점이 넘는 고대 유물들이 이곳저곳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집트의 5천년 역사를 보여주는 엄청난 유물이 아무 손에나 만져질 정도로 노출되어 있고, 아직도 포장이 뜯기지도 않은 채로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많았다.
일부 특별한 전시실 외에는 에어컨이 안 돼 좀 덥긴 하지만,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에는 이 박물관이 안성맞춤이다. 어서 빨리 새 보금자리를 찾아 안전하게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인상적인 곳은 2층의 투탕카멘 전시실.
10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어린 소녀와 결혼하여, 역시 어린 나이인 17세에 죽은 파라오.
그나마도
발굴된 미라의 흔적에서 누구에겐가 살해를 당한 듯한 비운의 파라오.
룩소르
서안 깊숙한 골짜기,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듯한 황량한 곳에
몰래
몰래 감추어 둔 수많은 파라오들의 무덤들이 자신의 후손들에 의해 무참히도
파헤쳐지는 동안,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힘 없던 어린 파라오라는
이유로 고스란히 도굴꾼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랄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아름다고 현란한 오래 전의 고대유물이
지금도 여전히 그 빛을 발한다.
엄청난 무게의 황금으로 만든
마스크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그 광채를 지니고 있고
이마에 머리를
쳐든 우레우스, 코브라는 언제든 왕을 보호하기 위해 독침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황금의자를 장식한 어린 파라오 부부의 다정한 한 때는,
아크나톤(아케나텐)
왕의 유일신을 버리고 고전적 이집트 양식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그
사실적 표현을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그게 오히려 인간적이다.
아쉽게도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엽서 몇 장을 샀다.
더욱
인상적인 곳은 미라 전시실.
따로 내야 하는 입장료가 다른 곳에
비해 엄청 비싸고 할인도 안 되지만
꼭 들러봐야 할 만한 곳이다.
수천년을
바싹 마른 신체로 버텨 온 미라들이 무덤을 나와 유리관에 자리를 옮겨
왔다.
그 괴기한 분위기와 섬찟함에 예지가 살짝 놀란다.
90이
넘도록 장수하고, 70여년간이나 이집트를 호령하던 람세스 2세의 미라가
까맣게
바싹 마른 신체로 아직도 영생을 꿈꾸며 자신의 '카'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 누워 있는 바로 이 사람이, 왕국을 호령하고 전쟁터를 누비던 그 람세스더란 말이냐...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최상의 조건으로 보존하려 하고는 있지만,
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돌아올 영혼을 기다리고
있을까...
역시나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엽서를 한 장 구입했다.
박물관을
나와 근처 터키항공에 리컨펌을 하기 위해 갔지만 역시 금요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서
아래 서점, 기념품점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더워진
몸도 식힐 겸 아이쇼핑도 하고 엽서도 몇 장 사고.
저녁 무렵,
카이로 도시 전체와 대기는 뜨거운 태양에 익을대로 익었다.
나일강변을
끼고 천천히 걸어 숙소로 걸어 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예지가
무얼 좀 먹어야 할 것 같아, 더워진 몸 식힐 겸 숙소 뒤편 맥도날드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시원함이란.... 에어컨의 완벽한
힘을 이집트에서 느껴본다.
(그리스나 터키의 맥도날드에서는 여기처럼
시원하지가 않다. 자리 잘못 앉으면 흡연실.)
맛있게
먹으면서 기분이 좋아진 예지. 그렇지만 여긴 많이 비싼 곳이란다.
어디서나
그 가격은 비슷하지만, 다른 물가에 비하면 엄청 비싼 곳이다.
근데도
사람들은 꽤 많다. 다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란 뜻.
맥도날드에서
계?모임도 하나 보다. 이집트 아줌마 이삼십명이 모여 앉아
햄버거와
음료수 한 잔씩 앞에 놓고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몇 년 전 인도 어느 도시에서의 맥도날드가 생각난다. 창밖에 주렁주렁 매달려 내 입으로 들어가는 햄버거만 바라보고 있던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햄버거가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가 않았었다. 지금은 다행히 창밖에 그런 아이들은 없었다.
바로 유리창
밖 길 건너에는 아메리칸 대학. 경비가 늘 교문을 지키고 서 있다.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고 있군. 이 대학에는 역시나 좀 살 만한 친구들이 많이
다닌다지?
들어가 볼까 하다가 너무 더워서 그냥 여기 앉아 책이나
보고 메모나 정리하자.
한참을 앉아 있으니 시원하다 못해 오싹하니
추워지려 한다.
햄버거라는 세계적 음식이 여행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예지를 위해, 더위에 지친 몸도 식힐 겸 몇 번은 와야
할 것 같다.
해롱이의 배낭여행 http://lhr3333.web-bi.net/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잘읽고 갑니다.
다합의 해랑강산데요~ 와~ 이리 긴 글을 여행중에~ 감사하게 잘 읽었구요...카이로 박물간에 갈때 참고해야겠네요~ 저도 다시 이집트,다합으로 간답니다...^^
여행 중에 쓴 글은 아니고, 지나간 여행 이야기를 올려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