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허형만
어제도 그 시간에 개는 뒤뚱뒤뚱 따라가고 그제도 그 시간에 개는 촐랑촐랑 앞서가고 나흘 전에도 같은 시간에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헐레벌떡 뛰어가고 목줄도 필요 없는 팔뚝 길이보다 작은 개는 오늘도 거의 같은 시간에 늘 그 표정으로 쫄랑쫄랑 주인 발꿈치를 따라가고 숲길이 개를 따라가고 방금 하늘하늘 내려앉은 나뭇잎도 따라가고 이어폰을 꽂은 젊은 주인을 개가 뒤따르고 딱따구리 소리에 잠시 귀를 세우다가 주인의 표정을 살피며 꼬리를 흔들고 날마다 거의 같은 시간에 나의 산책은 길이 데리고 다니거나 나무가 뒤따르거나 늘 그 개를 만나고 개는 내가 나인 줄도 모르는 듯 늘 먹빛으로 반짝이는 눈망울만 번득거리며 잠시 쳐다보다 총총총 가고 그럴 땐 주인도 잠시 기다렸다가 환한 웃음으로 나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우듬지 사이 맑은 구름 몇 남녘 바다 쪽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이렇게 매일 초저녁 평화로운 시간이 함께 노을빛으로 스며들고.
—《아토포스Atopos》 2022 겨울/창간호 ----------------------- 허형만 / 1973년 《월간문학》에 시 등단. 시집 『영혼의 눈』 『황홀』 『바람칼』 외 다수. 현재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사)한국가톨릭문인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