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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타이슨의 몰락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다. 타이슨 빠돌이로서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나름 담백하게 쓰기로 한 이상 빠돌이즘을 조금은 양보하고 쓰도록 하겠다.
오늘 시작할 내용은 1편 마지막에 있었던 것처럼 James Douglas부터 시작이다.
James Douglas와의 시합은 1990년 2월 11일에 일본 도쿄에서 열리게 된다.
그러나... 타이슨은 89년 꽤, 많은 일들을 치루게 되는데 그 일들을 먼저 설명하고 James Douglas와의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타이슨의 복싱 인생에 있어서 첫번째 불행은 바로, 그의 정신적인 지주인 ''커스 다마토"의 죽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불행은 '돈킹'이라는 프로모터를 만난 것이겠고... 그에 필적하는 불행은 첫번째 부인인 '로빈 기븐스'를 만난 것일 것이다.
1988년 타이슨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에 골인한 로빈 기븐스는 놀라운 남성편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타이슨을 만나기 전에 마이클 조던에게 구애를 보냈으며, 에디머피에게도 구애를 보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가 첫번째로 선택한 사람은 마이크 타이슨이었다. (로빈 기븐스의 애인 명단에는 브래드피트와 여러명의 모델들도 포함되어있다.)
로빈 기븐스가 마이크 타이슨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타이슨은 조던만큼 잘 생기지는 않았고... 에디머피처럼 영화계의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단순했고, 조던이나 에디머피 이상의 돈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슨의 주위 사람들은 이 결혼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 당시, 무명의 배우에 여러 돈 많은 남자와 영화계에 능력있는 사람들에게 추파를 무한히 던지던 로빈 기븐스가 타이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타이슨은 이를 무시하고 그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둘의 결혼이 오래갈리는 만무하다. 타이슨의 오로지 돈만을 보고 결혼한 기븐스와 단순하고 과격한 거기에 소유욕까지 강한 타이슨은 결혼 초기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에 1년도 되지 않고서 기븐스는 타이슨에게 이혼 소송을 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타이슨의 폭력"이었다. 기븐스는 타이슨에게 수십차례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을 했는데...
물론, 타이슨이 기븐스에게 손찌검을 했을 것이다.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기븐스가 맞았다고 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맞았는데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멀쩡하다면...
그녀는 어떤 프로복싱 헤비급 선수들보다 강한 맷집과 리커버 능력을 가진 사상 최고의 괴물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타이슨과 기븐스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이혼을 하게 된다. 기븐스는 캘리포니아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이유는 캘리포니아에의 이혼법은 부부의 자산을 50대 50으로 나누어 분배하기 때문이었다. 기븐스는 타이슨의 재산중 4000만 달러를 챙기는데 성공한다.
기븐스의 영악함은 이것말고도 거짓 임신 사실도 있으며, 참으로 못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기븐스는 1992년 부메랑의 조연으로 성공을 하게 되며, 몇편의 영화에서 주연도 맡았으며, 2008년도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에는 결혼 24시간 만에 이혼하는 놀라운 모습도 보여준다.)
이때가 바로 1989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였다.
거기에 89년 타이슨은 자신의 매니져와도 결별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타이슨이 89년을 무패로 경기를 끝냈다는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거기에 타이슨은 "돈킹"에게 자신의 대부분의 파이트머니를 뜯기는 줄도 모르고 그냥 펑펑 놀아 재끼기 시작한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1990년 2월11일의 James Douglas전을 앞두고 불안의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혼 이후 타이슨이 연습을 하지 않고 술과 여자에 쩔어 산다는 말들이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이런 상화에서도 89년 두차례의 타이틀전을 모두 KO로 장식을 한것과 James Douglas자체가 크게 문제가 될만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에 찬 기사들과 "훈련 파트너 때도 난, 타이슨을 링 바닥에 눕혀본 적이 있다. 훈련 파트너 였던 나야말로 타이슨을 제일 잘 알고 있다."라고 자신만만한 말을 뿜어낸 James Douglas의 말도 소용없이...
당시, James Douglas와 타이슨은 42-1 이라는 말 일방적인 배팅이 나오게 된다.
이런것도 모자라서 타이슨이 1,2,3라운드 안에 James Douglas를 KO로 이긴다는 말이 대부분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경악할 만한했다.
1990년 2월 11일, James Douglas전(당시, 29승 4패 1무), 8라운드에 더글라스를 한번 다운시키지만, 10라운드에 타이슨은 생애 첫번째 다운을 당하고 KO패 하게 된다.
이에 많은 타이슨 팬들은 8라운드의 카운트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 카운트는 분명히 늦은 것이 사실이다. 분명히, 10카운드가 넘어선 시점에서도 카운트를 세고 있는 심판이 제정신이었던가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게임과 다른 움직임과 10회에 KO패를 당한 것은 그의 불성실이 나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타이슨의 패배는 경천동지 할 내용이었다. "떡밥"에 불과한 선수에게 졌다는 내용과 함께... 타이슨과 90년 10월 25일 대전하는 게약을 완료한 상태였던... 통합 타이틀을 준비하고 있던 Evander Holyfield는 그와의 대결을 6년뒤로 미뤄야 했다.
충격적이 패배 이후, 타이슨은 1990년 6월 15일 Henry Tillman과 재기전을 하게 된다.
당시, Henry Tillman은 20승 4패의 전적만 놓고 보면 그닥 뛰어날 것 없는 상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Henry Tillman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타이슨이 아마츄어 적이 24승 3패인데 이 중 2패가 바로, Henry Tillman에게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 6월 15일 Henry Tillman과의 재기전은 1라운드 KO로 끝나게 된다.
사람들은 연습한 타이슨이 제 기량을 찾았다고 흥분했다. 그뒤로 타이슨은...
1990년 12월 8일 Alex Stewart(당시, 26승 1패) 마저도 1라운드에 침몰 시키며... Evander Holyfield의 통합 벨트를 가져올 준비를 서서히 마치게 된다.
James Douglas전 패배 이후 재기전을 치룬 Henry Tillman, Alex Stewart 모두 Evander Holyfield와 대결했었으며, 패배한 전적을 가진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더 높아져갔다.
그럼, 1990년 12월.. 당시의 상황을 보겠다.
타이슨은 40승 1패 36KO의 전적을 가지고 있었고... 타이틀은 이미 모두 날린 상태였다.
Evander Holyfield는 1990년 10월 25일 James Douglas를 3회 KO로 승리하며, 통합 타이틀을 거뭐지게 된다.
Lennox Lewis는 1990년 10월 31일 Jean Chanet을 런던에서 6회 TKO로 누르고 EBU (European) heavyweight title 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도 충분히 강했지만... 아직까지는 로컬복서의 이미지가 강하던 시기이다.
Riddick Bowe는 1990년 12월 14일 Tony Morrison를 1회 KO로 누르고 21연승과 19개의 KO, TKO를 기록하며, 차세대 거물로 성장하고 있었다.
Michael Moorer는 1990년 12월 15일 Danny Stonewalker와의 WBO 라이트헤비급 타이틀 획득전을 8회 TKO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라이트헤비급 경기가 된다. 그 다음 경기부터 그는 헤비급에서 뛰게 된다. 그는 당시까지 22연승과 22개의 KO, TKO를 기록하며 라이트헤비급을 초토화 시키던 중이었다.
George Foreman은 1990년 9월 25일 Terry Anderson을 1회 KO로 침몰시키고, 87년 복귀이후... 24연승과 22개의 KO,TKO를 기록한다.
1편에서 봤던 87년과 89년과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타이슨의 상대로... 아직, 라스베가스에 오지 못한 Lennox Lewis와 라이트헤비급에 있는 Michael Moorer를 제외하고... 통합 챔피언 Evander Holyfield와 George Foreman... 그리고 떠오르는 차세대 슈퍼스타 Riddick Bowe까지는 타이슨의 대결 상대로 떠오르게 된다.
그 중... Evander Holyfield와 George Foreman은 피할 수 없는 상대가 되버렸다.
이제, 그 문제의 이제 문제의 1991년이 찾아온다.
타이슨은 1991년 3월 18일날 Donovan Ruddock(당시, 24승 1패 1무)와 NO.1 컨텐더 매치를 벌이게 된다. 여기서 이기게되면... Evander Holyfield와 George Foreman와의 승자와 통합 타이틀전을 치룰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경기였다.
타이슨 여기서... Donovan Ruddock을 7회 TKO로 누르고 컨텐더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1991년 4월 19일날 Evander Holyfield가 George Foreman을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누르면서 타이슨의 다시한번의 챔피언 타이틀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게 된다.
그러나, 타이슨은 먼저, Donovan Ruddock과 2차전을 1991년 6월 28일 갖게 되고... 여기서도 타이슨은 판정승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경기력 면에서는 그리 칭찬을 해줄만한 성향의 경기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타이슨의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다... 스피드가 떨어졌다 라는 말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타이슨이 NO.1 컨텐더라는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쯤에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문제 하나가 터지게 된다.
바로, 미성년자 성폭행이라는 문제가 말이다.
이 사건으로 타이슨은 형무소를 들어가게 되고... Evander Holyfield의 조우는 또, 다시 연기되고 만다.
1편이 타이슨의 최고의 전성기를 말하고 있다면...
2편은 타이슨의 몰락의 징조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니저와의 결별, 첫번째 부인과의 이혼. 그 뒤로 콤보로 이어진 술과 여자... 마지막으로 성폭행까지...
1991년 타이슨의 나이가 만25세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시기였다고 보입니다.
오늘도 시간이 없어서 완결을 못했지만... 내일은 꼭... 3편으로 마무리 해야 겠네요.
3편은 아시다시피... 형무소 이후의 타이슨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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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더글라스와의 경기 전에는 스파링파트너와의 스파링에서도 다운을 당했을 만큼 최악의 몸상태였다고 하더군요. 허벅지 두깨도 이미 전성기보다 얇아졌구요...
헐 어떤분이 타이슨이 링인가 했던 인터뷰쓴것을 봣을떄는 타이슨은 오히려 이때 경기당일날 컨디션은 일간에서 말하는 대로 나쁜편이 아니었고 오히려 좋았으며 훈련량도 알려잔비와는 달리 매우 충실했다고 했습니다. 다만 더글라스가 전략적인 면등에서 대처를 잘한것이었고, 자기보다 잘해서 이긴것이고 그걸 인정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자기가 진것에 대해서 핑계를 대는 것을 좋아하지않고 깨끗하게 패배를 당한 것을 인정한다고 했었습니다. 오히려 그거 보고서 타이슨이 남자답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2008년도에 hbo에서 타이슨 스페설로 했던 타이슨과 더글라스 경기를 다시 봤지만, 이건 타이슨이 못해서 진게
아니라 더글라스가 잘해서 이긴것입니다. 그리고 9회 펀치한방으로 더글라스가 다운을 당하기는 했지만, 경기 내용에서 더글라스는 타이슨같이 턱밑을 두 주먹으로 감싸면서 방어를 하면서, 턱위로는 타고난 운동신경과 순발력을 바탕으로한 위빙 더킹으로 방어하는 단신들에게 유용한 피커투 스타일을 완벽하게 공략을 했고, 타이슨은 실마리를 전혀 풀어나가지 못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흔히들 타이슨 옹호하는 논리들 보면 뭐 훈련이 부족했다느니, 어쩌니 저쩌니 하는 분들이 많은데, 훈련량을 떠나서도 타이슨은 이미 80년대후반부터 서서히 파혜법이 나오기 시작했었습니다. 타이슨이 진건, 훈련 부족으로 진것이 아니라,
타이슨을 상대하는 선수들이 그만큼 철저하게 분석을 하고 잘 싸워서 진것입니다. 더글라스 홀리필드뿐만 아니라, 도너반 러독전조차도 이미 타이슨의 파해법은 어느정도 답을 드러내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타이슨의 충격적인 케이오신에 매료되어 타이슨의 팬이 된 분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타이슨의 패배를 타이슨의 훈련부족이니 전성기가 지났다는 기량 외적인 이유를 대면서, 타이슨을 실력으로 제압한 선수들의 기량이나 공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을겁니다.
88년에 케빈 루니 트레이너가 타이슨에 의해 강제로 짤리면서 루니가 한말이 있습니다.주색에 찌든 타이슨은 얼마 안가서 패배할것이다.그때부터 훈련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타이슨은 성격상 변명을 안하는 스타일입니다.졌으면 그냥 졌다고 하는거죠.그리고 더글라스는 타이슨의 습성을 잘알던 선수였고 두가지가 맞물리면서 동경 대반란이 일어난겁니다.무슨 심정을 이해한다느니 어처구니 없는 말을 늘어놓는지요.그리고 당연히 챔프가 오랫동안 링을 주름잡으면 그에대한 대비책은 나오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조지 포먼도 그랬고 알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그리고 링인가 했던 인터뷰를 본 분이 누구신데요?
암튼 타이슨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타이슨의 업적은 어느정도는 인정하고, 만화에나 나올만한 이야기인 단신의 선수가 거구의 선수들을 충격적인 케이오로 이긴 기억을 가진 분들의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회상할수있는 아름다운 추억중에 하나에 대한 사실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기는 싫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과대포장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은 주지시켜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되어서 글을 남긴것이지, 무슨 악감정적으로 남긴것은 아닙니다. 타이슨 관련 글은 하고 싶은 말씀은 다 드렸으니 그만 남기는 것이 제 이미지상 좋을것 같군요.
뭘 정확하게 주지 시킨다는건지.참...어이가 없군요.참고로 링지와의 인터뷰 전문은 제가 가지고 있는데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참고로 링지 관련 인터뷰는 전에 지금은 없어진 무슨 크로스 카운터든가 없어진지 오래되서 정확하게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데 어떤 복싱 사이트에서 한창 타이슨 논쟁이 일어났을때 어떤 분이 보고서 올린 글인데, 그글 보고서 타이슨 팬을 넘어서 타이슨 빠들이 많앗는데, 그누구도 반박글을 올리지못하고 깨갱하더군요. 암튼 이미 남기고 싶은 글은 다 남겼고요. 무슨 악감정으로 남기는 글도 아니고, 다만 과거의 그 아름다웟던 추억중에 하나가 지나치게 미화되어 과대포장되는 것을 경계하기위해서 올렸을뿐, 그 추억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감정적으로 깨고자 남기는 글은 아닙니다.
링지 인터뷰 올린 사람이 전데요???ㅎㅎ혹시나해서 물어 본겁니다.참고로 저도 타이슨 신격화는 싫어합니다.근데 님처럼 그냥 무작정 까는 사람은 더 싫습니다.로또 펀치밖에 답이 없다느니.그래서 저도 예전엔 타이슨 신격화 하는 사람들 깨부수다가 나중엔 타까들을 깨부셨고요.
그때 그 인터뷰 기사를 올린 것이 님인지 아닌지는 저야 모르지만, 제가 쓴 내용과 거의 일치하다면 아마 님이 맞을수도 있겠군요. 아마 전문을 올린 것이 아니라, 대략 요약을 해서 올렷던 걸로 기억하고, 그 글이 올라온이후 그렇게 설쳐대던 타이슨 빠들이 다들 반박을 못하고 침묵을 지키더군요. 근데 참고로 저는 타이슨 빠도 까도 아닙니다. 제가 언제 무작정 타이슨을 깟습니까?타이슨이 단신임에도 3,4년간 헤비급을 지배한 공은 인정한다고 했습니다만, 그 이상의 과대포장이나 과대평가나 불필요한 미화에 대해서 경계하자는 의미로 글을 쓴것일뿐, 타이슨을 무작정 깐적은 단한번도 없습니다.
레녹스 루이스에게 로또펀치 밖에 답이 없다고 한사람은 님입니다.상식적으로 한시대를 지배했던 두선수가 붙는데 한쪽은 일방적인 압승이고 다른 쪽은 로또펀치란건 상식에 맞는 이야기입니까?레녹스 루이스도 알고 보면 거품 걷을거 많은 선수입니다만?
암튼 그만 남기려고 햇는데, 근거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담긴 글떄문에 불가피하게 더 쓰게 되었지만, 암튼 그 지긋지긋한 타이슨 광빠들때문에 한국 웹사이트 온라인 활동을 한동안 안햇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그러나 암튼 저는 일방적인 타이슨 까도 빠도 아닌, 매우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했을 뿐이고, 타이슨은 이미 명확한 한계를 보여주기 시작했었고, 루이스에게 100번 붙어도 럭키펀치아니면 필패라고 하는 이런 근거도 매우 타당성이 있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타이슨에 대한 악감정때문에 글을 쓴것은 아니고, 지나친 미화나 과장에 대한 경계로 용기있게 글을 써봤습니다만, 암튼 복싱 까페도 아니고
그러니까 님말이 모순이란거죠.님은 매우 타당한 근거가 있고 타빠들은 근거가 없습니까?이거야말로 남들이 보면 그냥 헛웃음이 나오는 멘트인데요.그러니까 제가 님에게 공격적으로 나가는겁니다.중립이 전혀 안되면서 자신은 근거가 있다고 우기고 타빠들은 광빠라고 무시하는데 무슨 말이 됩니까.타까나 타빠나 똑같은데요?아무튼 댓글이 지저분해지니 저도 그만하죠.
Walk It Out 님에 전혀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난도질 당할일 없습니다. 본인과 생각이 다르면 틀렸을거라고 말하고, 그만하겠다는 말로 스스로를 자위하는 오만한 태도부터 고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전에 타이슨 얘기는 신물 날정도로 온, 오프라인 한국인, 외국인 가릴것 없이 입아플정도로 논쟁을 해대어서 지긋지긋하네요. 다만 아쉬운것은 비쥬얼적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되어서 실력에 비해서 임펙트만 강력한 타이슨에 비해서, 실력적인 면에서는 알리나, 포먼조차도 장담하기 힘든, 진정한 최강중의 최강자인 루이스가 너무 과소평가되고 미국선수에게 가산점을 더주는위주의 헤비급 선수 랭킹에서도 평가절하되는 면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암튼 이만 줄이겠습니다.
역시나 그냥 무개념 타까에 루이스빠라는걸 인정하시네요.역시 제가 보는 눈이 틀리진 않았군요,언제나 똑같죠.그러면서 무슨 타이슨을 인정 한다느니.결론은 본색을 드러내시면서.복싱을 보시는지 의문스럽네요.무개념 타빠를 욕하기전에 자신부터 좀 어떻게 안되시는지?
대부분 글의 전개 방식이 일치하시네요. 본인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만 보고 판단해서 상대방의 의견을 까고... 자신의 의견에 반해 상대방의 의견은 잘못 되었을거라고 확언하고...결국 자기보다 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면 버로우...그러면서 하는 변명은 '다수를 상대하기 때문에' 혹은 '아름다운 추억을난도질 하기 싫어서' 지속적인 이런 태도가 저는 참 재미있네요. 참고로 저도 객관적인 판단 좋아하고, 타이슨을 미화하는쪽 보다는 비판하는 쪽입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를 띄우기 위해서 다른 선수를 까는건 좀 유치하네요...
다른 분들 애쓰지들 마세요. 말이 안 통하니까.
참나 이거 안남기려고 했는데 한마디만 더 남겨야겠군요. 로드먼님 제가 루이스 빠라고요?전 누구 빠도 누구 까도 아닙니다. 그리고 단한번도 루이스를 좋아한적이 없습니다. 전 그렇게 스타일없는 안정지향의 복싱하는 선수 별로 안좋아합니다. 제가 팬이라고 할수있는 선수는 단연 홀리필드입니다. 리딕보우와 홀리필드의 1차전보고서 9라운드인가 10라운드에 보우가 홀리필드를 이길것처럼 몰아부치면서, 경기장 분위기도 늙은 홀리필드대신 젊은 사자인 리딕보우가 새로운 챔피언에 오르기를 원하는 분위기에서 그렇게 무수히 맞고도 오히려 역전시켜버린 홀리를 보고나서 완벽하게 홀리필드의 팬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2년전에 홀리가 다시 나왔을때도 어떤 무명의 백인 선수를 상대로 컴백했을때가 기억이 납니다. 브루스 윌리스를 닮은 그 백인은 록키의 배경 음악인 아이오부 더 타이거를 등장음악으로 나오면서 저 홀리를 잡아서 록키처럼 반전의 시나리오를 짜겠다는 각오로 등장합니다만, 현실은 1회인가 2회에 케이오로 끝나버립니다. 홀리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12년 복싱 역사상 과장 과대포장된 괴물을 상대로 자기가 왜 real deal인지를 정확히 증명해주었습니다. 암튼 홀리필드 역시 루이스스타일의 복싱을 비판한적이 있죠. 다만 루이스가 최강이라고 하면 무조건 루이스 빠라는 오류를 범하시는 군요. 루이스는 별로 좋아하는 선수까지
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대최강의 실력을 지닌 선수이기떄문에 객관적으로 인정을 하는 것 뿐입니다. 막말로 90년대 최강의 선수는 루이스입니다. 타이슨을 이긴 홀리를 이긴 선수가 루이스입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80년대에 타이슨이 이긴 홈즈는 은퇴한지 4년이나되었지만 정작 컴백시에 4주만 훈련하고 온 선수였고, 마이클 스핑크스는 헤비급에서 5게임안팎으로밖에 뛰지않는 선수입니다. 타이슨에게 지기전까지 스코어에서는 대등했던 핑클론도 1년후에 홀리에게 스코어에도 뒤지고, 더 빠른 라운드에 끝난걸로 기억합니다. 즉 80년대 타이슨이 물리친 모든 선수들 역시 루이스, 홀리에게 무너졌고, 스핑크스나 홈즈 역시
90년대 홀리나 루이스 레벨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타이슨이 이긴 선수중, 스핑크스와 홈즈를 제외하고, 무어러나 레이 머써정도의 선수는 없었습니다.그리고 강호인 팀 웨더스푼과도 타이슨은 붙지 않았었습니다. 암튼 그당시에 인터뷰글을 올리셨다면 뭐 다 아시겠네요.글러브한번 끼어보지도않고, 스파링도 한번 뛰어보지도않은것 같던 타이슨 광빠들이 얼마나 그 사이트를 혼란스럽게 했는지 말입니다. 타이슨만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슨을 2번이나 이긴 홀리필드나 객관적으로 최강임을 증명한 루이스를 대놓고 까대고 평가절하하더군요.뭐 여기있는 분들은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만.
전 솔직하게 원래부터가 타이슨을 싫어했지만, 그이후부터 더더욱 타이슨에 대한 지나친 미화를 하는 분들을 보면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따끔하게 그런 환상을 깨주는 것을 원할뿐이지 누구 빠이니, 누구 까이니 그런사람아닙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홀리필드 팬이고, 루이스 팬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실력에서 루이스가 최강임은 자명하기떄문에 그걸 꺠끗하게 인정하는 것 뿐입니다. 루이스와 한번 붙어서 진 선수들은 다시는 루이스와 붙으려고도 하지않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바로 "너무 강하고 너무 아파서 "그런 것이죠. 루이스같은 스타일 딱 보면 손이 아주 매운 스타일같습니다만, 암튼 누구 빠라니 누구 까
라느니 하면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않으셨으면 합니다. 전 누구빠도 아니고, 까도 아니라, 그냥 객관적인 사실만 말씀드리고싶은 것뿐입니다만, 쓰다보니 의도하지도않게 글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암튼 올려주신 글은 잘 봤습니다.그리고 타사이트에서 타이슨 광빠들의 입을 다물게했던 분의 글을 이렇게 다른 사이트에서 다시 보게되서 참 신기합니다. 전 이만 줄이겠습니다.
리딕보우랑 홀리필드의 1차전은 경기내내 우세하게 이끈 리딕보우가 이겼는데, 무슨 홀리필드가 역전을 합니까? 그리고 당시 홀리필드 나이는 만 서른살이었어요. 그렇게 늙은 선수도 아니었구요;; 리딕보우는 만 25살이었는데,4년차로 올림픽에 출전했고 복싱에서 그정도의 나이차이면 한세대로 봐도 무방 합니다.(홀리필드 62년생,레녹스루이스65년생,타이슨66년생,리딕보우67년생 다 비슷한 세대의 선수들 입니다.) 전혀 객관적이지도 않은 사실들을 열거 하시면서 주관적으로 말해놓고, 객관적이라고 우기시니 신뢰가 안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 댓글에서 최초로 '빠'라는 표현을 쓰면서 분위기를 흐린건 Walk It Out님인데, 스스로 기억을 못하시나 봅니다.
당연히 경기는 보우가 이겼지만, 그 라운드에서는 홀리가 역전을 시켜서 그해 최고의 라운드로 뽑혔던 것을 얘기한겁니다. 그렇게 얻어맞고도 다운까지 바라는 관중들의 염원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라운드 후반에 되려 역전을 시켜서 보우가 그로기 상태에 놓인 것으로 유명한 라운드아닙니까?그리고 당시 홀리필드이미지는 30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크루져에서 올라온 작은 체격과 너무나 젊은 챔피언인 타이슨의 영향과 비판받은 포먼전 경기 내용떄문에, 다소 고루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래서 리딕보우가 등장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홀리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증명해보였습니다.
암튼 어떻게 하다보니까, 계속 댓글을 달게되었는데, 뭐 노피어님도 타이슨 좋아하셨을테이고, 그러겠지만, 님이 쓰신대로 타이슨은 보우, 홀리, 루이스와 같은 세대입니다. 물론 타이슨의 최악의 몸상태라는 타이슨 팬들이 흔히 치는 실드로 타이슨이 더글라스에게 진것을 어떻게든 변명하려고하는분들이 있는데 타이슨 스스로도 컨디션이나 그런것보다, 실력에서 졌다고 인정했습니다. 제가 화가났던 이유가 타이슨이 진건 무조건 훈련부족이니 그런식으로 복싱 외적인 이유로 돌리는 건데, 외적인 것이 아니라 "실력"에서 진겁니다. 럭키펀치로 진것도 아니고, 10라운드까지 계속 지다가 케이오로 진건 두말할나위없이
실력에서 진것입니다. 암튼 이글을 마지막으로 정말 더이상 관련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다만 타이슨에 대한 지나친 미화나 혹은 실력으로 타이슨을 이겼던 다른 선수들을 타이슨 외적인 문제(훈련 부족이라느니, 컨디션이 안좋았다느니, 감옥가서 전성기를 지났다느니, 그런 식이면 이세상 어떤 복서도 쉴드를 안받을수가 없겠군요,)떄문에 타이슨을 이겼다고 그 승리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전혀 없을뿐이라는 것과 더불어 어린시절 여러분들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영웅을 이렇게 대놓고 그 실태와 실상을 직접적으로 파해치는 것에 대해서 기분 상하기 말기를 바라면서 다만 사실만 얘기하고싶었을 뿐이니 그걸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착각 하시는게 있는데, 저도 가장 좋아하는 복서가 에반더 홀리필드 입니다. 고등학교때 교과서 포장을 바클리랑 홀리필드로 다했을 정도로 좋아했구요...토론내내 먼저 자극적인 표현, 불확실한 표현 다 쓰시면서 객관적인척 하는거 참 우스워 보이는거 아세요? 가장 먼저 '빠'라는 표현 써놓으시고, '까''빠'같은 표현으로 이분법을하지 말라니;; 자기가 볼수 있는 수준으로만 함부로 상대방을 판단하지마세요. 애시당초 무조건 훈련부족으로 졌다고 확언(님이 즐겨하는 태도죠?)한 사람도 없고, 저는 그것도 이유중에 하나라고 보는 사람 입니다. 본인이 아는 얕은 지식만 가지고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 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댓글 안달겠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벌써 몇번째인지;; 결국 계속 달고 계시잖아요.(비단 이글에서 뿐만도 아니지만;;) 토론내내 가장 큰 오류를 범하고 계신건, 본인은 선수간의 상성만 앞세워 주장 하시고 선수들의 당시 상황은 배제한다는 겁니다. 님이 보기에 핑계고 빠들의 쉴드겠지만, 그게 '실제상황'일수도 있다니까요...타이슨은 태생적으로 헤비급에서 뛰기에는 작은 하드웨어 입니다. 핵주먹이라서 최강이 된게 아니고, 헤비급에서는 볼 수 없는 반사신경과 스피드가 있었기에 가능했죠...경기 운영에 있어서는 천재적인 홀리필드가 서른살에 리딕보우와 싸운선 늙은거고, 운동능력에 의존해서 싸우는 타이슨이 서른살에
홀리필드와 싸워서 진건 전적으로 실력탓이고...본인이 생각해도 좀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상대방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보세요. 그렇게 할 소양이 안되시면, 다른 곳에서 토론하다 받은 스트레스를 엄한곳에다 배설하지 마시구요...
아 진짜 돈킹ㅡㅡ 이름그대로 돈킹인 녀석..짜증납니다.
제임스 더글라스전의 이 패배가 타이슨의 몰락이자 헤비급의 몰락의 시작이였죠. 그리고 홍수환 자모라 2차전에 이어서 또한번 대박 사고 친 옥타비오 주심...
Worm Rodman님 감사합니다. 타이슨을 좋아하지만 껍데기지식만 있었던터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