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보고 군산을 올라 대평리 해안까지

[햇살아빠]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한 조건

우리가 아직 노인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말자. 자신이 노인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노인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언제나 젊음을 간직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는 법, 노인 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행복한 노후생활의 조건으로 대개 건강과 돈 그리고 일을 꼽는다.

건강한 정신과 신체는 젊은이나 늙은이나 제일로 꼽는 행복의 조건이지만 노인들은 한 번 건강을 잃으면 회복하기가 어려우므로 더욱 중요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늘 몸을 움직여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고 컴퓨터나 책을 가까이하여 정신적으로도 활력소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경제도 행복한 노후생활의 중요한 조건이다. 그렇다고 재산권을 끝까지 틀어쥐고 놓지 않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노후생활에 필요한 돈을 제외한 재산은 미리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 친구들은 거의 노후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세 번째 조건인 일은 직업과는 다른 개념이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면 ‘나는 이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로구나’ 하는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든 일을 찾아 함으로써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위에 든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고 해서 행복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찾는 것이고 사실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니 각자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 위에 든 조건 외에 구체적이고 간절한 소원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첫째, 나의 짝꿍인 나루와 되도록 오래 해로하다가 내가 먼저 가고 싶다. 우리는 좀 일찍 만나서 43주년을 넘겼다. 금혼식(50주년)을 멋있게 하고 되도록 오래 같이 있고 싶다. 그리고 내가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싶다. 나루가 없는 세상을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되도록 오래 자동차 운전을 하고 싶다. 자동차는 이제 자유로운 삶의 기본조건이다. 지금도 썩 좋은 시력은 아니지만 앞으로 두 번 정도는 적성검사에 합격하여 면허가 존속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컴퓨터도 늦게까지 다룰 수 있었으면 한다. 시간 보내기도 좋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카페도 오래 하고 싶다.

셋째, 지금 만나는 오름 친구들과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 10년쯤 지나 오름 오르기가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모임을 계속하고 싶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 웃고 즐기는 것이 행복한 노후생활의 지름길이다. 되도록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 뿔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절경

산행보고 쓰다가 잠시 월드컵을 봤다. 아르헨티나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경기였는데 잠시 본다는 것이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현란한 솜씨에 놀라 눈을 때지 못했다. 경기 결과는 6:0, 세르비아 선수들이 불쌍하다. 단언하건데 이번 월드컵 우승은 아르헨티나가 분명하다.

각설하고, 장마예보와 어제 호우주의보까지 내려 오늘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왔건만 남북군 경계를 넘어서자 하늘이 훤하다. 군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햇빛이 눈부시다. 아! 이렇게 좋을 수는 없다. 모인 인원은 열두 명, 지난주는 한 자리수로 줄어들어 걱정했는데 두 자리 수를 회복했다. 완산네를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감기로 못 나와서 서운하다. 간단한 모임을 갖고 오늘 일정을 의논했다. 날씨도 좋고, 내려다보이는 대평리 바닷가 경치도 그만이라, 창천리 쪽에서 군산을 오른 후 대평리 쪽으로 산을 내려가서 바닷가까지 간 후 거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산을 올라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침목이나 폐타이어로 계단을 만들었으나 계단 폭을 좁게 하여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 것이 좋았다. 낮은 언덕을 오르자 군산의 우뚝한 뿔바위가 보였다. 밑에서 보기에는 인공으로 쌓은 연대처럼 보이지만 올라가보니 시루떡처럼 쌓인 바위 무더기였다. 군산은 비고로 따져 280m로 네 번째로 높은 오름이다. 우리가 높다고 생각하는 노꼬메나 다랑쉬보다 50m는 더 높다. 그러나 창천리 쪽으로는 그 절반 정도 밖에 안돼 보인다. 큰 나무가 많지 않아 한라산과 올망졸망한 오름들, 그리고 남해의 쪽빛 바다와 섬들을 보면서 오르기 때문인지 힘든 줄을 모르겠다.

정상에는 동서로 두개의 커다란 뿔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밑에서 보면 이 두개의 뿔바위가 커다란 천막의 받침대처럼 보여 군막처럼 보인다고 군산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실제로 우리가 대평리 쪽으로 내려 산을 올려다보니 천막을 친 것처럼 보였다.

지지난주에 산방산에 올랐을 때 안개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장관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사위가 시원하다. 남서쪽에서 보는 한라산의 또 다른 멋에 감탄하며 올망졸망한 오름들에 눈을 주며 시선을 서쪽으로 돌리자 수려한 바위산인 산방산이 우뚝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씻긴 절울이 해안과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등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로 남쪽으로는 대평리 바닷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오름이 많지만 남서쪽 오름 중에서는 군산을 제일로 치고 싶다.

사방이 탁 트인 너르닥한 풀밭에 둘러 앉아 주고받는 술맛은 일품이다. 정성들여 준비해 온 음식 맛 또한 비길 데 없다. 오늘따라 선달이 웃음강의를 주저하더니 나중에 쏟아내는 것이 다른 때보다 질펀하고 윤기가 흐른다. 이야기를 많이도 들은 것 같은데 웃다보니 다 잊고 ‘염라대왕도 그걸 좋아한다.’ 정도 생각난다.

▲ 걸어서 대평리 바닷가까지

정상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쪽 산책로를 따라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100여m 정도 내려가자 아예 산책로를 시멘트로 포장하여 자동차가 올라올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마침 개인택시 한 대가 여자 한 분을 싣고 올라와 산행을 하고 있었다. 시멘트 포장길에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녹색 페인트를 발라 놓았다. 신기한 것은 고추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짝짓기를 하며 길바닥에 알을 낳는 시늉을 하고 있다. 이것들이 필경 물로 착각하는 것이리라. 정말 웃긴다.

내려오는 길은 멀고 지루하다. 길가에는 멍석딸기가 지천으로 열어 빨갛게 익었으나 이젠 따 먹는 이도 없다. 2~3km는 족히 되는 거리다. 가까스로 큰길에 닿았다. 마을까지는 아직도 멀다. 토사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벽에는 제주의 풍물을 소개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이 마을의 자랑인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와 보는 마을이다. 폐교가 된지 오랜 대평분교가 청소년수련 시설로 바뀌었으나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서양식 펜션들이 많이 들어서 관광지로 급부상하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아직은 시즌이 아니라서 거리가 한적하다. 부둣가에 위치한 횟집에 도착했으나 비수기라 영업을 하지 않는 바람에 헛물만 켰다. 다행히 친절한 주인내외 덕에 기사들을 차가 있는 군산 입구까지 실어다 주고, 상큼한 쑥차까지 얻어먹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기사들이 차를 가지러 간 동안 김립, 남산과 같이 주상절리 부근의 바닷가를 둘러 볼 기회가 생겼다. 정말 경치가 좋았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눈이 시리게 맑은 물, 해안의 허리 굽은 노송들이 어울어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점심은 논짓물 축제가 열리는 연리(예래) 해안가에 위치한 횟집에 가서 자리회를 먹었다. 오늘 좋은 날씨에 좋은 오름에 올라 좋은 경치 보며 많이도 걸었고 행복했다.     (2006. 6. 15)

[ggolzz]

장마라 걱정을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어. 일주일마다 오늘같은 산행을 할 수 있으면 노후가 행복할 것이다. 대평리는 대포리와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나만의 느낌인가? 하여튼 제주가 아닌 외방으로 여행을 한 기분이다. (예래=열리, 내가 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