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월간 산, 한국의산하 .한국의산천, 자비화카페, 민들레의 행복한 방황블로그, 산악회, 홈페이지 등
◎ 산 행 지 : 지리산 둘레길 칠선계곡트레킹
◎ 위 치 : 경남 함양 마천면
◎ 정기산행일 : 2022년 6월25(일)
◎ 출 발 시 간 : 일요일 출발
하남월곡시장 07:30
염주롯데마트주차장07:50
쌍촌동신학대사거리08:00
무등경기장08시10분
문화예술회관후문08시20분
비엔날레주차장 08:30
출발
◎ 산 행 시 간 : 천천히 [a코스 후미기준 시간입니다.]
▶산행코스:
◆코스: 금계마을~의중마을~벽송사~칠선계곡~칠선교~추성리~칠선계곡 대형주차장회귀
A코스 4시간11Km :금계마을~의탄교~의중마을~벽송사~추성리~칠선교~칠선계곡트레킹~칠선계곡대형주차장회귀
B코스 2시간 6Km : 금계마을~의탄교~의중마을~벽송사~추성리~칠선교~칠선계곡 대형주차장회귀
◎ 회 비 : 35,000원
▶▶ 회비입금계좌번호 공지 : 농협 최영록 302-0885-5653-51
◎ 준 비 물 : 등산화, 베낭.식수,모자,스틱,간식
방수,방풍자켓(필수),기타계절에 맞는 장비...
특히 등산팀은 필히 등산화,장갑, 등산화,스틱,온수,방풍자켓 지참!!!
▶알림사항:
1.안전산행을 위해 집행부통솔에 따라주시고 코스이탈이나 개별행동은 하지 맙시다.
2.여행자보험은 미 가입 상태이니 개별적으로 가입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3.** 날씨는 좋을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그래도 만반의 준비는 하셔야 겠지요,반드시 차단용품과 선그라스등은 (자외선땜에 피부와 눈 손상이 많아요) 준비 하세요,
4.*방풍의,장갑,우의,멀미약*등산스틱
5.아침식사:염주동에서 버스출발기준으로 아침8시 이전 출발에는 대접함
염주동에서 버스출발기준으로 아침8시 이후 출발에는 집에서 아침을드시고 오셔야 됩니다.~~
◎ 산 행 예 약 연 락 처
☎ 회장 최영록 010-4602-0077
☎ 총무 강난희 010-8269-4580
☎ 사무국장 이상희 010-3646-4242
☎ 운영위원장 김미란 010-3640-1881
◎ 산행팀
☎ 산행이사 최성준 010-7709-3006
◎ 카페관리팀
☎ 카페이사 이상희 010-3646-4242
◎ 운행이사
☎ 은하수 관광 최선종 010-4626-6693 차량번호: 2611
벽송사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지리산 칠선계곡 벽송사(碧松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이며, 경상남도 전통사찰 제12호.
창건 년대 등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지만,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기를 신라 말, 고려 초로 추정하고 있다. 벽송사의 실질적 창건은 〈벽송사사적기〉에 의하면, 조선시대 중기인 1520년(중종 15년)에 서산대사(청허 휴정)의 스승이신 벽송 지엄(碧松 智嚴,1464∼1534년) 스님이 중창. 지엄 스님은 중창한 뒤 사찰 이름을 벽송사(碧松寺)로 바꾸었으며, 이후 부용영관, 청허휴정(서산대사), 경성일선, 부휴선수, 송운유정(사명대사), 청매인오, 환성지안 등이 이곳에서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1704년(숙종 30년)에 환성지안(喚醒志安) 스님이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다. 이 때에 법당과 선당, 강당, 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하였으며, 상주하는 스님은 삼백여명에 이르렀고, 부속 암자는 십여개가 넘었다고 전한다.
1950년 6.25전쟁 때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사용, 방화로 모든 건물이 없어졌다. 1961년 원응(元應) 스님이 6.25 때 이곳에서 희생된 수많은 원혼들을 천도하고, 벽송사를 중창하였다. 가람배치는 전면에는 산문과 종루가 있고, 보광전의 좌우에는 방장선원(方丈禪院)과 간월루(看月樓)가 있으며, 뒤편에는 산신각이 있다. 현재의 절이 들어서 있는 위치에서 약 50m 위쪽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은 이곳에 처음 사찰이 창건할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3.5m인 삼층석탑은 보물 제474호.
그리고 원통전 뒤에는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서있는 도인송(道人松)과 미인송(美人松)의 전설도 전해 오는데,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벽송사 선방에서 도인이 유래없이 많이 배출되어서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선교겸수한 대승들을 109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송사는 지리산의 천봉만학(千峰萬壑)을 앞뒤 동산과 정원으로 하여 부용(芙蓉:연꽃) 이 활짝 핀 것과 같은 부용만개(芙蓉滿開), 혹은 푸른 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의 청학포란(靑鶴抱卵)의 형국에 자리하고 있다.
금대암에 선원이 개설되어 수선납자가 운집하고, 벽송사 본당에는 강원이 개설되어 근세 일제강점기까지 지속되었으니, 근 300년 동안 조선불교 제일의 총림이 이루어져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이로부터 선교를 겸한 대종장들이 벽송사에 수선안거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게 되니, 강당을 거쳐 간 강주(講主)스님 만도 약 100인이나 되니 학인과 납자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근대에 선지식이신 경허선사도 벽송사에 주설하며 서룡선사 행적기록을 집필하였다.
특히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동조(初月東照)대사는 일제 강점기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일제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인해 400여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최고의 벽송사의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벽송사가 칠선계곡에 있고 인적이 드문 곳이다. 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2기의 목장승, 보호각 속에는 벽송사의 나무장승 2기를 안치해 놓았다, 함양군 마천면이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를 담은 '가루지기 타령'이 전하는 곳이라 목장승는 「가루지기 타령」의 소재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머리의 일부가 불에 타버린 왼쪽 장승의 몸통에는 경내에 잡귀가 못 들어오게 막는다는 뜻의 ‘금호장군(禁護將軍)’이라는 글을, 오른쪽 장승의 몸통에는 불법을 지키는 신이라는 뜻의 ‘호법대신(護法大神)’이라는 이름을 새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