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나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고 위스트우드에서 윌사이어로 차를 몰았다. 9시에 산타모니카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톰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 사이 벤 댈리를 만나야만 했다. 산빈센토에서 해안 고속도로로 빠져 들어갔다.
태양은 지평선 끝에 걸려있었다. 하늘과 바다에 핏빛 햇살을 보내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호텔도 지중해의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호텔 앞을 가득 메운 군중들은 없어지고 몇 사람만 빈둥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변화 없는 생활에 혹시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없을까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만 조금 있었다.
따뜻한 밤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변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검은 회색 빛 옷과 같은 색의 모자로 정장을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적당히 주차시키고 나왔다. 그 사람은 해롤드 할리였다. 라일라가 골랐을 검은 색 넥타이를 메고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나를 보니 슬픔이 더 하는 모양이었다. "아처씨."
"해롤드씨 저를 잊지 않았군요."
"그럼요.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심지어는 얼굴 모양도요. 저 호텔도 달라 보이고요. 흙 속에 묻혀있는 옛날 유적 같지요. 전에는 예쁘고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늘도 달라 보이네요." 고개를 들어 붉은 줄이 쳐진 듯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손으로 칠한 듯한 붉은 색이죠. 하늘 위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아요."
조그만 사람은 예술가처럼 말했다. 어린 시절을 잘 보냈더라면 지금쯤 진짜 예술가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동생을 그렇게까지 좋아했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 몰랐는 걸요. 그렇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지요. 캘리포니아가 싫어요. 캘리포니아에서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어요. 마이크에게도." 경찰 차들을 보며 얄궂은 웃음을 지었다. "아이다호로 되돌아 갈까봐요."
군중들 틈에서 그 사람을 빼어 내었다. 군중 속에는 팔과 등이 다 들어 나는 여성용 운동복을 입은 살이 찐 여자와, 머리를 틀어 올리고 눈에 푸른색을 칠한 젊은 여자, 까맣게 태운 피부를 번들거리며 재빨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가뭄에 비슬거리는 목련나무 아래로 갔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다호를 떠났어요?" 당신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제가 모를 줄 아세요? 그 노인네는 마이크에게 항상 저 놈은 교수대에 목을 매달릴 거라고 했어요. 하여튼 교수대는 피했지요."
"어제 당신 아버지와 이야기했어요."
해롤드는 깜짝 놀라더니 자기 뒤를 쳐다보았다. "그 노인네 아직도 살아있어요?"
"어제 포카텔로에 갔지요."
그는 놀라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한 것 같았다. "어때요?"
"마찬가지죠 뭐. 들은 대로 예요. 마이크가 그물 망이 쳐지기 전에 떠났었다는 말을 안 했죠?"
"당신이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마이크가 항상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일을 처음 저지른 것은 아니죠?"
"예," 고개를 끄떡였다.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몰의 햇빛은 그의 모자에 붙어있는 장롱 속의 오래된 먼지와 이마에서 솟아오르는 땀을 비쳐주고 있었다.
"당신 잘못은 아니지요. 그것을 알았으면 마이크를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요."
"알아요. 그 노인네는 마이크가 어렸을 때부터 두들겨 팼어요. 엄마가 결국은 마이크가 노인네에게 대들게 했고, 마이크는 집을 떠나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았어요. 마이크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그래도 당신은 집에 붙어 있지 않았어요?"
"조금 더 있었지요. 나는 다른 장소에 있는 것처럼 했어요. 여기 캘리포니아에 있는 것처럼 했지요. 결국 여기로 와서 사진강습소에 다녔지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문제로 되돌아갔다. 그 문제란 마이크 할리와 캐롤 브라운이 왜 아이다호에서 시작하여 캘리포니아에서 끝을 맺게된 인생에 대한 일련의 문제들이었다. 시작과 끝은 비교적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중간은 아직도 의문에 쌓여있고, 또 결국 끝이 어떻게 귀결될는지도 어둠에 묻혀있었다.
"캐롤의 부모와도 이야기해 보았어요. 캐롤이 올 해 초여름에 왔다 갔다고 했어요. 자기 방에 여행가방을 남겨 두었는데 그 속에 편지가 있었어요. 그 편지에 당신이 힐만의 유괴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말이 써 있더군요."
"그 편지를 읽어보았어요? 마이크에게 그런 편지를 쓴 적은 없어요. 잘 몰라서 그랬어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로 이끌지를 몰랐어요. 그리고 당신이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던데요."
"아니 제 잘못이에요."
"하여튼 그 편지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 편지를 읽고나서 여기로 오토 사이퍼를 만나러 왔지요. 톰의 흔적도 찾을 수 있었고. 톰은 사이퍼와 함께 월요일 아침부터 수요일 저녁, 어제 밤까지 여기에 있었어요."
"정말?"
"오토 사이퍼를 어떻게 알았어요?"
해롤드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면 짖은 정장과 검은 넥타이, 먼지 묻은 모자가 갈색 잔디와 나무목련의 낙엽 사이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참 후 도저히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나왔다.
"사이퍼는 마이크의 친구였어요. 그래도 나도 알았고. 사이퍼가 마이크의 권투를 지도했지요."
"당신은 가르치지 않았어요?"
"저요?"
"예, 사이퍼가 이 호텔의 사진사로서 당신을 추천했지요?"
"그럼...요. 내가 마이크의 형이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었지요? 그래놓고 사이퍼는 당신을 한 편에 끼워주지 않았지요."
"어떤 일에 대한 것을 말하시는 거예요?"
"협박."
하도 강력하게 고개를 흔드는 바람에 모자가 벗겨질 뻔하였다. "한 번도 협박에 관계한 적이 없어요.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규정된 요금을 지불했어요. 잔돈을 몇 푼 주었을 뿐이에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쫓겨날 것 같았고요. 그래서 기회가 생기자 그만 두었어요. 그건 지저분한 행동이었어요." 해롤드는 고속도로를 건너 김빠지게 썩어 가는 호텔을 바라보았다. 호텔은 황혼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짓을 해서 돈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군 지도 모르고요."
"한 사람도 몰랐어요?"
"무슨 말이 신지?"
"힐만 함장과 함께 있는 여자를 찍지 않았어요?"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땀이 솟아올랐다. "몰랐어요.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지난 봄 뉴포트에서 힐만을 알아보았다고 했잖아요?"
"그래요. 그는 마이크 배의 함장이었어요. 옛날 배에서 그 사람을 보았어요."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었고요?"
"예."
"당신과 마이크가 체포되었을 때, 1945년 봄에 보지 않았어요?"
고개를 끄떡였다. "3월 5일 이었어요. 쉽게 잊지 못할 날이에요. 제가 체포된 유일한 날이니까요. 석방된 이후 이 곳으로 온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그는 이 곳이 또 한 번 자기에게 배반 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4월에 찍은 사진이니까요."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오토 사이퍼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있었어요."
"왜 그 사람은 이 호텔에서 힘이 있었어요?"
"아마 호텔관리에 관계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요. 뭔가를 해 주었어요. 옛날이었지만, 영화배우를 여기에 머물게 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요."
"그 때 마이크도 이 호텔에 있었나요?"
"예, 마이크와 캐롤은 내 방을 썼어요. 한 사람은 취직해서 나갔어요. 그 때 난 호텔의 기숙사에 있었는데 마이크가 체포된 후 내가 나가고 난 다음 오토 사이퍼는 얼마동안 그 방을 캐롤에게 사용하게 했을 거예요."
"복도 끝에 있는 자기 방의 옆방이었어요?"
"그래요."
"그 방 침대는 청동으로 만든 거예요?"
"예? 무슨 말이죠?"
"내가 들어가 보니 전쟁 이후에 가구를 바꾼 것 같지 않더라고요.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던데요. 혹시 캐롤을 사랑한 것은 아닐까요?"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사이퍼는 여자가 필요 없고, 캐롤은 사이퍼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다른 머물 곳이 생기자 마자 캐롤은 나갔어요. 버뱅크에 있는 여자친구에게로 갔어요."
"수잔나였지요."
해롤드는 눈을 깜빡거렸다. "맞아요. 그 여자 이름이 수잔나였어요. 그 여자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캐롤은 어땠어요?"
"캐롤이야 예뻤지. 젊은 여자 애가 예쁘게 생겼으면 다른 것이야 보면 뭘 해. 내 말은 캐롤은 그 만큼 예쁘게 생겼다는 말이야. 나는 항상 캐롤을 순진무구한 젊은 여자 애로 보았었는데, 라일라 말을 들으면 내가 여자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많다고 하더군요."
시계를 보았다. 8시가 넘었다. 그냥 두면 해롤드는 밤새도록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해롤드에게 옛날 친구인 벤 댈리를 만나 보아라고 했는데 해롤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댈리의 찌푸린 얼굴이 불켜진 주유소 사무실 안에 있는 것이 보였다. 해롤드를 알아보고는 찌푸린 얼굴이 풀어졌다. 그는 밖으로 나와 나를 못 본체하고는 해롤드와 악수를 했다.
"할, 오랜만이야."
"그런 말 들으니 좋구나."
그들은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데 대해 이야기했다. 격렬함은 없었으나 따뜻한 마음이 흘러내렸다. 그들 사이에 범죄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증거는 없었으나 둘 중 어느 누구라도 최근의 범죄와 관련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 사이에 끼어 들었다. "벤, 잠깐만 이야기 해. 그 살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야."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을 죽여서?"
"하나만 확인해 줘." 딕 레안드로의 사진을 꺼내 강제로 그가 보게 했다. "이 사람 본적이 있어?"
벤은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이 떨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본 것 같아."
"언제?"
"어제 밤. 어제 밤에 호텔에 온 사람 같아."
"새로 나온 푸른 시보레를 타고 여자와 같아 온 사람?"
"그래, 그 사람 같아. 그렇지만 법정에서 증언은 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