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 2025년 봄호
침을 삼키다 외 1편
맹문재
1
엉덩이 한쪽에 생긴 앵둣빛 반점을
애교로 여겼더니
무릎까지 번졌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인가
의사를 찾아가니
대상포진이 왔다고
알약과 연고를 준다
약을 바를 때마다 가시가 찌르는 듯 따가워
잠을 잘 수 없다
어떻게 모든 말이 거짓말이고
한평생 검찰 권력을 휘두른 자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싸움보다 아프다
2
소화기 내과에 가니
의사는 시티 촬영한 사진을 지도처럼 바라보면서
담낭에 붙어 있는 것이
용종인지 혈전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초음파 검사를 예약한다
간문맥혈전증이며
고지혈증 진료가
갚아야 할 대출이자처럼 떠오른다
다음 선거는 어떻게 되는가?
칠할 수 없는 어둠인가?
3
이비인후과의 계단을 내려오는데
가래가 기세처럼 끓는다
목소리는 공기 빠진 바퀴처럼 가라앉았다
진료를 반려견으로 삼지 않으면
병 걸린 뼈가 되는가?
찬 사람이 되어
거품조차 못 내는가?
4
가래를 뱉지 마세요
나를 연민하며
의사의 처방에 따른다
전선을 바라보며
고백 없이 전향한다
그림자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
많은 나이가 떠오른다
그래도 서두르지 않으니
마음 편하고
선택할 수 있기에
애처롭지 않다
내가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이기에 여러 개이고
좁기에 널찍하다
컴컴하기에 환하고
둥글기에 날카롭다
계획보다
계약보다
대담하다
절망보다
원망보다
운명적이다
더 이상 내 몸을 줄이지 말자
맹문재 약력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사북 골목에서』 등. 전태일문학상 수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