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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 2020, 겨울호 계간평
이 시대를 위로하는 시조 한편
野城 이도현
(한국시조협회 고문)
2020년 경자년 한 해,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하여 온 인류가 불안과 공포에서 떨어야만 했다. 생존과 문화가 좌절되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송두리째 바뀌는 등 이른바 혁명직전에까지 이르고 있다.
다행이 코로나 백신이 나와 접종 시행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닌 듯싶다. 이번 시조문학 겨울호에 수록한 60여명의 작품에서도 코로나를 소재로 한 우울한 내용이 다수였다.
이제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밝아온 새해와 함께 코로나 블루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자. 이 시대를 위로하고 긍정하는 시조 한편으로 건강한 원년을 다시 맞이하자.
지난 밤 내린 봄비 언 땅 풀어 푸슥한데
토담아래 양지바리 닭 헤치고 간 자리엔
회춘의 그 정겨움을 난초 싹이 알리네
터줏 가리 바랜 짚은 돌아온 봄 느껴볼까
낙엽헤쳐 금간 자리 가만가만 들어보니
돋아난 파아란 생명 시샘 없이 보이오.
-김종성의 <돌아 온 봄>전문
지난 밤 내린 봄비가 언 땅을 녹이고 토담아래 양지쪽 닭이 헤치고 간 자리에 난초 싹이 올라온다. 정녕 회춘(回春)의 기쁨이다. 낙엽을 헤치고 금간 자리를 가만가만 살펴보니 파아란 생명이 돋아나 ‘돌아 온 봄’을 알린다.
자연의 섭리는 양보 없이 이 땅에 봄을 알린다. 가뜩이나 힘들고 암울한 시대에 김종성 시인은 새해를 맞이하여 회춘하는 환희의 봄을 노래하고 있다.
2021년 새 해 벽두 시조문학에서 첫 번째로 밝은 시조를 만났다. 시조문학 가족 모두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소쩍새 우는 밤에 어머님 야윈 모습
손바닥 갈기갈기 자녀 위한 희생 길
온 정성 아가페 사랑 우리 자란 흔적이오.
이슬비 소리 없이 내리는 가을밤에
눈가에 주름 가득 지나온 사연들이
오로지 자녀 위하여 그리 여진 훈장이오.
-이관수의 <위대한 어머니>전문
세상에 어머니처럼 위대한 존재가 있을까. 오직 자식만을 위해 모두를 희생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어머니는 아가페 사랑의 화신(化身)이었다.
손바닥엔 갈기갈기 골이 파이고 고왔던 눈가에는 잔주름이 가득해졌다. 자식만을 위하여 생긴 사랑의 흔적이요, 장한 훈장이었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사랑을 자애(慈愛)라 하지 않는가.
이 작품에서 이관수 시인은 갈기갈기 갈라진 손바닥 금과 눈가에 생긴 주름살을 위대한 어머니로 표상(表象)한다. 둘째 수 종장 ‘그리 여진’을 ‘그려진’으로 표기하면 어떨까?
1
굳은 살 양말삼아 고무신 아껴 신고
지게에 등짐 얹어 나르던 그 새벽들
발가락 맺힌 피멍을 어금니로 버티셨나
2
해종일 다랭이 논 김매고 돌아서면
막내아들 칭얼대던 시름 깊은 팔월의 밤
쪽 달도 잠 못 이루고 웅크린 채 떠나간다
3
함박눈 내리는 밤 온 세상이 적적한데
호롱불 숨죽이는 짚 냄새 가득한 방
거친 손 빌고 또 빌며 고된 삶을 풀어간다
4
남겨 둔 새끼 품고 외짝살이 오십여 년
긴긴 밤 가슴앓이 한숨소리 차고 넘쳐
이제는 금 간 항아리 가슴으로 울고 있다
-이종욱의 <아버지의 초상> 전문
이종욱 시인은 아버지의 생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농촌에서 일만 하시다 영화도 못보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시인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게에 등짐지고 새벽을 나르다 멍이 들고, 해종일 다랭이 논 김매고 돌아서면 왜 그리 고단한지 쪽 달도 잠을 못 이루었다. 함박눈 내리는 겨울밤 호롱불 밑에서 짚을 꼬아 짚방석을 엮었다. 여위 살이 못시킨 자식을 품에서 떼지 못한 한숨으로 긴긴밤 잠을 뒤척이다 이제는 금이 간 항아리 가슴으로 울고 있다는 아픈 사연이다.
앞의 이관수의 어머니의 사랑을 자애(慈愛)라면 이종욱 아버지의 엄부(嚴父)의 사랑은 가슴으로 우는 사랑이다.
육이오 전쟁 후 우리 모두 어려웠던 시절, 농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지게, 다랭이논, 호롱불, 항아리 등 잊혀져가는 농촌의 토착어(土着語)를 구사하여 당시의 농촌실상을 구절마다 절실하게 표현, 독자를 감동으로 끌어 들인다.
총칼도 주먹도 없이 산멱통을 밟고 서다
‘이전 것은 다 무효야’ 새 세상을 선언하다
지엄한 명령만 뜨고 왕은 깊이 숨었다
새 세상 가는 차표는 될수록 빨리 사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맑게 담아 마시는 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 세상의 법이다.
장터도 공장도 거리에도 집안에도
눈 크게 뜨고 봐라 숨은 그림 먼저 찾기다
듣는가 저 호루라기 소리 새 출발의 신호다.
-리강룡의 <혁명>전문
COVID-12(postcovid)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해를 넘기면서 기존의 문화와 사회 현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있다. 사람들의 집합을 불허하고 외출을 자제시켜 인간의 기본권이 억제되면서 자유를 잃고 암울한 지경에 처해 있다. 이제 현실은 혁명의 단계에 까지 왔음을 리강룡 시인은 SOS로 조난신호를 보낸다.
총칼도 주먹도 없이 지엄한 명령으로 새 세상 가는 차표를 빨리 사라고 명령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 새 세상의 법을 따르라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출발의 신호음을 보낸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듯한 긴박한 분위기다. 무서운 혁명이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보이지 않는 괴질이요 혁명이다. 시인은 이렇듯 무서운 역병을 인간들에게 경고하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 마시라고, 이것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 세상의 법이라고 역설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걸까. 리강룡 시인은 이러한 긴박한 시대적 상황을 그의 시작노트에서 “유태인의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을 연상하는, 빛나는 여행의 새 출발을 본다고” 마치 성경의 예언처럼 말하고 있다.
선운사 동백나무 눈 속에 푸르더니
빨간 꽃 피우고서 꽃마다 꿀샘이다
동박새 날아들어서 입맞춤도 저리 짙다
-서주린의 <조매화(鳥媒花)>전문
서주린의 <조매화> 단수이다.
꽃은 거의 다 곤충이 꽃가루를 촉매 하는데 동백나무는 동박새가 꽃가루를 촉매 한다. 동박새가 동백나무 꿀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새가 꽃가루를 전하기에 ‘조매화(鳥媒花)’란 이름이 생겼다.
선운사 동백꽃은 유명하지 않은가. 2월이면 빨간 꽃을 피우면서 꿀 향기로 동박새를 유혹한다. 동박새가 날아들어 꿀을 따는 모습을 입맞춤도 저리 짙다 하였으니, 서 시인은 관찰력이 누구보다 섬세하다. 시는 관찰과 직관(直觀)에서 출발한다. 동백나무가 이른 봄 빨간 꽃을 피우는 이유를 알만하겠다.
동천리 뒷동산에 시조달 솟아났다
일제의 그늘 속에 지워진 우리 얼굴
월하는 없어진 그 얼굴 오늘 다시 찾았다.
질곡의 가슴 속에 묻었던 우리 씨앗
묵정밭 갈아 없고 가꾸신 시조 꽃씨
물속에 둥근 달처럼 젖지 않는 우리 시조
이제야 느낍니다. 은근한 달빛 향기
얼었던 동토의 밭 움트는 봄의 시문
뜨거운 불가마처럼 피어나는 월하의 꽃.
-성낙수의 <월하의 꽃>전문
월하(月河)는 작고하신 이태극(李泰極)(1913~2003) 박사의 아호이다. 시조문학 창간 발행인으로서 37년간을 시조문학에 정열을 쏟아 헌신하신 분이다.
‘월하의 꽃’은 시조를 말함이다. 한 사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천년을 이어오는 우리 전통문학, 시조가 일제의 그늘 속에 지워진 것을 다시 꽃 피우신 분이 바로 이태극 선생이 아닌가.
성낙수 시인은 이를 세수로 구성하여 일제의 그늘에서 다시 찾은 시조, 물속에 둥근 달처럼 젖지 않는 우리 시조, 뜨거운 불가마처럼 피어나는 시조라고 기리고 찬양한다. 어느 누구보다 시조를 사랑하고 기리는 성시인의 정신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시조의 세계화 문턱에서 우리 시조시인들은 시조를 더욱 갈고 닦아 먼저 시조가 국민시로 승화할 수 있도록 그래서 시조의 불길이 전국에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바람도 살그머니 움츠린 언덕배기
후미진 그 자리에 무서리로 지어 입고
초록은 줄기 끝 따라 기다림을 키운다
살짜기 내어 밀은 철늦은 꽃잎 하나
뒤늦게 피었지만 꽃 이름 걸어놓고
붉은 달 가슴에 품어 열매를 맺었다
어떠랴 끝물이면 나비는 가버려도
밤이면 놀아주는 귀뚜리 보금자리
여물지 못할지라도 꼬투리를 밝힌다
-이인오의 <끝물>전문
이인오의 <끝물> 전문이다.
끝물이란 농작물이나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 마지막 소출을 말하는데 대개의 경우 실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별로 충실하지 못하고 무언가 부족한 듯한 사람의 비유가 아닐까. 이 작품에서 핵심어는 기다림, 열매, 꼬투리다. 끝물이라 맨 나중에 낫다고, 좀 부족하다고 조롱당하고 멸시를 받기 쉬우나 기다려 주면 열매를 맺기도 하고, 여물지는 못할지라도 꼬투리를 맺는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속담처럼 화자는 비록 끝물일 지라도 밤이면 놀아주는 귀뚜리처럼 기다리고 격려할 때에 열매가 되고 꼬투리를 밝힌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어릴 적 신발 사러 엄마 따라 장에 가고
꽃피면 임과 함께 산천 경계 구경하고
늙으면 지팡이 끝에 매달리는 황혼 본다
-장효순의 <인생 삼막(三幕)>전문
장효순 시인은 인생 삼막을 노래한다. 초년과 중년의 2막을 벌써 끝내고 이제 노년의 황혼 길에서 지나온 아득한 노정을 뒤돌아보고 지팡이 끝에 매달리는 황혼을 바라본다.
세월은 빠르기만 한 것인가. 어느덧 내 인생이 이렇게 속절없이 저무는가. 솔로몬 왕도 그토록 화려한 왕도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인생은 ‘헛되고 헛되도다’고 탄식을 발했는가.
또한 우탁(1263~1342) 시인도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 데 없다/적은 덧 빌어다가 머리 우에 불리고저/귀밑의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라고 탄식하면서 늙음을 자위했는가.
늙어가면서 짚는 지팡이는 늙음의 상징이 아니요,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라는 장한 푯대라는 자신감을 갖고 황혼녘을 맞이하자.
산새벽 마중 나온 희뿌연 물안개 속
추억을 헤집듯이 겨우겨우 빠져나와
한나절 두더지처럼 굴을 파서 설악동
달려온 울산바위 발아래 엎드리고
흔들릴 듯 꿈쩍 않는 심지 굳은 흔들바위
계곡에 뛰어든 가을, 오색물감 흩뿌린다
단풍에 물이 든 듯 등산객 울긋불긋
온 산이 불붙은 듯 연기 없이 활활 타니
사람들 불끄러왔다 불구경만 하고 가네.
-정진상의 <가을 설악산>전문
한국의 명산 <가을 설악산> 기행시조를 만난다.
정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요즈음 어디를 가나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시상도 갇혀 버린 지 오래고 붓끝마저 쩔쩔매며 우울해 할 즈음 코로나를 한방에 날려 보낼 치료제 희소식에 붓과 시상은 제정신을 차린다.”고 밝고 경쾌한 작품을 올렸다.
첫수에선 설악동까지의 입산과정을, 둘째 수에선 울산바위에서 흔들바위까지를, 셋째 수에선 단풍으로 물든 산의 장관을 묘사한다.
가을 설악산처럼 곱게 물든 산이 또 있을까? 몇 번을 가보아도 다시 가보고 싶은 설악산 단풍이다. 얼마나 단풍이 활활 타면 “사람들 불끄러왔다 불구경만 하고 간다” 하는가
문장이 막힘없이 거침없이 내달린다. 노장다운 문체와 달관의 경지를 본다.
하늘 땅 거침없이 그 누구 간섭 없이
우주를 둘러 안고 모두가 내 것인데
큰 것도 원한 적 없다 내방 한 칸 어딘가.
-조영희의 <바람의 방>전문
조용희 시인의 <바람의 방> 단수이다.
조시인은 이번 겨울호에 ‘바람’ 세 편을 연작으로 내놓고 있다. 대개 바람은 호흡, 영감, 영혼, 성령을 상징하는 단어다. 여기서 시인이 내놓은 세 편의 바람은 정작 무엇을 의미할까?
‘아침바람’은 매서움을, ‘찬바람’은 고독을, ‘바람의 방’은 자유를 뜻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시인은 말한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세상에 고리를 걸었다. 풀리지 않는다. 옹쳐진 시간을 잠시 돌려놓으며 나에게 묻는다. 세상은 굳어 있어도 시작(詩作)은 말랑말랑하다고”
코로나로 굳어 있는 일상을 벗어나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바람처럼 훨훨 날고싶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널뛰듯 치솟고 있다. 세상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부조리의 극치라 할까. 큰 것도 원한 적 없이 내 방 한 칸이면 족한데 어디에도 없다 한다. 차라리 무위(無爲)하고 싶다는 자유분방한 도전이다.
직감(直感)을 강한 톤으로 표현하고 있어 호소력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볼때기 살짝 쥐며 요놈 어찌할까
선생님 너털웃음 원 펀치 깜찍한 흉내
침침한 간이교실도 좋아라고 웃어댔다
빗자루 싸움도 깔깔대며 흥에 겨운
화장실 벌 청소마저 신명으로 풀어내던
가난도 괜찮은 가난 손에 쥔 듯 환하다
-추창호의 <반추·4>일부
추창호 시인의 <반추·4> 일부이다.
먼먼 가난했던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과의 추억담이다. 세 수중 두수만 살피기로 했다. 정황으로 보아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인 듯싶다.
어린 시절 선생님과 교실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사실 그대로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선생님 너털웃음’ ‘원 펀치 깜찍한 흉내’ ‘빗자루 싸움’ ‘화장실 벌 청소’ 등의 그 당시 생생한 사건들을 실감나게 표현한 대목들이 눈길을 끈다.
당시 추 시인의 담임선생님은 누구였을까. 먼먼 후일까지 존경을 받고 있으니 부럽기만 하다.
특별히 둘째 수 종장 ‘가난도 괜찮은 가난, 손에 쥔 듯 환하다’의 대목은 특별한 감각과 밝은 이미지로 분위기를 신선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발끝을 세우고 손을 높이 흔들어도
고개를 길게 빼고 소리쳐 불러 봐도
아무도 눈길 안 준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따스한 봄 입술이 잠자던 널 깨웠고
지나가던 바람이 젖 먹여 키웠나니
저절로 피어난 꽃은 이 세상에 없나니
-홍수헌의 <쑥부쟁이>전문
쑥부쟁이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가을에 산과 들에서 흔하게 피는 꽃이다.
홍수헌 시인은 첫수에서 손을 높이 흔들고 소리쳐 불러도 아무도 눈길 한 번 안준다고 슬퍼하지 말라 하고, 둘째 수에선 봄의 입술이 잠자던 너를 깨웠고 바람이 널 젖을 먹여 키웠느니 저절로 세상에 피어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잘 것 없는 작은 풀꽃 한 송이도 저절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루어 졌음을 강조한다. 그러니 소외되었다고 슬퍼하지 말며 용기와 희망을 갖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격려한다.
홍 시인은 작은 풀꽃 한 송이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생명의 경외감(敬畏感)이 누구보다 절실하다.
폭포수 소리를 뚫고 새 하늘 바라보며
목이 쉰 듯 맑은 소리 한까지 흐드러져
임방울 심장의 소리 쑥대머리 뜨겁다.
-김옥중의 <득음(得音)>전문
득음(得音)이란 노래나 연주 솜씨가 뛰어난 경지에 이른 경우를 말한다.
김옥중 시인은 판소리의 대가 임방울(林芳蔚) 명창의 소리를 기리고 있다. 임방울 명창은 춘향가에 뛰어난 득음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이다. 그가 부른 쑥대머리는 판소리 춘향가중 한 대목으로 춘향이가 옥중에서 이도령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니 얼마나 애절할까.
감옥에 갇힌 아녀자의 신세를 오죽하면 부서진 쑥대머리라 했을까. 야생화가불우한 운명에 처하여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부르짖는 처절한 신음소리일 게다. 그 한의 깊이가 바다 속보다 더 깊으리라.
그러기에 김 시인은 임방울 명창의 소리를 ‘폭포수 소리를 뚫고’ ‘한까지 흐드러져’ ‘심장의 소리가 쑥대머리 뜨겁다’ 하였다. 그 득음의 울림과 깊이와 경지를 알만하다.
김삿갓 흔적 따라 죽장에 삿갓 쓰고
정선 땅 찾아드니 산천은 말이 없고
그 시절 해학과 풍자 객창감이 앞서네.
-이재웅의 <삿갓 시인> 전문
이재웅 시인은 김삿갓 방랑시인의 행적을 따라 강원도 영월, 정선을 찾아 그의 방랑시절, 자취를 따라가 본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다. 그는 왜 평생 삿갓을 썼을까. 그는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투항한 김익순(당시 선천 부사)을 비판하였다. 후일 김익순이 자기 친할아버지임을 알고 자책하여 하늘에 죄를 지었다하여 벼슬을 버리고 삿갓을 쓰고 평생을 방랑하면서 방랑시인이 되었다.
이 시인은 지금 정선에서 삿갓 시인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당시 방랑의 시절로 돌아가 김삿갓 객창의 여수(旅愁)에 젖어본다.
여든에 찻잎 따서 무슨 영화 누리것노
안 죽은 깨 꿈직이고 땀 흘린 깨 밥 생기고
아무나 불상타 마라 제 좋아서 하는 일
-최골잘의 <놉일>전문
최골잘 시인의 <놉일>전문이다.
놉일은 날품팔이 일꾼이 하루하루 품삯을 받으며 하는 일을 말한다. 여든 살에 찻잎을 따는 일이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죽지 않으니까 몸을 움직여 일하고, 땀 흘려 일하니까 밥이 생기니 나를 불상타고 동정 하지마라. 내 좋아서 하는 일이다. 는 내용이다.
화자는 행복하다. 팔순 된 노령(老齡)에도 그만큼 건강해서 일을 하니 얼마나 즐거운가. 첫째는 건강해서 좋고 둘째는 하는 일이 있으니 행복하다. 또한 용돈이 생기니 자식들에게 부담을 덜어 주어 떳떳하다.
이 작품은 남도의 방언을 활용하여 구수하게 시를 구성하고 노인들의 건강한 생활을 격려한 점이 돋보인다.
오늘도 섬 그리기 바다부터 그립니다
분명 섬을 그렸는데 어머니 얼굴입니다
파도는 어머니 주름살 펴질 날이 없습니다.
분명 바다를 그렸는데 어머니 가슴입니다
무자년 울음자국이 멍울 되어 섬입니다
섬사람 섬 그리기는 온통 퍼런색입니다
고성기의 <섬 그리기>전문
섬에서 사는 섬사람들은 섬은 보이지 않고 바다만 보인다. 바다는 어머니 얼굴이요, 파도는 어머니 주름살이란다.
분명 바다를 그렸는데 어머니 가슴이요, 어머니 울음자국이 멍울 되어 섬이란다.
고성기 시인의 어법은 남다르다. 남다르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섬과 바다를 어머니 얼굴과 어머니 가슴으로 환치하면서 어머니의 울음자국 곧 멍울로 점층 되는 고도의 시법(詩法)이다. 따라서 작품의 핵심어는 어머니의 얼굴이요, 어머니의 가슴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울음자국 곧 멍울이다.
어머니처럼 위대한 분이 또 있을까. 어머니는 존경받고 사랑 받아야 할 자애(慈愛)의 표상(表象)이다. 울음자국이 멍울 된 섬이다.
몇 남은 잎사귀가 손목을 놓으려 하네
빗물 반 낙심 절반, 진눈깨비 내리는 날
하향길 내 발등으로
눈송이도
내리네.
핑그르르 낙엽 한 장이 넌센스 퀴즈 같아
남김없이 가지 비운 고령의 팽나무가
품었던 까치둥지의
서까래를
내리네.
고정국의 <초겨울 산책길에>전문
고정국 시인의 이 작품은 가벼운 눈송이가 사뿐사뿐 내리듯 가만가만 읽어야 초겨울 맛이 난다.
시인 애머슨은 “시인이 크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없다. 시는 사물들로 말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고정국의 시가 그러하다. 시인이 직접 말하지 않고 작품에 동원된 사물의 시행 하나하나, 시어 하나하나 행간에 숨어 있는 비의(秘意)가 말할 듯 조용조용 ‘초겨울 산책길이란’ 주제를 떠올리고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랴.
첫수 ‘빗물 반 낙심 절반, 진눈깨비 내리는 날’과 둘째 수 ‘품었던 까치둥지의/서까래를/내리네’의 대목은 관찰과 표현에서 극치를 이룬다.
내 자란 오동마을 나서 보는 이 봄날에
허청허청 싸리재를 해질녘 내려설 때
들머리 보랏빛 오동꽃 등불 들고 마중 오네
-권남이의 <고향집 가다>전문
권남이 시인이 고향집을 찾아간다. 고향집은 의례 오동나무가 서 있고 오동꽃이 핀다. 그것도 보랏빛이다. 딸을 낳으면 아버지는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이 자라서 시집갈 때가 되면 오동나무도 자라 그 오동나무를 베어 혼수로 장을 마련했다. 그런 연유인가. 아무튼 고향집 마당엔 오동나무가 서 있었다. 이 작품의 핵심어는 오동꽃이다.
시조가 막힘없이 경(境)을 연다. 거침없이 읽히는 경쾌한 보법이다. 종장 ‘들머리 보랏빛 오동꽃 등불 들고 마중 오네’의 대목은 일품이다. 그러나 중장 ‘허청허청’시어는 다리에 힘이 없어 잘 걷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양새인데 고향집을 찾아가는 그리움의 발길에 적절하게 사용한 단어인가를 좀 더 생각했으면 어떨까?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며 달려 나와
고샅길 바투 앉은 5일장 할머니들
달달한 커피 한 모금 반가움은 배가 되어
산나물과 텃밭채소 수제두부 도토리묵
친근한 사투리에 골목이 들썩들썩
할매들 느른했던 삶 생기가 돋아나고
모둠밥 갈라먹으며 세상살이 귀동냥에
사람구경 용돈 벌이 재미진 한나절이
오늘도 욕심 부리지 않고 팔 수 있는 만큼만
자식 보듯 손주 보듯 그리움 감긴 눈빛
마수걸이 흥에 겨워 번지는 환한 미소
헛헛한 마음 불리며 물드는 엄마 냄새
-나상숙의 <풍경-골목장터>전문
나상숙의 네 수로 된 연시조 <풍경-골목장터> 전문이다.
5일장 할머니들의 사람 사는 모습을 구성지게 그려냈다.
고샅길 바투 앉아 목판을 앞에 놓고 달달한, 한 모금 커피는 얼마나 맛이 있을까. 산나물과 텃밭 채소, 수제두부, 도토리묵 등 벌려 놓고, 친근한 사투리로 골목이 들썩들썩 떠드는 모습도 오히려 생기가 도는 듯 진풍경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사람구경도 하면서 손주들에게 줄 용돈 벌이만큼만 팔면 된다. 마수걸이가 좋으면 그날은 운수 대통하는 날, 진종일 헛헛한 마음도 잊은 채 하루해가 즐겁게 물든다.
천의무봉(天衣無縫), 어디 꾸민 데가 한 솔이나 있는가. 시골 5일장 진솔한 풍경을 소박하게 그려냈다. 가편이다.
울밑에 백일홍이 붉도록 피어 있고
뒤뜰의 남새밭에 초록잎 물결치고
닭장 속 붉은 벼슬이 부산하게 홰를 친다.
옛스런 종탑 있는 교회당 담장으로
흐르는 찬송소리 여치도 합창한다.
망사창 너머로 보는 금빛들판 가을이다.
-남복희의 <외갓집>전문
어머니의 친정이 외가다. 외갓집 하면 그저 거리감이 없이 가까운 느낌이다. 왜 그럴까? 어머니의 고향이기 때문이리라.
울밑에 백일홍이 붉도록 피어있고, 뒤뜰 남새밭에 초록이 물결치고, 닭장 속 붉은 벼슬이 부산하게 홰를 친다. 종탑이 서 있는 교회당 담장으로 새어나오는 찬송가 가락을 타고 망사창 너머로 금빛 들판이 보인다. 아! 가을이다.
남복희 시인은 외가에 가서 황금 들판 가을을 만끽한다. 행복한 시간이다. 한국의 가을풍경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가을 이미지를 동화책을 펴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외갓집은 항상 단란하고 정겹다. 종탑이 서 있는 마을은 사랑과 평화가 넘친다. 공감각으로 움직이는 마을풍경을 묘사한 한 폭의 동영상이다.
당신을 보냅니다. 당신이 원하시니
밤새워 눈이 내려 서러움 눈에 묻고
내가 줄 마지막 사랑 이별밖에 없어서.
임만규의 <마지막 사랑>전문
임만규의 <마지막 사랑> 전문이다.
당신처럼 소중한 사람 있는가. 당신은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할 애인이요, 영원한 벗이요,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요, 곁에서 지켜주어야 할 전우다. 그래서 처음으로 인연이 된 아내를 조강지처(糟糠之妻)라 하였고, 이를 떠나보내면 산천초목이 운다 하였다.
그러한 당신을 마지막 작별하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서럽고, 아프고, 허전했을까. ‘밤새워 눈이 내려 서러움 눈에 묻고/내가 줄 마지막 사랑 이별밖에 없어서’ 당신을 보낸다고 눈물을 삼킨다. 서러운 대목이다.
부부는 해로(偕老)해야 한다. 요즈음은 백세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금혼식은 물론 회혼식(回婚式)까지 아니 더 세월을 넘어 건강하게 평강을 누리다가 하늘에서 부르시는 날 조용히 가면 더욱 행복하겠다.
따뜻한 눈빛으로 정겨운 말 한마디
손잡고 중보기도 위로의 전화 한 통
살가운 사랑만으로도 행복하고 고맙다.
-정순량의 <살가운 사랑>전문
답답하고 우울한 코로나 시대 정순량 시인은 사랑 시 한수를 내놓고 있다. 정시인은 예수님 향기를 먹고 사는 신앙인이다.
지난 해 가을 팔순을 기념하는 문집 <나이듦의 기도>를 출간해 이웃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살가운 사랑! 제목부터 살갑다. 따뜻한 눈빛, 정겨운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희망과 행복을 준다. 중보기도, 위로의 전화 한통이 약이 되고, 건강이 된다.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라도 이처럼 살가운 사랑을 베풀 때에 이웃은 행복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최고의 백신이다.
끝으로 부산전당문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보자.
태어난 여린 햇살 수평선 위에 누워
어두음 밀어내며 짠물을 움켜쥐네
섬과 섬 생명줄 잇는 배밀이가 한창이다
-심애경의 <해돋이>전문
부산 바닷가 해돋이의 장관을 잔잔한 동영상으로 찍어 낸다. 갓 태어난 햇살이 수평선 위에 누워 어둠을 밀어내며 짠물을 움켜쥔다 하였다.
부스스 태어난 여린 햇살은 갓 태어난 신생아이다. 수평선 보드라운 보료위에 누워 아기는 지금 어둠을 밀어내며 울음을 토하면서 짠물을 움켜쥐고 있다.
해돋이의 장관을 신생아의 출산으로 비유한 가편이다. 이때 해변에선 섬과 섬, 생명줄 잇는 배밀이가 한창이다. 이때부터 바다는 포구를 열고 생업을 시작한다.
심애경 시인은 부산전당문인협회를 이끄는 회장으로 수고가 많으시겠다. 건투를 빌어드린다.
열두 척 판옥선이 쳐부순 왜선 삼백
충무공 장검 앞에 뒹굴던 적장 목숨
지금도 울돌목 돌물소리 오싹하는 동경만
-심성보의 <명량대첩>전문
심성보 시인의 <명량대첩>이다. 때는 1597년, 선조30년, 왜군의 두 번째 침략-정유재란-직전이었다. 그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아 하옥(下獄)된다. 원균이 뒤를 이어 참전했으나 대패하고 전선은 점점 위기에 처한다.
이때 선조대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렀다. 이순신은 ‘임금님이시여! 배가 아직 12척이 남아 있습니다.’하고 왕명을 받들어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바다에 뛰어 들어, 왜함 300여척을 부수고 대승을 거둔다. 이것이 역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鳴梁大捷)이다.
시인은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대승을 거둔 충무공의 애국혼과 공훈을 높이 찬양하며, 지금도 울돌목 물소리가 오싹한다고 당시의 빛나는 전적 현장을 상상하고 있다.
이상 겨울호에 수록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가능하면 시인들의 평설 중복을 피하려고 시조문학이 도착하면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새로운 얼굴을 찾으면 그중 좋은 작품을 고른다.
좋은 작품이란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감동(感動)을 주는 작품이다. 감동은 시인의 진실한 삶의 체험이 작품 속에 녹아 있을 때 생기게 된다. 이것을 이율곡(李栗谷) 선생은 일찍이 ‘선명(善鳴)’이라 했다. ‘착한 울림’ 곧 이 시대를 위로하는 시조 한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댓글 야성 이도현 선생님의 심도 깊으신 이해와 논리적인 평설을 읽으면서
많이 겸손해지고 배우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됩니다.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가르침으로 오래 곁에 머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빗발 김태희 선생!
항상 고무적인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건승건필을 기원합니다.
참으로 장엄한 평설문입니다. 이 무거운 짐을 다 지고오신 야성 이도현 고문님이 계셔서
우리 모두 한마당 잔칫상을 받습니다.
그 많은 작품을 때마다 읽으시고 명문의 평설을 얹어주시니 시조감상 감명깊습니다.
시조문학에 평을 제공해 주시고 우리협회 카페에 풀어주시니
마치 흥부 아이들이 박을타서 난데없는 잔치를 벌리는 듯 합니다.
읽고 또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복을 누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설을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이왕이면 우리협회 <시조사랑>에 실린 작품을 평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선생님의 평을 보면서 시조 창작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시조사랑>이 고품격의 계간지로 발전되라 생각합니다.
박헌오 이사장님! 김흥렬 명예이사장님!
두분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과찬해 주시고 격려해주심에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 시대에 더욱 건승건필하시도록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