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카씨!"
"~아?"
짐짓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멍하니 있던 남자는 화들짝 놀라 자신을 부르는 이의 얼굴을 보았다.그의 앞에서 은발머리칼의 왼쪽 눈에 상처가 난 오드아이의 남자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꼭 `나 삐져버릴겁니다',그자체.
성인 남자치고 귀엽다고 느껴지는 그런 표정에 이루카는 저도 모르게 푸웃,하고 가볍게 웃어버리고 말았다.그러나 그 귀엽다고 생각하고 비어져 나온 웃음이 상대의 신경을 건드렸는지 남자는 울컥,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루카를 꼬옥 안았다.
"그 웃음,뭡니까?"
"아하하,죄송합니다,카카시 선생님."
이루카는 자신을 꼬옥 끌어안은 남자에게 가볍게 미소지어 보이고는 여러 세월동안 닌자생활로 다듬어진 탄탄하다싶은 남자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었다.샤워한지 얼마 안 되어 물기가약간 남아 서늘한 느낌이 웬지 좋다.
머리칼이 살짝살짝 흔들릴 때마다 기분좋게 풍겨오는 샴푸향기.
샴푸향기와 함께 간간히 섞여서 들려오는 심장고동소리는 한 층 더 편안한 느낌이 되게 해준다.
남자는 기대오는 그를 보며 짐짓 놀라다가 이내 미소지었다.그리곤 기대어서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입술에 가벼운 베이비 키스.
"..에."
그의 베이비 키스에 눈을 반짝 뜨고서는 자신을 보는 까만 눈동자가 사랑스럽다.카카시는 푸,하고 웃었다.그리고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것은 말로 하기보단 아무래도 행동이,라는 자신의 일념하에 카카시는 그의 검은 빛의 결 좋은 머리칼에 얼굴을 부볐다.
한가로운 오후다.
이루카와 카카시는 오랜만의 휴가로 느긋한 하루를 맞고 있었다.뒹굴뒹굴,하얀 시트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하늘도 반짝반짝 빛나고,햇살은 기분 좋기만 하다.적당히 산들거리는 약간 차갑다 싶은 바람도 상쾌하다.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
주위의 모든 것이 평화롭기만 하다.
새근새근,연인은 그간의 업무덕에 노곤해진 것인지 어느새 하얀시트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자는 모습이 다 큰 성인─그것도 암부 출신에 엘리트인 상급닌자─인데도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이루카는 피식,하고 웃었다.그리고 귀여운─그만 그렇게 생각하는─연인의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기곤 살짝 그의 옆자리를 빠져나왔다.`잘 자요.',라는 듯한 보통 아이들에게 대하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오늘은 심해어에 대해서..」
"..아."
어디선가 나는 약간 기계적인 목소리에 이루카는 문득 TV가 켜져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TV를 끌까 하다가 카카시씨도 주무시니까 TV나 볼까,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불빛을 내는 네모난 기계 앞에 앉았다.
「심해어는 200M이상의 빛이 전혀 투과되지 않는 수심에 사는 어류로써,종류는 먹장어류,아귀목,뱀장어목,연어목등이 있으며..」
전형적인 생물 탐구방송 형식.낚시꾼 차림의 사람들이 다니고─다른 점이라면 그 실을 차크라로 뽑아낸다 라는 것─어류를 조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화면 속에서 이동을 했다.심해어를 잡으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련의 동작들이 저들의 훈련정도를 알게 한다.어류를 포획하는 분야의 일류 전문가들.
이루카는 오른 손으로 턱을 괴고 편안한 자세로 TV속의 그들의 분주한 모습을 지켜봤다.몇몇 동작이 이어지고,이윽고 그들에게 붙잡힌 운이 없는 심해어 한 마리가 그들의 손에 건져 올라왔다.눈이 거의 퇴화하고 입은 커다란 것이,어두컴컴한 심해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니 마냥 어리둥절해서 지느러미를 꿈틀대며 이따금 입만 뻐끔뻐끔거린다.기괴하게 생겼다.
건져진 심해어를 보며 리포터가 쉴새 없이 떠들어 댄다.
「이것은 심해어중의 하나인 드래곤 피쉬로,수심 2000M에서도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심해어입니다.보시다시피,환경에 따라 눈이 퇴화하고,먹이가 희박한 곳에서 먹이를 보다 많이 섭취하려 입이 거대해졌습니다.심해어는 이렇게 대게 환경에 따라 눈이 퇴화했으며─.」
이루카는 웬지 그 심해어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자신만의 어두운 세계 속에서 사는 심해어가.
이루카는 순간 몸을 떨었다.
어두운 기억과,사랑받고 싶어서,주목받고 싶어서 저질렀던 수많은 장난들.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편견어린 눈초리와 숱한 손가락질 뿐.그 날카로운 시선은 성인이 된 지금도 꽂혀서 가슴을 찔러온다.괜찮다고,이젠 어른이 되었고,이젠 모두가 있어서 괜찮다고.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집은 항상 어두웠다.자신이 스스로 불을 밝히지 않으면,결코 밝아질 수 없는 곳이었다.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도 없으니까.
"..카카시씨와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는 자신만의 어두운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그와 밝게 웃고 있어도,가깝게 있어도,어딘가 가로막혀 뻗어갈 수 없는 기분.
보이지 않았다.너무나도 어두운 심해라서,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고,사실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눈을 없애버렸다.
마음이 퇴화해갔다.
왜 그런지 문득 퇴화해버린 눈이란 상처가 아려왔다.
"..욱."
이루카는 저도 모르게 심장 위를 쥐어뜯었다.
심장부근이 미칠 듯이 아려오는 것만 같았다.이루카는 스스로를 어떻게든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심장이 조일 듯 답답해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이마의 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괜찮아,괜찮아,괜찮아.이젠 괜찮아. ..그래,괜찮아."
그래,아무것도 아니고 아무일도 아니야.
눈이 감기고,차차 어둠이 몰려온다.이 어둠이 두려우면서도 편안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일까.상처가 가라앉는 느낌.
하지만 몰려오는 고독함과 슬픔.
이루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웅크리고 앉아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그리고 그 버릇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따금씩 나타났고,슬프거나 힘들고,고독한 느낌이 들 때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웅크려 앉았다.
`마음이 편해지곤 했지.'
하지만,지금은─.
"..이루카씨?"
이루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창백해진 얼굴로 살며시 눈을 떴다.
바로 앞에는 놀라움과 걱정이 합쳐진 그런 표정의 카카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루카는 여전히 두려워하고있었다.그러나 무엇에 떨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윽고 카카시는 놀란 표정대신에 연민─이랄까,일종의 동병상련같은 감정이랄까─의 표정으로 이루카를 보고는 그를 꼬옥 안았다.이루카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약간 부끄러워져 카카시를 살짝 밀어내려했다.
"..아,괘,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보다는,그냥 이대로,잠시만 기대어 있어 주세요.제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니까요."
"... ..."
아,심장박동소리가 들린다.마음이 편해지는 느낌.
이루카는 자신을 안고있는 남자의 품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그리고,다시 눈을 뜨고는 주변을 바라보았다.방금 전 까지만해도 어두워보였던 세상이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어두운 그림자 따윈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꼭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그런 어두웠던 어린시절의 꺼진 불빛 마저도─.
"...실은 무서웠습니다."
"... ..."
"...어두운 곳에서 눈마저 퇴화해버린 심해어가."
"...이루카씨."
"─꼭 저 같았어요.그래서 너무 무서웠어요.퇴화해버린 나의 눈이,세상으로 끌려나온 순간 어떤 모습일까하고.불꺼진 방안의 시커먼 어둠이 다시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서─."
"... ..."
카카시는 가슴아픈 표정으로 이루카를 보다,이내 그를 당겨 입맞췄다.입술과 입술이 겹쳐지고,혀와 혀가 섞여들어간 후 잠시 뒤에 카카시는 입을 떼었다.이루카의 눈은 약간 동그래져있었다.카카시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두움은,당신만의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카카시씨?"
"...어릴 적,엘리트였던 저는 붕뜬 존재였습니다.사스케와 비슷한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그리고 혼자였습니다."
"... ..."
"당신에게 불꺼진 집이 두려운 것처럼,저에게도 고독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하지만,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당신과 함께니까요.
"...아.."
"...음,심해어도 둘이라면,외롭지도,슬프지도 않은 존재이겠죠."
그는 이내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긁적이고는 싱긋 웃었다.그런 그의 멋쩍음이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럽다는 생각에 이루카도 미소로 화답하였다.그래,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깊은 바닷 속에서 홀로 부유하는 심해어가 아니었다.
눈을 뜨고있는,깊은 바닥이 아닌,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 아닌,밝은 빛과 푸르름 속에서 살아있는 눈을 가진,결코 외롭지 않은─.
이루카는 카카시의 품에 살짝 기대고는 말을 이었다.
"...카카시씨."
"─네,말씀하세요,이루카씨."
"..고맙습니다."
이루카는 볼에 약간 홍조를 띄우며 빙긋웃었다.카카시 또한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제 심해따위는 두렵지 않다.둘이기에 두렵지 않은 것이다.둘이라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를,온몸과 마음으로 절감하게 되었다.
기쁨에 겨운 활짝 갠 미소로, 둘이라는 것에 감사하리라.
그들은 한 없이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