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선과 마찬가지로 판옥선도 배밑이 평평한 평저선이었다. 조선 후기 기준으로 판옥선중에서 가장 큰 상선(上船)은 크기가 19.7~21.2m, 일반적인 판옥선은 크기가 15.2~16.6m였다. 길이는 임진왜란~17세기 기준으로 대선은 본판(배밑)이 22.4m~23.17m, 상부는 26.13m~27.03m였으며, 차선은 배밑이 17.60m~20.68m, 상부는 20.53m~24.12m였다. 가장 작은 차차선은 배밑이 15.20m~20.2m, 상부는 17.73m~23m정도 되었다. 조선 후기 기준으로는 상선은 배밑이 27.7m, 상부는 32.8m였으며 일반 판옥선은 배밑 20.8m, 상부는 23.4m였다. 배수량은 불확실하나 최소 80톤~최대 280톤 내외로 추정된다.
구조를 보면 일단 네모진 통나무 15개를 이어 붙여 배밑을 만들고, 양현에 판재 7쪽 하나하나에 서양의 클링커 이음과 유사하게 턱을 따서 이를 짜맞춘 뒤 나무못을 박아 고정시켜 뱃전을 형성했다. 이물비우는 직판 널빤지로 15쪽을 이어 붙이고 고물비우와 양현을 붙인 다음, 뱃전 위에 멍에를 걸고 그 위에 귀틀을 짜고 겻집을 깔아 1층 갑판을 만들었다. 노는 양쪽 뱃전에 있는 멍에 뺄목에 각각 9척씩 걸었다.
여기에 멍에 뺄목 위에 신방도리를 걸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다음, 상장 위에 이물과 양쪽 뱃전을 따라가면서 여장이 상장의 언방 위에 뱃집 멍에를 걸고 널빤지를 깔아 2층 갑판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일종의 지휘소인 장대와 이물돛대, 고물돛대가 있다. 이물돛대와 고물돛대는 뉘었다 세웠다 할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었다. 고물꼬리에는 널판을 깔지 않고, 난간이 없이 비어 있다. 여기에 선미옥란을 설치해 대소변을 보거나 뭍에 오르내리게 할 수 있었다. 화장실 겸 현문
이처럼 갑판이 2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요원인 격군(格軍)은 1층 갑판에서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고, 전투요원들은 2층 갑판에서 방해받지 않은 채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승선인원은 시대와 크기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실록에는 50여명이 탑승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선조실록 1606년 12월 24일 기록에는 "거북선은 전쟁에 쓰기는 좋지만 사수(射手)와 격군의 숫자가 판옥선의 125명보다 많아 활을 쏘기에 불편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보통 선장 1명, 신호용 깃발로 신호를 다루는 기패관 2명, 선박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훈도 1명, 선박 창고를 관리하는 선직 2명, 항해 요원으로 추정되는 무상 2명, 키를 잡는 타공 2명, 돛줄을 조정하는 요수 2명, 닻을 다루는 정수 2명, 군졸들의 군기와 질서를 바로잡는 포도장 2명, 활을 쏘는 사부 18~22명, 화약과 탄 장전을 맡은 화포장 10~14명, 화포를 맡는 포수 24~26명, 노를 젖는 격군 100~120명이 승선했으며 조선 후기에 배가 커지면서 약 200명이 탑승한 경우도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