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청계천 공사 현장을 찾았을 때(月刊朝鮮 2005년 4월호 「청계천 르포」 참조) 청계천 바닥에는 바윗덩어리들만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지금 그 바닥으로 1급수 맑은 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정식 개통은 오는 10월1일. 현장 사무소 관계자들은 『안전사고에 대비해 청계천 진입로를 막아 둔 상태』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미 붐비고 있었다. 낮에는 노인들이 많았고, 밤에는 연인들이 많았다. 노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청계천을 관광하고 있었다. 노인들 대부분은 『종묘 공원에서 놀다 왔다』고 했다.
연인들 대부분은 『종로 인근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왔다』고 했다. 애인과 함께 온 한 남성은 『어두컴컴해서 왔다』고 했다. 개통 후에는 조명이 켜진다고 하자 그가 『아쉽다』고 했다.
점심시간에는 광화문·을지로·종로 일대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이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물이 흐르는 청계천으로 흘러 들었다. 인근에서 각각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한 30代 커플은 앞으로 매일 데이트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했다.
한 20代 여성 회사원은 『청계천이 개통되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와서 물소리를 들으며 먹고 싶다』고 말했다. 청계천은 이미 직장인들의 쉼터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벤치 없는 게 아쉽다
현장 사무소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청계천 산책로를 미리 걸어 보았다. 지난 9월4일 오전 10시, 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에서 출발했다. 일요일이었다. 시민들은 이미 청계천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1공구 현장 안전관리책임자인 李鍾培(이종배·40) 차장은 『혹시 사고가 날까 진입로를 폐쇄했는데, 주말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막을 수 없을 지경이다』고 말했다. 주말 나들이에 나선 한 가족을 만났다.
서울 신길동에서 왔다는 김경환(38)·김미경(32)씨 부부. 두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서울 토박이라는 김경환씨는 청계천에 물 흐르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한다.
『일부러 찾아왔어요. 주말에 집에만 있기가 그래서 애들 데리고 나왔죠. 참 잘 만들었네요. 서울에 이런 데가 있다는 게 서울 시민으로서 참 자랑스럽습니다』
김씨는 『다리 밑에 노숙자들이 모여 잠을 자거나, 공원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미경씨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걷다 보니 벤치가 하나도 없네요. 좀 앉아서 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중간 중간 벤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길에서 만난 40代 여성 역시 벤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벤치가 없는 게 좀 아쉽긴 한데 참 아름답게 잘 만들었어요. 사람이 만들었다는데 자연 하천처럼 풀도 많고요. 딸이랑 같이 걷고 싶네요. 그리고, 제발 애완동물들은 안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요. 이 아름다운 길에 개똥이 널린다면 다신 오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여성들은 『벤치가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고, 남성들은 『자전거타기엔 길이 좁은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쓴 소설도 나와
서울 종로구 서린동과 중구 다동을 잇는 광통교가 지난 8월23일 청계천에 복원, 개통됐다. 청계천 복개로 모습을 완전히 감춘 지 47년 만이다. |
광통교가 복원됐다. 광통교의 원래 위치는 現 광교 부근. 종로와 을지로를 넘나 드는 차량 통행이 많아 광통교는 상류 쪽으로 옮겨져 복원됐다고 한다. 청계천에는 모전교·수표교·황학교 등 22개 다리가 새로 놓였다.
몇몇 소설가들이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 소설가 김별아는 영도교를 소재로 「영영이별 영이별」이란 소설을 썼다. 서하진의 소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오간수교를 소재로 했다. 작가 11명이 청계천 다리 11개를 소재로 소설 한 편씩을 쓸 예정이라고 한다.
다리 난간마다 사람들이 기대어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다리는 역시 광통교. 사람들이 광통교 주위에 많이 모여 있었다. 광통교 역사 설명판 앞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둘러서서 「도성에서 가장 넓은 다리였다」는 대광통교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었다.
서울市가 조선시대「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세계 최대 규모 도자벽화로 만들어 지난 9월2일 제막식을 열었다. |
해방둥이 이기종씨, 『세상 참 좋아졌다』
광통교 난간에 해방둥이(1945년생) 이기종씨가 기대어 서 있었다.
도봉구 방학동에 산다는 이씨는 청계천을 보러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왔다고 한다. 청계천에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이씨가 지난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이씨는 『1958년에 자유당 정부가 시작한 청계천 복개공사를 1977년 「박통」이 마무리지을 때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청계천은 똥물이었어. 부근 하코방(판잣집)에서 나오는 똥오줌이 청계천으로 그대로 흘러들었거든. 냄새가 말도 못했지. 이북영화에 남한 나올 때면 꼭 청계천 동네가 나왔다고 하잖아. 얼마나 못 사는 모습이었으면 그랬겠어. 이렇게 좋아질 줄은 몰랐네. 공원처럼 정비가 참 잘 됐어. 이 물은 지하수 끌어올린 물인가. 깨끗하고 참 좋네. 세상 참 좋아졌다』
청계천 물은 한강물이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청계천에 흐르는 물을 보고 『지하수다』, 『한강물이다』 서로 자신이 맞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뚝섬에서 한강물을 끌어올려 정화하고 다시 그 물을 양수기로 태평로까지 끌어올려 청계천으로 인공 방류한다.
비가 내리면 한강에서 잉어가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지난여름에는 청계천에 그물을 던지는 시민도 있었다고 한다. 노인들은 신이 났다. 휴일에 갈 데가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청계천 인근에는 전철역이 많다.
을지로의 2호선, 종로의 1호선, 광화문의 5호선. 노인들은 종묘에 있다가 낙원 상가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걸어서 청계천으로 놀러 왔다.
연희동에서 왔다는 1940년생 염대길씨. 한번 웃으시더니 젊은 시절 연애담을 꺼낸다.
『동대문운동장 옆에 기동차(전차) 종점이 있었어. 애인이랑 그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놀러 간 적이 있지. 청계천에 똥파리가 많았거든. 똥물에 있던 파리가 기동차 안에도 가득했어. 기동차 안에 사람 반, 파리 반이야. 그렇게 더러웠던 물이야. 뚝섬에 가면 수영도 하고 좋았지. 아, 맞다, 그때 뚝섬에서 데이트하다가 육여사가 피살됐다는 라디오 방송도 들었지』
옆에 있던 강씨가 거들었다.
『옛날 청계천에는 「주먹」도 많았어. 이정재, 임화수 있잖아. 다 청계천을 주름잡던 「주먹」들이야. 동대문에 있던 임화수가 청계천에 나왔다 하면 벌벌 떠는 사람들도 많았지. 여기가 그랬던 곳이라네』
이들은 청계6가에 있었다는 「허파집」을 기억했다. 이들은 『소 허파를 삶아서 소주랑 같이 파는 집들이 몇몇 있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이기종씨는 『이명박 아니면 못 만들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처음에 (청계천 복원) 반대했어. 이렇게 잘 만들 줄은 몰랐지. 그저 고가도로나 걷어 내는 건 줄 알았거든. 그때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김민석도 안 된다고 했잖아. 이명박은 된다고 계속 우겼고. 신통하네. 자기 임기 내에 공사 마쳤다는 게 참 신통해』
자전거타기엔 위험한 산책로
지난 6월27일 장맛비가 잦아들면서 청계천 물가에서 한 시민이 잉어를 그물로 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
어르신들의 화제가 정치 얘기로 바뀔 때쯤 다시 하류를 향해 걸었다. 애초에 자전거를 타고 청계천변을 달릴 계획이었다. 사전 답사를 할 때 「자전거 타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험했다. 청계천변은 길 자체가 좁아서 자전거 도로로 적합하지 않았다.
좁은 길에서 자전거는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역시 군데군데 설치된 교각에 머리를 부딪힐 염려가 있다.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등 휠체어를 제외한 모든 바퀴 달린 기구는 청계천변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청계천은 오직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걸으면서 보고 즐기는 공원이다.
노량진에서 왔다는 한 50代 남성의 말이다.
『제가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합니다. 노량진에서 자전거 타고 강변을 달리다가 잠수교 건너면 「바람의 다리」를 넘어서 뚝섬 「서울숲」까지 연결되거든요. 서울은 자전거타기에 참 좋은 도시죠. 근데 여기(청계천)는 자전거가 다니면 안 될 것 같아요. 걷는 사람들, 특히 반사 신경이 느린 어르신들은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위험요소는 자전거뿐만이 아니다. 청계천 양 옆으로 2차선 자동차 도로가 있다. 자동차들이 좁은 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도로 폭이 좁기 때문인지 불법으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자동차 제한속도를 정하든지, 무단횡단을 뿌리 뽑든지 인명 피해를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공구 상가가 늘어선 청계3가부터는 불법주차도 판쳤다. 퀵서비스 배달 오토바이들이 사람이 건너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번잡한 동대문시장 부근은 도로가 아니라 골목이었다. 무단 횡단자들이 너무 많아 대림산업 현장 사무소 관계자들은 「무단 횡단을 하지 말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청계천 도로 곳곳에 26개나 붙였다고 한다.
횡단보도에 서면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로 형태는 바뀌었지만 신호등 위치는 예전 그대로였다. 을지로 방면 도로에 섰을 때 종로 방면 도로에 있는 신호등은 사람들의 눈에 띌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았다. 언제 파란불이 켜지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무심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신호등을 지키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상황이었다. 행인이 차에 치일 뻔한 위험한 순간도 여러 차레 목격됐다.
『부실공사는 없다』
서정연(여·27)씨는 우표책자를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그는 『청계천 경관이 아름다워 새 우표책자 주제를 「청계천」으로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삼일교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막혀 있던 고가도로만 보다가 물이 흐르고 확 트인 모습을 보니 새롭습니다. 광통교 부근이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아쉬운 점도 있어요. 횡단보도가 별로 없고, 있어도 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나 자동차나 신호를 잘 안 지켜요. 사실 신호등이 잘 보이지도 않고요. 무서워서 길을 못 건너겠어요』
서씨는 『2년 만에 공사를 끝냈다는 게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큰 공사를 어떻게 2년 만에 끝냈는지 의심스럽기도 해요. 부실공사한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노인들 중에는 『「박통」이 다시 살아나도 못 할 공사』라고 극찬한 사람도 있지만, 20~30代 젊은이들 중에는 부실공사를 걱정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대림산업 李鍾培 안전관리팀장은 『부실공사는 없다』고 말했다.
『성수대교가 붕괴된 이후로 부실공사는 한국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지켜보는 사람만 하루에 수십만 명에 달합니다. 부실공사는 불가능해요. 만약 부실공사가 있었다면 감리·감독 단계에서 다 적발되고 서울시가 아예 인수하질 않습니다』
쓰레기 무단투기 많아
청계천 복원공사 때문에 원형탈모 증세까지 나타났다는 李팀장은 『청계천에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李팀장은 『대림산업이 담당한 1공구 구간에만 시민들이 무단으로 버린 쓰레기양이 지금까지 200t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이미 1000만원을 넘었다고 한다. 주로 家電제품, 인테리어 공사 폐기물 등을 새벽에 몰래 와서 버리고 도망간다고 한다.
『한번은 청계천 某 사우나에서 보수공사를 했는지 쌀 포대로 스무 포대 이상 되는 폐기물을 몰래 버리고 갔어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쓰레기를 다 열어서 뒤졌어요. 결국 범인을 찾아서 「지금 당장 쓰레기 안 갖고 가면 신고한다」고 했죠. 바로 와서 갖고 갔습니다. 아침에 근로자들이 무단투기된 쓰레기 치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청계천 복원 공사 1공구 시공업체인 대림산업의 현장 사무소는 청계2가에 위치해 있다. 청계천 개통이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사무소 직원들은 분주했다. 한쪽 벽에 「D-24」, 다른 한쪽 벽에 「세운교 개통 D-1」 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지난 3월, 당시 공사부장이었던 하진철씨는 현장소장으로 승진했다. 석재덕 당시 현장소장은 본사로 승진 발령이 났다고 한다. 새 공사부장은 장형길(46)씨였다.
『이런 공사는 태어나 처음입니다. 도심지 공사라 빨리 끝내야 시민들한테 피해가 덜 가게 돼 있습니다. 약속한 날짜를 맞추려다 보니 여유가 없습니다. 쉬는 날이 하루도 없다고 보시면 돼요.
지난번 통수식할 때 물이 뿜어져 나오고 시민들이 환호하는데, 갑자기 고생했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밀려와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공사였어요』
장형길 부장은 『27개월 만에 공사를 문제 없이 끝냈다는 게 자랑스럽다』면서도 폭우를 걱정했다. 청계천은 200년 빈도, 즉 2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홍수가 아니면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청계천은 비가 오면 쉽게 잠깁니다. 양쪽 가까운 곳에 남산·인왕산이 있어서 빗물이 순식간에 흘러들어요. 공사 도중 폭우를 만나서 포크레인이 잠겨 애 먹은 적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물이 차 오르더라고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방송 스피커를 50m에 한 대씩 설치했어요. 물이 급격히 불어날 것 같으면 대피 방송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CCTV도 구역마다 설치했고요』
李鍾培 팀장은 상을 받았다. 『머리털 빠지게 힘든 공사였다』고 고개를 젓던 그는 상장을 보여 주며 미소를 지었다. 안전관리자로서 無재해 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70만 시간 無재해를 달성했습니다. 2004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 역시 역사적인 토목공사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李팀장의 아들은 서울 구일초등학교 3학년 정민(10)군이다.
『제 아들이 사회 시간에 자연환경 복원과 관련해서 청계천 수업을 했대요. 반 친구들한테 「우리 아빠가 청계천 만들었다」고 자랑을 했나 봐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들한테 박수를 쳐 주었답니다. TV에 청계천만 나와도 「우리 아빠가 다 만들었다」고 좋아해요. 아빠로서 보람된 일이죠』
李팀장은 『안전사고는 축구와 같다』고 말했다.
『축구는 시작하고 5분, 끝나기 전 5분에 골이 많이 나오잖아요. 안전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사 잘 끝냈는데, 마지막에 안전사고 나면 공사의 의미가 퇴색되죠.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 삽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며칠만 더 참으면 됩니다』
다시 청계천 하류를 향해 걸었다. 삼일교 부근에서부터 무려 186m에 걸친 긴 벽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는 가로×세로 30cm의 백자기 도판 4960매가 연결돼 있다고 한다.
문화재 복원 문제
서울지역에 내린 비로 복원작업이 한창인 청계9가 주변 청계천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다. |
이곳에서 현장 근로자 신성호(35)씨를 만났다. 지난 2월 전남 여수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현재 다른 인부 두 명과 함께 인근 여관에서 묵고 있다고 했다. 그는 조명 기술자다. 그는 『한 20일만 더 있으면 가족 보러 고향 내려갈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다른 현장보다 차량 소통이 더 많아서 작업하기 힘들었어요. 요구하는 것도 많았고요. 오늘도 광통교에 설치했던 조명을 다시 철거했어요. 문화재청에서 보기 안 좋다고 해서요』
청계천 복원 공사의 문화재 복원과 관련해서는 말이 많았다. 「복원」이 아니라 「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광통교 역시, 원래 있던 석재와 새로 끼워 넣은 석재가 뒤엉켜 있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한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청계천은 우리나라 문화재 중건 공사 중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신성호씨는 10년 전 청계천에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는 자동차만 다녔잖아요. 저는 토목공사 끝난 직후에 조명을 설치하러 왔죠. 처음엔 청계천이 아닌 줄 알았어요. 공사 다 끝내고 물 흐르는 모습 보니까 좋네요』
인근 여관에서 묵었던 복원공사 인부들 대부분이 공사가 끝나면서 빠져나갔고, 현재 마무리 작업에 동원된 사람 몇몇만 묵고 있다고 한다. 1공구 구간에 있었던 19명의 외국인 노동자 중 14명은 귀국했다고 한다. 신성호씨는 『태국에서 온 사람들은 더운 날에도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녀 무척 더워 보였다』고 했다.
태국에 두 딸을 두고 온 외국인 노동자 완차이氏가 최근 귀국했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출국 며칠 전부터 매일 웃고 다녔다고 한다.
청계천 상권 꿈틀대
청계천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식당·주점 등 인근 상가는 신이 났다. 청계천 인근에서 불닭집을 운영하고 있는 성연실(35)씨는 『종로에만 있던 사람들이 청계천 거리로 많이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시장을 좋아하진 않지만, 청계천 공사는 참 잘한 것 같아요. 아직 매출이 실질적으로 오른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까 업주 입장에서 기대되는 건 사실입니다』
청계천 복원 공사 직후 인근 지역의 사업체 수가 증가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지난 9월7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2002년 말부터 2003년 말까지 청계천 주변 지역 사업체 수는 3.5%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한다. 同 기간 서울시 전체 사업체 증가율(1.9%)과 도심(종로·중구) 사업체 증가율(1.7%)보다 2배 가량 높은 수치다. 청계천 상권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청계천 인근 공구상가의 불만은 여전했다. 이들은 『차를 못 대면 장사는 끝났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청계천변에는 가로수로 1492그루의 이팝나무가 심겨 있다. 이 나무가 요즘 골칫덩어리다. 청계천 양쪽 둑 위의 보도는 폭이 1.5m 안팎으로 실제 걸어 보니 좁았다.
이곳에 가로수가 심겨 있으니 난간과 가로수 사이로는 사람 한 명만이 지나다닐 수 있다. 유모차는 지나다닐 수 있지만, 휠체어가 다니기엔 좁다. 얼마 전에는 장애인들이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
서울市 관계자는 『이 길은 비상통로 및 작업공간 개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2.5m 이상 돼야 하는 건교부 보도 관련 규정에도 맞지 않는다』며 『보도가 아니므로 가로수를 제거하면서까지 휠체어에 대한 배려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市는 보도가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보도가 아니라는 길 위를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다가 한 사람은 난간과 가로수 사이로, 한 사람은 가로수와 도로 사이로 외줄타기하듯 걷고 있었다. 바로 옆으로 자동차들은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다.
이 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현장 사무소 관계자는 『애초부터 폭이 좁은 개천이었고, 양쪽에 2차선 도로를 내자니 설계 단계부터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부근에서 시작되는 가로수는 실제 가로수가 아니라 가로수 화분이다. 길 밑은 물이 흐르는 지하 통로다.
지하 통로와 도로에 인접한 지상 인도 사이에 공간이 없어서 큰 쇠주머니에 흙을 담아 나무를 심은 상태다. 지하 통로를 걷다 보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쇠주머니를 볼 수 있다.
지난 인터뷰에서 2공구 시공업체인 LG건설의 김광호(46) 설계팀장은 『조경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비가 제때 오지 않으면 땅에 심은 나무와 달리 쇠주머니에 심은 나무는 쉽게 말라버린다고 한다. 화분에 물을 주듯 가로수에 지속적으로 물을 줘야 한다.
이제 남은 건 시민들의 보살핌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청계천의 위치에 놀라게 된다. 청계천 초입은 광화문, 시청 방면과 연결된다. 청계2가, 3가는 시네코아, 서울시네마,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등 종로의 유명 극장들과 연결된다. 청계5가에는 1904년 문을 연 광장시장의 먹자골목이 있다. 청계5가, 6가에는 수십 개의 헌책방이 줄지어 있다. 원하는 책을 주문하면 찾아서 연락을 주기도 한다.
청계7가에는 동물 시장이 있다. 닭·도마뱀·카멜레온 등 온갖 동물들이 모여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신당동 떡볶이 타운도 청계7가에서 연결된다. 동대문 방면에는 패션타운들이 즐비해 있다. 청계천은 이렇게 한양大 뚝섬까지 연결된다.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곳곳에 있었다. 지난 1월1일부터 8월25일까지 청계천을 방문한 외국인은 모두 1152명. 청계천이 개통되면 오래된 유적지가 많아 내국인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명소가 될 수 있다.
이미, 국내 여행사들은 관광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월4일 서울市가 32개 국내여행 업체를 대상으로 개최한 「청계천 투어 설명회」에서도 30개 업체가 『청계천 관광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미 상품을 내놓은 곳도 있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환경 프로젝트. 아쉬운 점이 조금 있지만 사람들은 이미 갈채를 보내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市와 시민이 청계천을 어떻게 관리하고 아끼는가 하는 문제다.
청계천에 무단 투척된 쓰레기가 넘치고, 애완 동물들의 배설물이 넘치면 청계천은 더 이상 공원이 아니다. 청계천이 노숙자들의 집단 숙박지, 공동 목욕탕으로 변한다면 청계천은 다시 「똥물」이 될 수도 있다. 李鍾培 차장의 말이다.
『제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건 이제 유지·관리입니다. 공사한 사람들이 잘 만들어서 시집 보내드렸으니 이제 서울 시민들이 정말 아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서울 시민으로서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청계8가에서 바라본 하류는 폭이 넓어 보는 이의 가슴을 넉넉하게 했다. 사람의 손으로 27개월 만에 만들어진 청계천에서 한강에서 끌어올린 물은 다시 한강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