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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안)
한글 학회 등 7개 단체의 건의서가 있었기도 하려니와, 정부는 박 대통령의 '단계적으로 한글 전용을 실시하라.'는 지시에 따라, 1967년 11월 16일 이후부터 약 5개월 동안 문교부, 문화공보부, 총무처, 대법원의 법원 행정처 등 관계 부처가 공동 작업을 해서, 1968년을 제1차 연도로 하여 1972년까지 한자를 완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안'을 만들어 1968년 3월 14일에 국무회의에 제출하였으니,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지침(1968. 3. 14.)
문교부: 현재의 상용 한자 1,300자를 오는 1969년까지는 700자로 줄이고, 그 후 초 중 고 대학의 순으로 한자를 줄여, 1972년까지는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모두 없앤다.
공보부: 신문 및 각종 간행물의 한자를 1968년까지 2,000자, 1969년까지 1,300자, 1970년까지 700자로 각각 줄이고, 72년에는 한글을 전용토록 할 방침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계법을 제정한다.
총무처: 각종 공문서 인사 기록 카드에 한자를 점차적으로 줄인다.
법원 행정처: 호적, 등기 사항과 소송 기록 등을 점차적으로 한글로 표기한다.
이 지침(안)이 발표되자, 일부의 학자와 법조계의 일부와 그 간에 단계적 실시를 찬성하고 나섰던 언론 기관에서까지 '한글만 쓰기는 5년 안으로는 어렵다.'거나, '문자 정책에 관권 개입은 나쁘다.'는 등의 반대 여론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부는 이 계획안을 1968년 5월 2일에 국무회의 의결로써 대통령이 공포하였다.
1967년 12월말에는 동년 11월 16일에 국무총리에게 내린 '한글 전용 계획'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시를 환영하고, 또, 그 뒷받침을 하기 위하여, 한글 학회는 다음의 7개 단체와 함께 한글 전용을 단계적으로 조속히 실시하라는 건의서를 1968년 1월 6일에 박 대통령과 여러 관계 부처에다 냈다.
한글 전용 추진회 대표: 한 갑수 한국 어문학 연구회 대표: 박 영준
한글 타자 협회 대표: 주 요한 민족 문화 협회 회장: 이 은상
한글 음성학회 대표: 정 인섭 배달 문화 연구원 대표: 안 호상
등 7개 단체의 대표들이 낸 건의서<주: 사설-동아 일보 1967. 11. 17. '국문자의 단계적 전용론', 경향 신문 67. 11. 18. '한글 전용으로 향한 중요한 전진', 서울 신문 67. 11. 18. '한글 단계적 전용 운운'>에는
한글 전용의 단계적 실시를 위해, 5년 내지 10년의 기간을 두는 것은 한글 전용 반대를 위한 핑계라.
고 지적하고, 68년도에서 71년까지 3개년 안에 완전히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아래와 같은 3단계 실시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단계: 1968년 1월부터 정부 발행의 모든 공문서는 한글만으로 적는다.
초 중등 학교의 교과서의 한자 사용 및 교수는 폐기한다.
둘째 단계: 1968년 3월 1일을 기하여 신문 잡지의 전용을 실시한다.
셋째 단계: ① 1968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하여, 문교부의 모든 학과의 학술 용어는 한글 용어로 하기 시작하여 3년 안에 그 완성을 기한다.
② 각종 법률 용어도 한글 용어로 바꾼다. 먼저 호적 용어를 한글로 적기로 하고, 그 밖의 법률 용어도 한글로 적기로 하되, 어렵다거나 분간되지 않는 용어는 쉽고 분간 잘 되는 한글 용어로 바꾼다. 한글 용어는 반드시 한자음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안)을 놓고, 찬반 성명서가 엇갈리는 가운데에도 정부는 1968년 5월 2일 한글 전용 관계 부처 회의가 마련한 5개년 계획(안)을 심의한 끝에, '한글 전용 계획'이란 이름으로 고쳐, 정부안으로 발표했다. 이 '한글 전용 계획'의 요약과 계획의 세부 지침을 다음과 같이 마련하였다.
상용 한자는 1968년도에는 2,000자, 1969년도에는 1,300자로 줄여, 1972년까지 한자를 단계적으로 완전히 없애고, 1973년부터 전면적인 한글 전용을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세부 지침도 발표한다.
① 공문서는 특수한 것은 68년까지 한자 병용을 허용, 69년부터 한글을 전용하고
② 법령 문은 72년도까지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것만 괄호 안에 한자를 덧붙이며
③ 호적 등기 주민 등록은 70년도부터 한글을 전용하며
④ 각급 교과서, 정부 간행물 및 일반 정기 간행물은 73년도부터 한글을 전용토록 한다.
그리고, 이 계획 실천을 위하여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설치한다.
2) 박 대통령의 10 7 선언
광복 후 국가 원수로서 누구보다도 한글 전용 구상에 힘을 기울여 온 박 대통령은 닷새 전(1968. 5. 2.)에 정부로서 확정 발표한 '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의 한글 전용 목표 연도인 73년도를 70년으로 앞당길 것을 내각에 선언 지시하였다.
한편, 한글 전용 목표 연도가 앞당겨짐에 따라, 정부의 모든 행정적 노력을 한글 전용 준비에 기울이어서 그 준비의 만전을 다하게 함으로써 1969년 1년을 '한글 전용 준비의 해'로 정할 것도 지시하였다.
박 대통령은 1968년 10월 7일의 한글 전용 시책 단행 선언에 이어서, 같은 달 25일 하오에 정 국총 무리, 권 문교부 장관, 홍문화 공보부 장관, 이 총무처 장관으로부터 한글 고속 자동 식자기 개발 연구 위원회의 발족과 한글 가로 쓰기를 가급적 70년의 한글 전용화와 더불어 실시할 것과 전국 각종 매스 미디어의 한글 전용화 계획을 중심한 공동 보고서인 '한글 전용 추진 계획'을 보고 받은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즉시, 다음과 같이 전제하면서, '한글 전용 촉진 7개항'의 지시를 하였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20년 넘도록 한글을 전용하지 않고 주저하는 것은 비주체적 전 근대적, 사고 방식이며, 한문을 모르는 많은 국민을 문화로부터 멀리하려는 행위다.
1. 70년 1월 1일부터 행정 입법 사법의 모든 문서뿐만 아니라, 민원 서류도 한글을 전용하며, 국내에서 한자가 든 서류를 접수하지 말 것.
2. 문교부 안에서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두어, 69년 전 반기 내에 알기 쉬운 표기 방법과 보급 방법을 연구 발전시킬 것.
3. 한글 타자기의 개량을 서두르고, 말단 기관까지 보급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
4. 언론 출판계의 한글 전용을 적극 권장할 것.
5. 1948년에 제정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70년 1월 1일부터는 전용토록 할 것("대한 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한자를 병용한다."는 법조문의 단서를 뺀다.)
6.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앨 것.
7. 고전의 한글 번역을 서두를 것.
이 7개항의 한글 전용 촉진에 관한 지시는, 신념에 찬조 처라고 볼 수가 있다. 한글 전용을 주저해 오던 문제들을 하나도 회피하지 않고, 한글 전용법의 개정까지도 지시하였다. 이를테면, "입법 사법의 모든 문서까지도 70년도부터 한글 전용해야 한다."고 했고, 찬반 논쟁에서 가장 핵심 문제였던 교과서의 한자 사용 문제에까지도 "교과서의 한자를 없애라."고 지시한 것은 역사적인 영단이 아닐 수 없다.
1969년 1월 27일의 차관 회의는 문교부로부터, 1968년 10월 28일의 '한글 전용 추진 7개항'의 지시로부터 1969년 1월 20일까지의 '한글 전용 준비 계획 추진 상황'을 보고 받고서, 미리 준비된 '69년도 한글 전용 준비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969년도를 '한글 전용 준비의 해'로 작정하였다.
1969년도 한글 전용 준비 계획
관계 부처
연구 기관
연구 과제
주요 연구 내용
연구 기간
문교부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
1. 한글 전용 준비에 관한 제반 문젯점 연구 종합
2. 관계 기관 간의 협조
3. 한글 전용 준비 계획의 이해 촉진
① 한글 표기법 연구
② 인명 숫자 표기법 연구
③ 외래어 표기 연구
④ 과학 기술 용어 연구
⑤ 학술 용어 제정 연구
⑥ 법령 용어 제정 연구
⑦ 한글 타자기 자판 및 규격 연구
⑧ 한글 라이노타이프 연구 개발 및 도입 방안 연구
⑨ 각종 공문서 서식 개정 연구 및 민원 문서 개정 연구
69.12.31.
국어 심의회
(표기법 분과)
외래어 표기 연구
① 현행 외래어 연구
②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 연구
③ 한글의 로마자 표기 연구
④ 외래어 표기 연구
64.4.30.
국어 심의회
(한글 분과)
한글 표기법 연구
① 합리적인 띄어쓰기 연구
② 읽기 쉽고 알기 쉬운 표기법 연구
③ 쓰기 체제에 관한 연구
④ 문장 부호 사용법 연구
⑤ 어려운 한자말의 우리말화
69.6.30.
과학 기술 용어 심의회
국어 심의회
(학술 용어
분과 위회)
과학 기술 용어 연구
학술 용어 제정 연구
과학 기술 용어 제정(30 분야)
학술 용어 제정 연구
69.11.30.
69.12.31.
교육 과정
심의회
교육과정 개정 및
교과서 개편
교육과정 개정 교과서 개편
(고등 한문·고전 제외)
69.8.31.
상공부
한글 타자기
글자판 표준화
심의 위원회
한글 타자기 자판 및
규격 연구
한글 타자기 자판 통일
보급 방안 연구
69.1.31.
69.3.31.
총무처
행정관리국
능률 행정과
문서 서식 개정 연구 및
민원 문서 개정 연구
한글 가로쓰기 서식 연구
서식 규격 통일
69.4.30.
문화
공보부
한글 고속 자동식자기 연구
개발 위원회
한글 라이노타이프 연구 개발 및 도입 방안 연구
라이노타이프 연구 개발
라이노타이프 도입 방안
69.11.30.
법제처
법령 용어
정비 연구
법령 용어 정비 연구
법령 용어 정비 시안 검토,
법령 용어 정비 확정,
① 단계: 69년에는 상용 한자 내에서의 제한 사용
② 단계: 70년부터는 완전한 한글로
69.11.30.
문화
공보부
신문 협회 ·
주간 신문 협회
· 출판 협회
잡지 협회
정기 및 보통 간행물의
한글 전용
1. 일간 신문 한글 전용 방안 연구
(한글 전용화 연구 위원회)
2. 주간 신문
일간 보도 기사, 사회 기사, 기타 기사, 기획, 해설,
기사 제목 및 전문 용어
3. 잡지(학술지)
(일반 잡지와 아동 잡지)
4. 보통 간행물, 일반 도서, 전문 도서
69.1~5.
즉각 실시
69.12.20.
독자의 익숙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
68.2~69.12.
68.12.~69.7.
69.1~12.
이 '69년도 한글 전용 준비 계획'을 보면;
문교부는;
① 한글 전용 위원회의 구성
② 인명, 지명, 숫자 표기의 통일
③ 과학 기술 용어 총 67분야 중 37개 분야의 기술 용어를 제정 공포
④ 교육 과정을 개정(고등 한문, 고전을 제외한 교과서를 개편)
⑤ 오는 4월말까지 띄어쓰기, 표기법, 한자의 우리말화, 문장 부호법 사용 연구 작업 완료
법제처로서는; 법령 용어를 한글로 바꾸되, 당분간 뜻이 어려운 한자에 한해 사용 한자에 한해, 상용 한자의 범위 안에서 괄호 안에 같이 쓰기로 되었으며,
문공부로서는; 한글판 라이노타이프를 개발, 단계적으로 전용시키고, 일간 신문 한글 전용 방안 연구를 위한 한글 전용화 연구 위원회를 구성토록 되어 있고
상공부는; 금년 전반기 안에 한글 타자기 자판 통일을 위한 타자기 자판 표준 시안을 확정하도록 되어 있고,
총무처는; 각종 문서 서식 개정 및 연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또, 이 계획을 '1969년 행정 백서'에 발표하여, 한글 전용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서둘러 왔다.
(8) 한글 전용을 뒷받침한 이론
한글 학회 창립 당시부터의 주장이었던 한글 전용은 광복 후 새 나라 건설 작업에도 없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하여, 광복 직후부터 한글 전용에 관한 이론서가 회원들의 손으로 발간되어 나왔다. 이 책들이 있으므로 해서 한글 전용 반대자를 계몽시켜 점진론자로 만들었고, 점진론자들은 즉시 전용자로 거의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이 책들은 한글 전용의 좋은 지침서나 교재 노릇을 착실히 하였으니, 실로 고마운 일이었다. 다음에 그 책들을 소개해 둔다.
(가) 정태진의 '한자 안 쓰기 문제'<주: 1946. 6. 20. 아문각 간.>
한자 안 쓰기의 첫 이론책 책은 광복 직후의 한글 학회가 베푼 계몽 운동에서 교재로 삼아 왔고, 또, 애써서 보급하던 책이니, '한글 학회 50년사'에서 뺄 수 없는 책의 하나이다.
광복 직후 '한자 폐지'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가 재건 도상에 있는 한국 교육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되어, 신문 잡지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부의 이론이 자주 발표되고, 또, 공석이나 사석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의견들이 오가고 하나, 그들의 이론과 의견이 일반적으로 보아 막연하고, 기분적이요, 주관적이요, 단편적이요, 비과학적이었다.
여기서, 정태진은 양편의 이론을 끝까지 냉정하고 엄정하게 비판을 가하고, 자신의 의견으로서 점진적 한자 폐지론에 대한 의견을 간단히 붙여서 '한자 안 쓰기 문제'란 소책자를 지어냈다.
이 책의 내용은 한글 전용에 관한 찬반의 이론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하였고, 한글 운동에 썩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① '한자 안 쓰기 문제'의 차례
가. 서 론 나. 한자 폐지를 반대하는 열 네 가지 이유
다. 한자 폐지를 주장하는 스무 가지 이유 라. 한자는 왜 비능률적이냐?
마. 해결책은 어느 곳에 있는가? 바. 점진적 폐지론(임시 제한론)
사. 결 론 부 기
② 한자 안 쓰기 문제의 결론
이상에서 필자는 점진적 한자 폐지론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간단히 진술하였다. 그러나, 이 의견이 반드시 최선의 의견이라고 필자는 독단하지 아니한다.
…(줄임)…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신 분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결안을 더욱 철저히 연구하시어 해방 조선의 새로운 교육을 위하여, 신문화 건설의 든든한 기초 사업을 위하여, 나아가서는 국어 재건의 거대한 사명을 위하여, 건실한 노력과 성심의 협조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분이 많이 나오기를 마음 깊이 바라는 바이다.
(나) 최현배의 '글자의 혁명'(첫째 매, 한자 안 쓰기)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정연한 체계가 선 이론서이다. 최현배는 미 군정청의 요청에 따라, 조선어 학회가 미 군정청 문교부의 편수 국장으로 갈 것을 권고하므로, 1945년 9월 21일에 조선어 학회 상무이사의 직을 사임하고 편수 국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편수 국장 재임시, 새 나라의 새 교육에 헌신하였다. 특히 광복 직후 자유민 교육에 알맞은 교과서가 시급히 요청되는 것에 응하여, 단시일 내에 각급 학교의 각종 교과서를 편찬해 냈다. 그 공으로 1946년 6월 27일 미군정 장관 러치(Archen Lerch) 장군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새 나라 새 교육 건설에 분망하던 광복 직후 사람이면, 사람마다 한자 폐지에 대한 의견과 주장을 말하였으나, 체계 있게 정리된 이론을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최현배는 '한자 안 쓰기'를 지어 내놓았다. 이 책은 당시 '조선어 학회'와 정부의 한글 전용 주장과 시책에 대하여 많은 의혹을 품었던 사람들에게 밝은 이해를 갖도록 하였다.
이 책의 저술의 동기에 대하여 지은이; 최현배는 열 일곱 살 되던 한성 제1고등 학교(지금의 경기 고등 학교)학생 시절부터 "조선 사람은 한자 쓰기를 그만 두고, 한글만 쓰기로 하여야 한다."고 해 오던 생각을 광복이 되자, 다시 새로 정리하여 지어낸 것이라 하였다.
…(앞줄임)… 내가 "조선 사람이 한자 쓰기를 그만 두고, 한글만 쓰기로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순 한글로써 초 중등 학교의 국어 독본을 꾸미기 비롯한 것은 나의 열 일곱 살에 중등 학교 일 학년에 다닐 때이니, …(줄임)…
내가 이 글을 짓는 동안에 마침 조선에 주둔하는 미 군정청 학무국에 '조선 교육 심의회'가 열리고 있어, '한자 폐지'와 '가로글씨'의 문제가 토의되어 가결되었다. 나도 그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토의에 참여, 더불어 다투는 반대자의 의견을 듣고, 많이 참고가 되었으며, 따라서, 나의 주장에 더욱 깊힘을 얻었다. 이에 그 반대자에게 '딴 산의 돌(他山之石)'의 공을 감사하는 바이다. …(줄임)…
이 책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 책(첫째 편의 '한자 안 쓰기')은, 모두 5절로 되어 있는데, 한자의 불리한 점 해독을 낱낱이 지적하고, 한자 폐지에서 오는 이점을 말하고, 아울러, 한자를 폐지해야 할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한자 폐지를 반대하는 주장을 여섯 가지로 분석하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였으며, 또 한자 폐지의 실행 방법까지 밝혔다.
이 '글자의 혁명'은, 1947년 5월 6일 조선 교학 도서 주식 회사 사장 최상윤의 호의로 문교부의 발행으로 폈다. 이 책은 ('한자 안 쓰기' 부분만) 속판 9∼10쪽, 본문 11∼111쪽, 국판, 5호 활자, 26×30으로 되었는데, 속판(목차)은 다음과 같다.
첫째매, 한자 안 쓰기
첫째 조각, 한자의 불리한 점
1. 배우기 어려움
2. 박기 불편함
3. 다입우라이떠, 리노따입을 쓸 수 없음
둘째 조각, 한자의 해독
1. 겨레의 목숨이 쓸데없이 허비되었음
2. 우리말이 여워지고 쭈그러졌음
3. 대국 섬기기, 외국 높이기의 사상이 뿌리박게 되었음
4. 겨레의 독창력의 발휘가 저해되었음
5. 무식 대중이 절대로 많음
셋째 조각, 한자를 안 쓰기로 하자
1. 대중 문화의 건설, 대중 생활의 향상
2. 정치적 해방에서 문자적 해방으로
3. 과학 교육의 진흥
4. 우리말의 정당한 또 자연스러운 발달
5. 글자 발달의 역사로 보아, 한자를 내어버림은 필연의 형세이다.
6. 한글 발달의 역사로 보아, 그 이상을 완전히 실현할 때가 되었음
넷째 조각, 한자 안 쓰기를 주저하는 의견에 대한 변명
1. 한자는 완전히 동화된 것이란 점
2. 한자는 훌륭한 글자란 점
3. 문화적 유산 문제
4. 동양 사상과 도덕의 문제
5. 한자는 동양 공통의 글자란 점
6. 한자 폐지와 한자말 폐지
7. 말밑(어원)과 말뜻 잡기
8. 낱말(단어)을 배워 얻는 심리 문제
9. 한자 제한론의 잘못
10. 한자 폐지가 한자 금지는 아니다.
11. 한자 폐지 찬성자의 가질 태도
12. 한자 폐지의 시기 문제
다섯째 조각, 한자 안 쓰기의 실행 방법
(라) 문교부의 '한자 안 쓰기의 이론'(1948. 8. 6.)
이 책은, 1946년 6월 20일 정태진이 지어낸 '한자 안 쓰기 문제'와 크기나 양이 비슷한 책이다. 이 책이 되어진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앞서 있었다.
1945년 12월 8일에 '조선 교육 심의회'가 교과서에 한자 폐지를 결정하고, 아래와 같이 그 결정 안이 문교부 장관 앞으로 건의되었다.
(가) 한자 폐지 여부에 관한 일
1. 초등 중등 교육에서는 원칙적으로 한글을 쓰고, 한자는 안 쓰기로 함.
2, 3, 4, 5(줄임)
(나) 가로 글씨(횡서)에 관한 일
1, 2, 3(줄임)
이 건의를 받은 문교부는, 모든 교과서를 한글로 엮어 내고, 또, 교육시켜 왔다. 그 후, 한자 폐지가 가로글씨와 더불어, 경제적, 능률적 및 민주주의적 교육과 생활 능력에 막대한 효과를 나타냄을 체득하고,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에도 그대로 실현시키려고 하여, 일부 사회 인사들의 한자 폐지 교육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당시 문교부 장관 오천석은 이 책을 내게 하였다.
이 책을 통하여 미군정 문교부가 정부 수립 이후의 언어, 문자 정책을 어떻게 기대하였는가를 다음의 그 '머리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해방 바로 뒤에, 문교부(당시 이름 학무국) 안에 '조선 교육 심의회'가 설치되어, 회원 팔십여 명이 열심히 토의를 거듭하여, 해방된 조선의 새 교육의 모든 근본 문제를 결정하였다. 그 중에 글자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한자와 가로글씨(횡서)의 두 가지를 결의하였다. …(줄임)…
문교부는 이 결정을 받아들이어, 이에 따라, 모든 교과서를 편찬하여 교육하여 왔다. 이 한자 안 쓰기와 가로글씨(횡서)가 민주주의 교육과 생활 능력의 교육에 막대한 효과가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이제, 우리 나라의 국회가 되고, 독립 정부가 섬에 당하여, 이 중에도 가장 중대한 의의를 가진 '한자 안 쓰기'의 정책이, 교육 행정에서 뿐 아니라, 국가 행정 및 국민 생활의 전면에 걸쳐 완전히 실현되어, 새 나라의 문화 발전과 국민의 복리 증진이 놀랄 만한 비약이 있기를 기대하여, 이 작은 책자를 널리 세상에 펴는 바이다.
4281(1948)년 7월 일
문교부 부장 오 천 석
이와 같은 뜻에서 발행된 이 책의 속판(내용)은 앞에 든 최현배의 '글자의 혁명(첫째편 한자 안 쓰기)'과 거의 같은데, 그 까닭은 이 두 책이 모두 최현배의 손으로 엮어진 탓이다.
첫째, 한자 사용을 폐지하는 근거
1. 국민의 정력과 시간의 허비
2. 과학 기술, 생활 능력의 교육을 위하여
3. 한자는 인쇄에 너무 불편 불리하다
4. 대중 문화, 민주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5. 우리말의 정당한 또 자연스런 발달을 이루기 위하여
6. 문자 사적 계단으로 보아 한자의 폐지는 필연의 형세이다.
7. 한글의 발달 사적 계단으로 보아, 한글이 우리의 새 문화의 표현 기관으로 충족하게 되었다.
둘째, 이견 자에 대한 변해
1. 한자 사용 폐지를 한자어 폐지로 오해, 혼용하지 말라.
2. 한자가 아니면, 과연 한자어의 말뜻을 알지 못할까?
3. 동음 자의 한글 표기 문제
4. 동양 문화의 전통 문제
5. 과학을 할 수 없다 함에 대하여
6. 한자 제한론의 옳지 못함
7. 한자 폐지의 시기 상조론에 대하여
셋째, 한자 사용 폐지의 방법
넷째, 끝맺는 말
새 나라 세움의 방략으로서의 문자 개혁의 의의
위의 속판에도, 나타나 있듯이 최현배 지은 '글자의 혁명'과 이 책의 지은이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그 내용이 너무나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두 책 중 먼저 나온 '글자의 혁명'이 최현배가 문교부 편수 국장으로 일 볼 때 지어 편 것이므로, '한자 안 쓰기의 이론'도 비록 장관의 이름으로 발행되었어도, 역시 최현배가 지은 것임은 당시 편수관들이 말하고 있다.
(라) 이응호의 '언어 정책의 역사적 연구'
(한글 전용 대책편)
광복 후 25년간의 민족적 큰 과제였던 한글 전용 문제가 일단락 되고, 70년도를 목표로 한 '한글 전용의 해'를 앞두고, 한글 전용의 시대적 신념을 일깨우기 위하여 '한글 전용 국민 실천회'가 1968년 12월 3일에 펴내었다. 80면 본문에, 46배판인데, 1,000부를 무료로 보급하였다. 이 책은 광복 후 우리 나라의 언어 정책 중 '한글 전용화 대책'에 대한 정부의 노력을 샅샅이 추려서 엮은 책으로서, 한글 전용의 시대적 필연성을 깨닫게 하는 정부나 일반의 좋은 참고 자료다.
이 책의 속판(차례)을 추려 뽑으면 다음과 같다.
1장 서 론
1절 광복 후의 우리 언어 정책의 특성
2장 광복 전 언어 정책의 개관
3장 미 군정의 언어 정책
1절 한글 전용화 대책
2절 한글 전용 전제로 '제한 한자' 제정
3절 한자 약자 제정 시도
4장 결 론
그리하여 엮어진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이 정부의 한글 전용 단행 시책이 세워지게 되기까지는 한글 학회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을 밝혔고, 결론으로 "지금껏 완전한 한글 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사항을 밝히면서,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1. 한글 전용법의 모호성
2. 정책 실천에 일관성의 결여
3. 언어 정책 기관 책임자의 부재
4. 언론계의 협력 부족에 대한 대책 결여
5. 연구 사업의 조직적인 전개, 실천 조직의 활용과 지원의 공백
기타 정부가 지금껏 해 온 '한글 전용화 대책'을 계획, 실천한 것은 대체로 한글 학회를 중심으로 한 전용 운동이었으나, 무엇보다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실천 단체와의 합심 협력이 주축이 돼야만 할 것이다.
(마) 최현배의 '한글만 쓰기의 주장'
이 책은 최현배의 마지막 유고 집이다. 최현배가 80평생을 말본 연구, 한글 펴기가 한글만 쓰기에 크게 힘썼다. 그의 생전에 이 책을 내어, 한글 전용 반대론자의 의혹을 풀어 밝히며, 한글만 쓰기의 동지들에게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자는 뜻에서 집필하여, 탈고하자 마자 작고하였으니, 진실로 마지막 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꾸밈새는 전후 새 가름(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첫째 가름에는, 한글만 쓰기에 대한 세인의 의혹을 풀어 밝히기에 앞서 먼저 한글만 쓰기 주장의 까닭 또는 필요성을 말하고,
둘째 가름에서는, 한글만 쓰기에 대한 많은 의혹들을 ①글자론, ②국어론, ③학문 교육론, ④전용론, ⑤개화론의 다섯 가지로 갈라서 말하였고,
셋째 가름에서는, "1970년도에 실천되는 한글 전용 시책에 적극 협력하여 겨레 문화의 앞날을 꽃피우자."로 되어 있다.
이 책은, 1970년 10월 9일 '정음사'에서 발행했는데, 국판 293면의 책으로 그 속판(차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름 한글만 쓰기의 주장의 까닭
둘째 가름 한글만 쓰기에 대한 의혹
첫 째 조각 글자론적 의혹
둘 째 조각 국어론적 의혹
셋 째 조각 교육스런 의혹
넷 째 조각 학문론스런 의혹
다섯째 조각 문화론스런 의혹
여섯째 조각 전용(올쓰기)에 대한 의혹
일곱째 조각 기계화에 관한 의혹
여덟째 조각 시기에 관한 의혹
아홉째 조각 정부의 한글 전용 단행에 대한 의혹
첫째, 세계 각국의 글자 말씨 정책
둘째, 맺음말
셋째, 가름 한글만 쓰기의 실천
이상과 같은 내용이어서 한글만 쓰기 관계의 이론은 이 책 한 권이면 풀지 못할 점이 거의 없을 것이다.
(바) 한글 학회 지은 '한글 전용으로의 길'
이 책은 정부가 1948년 한글 전용법을 공포한 이후 25년 동안이나 끌어오던 '한글 전용' 문제를 매듭짓고, 1970년부터는 '한글 전용' 정책을 실천에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 일부에서 한글 전용에 의혹을 품고 반대하는 이가 있어서, 그 반대의 의혹을 풀어 주고자 하여 발행한 것이다.
이 책은 논설 부분과 실천 부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엮어졌는데, 논설용 분에서는 주로 한글 전용을 해야 할 이유를 말하였고, 실천 부분에서는 945년 이후 지금까지 실천해 온 한글 운동의 역사와 업적을 밝혀 놓았다. 특히, 실천 부분의 '한글 전용 여론들'에 대한 조사보고는 한글 전용 반대론 자들에게 크게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이제 '한글 전용으로의 길'을 발행함에 있어서 한글 학회 이사장 허웅은 발간사에서 그 발행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48년, 우리 나라 국회에서 '한글 전용법'을 채택하여, 우리 나라 공용 문서는 한글만으로 적게 되었는데도, 한글 전용의 길은 우여곡절만을 거듭하여 오던 중, 1970년부터는 그 정책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뜻 있는 선각자들이 이미 70∼80년 전부터 부르짖어 오던 일로서, 우리들로 볼 때는 그 실천의 시기가 너무나 늦은 감이 없지 아니하다. 그런데도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 시기가 아직 이르다고 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한글 전용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중략)…
우리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따져 봐야겠다. 그 결과가 여기 있다. 이 조그마한 책이 이 문제의 전반을 다 해명해 주지는 못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도이면,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은 드러날 것이다.
우리들은 국수주의를 배격한다. 그러나, 한글 전용하는 것이 국수주의라면, 우리들은 이 명예로운 국수주의자로 자처할 것이다.
이 책의 속판(차례)는 다음과 같다.
한글 전용에 관한 한글 학회의 주장
논설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의 까닭
한자는 폐지되어야 한다
한글 전용의 시기는 500년 늦었다
내 말의 생명과 한글 전용
한글만 쓰기 운동
한글만 쓰기 운동사
한글 전용 여론들
고전 국역 사업
용어 제정 상황
신문의 한글 전용과 우리말화의 추진
외 솔
허 웅
주 요 한
홍 종 인
이 응 호
1
3
14
39
43
46
61
76
84
91
(9) 한글만 쓰기를 북돋운 노래들
대중에게, 특히 자라나는 제2세들에게 한글에 대한 인식을 주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펴고, 우리글을 사랑하게 하고, 갈고 닦아 키우면서, 나아가서는 겨레와 나라 사랑을 이 '한글 노래'로써 북돋우기 위한 뜻을 담은 노래들이다.
다음에 지금까지 불려지고 전해 오는 '글씨 노래' '글날 노래' '한글의 노래' '한글 노래'의 넷이 전한다. 이 노래들이 한글날은 물론, 한글 계몽 강습 강연회 및 온갖 한글 관계 행사 때마다 불려졌고, 또 부르고 있는 노래들인데 다음과 같다.
(가) 글씨 노래(이갑 지음)
권학가(勸學歌)인 "소년 이로(易老)하고"와 같은 곡이라는 설명이 달렸는데, '한글' 제1권 5호(1932. 10. 16.)의 209쪽에 소개된 계몽 노래다.
① 낫 놓고 ㄱ자를 누가 모르리
창애 ㅅ등 ㄴ은 절로 알리라
자 들고 세로 재면 ㅣ자가 되고
반두깨 가로 노면 ㅡ자가 되네
② 질마ㅅ가지 ㅅ에 코뚜래 ㆁ
지개 ㅅ다리 ㅏ자를 뒤집음 ㅓ자
고무래 쥐고 보니 ㅜ자가 되고
거꾸로 놓고 보니 다시 ㅗ자ㄹ세
③ 세 발 가진 소시랑을 ㅌ자라면
자루 빠진 연ㅅ감개는 ㅍ되리라
ㅋ은 두발 가진 모지랑 갈퀴
허리 동인 쪽집개는 ㅂ이라군
④ 팔 다리 벌이고 선 ㅊ보아라
뱀처럼 몸을 서린 ㄹ도 잇네
측량판 벌여 놓니 ㅈ자로세
동이 우에 솥뚜에는 ㅎ 아닌가
⑤ 꺾쇠는 ㄷ인데 모말은 ㅁ
문ㅅ고린가 가락찐가 ㅇ자로세
눈에 띄는 물건마다 글자로 뵈니
아모리 잊으랴도 잊히지 않네
⑥ 낫처럼 생긴 ㄱ 지개 ㅅ다리 ㅏ
가로 맞훠 놓으면 가자가 되고
모말 같은 ㅁ을 그 밑에 대면,
새빩안 먹기 좋은 감자가 된다
⑦ 꺾쇠 같은 ㄷ과 광명두 ㅗ를
우아래로 이어 노니 도자 아닌가
창애ㅅ등 ㄴ을 또 이어 놓으라
죽을 놈도 살려내는 돈이란 자다
⑧ 이와 같이 이리저리 둘러 맞후면
입으로 하는 말은 못쓸 것 없네
하루 한 자 이틀 두자 새새 틈틈이
이러구러 익혀가면 나종 다 알리
*'한글 제2권 제4호 (1934. 7) p.7에는, 이것이 "문맹 타파가"라고 하여, 여기 이 노래의 앞에 제절이 따로 더 얹혀 있다.
(나) 글날 노래(일로 지음)
이 노래는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동아 일보 1932년 10월 29일(토요일, 4,262호, 486돌 한글날 기념 특집호) 5면 3∼4단에 발표한 노래인데, 지은이 '일로(一路)'의 본 이름이 누군지 확인되지 않았다.
① 거룩하고 높으실사 우리 세종 임금님
정인지 님, 신숙주 님, 성상문 님, 최항 님 !
슬기롭고 밝으신 여러 스승 더불어
세 해 한 맘 정성 모아 우리 참글 지으셨네 !
(후렴)
오날이 글날 우리 글의 날
만세 만세 빛나리 억조 만세 우리 글 !
②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이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만 붙이면
온갖 소리 온갖 말을 모두 쓰는 우리 글
시월 스무 아흐레<주: 이때의 한글날은 10.9로 지냈으나, 광복된 뒤에, '훈민 정음' 원본을 발견한 뒤로는 오늘날까지 10.9.로 한글날을 삼고 있다.>에 우리 조선 태 났네 !
③ 온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 되는 우리 글
온 인류의 문명 위에 새 보배인 우리 글
빛나도다 우리 자랑 우리 참글 가졌네 !
기쁘도다 우리 참글 우리 글날 맞았네 !
(다) 한글의 노래(이극로 지음)
이 노래는 광복 직후에 '조선어 학회' 간사장이었던 이극로(호 고루)가 지은 노래인데, 그 지은 때의 확실한 날짜를 잘 알 수 없으나, 해방 직후부터 1951년 10월 9일 최현배가 지은 '한글 노래'가 반포되기까지 많이 불려졌다. 특히 1946년 500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날 행사를 전국적으로 크게 벌일 때, 이 '한글 노래'가 나라 안에 아니 펴진 데가 없었다.
여기 실린 노래의 가사는, '한글 문화 보급회'가 펴낸 '한글 문화'란 잡지 창간호(1946. 3. 10.) 35면 아래쪽에 실린 것을 따다 적었다.
① 세종 임금 한글 펴니, 스물 여덟 글자
사람마다 쉬 배워서 쓰기도 편하다 !
(후렴)
슬기에 주린 무리 이 한글 나라로
모든 문화 그 근본을 밝히러 갈거나
② 온 세상에 모든 글씨 견주어 보아라 !
조리 있고 아름답기 으뜸이 되도다
③ 오랫동안 묻힌 옥돌 갈고 또 닦아서
새빛 나는 하늘 아래 골고루 뿌리세 !
(라) 한글 노래(최현배 지음)
이 '한글 노래'는 최현배가 당시 한글 학회 이사장이며, 문교부 편수 국장으로 재임할 때 지어, 나운영이 작곡하고 김승순으로 하여금 편곡하게 하여, 1951년 10월 9일 한글날에 발표한 것이 그 뒤에 박태현이 따로 작곡한 것이 요새 불려지거니와, 이극로가 월북함으로써 이극로가 지은 '한글의 노래'가 국책상 부를 수 없게 되자, 1949년 한글날부터는 한글 행사 때에 그에 갈음할 한글을 기리는 노래가 없었다. 또, 초 중등 학교 학생들에게 한글 노래가 있다고 소개도 교육도 못 하는 안타까운 사정에서 최현배가 지었다.
①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
거룩한 세종 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 !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②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 되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③ 한 겨레 한 맘으로 한 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나가자.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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