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에 있는 조정래 문학관 앞에 자리한 태백산맥의 현부자집 전경과 그 앞의 작은 연못을 안고 있는 찻집 그러나
연못 안의 아주 작은 동산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현부자 집 앞의 소나무도 커다란 몸통을 자랑하고 세월을
느끼게 해 주었지만 다 죽었고 겨우 가지 하나만 남기고 있어 옛날의 부귀 영화를 소나무를 통해서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문학관 옆의 아담한 화장실은 설계자의 안목을 느끼게 해 주는 곳으로 매우 아름다운 화장실이고 호기심에 들려보고
싶을 정도로 주변환경과 잘 어울렸고 "비우고 가는 곳"이라는 이름도 매우 마음에 든 곳이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33천의 꼭데기에서 제석이라는 이름을 빌려 왔다는 제석산으로 오르는 길은 육산으로 힘은 들지
않았지만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 무렵에서는 아직까지 피우고 있는 xx를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나마 양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진달래가 생강나무가 진솔하게 맞아주어 다행이었으며, 발밑에는 솜나물의 꽃
들이 양 쪽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해주는 탓에 꼴찌인 나는 힘을 얻을 수가 있었으며 선선대 꼭대기에 의자모양의 바위를
보니 그 곳에 앉아보아 신선의 느낌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임금 帝자를 쓰는 산이 이 근처에 3개나 있는데 어떤 연유에서" 제"를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산의 정상부를 바라보니
마치 임금의 관처럼 보였다.

제석산에서 바라 다 본 고흥의 첨산이 군웅활거 시대에 치솟아 오르는 신진의 세력처럼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주변에 첨산을 보좌해 줄 만한 영웅이 없는 것 같았고 첨산 또한 초기에는 기세 좋게 올랐지만 힘이 부쳐 제석에는 미치지
못하고 멈추어 선 듯한 느낌을 제석산 정상에서 제왕의 눈을 빌려 보았다.

제석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의자모양을 닮은 바위가 신선대 꼭대기에 있음)의 모습은 멀리 보면 聳
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한 없이 부드러워 누구나 그곳에서 보성만의 가득함과 낙안읍성 쪽의 농경지에서 보는 풍요가
발 밑에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구릉지를 덮은 나무들의 정수리를 마음 껏 감상 할 수 있으며, 오봉산 금전산 백이산 제암산
더 멀리는 또 다른 오봉산이 통 크게 속 내를 보여주는 곳이다.

봄이라서 사방에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는 곳에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 생강나무 광대나물 별꽃 양지꽃등이 피며 서로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제석산에 피어있는 얼레지는 엄청나게 큰 면적을 차지하고 사방에서 소리없이 피어나고
있었고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노랑제비꽃도 차츰 자기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현호색도 뒤 질세라 피어보지만 얼레지의 기세에 눌려 반갑기는 했지만 초라 할 정도였으며 조경수로 심어 놓은 나무들이 그래도 눈 안으로 들어왔다.





깊은 역사와 개창 당시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해주는 동화사 였지만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곳곳에 벌건 글씨로 경고판이
사방에 붙어 있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대웅전 뒤에서 요란하게 봄을 맞이하는 새들로 혹시나 동박새가 있을까봐
목을 길게 빼다 뒤돌아 나오고 말았다.
동화사 입구에 오래된 고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절과 인가가 함께 하지 않았을까를 짐작해 보면서 타박타박 아스팔트
길을 걷다보니 물소리가 도로 아래의 계곡을 힘차게 흐르고 있었으며 만약 아스팔트 길 양 쪽에 배룡나무가 아닌 커다란 키와
몸통으로 자랄 수 있는 나무를 심는다면 수십년 후에는 동화사 입구의 길도 역사를 갖고 있는 다른 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치를 갖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벌건 글씨가 빨리 사라져 공존과 배려와 질서가 함께하기를 바라고 완주에 있는 송광사처럼 입구는 아름답고 속은 휑한 절이 아니라 절 뒤의 동백 숲처럼 절 입구도 꽉 찬 아름다움이 함께했으면하는 바램을 갖어 보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르는 마음을 감싸쥐고 걷고 있는데 제석산 신선대에서 만났던 여수에서 오셨다는 분이 그사이 현부자집까지 갔다 되돌아 왔다며 타라고 했다.
이야기 인즉 버스길까지는 약 5km나 되고 버스 또한 자주 없다고하면서 아주 멀다고 -----뒤돌아보니 너무나 아찔하여 차라도 한잔하고 권하니 인연이 닿으면 또 보자며 삼도맨이라고 닉네임을 주었다.----- 한쪽 귀퉁이가 날라간 산행지도 탓도 있었지만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하게 해 준 산행이 되었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