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갈산공소
1988년 1월 1일 설립
관할 본당: 홍성 성당
충남 홍성군 갈산면 와룡로 437
102. 부석공소
관할본당: 예천동 성당
2001년에 현 공소 강당 신축
2004년 2월 15일 주일에 부석공소에서
초대 이명상아우구스티노 신부님(2월12일 부임)의 집전으로
2004년 1월 8일에 설립한 예천동 성당의 첫 미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한머리1길 62-12
103. 미럭벌공소(터)
1894년 설립
미럭벌(미덕벌)공소는
박해를 피해 다니던 신자들이 모여 일군 옹기점 교우촌의 공소로
1894년에 퀴클리에(Curlier, 남일량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에 의해
강당리공소(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서 분리,독립.
1919년에 강당리공소를 흡수 통합.
1974년 운산 성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를 폐지
옛 공소 자리에 지금은 용장2리 마을 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장2길 32-11 (용장2리 마을회관)
104. 방현리공소
관할본당: 온양 성당
설립: 1954년
1975년 07월 01일에 강당 신축 축성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방현동길 136-10
1897년 방현리(쇠일)를 중심으로 43명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공세리성당 드비즈 신부가 방문하였다.
1914년 전후에는 옹기촌을 중심으로 전교가 활발하였다.
1980년경 본당구역으로 편입되어 공소예절은 중지되고
판공미사는 유지되어 왔으나 지금은 폐쇄된 상황이다.
105. 사기점골(서재)공소터
1883년 두세 신부에 의해 설립.
교우촌의 형성은 예산 지역 또는 천안 목천 지역에서 이주해 와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지며,
요골 공소와 산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이곳 일대는 흔히 큰말을 중심으로 하여 ‘서재’라 불렀고,
그러므로 교회 측 기록에도 흔히 ‘서재 공소’로 나타나고 있다
1899년에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이곳을 방문하고 성사를 준 사실이 있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발췌)
충남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 495-1
복자 순교비가 있는 공소와 박해 순교지 면천읍성
106. 면천공소와 면천읍성
공소 설립일: 1963년 11월 21일
관할 본당: 순성 성당
면천공소는 1884년 두세 신부의 사목담당 지역으로 22명의 신자가 있었다.
공소앞에 면천읍성이 위치한다.
박해시기 면천군은 내포지방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인근 교우촌에서 체포된 신자들의 심문처형이 이뤄졌고 홍주,해미로 압송하는 출발지였다.
면천읍성은 해미국제성지 순례길(6,7번길)의 경로가 된다.
1968년 흙벽돌조 초가 공소를 마련하였고,
1976년 현재의 시멘트벽돌조 공소(연면적 119㎡)를 건축하였다.
2014년 대수리를 실시하여 건물 및 주변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였다.
신합덕성당 소속에서 2015년 순성성당 관할이 되었다.(대전주보 제2681호)
충남 당진시 면천면 골정길 10 (성상리 327-6)
순교 복자 다섯 분은 면천 지역과 관련된 것으로
복자 김진후 비오와 복자 김종한 안드레아는 부자지간이고
김진후 비오는 면천군수를 역임했으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이다.
복자 방 프란치스코는 면천 출신이고, 홍주에서 체포되고 홍주에서 순교
복자 박취득 라우렌시오 는 면천 출신, 홍주에서 순교(교수형)
복자 배관겸 프란치스코는 당진 진목 출신으로
이웃 면천에서 교우들과 교우촌을 이룩하였고,
면천에서 체포되어 청주에서 순교(장사)
면천읍성
충남 당진시 면천면 동문1길 3
면천 공소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있다.
면천 동헌은 옥터 옆에 처형지도 바로 이웃하여 있어
천주교 신자들을 가두고 처형하였으며,
병인박해 때는 송 모니카와 장일심의 큰 삼촌을 비롯하여
많은 무명 순교자가 치명한 곳이다.
현재 《치명일기》에 올라 있는 송 모니카나 장일심의 큰 삼촌도
병인박해 때 면천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인데
배교의 강요를 일축하고 죽음을 택한 교우들의 수는
이 두 명의 순교자 외에도 상당수에 달한다.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발췌)
107. 원치리공소
설립년: 1935년
관할 본당: 신합덕 성당
원치공소는 1935년 합덕성당에서 공소로 인가를 받고, 교세가 점차 확장돼
순성면, 신평면, 우강면 일대 주민 100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
신합덕성당 50주년 기념사에 따르면 원치공소 교우들이 비밀리에 모여
독립정신을 고취시킨다는 명목으로 일제의 탄압이 시작됐고
고백소에 왜경을 입회시켜야 고백성사를 볼 수 있다며
억지로 신자들을 내쫓고, 저항하는 회장을 고문하기도 했다.
원치공소는 신합덕성당이 분리돼 나오면서, 신합덕성당으로 편입이 됐다.
이후 1961년 공소강당을 짓기 위해 신자들이 손수 흙벽돌을 쌓아 올렸다.
이 공소강당에서는 한글을 모르는 교우들에게 한
글공부와 천주교회의 교리교육을 가르치기도 했다. (당진시대 2015.3.22)
충남 당진시 우강면 박원로 165-2 (원치리 174-12)
1995년 12월 1일 공소강당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