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中
七. 觀衆生品
1. 중생의 실상 - ④
如無色界色하며
如燋穀芽(여초곡아)하며
如須陀洹身見(여수다원신견)하며
“무색계의 색과 같이 여기며,
타버린 곡식의 씨앗과 같이 여기며,
수다원의 자신에 대한 이해득실과 같이 여기며,
如阿那含入胎(여아나함입태)하며
如阿羅漢三毒(여아나한삼독)하며
如得忍菩薩貪恚毁禁(여득인보살탐에훼금)하며
아나함의 入胎와 같이 여기며,
아라한의 三毒과 같이 여기며,
깨달음을 얻은[得忍] 보살의 탐욕과 진에와 파계와 같이 여기며,
如佛煩惱習(여불번뇌습)하며
如盲者見色(여맹자견색)하며
如入滅盡定出入息하며
부처님의 번뇌 습기와 같이 여기며,
눈먼 사람이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이 여기며,
멸진정에 들어간 사람의 출식 입식과 같이 여기며,
如空中鳥跡(여공중조적)하며
如石女兒하며
如化人煩惱하며
허공에 날아간 새의 발자국과 같이 여기며,
石女의 아이와 같이 여기며,
조화로 만든 사람의 번뇌와 같이 여기며,
如夢所見已窹(여몽소견이오)하며
如滅度者受身하며
如無煙之火(여무연지화)하나니
菩薩의 觀衆生도 爲若此니라
꿈속에서 보던 것을 꿈을 깬 것과 같이 여기며,
열반에 든 사람이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여기며,
연기가 없는 불과 같이 여깁니다.
보살이 중생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열거한 비유들이 참으로 현란합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변재가 있을 수 있는가요?
經文(경문)에서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예들은 한결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름마저 없는 것들입니다.
토끼의 뿔이요, 거북의 털입니다.
중생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마치 길가의 새끼줄을 誤認(오인)하여 뱀으로 본 것과 같으며,
어두운 길을 가다가 비석을 誤認하여 사람으로 잘못 보고
도망가다가 넘어지고 자빠져서 온갖 상처를 입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중생을 이처럼 관찰하면 이것은 참다운 관찰입니다. 만약 이와 달리 관찰하면 그것은 삿된 관찰입니다.
그렇다면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본래로 공적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본래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처음도 끝도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지극한 수행을 하든,
중생을 제도하든,
성불하든, 모든 것이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취와 같습니다.
가고 또 가도 본래의 그 곳이며[行行本處(행행본처)],
도착하고 도착해도 처음 출발한 그곳[至至發處(지지발처)] 입니다.
피나는 고행과 어려운 수행이란 다만 그와 같은 삶의 한 태도일 뿐입니다.
그와 같은 숭고한 삶이 또한 사람들을 크게 감동하게 하고 발심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