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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낭독의 즐거움(1)가족이 친밀감을 공유하는 순간 (2) IT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선물
ysoo 추천 0 조회 83 15.07.28 07: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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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즐거움(1) 가족이 친밀감을 공유하는 순간

 

By Meghan Cox Gurdon

 

Robert Neubecker

 

 

처음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던 날,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21년 전 숨이 턱턱 막히게 더웠던 어느 7월 오후, 우리는 도쿄의 한 산부인과에서 퇴원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아파트로 들어서자마자 정신이 멍한 와중에 한 가지 생각만 분명히 들었다. 우리 부부가 미리 준비한 아기방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아기가 퇴원하기 전에 내가 직접 칠한 흔들의자에 아기를 가만히 앉혔다. 나는 동화책 한 권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외동딸을 둔 홀아비가 있었습니다. 홀아비는 딸 둘을 둔 과부와 재혼했습니다. 세 모녀는 시기심이 강한 성격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해가 창문 너머로 기울었다. 내 목소리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고 이상하게 들렸다. 아기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듣고 있기는 한 걸까? 삽화도 보여줬어야 했나? 갑자기 모든 상황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면서 엉엉 울어버렸다. 이후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는 점점 더 나아졌다. 그리고 솔직히 갓난아기에게 ‘신데렐라’를 읽어주다니.

 

책 읽어주기는 우리 가족의 일상에서 늘 중요한 부분이었다. 내 친구 리사 월핑거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아이들에게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리사는 나보다 몇 년 일찍 첫째를 낳았다.

 

아무리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정생활일지라도 즐거운 낭독 시간은 빼먹지 말아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 바로 리사다. 리사는 아들 네 명에게 거의 매일 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길게 책을 읽어줬다.

 

리사의 아들들이 아직 한참 어렸을 때 메인주에 있는 리사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던 일이 생각난다.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와중에 리사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2층으로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도 리사가 돌아오지 않자 누군가가 괜찮냐고 리사의 남편에게 물어봤다.

 

“괜찮아요. 애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중이에요.”

 

식사에 초대한 안주인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느꼈던 유감은 놀라운 감탄으로 바뀌었다. 나도 아이가 생기면 리사처럼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아이들 다섯 명에게 그 결심을 지켰다. 일본에서 첫째에게 처음으로 책을 읽어줬던 웃기고도 슬펐던 경험을 한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거의 매일 책을 읽어줬다. 책 읽어주기는 우리 가족의 큰 기쁨으로 자리잡았다.

 

동시에 고민거리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바빠져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기 전에 아이들에게 원작을 먼저 읽어주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져서, 아이들의 넋을 빼놓는 IT기술 속으로 유년기가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은 오래 전부터 가정생활에서 가장 세련된 관행이었다. 따뜻한 동료애를 배양하고, 가족끼리만 통하는 농담을 주고 받고, 문화적 이해를 공유하는 멋진 방법이다.

 

마리아 타타르 하버드 교수는 출판 매체와 전자 매체가 야간 엔터테인먼트를 지배하기 이전인 중세 시대 벽난로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관행에서 책 읽어주기가 유래했다고 썼다.

 

성인과 아이가 침묵 속에 함께 앉아 있고 단 한 명의 목소리가 그 침묵을 깨는 광경은 현대에 와서는 진기한 풍습으로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얼마나 친밀하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순간인지!

 

가족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가상현실로 몰입해버리는 IT 기기와 달리, 훌륭한 이야기는 세대를 초월해 모든 이들을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친밀하게 이어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맏딸은 옆에 끼고, 아들들은 내 어깨에 걸쳐 있거나 소파에 매달리고, 어린 딸아이는 내 한쪽 무릎 위에 앉고, 아기는 무릎에 뉘인 채 책을 읽어줬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긴박감 넘치는 서사 ‘보물섬’을 읽어줄 때면, 남편도 수트와 타이 차림 그대로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수상한 케이트 디커밀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책을 읽어주면 우리는 긴장을 스르르 푼다”면서 “그 순간 우리는 따뜻함과 빛 속에서 공존한다”고 말했다.

 

케이트 디커밀로의 말에 동의한다.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굿나잇 문(Goodnight Moon)’을 읽어주면 아기는 완전히 몰입한 표정으로 책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생쥐를 찾아봐’라고 말하면 아기는 손가락을 뻗어 페이지를 진지하게 만진다. 그 순간 엄마와 아기 둘 다 따뜻함 속에 공존한다.

 

 

 

 

낭독의 즐거움(2) IT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선물

 

‘해리 포터’를 스스로 읽기는 아직 어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이들은 영화를 먼저 몇 장면이라도 접하게 된다. 그래서 해리 포터 시리즈 1권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맥고나걸 교수 하면 매기 스미스를 자동으로 연상시킨다.

 

 

책 읽어주기의 즐거움은 아기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훌륭하면 십대 청소년들(그리고 남편들)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낭독을 그만두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낭독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문학이라는 더 큰 세계로 진입하는 웅장한 입구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보다 정교한 문학책을 스스로 읽는 사람으로 커간다.

 

그런데 이런 가설을 이제 쉽게 주장하기 힘들다. 다양한 종류의 스크린이 흔하게 보급된 시대에 아이들에게 자주 그리고 길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어른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문학으로 가는 관문’을 굳이 통과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책을 정말 많이 읽던 아이를 한 명 안다. 그 아이는 노트북이라는 신세계를 알게 된 이후 거의 4년 동안 소설책을 읽는 즐거움을 잊어버렸다. 우리 아이들도 점점 더 어린 나이부터 전자 매체에 홀려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무책임한 엄마여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들들의 유년기를 기형적으로 바꿔버렸어”라고 한 친구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던 적이 있다.

 

책과 인터넷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인터넷을 택하는 아이들이 많다. 미디어 소비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가 입증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리 만들어놓은 온라인 세계를 스크롤 하는 것과 헌신적인 어른의 관심을 받는 것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사람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고르는 아이들이 많을 수도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연설문 작성자로 활동하는 브리트니 볼드윈은 휴스턴 고향집에서 아버지가 사남매에게 ‘호빗’을 읽어줬던 경험을 기억한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상상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었다.”

 

나의 빛나는 롤모델인 리사는 영화 제작자이기 때문에 신기술이나 스크린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사의 생각은 이렇다.

 

“머릿속에 어떤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은 마치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다. 시각효과가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숟가락으로 받아먹는 요즘 아이들은 눈을 감고 어떤 세계를 상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야깃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옷을 입었을까? 어떤 냄새가 날까?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디즈니 버전으로 동화를 접하기 전에 원작을 미리 읽어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만화영화로 각색한 버전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를 스스로 읽기는 아직 어린 초등학교 2학년은 영화를 먼저 몇 장면이라도 접하게 된다. 그래서 해리 포터 시리즈 1권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맥고나걸 교수 하면 매기 스미스를 자동으로 연상시킨다.

 

이쯤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합창처럼 울려퍼질 것 같다. 아이패드가 왜 나쁜데? 아이들이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인터랙티브 동화도 있는데? 그럼 오디오북은? 그것도 나빠?

 

아이패드와 오디오북은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따뜻하게 팔베개를 해줄 수도 없고, 농담을 주고 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특정한 한 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그 아이의 특성을 잘 알지도 못한다.

 

녹음된 이야기는 아이의 질문에 답할 수도 없으며 아이의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포착하지도 못한다. 어려운 어휘가 나오면 잠시 낭독을 멈추고 뜻을 설명해주지도 못한다. 아이가 외우고 싶어하는 구절을 다시 읽어주지도 못한다.

 

책 읽어주기가 사라지면서 어른도 아이도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너무 많다. 멋진 삽화를 볼 수 없다. 특이한 어휘를 듣지 못한다. 흥미진진한 서사를 접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른들도 잃는 게 있다. 아이와 친밀하게 연결된 상태로 서로 장난치는 소중한 순간을 잃어버린다. 부모가 좋아하는 책을 아이에게 물려주는 기회를 놓친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문학의 관문’으로 돌아가는 왕복표를 받는다. 동화, 북유럽 신화, 오디세우스 영웅담 등 어른이 되면 좀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의 세계로 말이다.

 

45분에서 1시간 동안 어른은 아이에게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선물을, 문화적 토양을, 언어의 묘미를, 스토리텔링이라는 유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선사할 수 있다.

 

1시간이면 그렇게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1시간 후에 각자가 다시 온라인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을 테니까.

 

 

메간 콕스 거든은 월스트리트저널(WSJ) 주말판에 아동서적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The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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