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印叢林
해인사 정중탑과 大寂光殿
해인사 大寂光殿本尊佛
해인사 大寂光殿 안에 모시고 있는 비로자나불(중앙)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대찰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八萬大長經"이 소장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유명하다.
팔만대장경八萬大長經"은 원의 침략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1236년부터 1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장경각
68X24.5cm터, 두께 3cm의 경판은 81,340매, 6,791권,소장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건축된
조선 초기 건축물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화엄 10찰의 하나.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정립된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 원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으로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 불경 안의
「해인삼매 海印三昧」라는 구절이 있다.
해인사는 그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인용했다.
해인삼매는
삼라만상의 세계를 끝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거센 파도 즉
중생의 고통이 사라질 때 우주 참모습이 물에 비치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가 부처의 깨달음의 모습이고, 중생의 원래의 모습이고,
이것이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원리로 한 해인사는 해동화엄종의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자 순응 스님(順應和尙)과 그의 제자인 이정 스님(理貞和尙)에 의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 16일에 창건되었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해서 창건되었기 때문에
비로자나불을 主佛로 모시고 있다.
따라서 중앙의 법당 이름은 대웅전(大雄殿)이 아닌,
대적광전(大寂光殿),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 256호)이다.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 비로자나불 毘盧遮那佛 중앙에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이라 한다. 달리 "대광명전"이라고도 한다.
해인사의 비로자나불은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지권인智拳印 수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라는 것이 특징이다.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의 Vairocana로, 영원한 법 즉 진리를 의미한다.
지금의 건물은 802년에 건립, 1818년에 재건, 1971년에 보수된 것이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안에는 7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좌측에서부터
철조 관음보살, 목조 문수보살, 목조 비로자나불, 한가운데에 본존 비로자나불,
그 옆에 목조 지장보살, 목조 보현보살, 철조 법규 보살.
♡ 비로자나불 ♡
비로자나불은 일본의 대일여래 大日如來 Dainichi-nyorai 와 같은 부처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마하바이로차나, 즉 「위대한 빛의 창조자」.
쿠우카이(空海) 스님이 개종한 진언종에서는 대일여래를 중심불로 모신다.
弘法大師(空海)에 의하면, 모든 종교에 있어서
신과 악마는 모두 대일여래의 현신이고, 대일여래의 몸은 우주 그 자체다.
동시에 먼지 안에도 대일여래가 존재한다고 한다.
대일여래는 백련화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양계(태장계·금강계)
만다라의 중심으로 그려진다.대일여래(大日如來)는 손의 위치와 수인이 다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Vairocana)은
태양의 빛처럼 불교의 진리가 우주 가득히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부처는 다른 부처와는 달리 설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불교의 진리, 곧 불법 그 자체를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이므로
불상으로서 형상화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비로자나불의 모습은 처음에는 중국에서 노사나불(盧舍那佛)로 불완전한 모습으로
시도되다가 나중에 밀교(密敎)에 수용되어 대일여래(大日如來)로 불리면서
표현형식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한국과 일본과는 달리
비로자나불의 조성이 성행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비로자나불의 모습은
일본 밀교의 금강계만다라(金剛系曼茶羅)의 주불인 보살 모습에
지권인(智拳印)의 수인을 맺은 형식과, 태장계(胎藏系) 만다라의 주불인
법계정인(法界定印)을 맺는 보살상의 두 가지 형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비로자나불은 밀교와는 상관없이 화엄경(華嚴經)의 주불로서
독창적으로 창안되었다. 특히 한국의 비로자나불은 보살이 아닌 여래형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과는 그 성격이 뚜렷이 구별된다.
아직까지 인도와 중국에서 여래형 비로자나불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여래형 비로자나불은 한·중·일 삼국 가운데 주로 통일신라에서 조성되었다.
8세기에 나타난 비로자나불은 석남사 석불처럼 독존으로도 조성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법수사(法水寺)석불처럼 문수(文殊)와 보현(普賢)보살을
협시로 하는 삼존형식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었다.
金剛界大日如來(毘盧遮那如來) 금강계대일여래(비로자나불)
胎藏界大日如來(毘盧遮那如來) 태장계대일여래(비로자나불)
옴
아모가
不空을 성취하신 불공성취여래
(범어- 아모가싯디를 의역)이시여
바이로로차나
비로자나부처님大日女來 이시여
마하무드라
큰도장大印을 지니신분 -아촉불-이시여
마니
보석을 지니신분-보생여래-이시여
파드마
연꽃을 지니신분 -아미타여래-이시여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속히 중생구제 광명을 비춰주소서
훔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아촉여래 보생여래 아미타여래 불공성취여래께 부처님 지혜의 상징인
광명을 일체중생과 나에게 비추어 주기를 기원하는 진언이다.
광명진언을 한번 외움은 다섯분의 선정부처님께 귀의함과 같아..
살아서는 일체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고 ..
죽어서는 중간계에 들지 않고 五禪定부처님께서마중 나오셔서 비추는 광명에
인도되어 중간계상태에서 바로 해탈하여 정토에 태어난다 """하였다 <pre>
「중간계.파드마...」
_참고서적:티벳사자 의 서(The tibetan book of the dead/파드마삼바바/주.시공사
중간계에서듣고이해하므로서그자리에서절대경지에이르게하는경전-
돌아가신 영가분을 위하여 광명진언을 외우면 돌아가신분도 따라서
이광명진언을 외워 五禪定부처님의 인도를 받아 정토에 나게 된다.
또 원효대사의 저서 유심안락도에 보면
만일 중생이 이진언을 두번이나 세번 또는 일곱번을 귀로 듣기만 하여도
모든 죄업이 없으지며,중생이 십악과 오역죄와사중죄를 지은것이 세상에
가득한 먼지처럼 많아 죽은 다음 악도에 떨어질지라도 이진언을 108번 외운
흙모래를 죽은이의 시신위에 흩어주거나 묘나 탑위에
흩어주면 죽은이가 지옥에 있거나 아귀,아수라,축생세계에 잇거나 그모래를 맞게 된다.
부처님의 본원과 광명진언을 외운 흙모래의 힘으로
즉시 광명을 얻게되고 모든 죄업의 업보를 없애게 된다....하였다.
광명진언은 살은자에게도 이롭고 죽은자에게도 이로운 심묘한 진언.
광명진언을 지극한 마음으로 외우면 부처님의 본원과 지언의 위신력에 힘입어
살아서는 소원을 성취하고 죽어서는 헤매지않고 구원됨의 약속을 얻을 것이다.
나""라는 내가 하겠다는 나만 할 수 있다는 我相에서 벋어나게 하여주며..
내가 구원의 도움을 받듯 남을 도우려는 자비심이 스스로생기며..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없기에 남위에서 남을 지배하려는 衆生相이 않생기며
죽어 극락왕생을 약속받기에 죽음의 공포로인해 애써 오래 살려고 탐착하지 않게 되나니.
광명진언을 받아지녀 항상 읽고 외움으로 부처님의 가피와 깨달음이 함께하소서..
◎비로자나는
인도 말인데 바이로짜나(태양)와
바이로짜나(빛, 광명이 널리 비춤) 두 가지 말의 음역이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대일여래라고 하는데,... ... ... ...
경전 원문상으로는 바이로짜나로 많이 쓰인다 한다-
◎대일여래 :
대일여래는 범어로
마하바이로차나 여래라고도 하고, 진언밀교의 교주이시다.
마하는 크다, 많다, 뛰어나다의 뜻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크다는 뜻으로.
바이로차나 -비로자나는 광명변조라고 번역.
선무외의 대일경소에서 말하기를
"태양의 광선은 천지를 비추어 이 세상을 밝게 하지만,
밤의 어두움과 물체의 내면을 비추지 못한다.
그러나 대일여래는 그렇지 않고
... ....주야를 불문 ... ...하고
일체의 안과 밖을 꿰뚫어 비추시기 때문에
... ... ◎暗 襲 依 落◎ ... ...
대일(大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pre>
daedan@joongang.co.kr/전문 옮김니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던 경남 합천의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의
목조 비로자나불좌상이 통일신라시대 목불로 다시 태어났다.
해인사 측이 지난 달 불상 표면의 금칠을 다시 하는 개금(改金)작업 중 불상 내벽에서
찾아낸 목판에는 그 제작연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이 묵서 내용 중
'중화'(中和)는 당나라 희종의 연호로 명문 내용의 중화 3년은 서기 883년에 해당한다.
묵서의 발견으로 조선시대 목불로 알려져왔던 기존의 경남도지정유형문화재 41호인
해인사 목조 비로자나불좌상은 고려왕조를 뛰어 넘어 5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미술사적 가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상승하게 됐다.
그러나 운좋게 명문을 발견함으로써 현존 최고(最古) 목조 여래상이 새롭게 탄생했지만,
제작연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 미술사적 가치가 드러나지 않은 불상이 분명 다른 사찰
어딘가에 또 있을지 모를 일이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이화여대)는 4일 목조 비로자나불좌상을 언론에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 불상은 얼굴 부분이 신체에 비해 큰 것이 특징이다.
이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까지 불상의 특징적인 것이다"며 일단 양식적으로
이 불상이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됐다는 명문 내용과 일치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같은 의견으로 미뤄 이 목조 불상은 양식적으로 9세기 시대의 특징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적 양식만으로 불상의 조성연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자의 감각에 의존하는 이른바 '관능평가'가 정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시대별로 특징적인 미적 양식과 제작 형식 등에 대한 표준 데이터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의 강순형 학예실장은 "제작 연대가 확실히 판명된 기존 석조ㆍ목조ㆍ
금동불 등의 얼굴모양, 옷주름 모양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표준데이터를 마련해놓으면
제작 연대를 오판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상의 경우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예불대상이기도 하므로
개금이나 복장을 여는 것은 금기시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X-레이 등을 통한 과학적 조사로
불상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의 도입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처럼 전국 사찰의 문화재 중 그 역사적 가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사학계에는 '한국미술사는 한국불교미술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땅에서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들은 대개 불교와 관련이 깊다.
따라서 문화재청과 대한불교 조계종이 실시 중인 전국 시도별
사찰 소장 문화재 일제 조사 같은 정책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과 조계종은 올 1월 전국 사찰 문화재 일제 조사 과정에서
X-레이 촬영 등을 통해 개심사 아미타삼존불상에서 고려 충렬왕 6년(1280)에
별립승(別立僧)인 재색(齋色)이 보수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써 기존에 조선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불상의 제작연대가 최소 1280년대 이전으로 앞당겨졌다.
<pre>
[독경:광명진언光明眞言/혜광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