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새벽, 출입국관리소에서 조사를 받던 외국인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수원이었습니다. 사망한 사람은 80년생 터키인으로 우리 나이로 치면 27살이었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에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코스쿤 셀림(Coskun Selim)씨는 2004년 3월 1일에 입국한 후, 미등록상태로 일을 하다가 어제(26일) 경기도 화성시 발안 지역에서 출입국 단속에 걸려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4시경 출입국 보호실 6층 창문을 뚫고 뛰어내렸다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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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릴판이 떨어져 나간 보호실 채광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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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복 |
| 고인이 뛰어내렸다는 아크릴 창문은 사람이 빠져 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이가 15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채광문이었습니다. 사고가 났을 당시 같은 방에 있던 중국인 세 명과 필리핀인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밤 10시 넘어 잠을 잤는데,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했다고 증언한 반면, 출입국직원들 중에 당직을 섰던 직원들은 고인이 창문에서 떨어질 당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정리해 보면, 출입국 내에서 어떠한 가혹행위나 근무태만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머리를 들이대기도 어려워 보이는 공간을 빠져나와, 6층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강제출국을 앞둔 미등록체류자의 마음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실오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죽기 살기로 뛰어내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속에 걸려 조사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강제출국입니다. 그런 판단을 출입국에서 전혀 못했다는 것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강제출국'이 과거 지하철에 투신했던 스리랑카인 다라카와씨 사건 이후 계속해서 숱한 자살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는 애써 무시하려 듭니다. 그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라고 말하는 것은 강제출국이라는 정책의 폐해에 대한 질타이자 고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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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이주 노동자 자살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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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별로 기록했는데, 정확한 날짜를 모르는 것은 공란 표시, 지역, 구체적 사인이 명쾌하게 확인되지 않았던 경우 배제. 아래는 외국인이주노동자 지원 단체가 장례식을 치렀던 경우.
2003. 11.11 스리랑카인 치란 다라카(성남) 11.12 방글라데시인 네팔 비꾸(김포) 11.20 러시아인 안드레이아(동해안/해상) 11.25 우즈베키스탄인 브르혼(인천) 12.05 우즈베키스탄인 카미(수원) 12.09 방글라데시 자카리아(김포) 12. 중국동포 강태걸(영등포) 12. 나이지리아 메케
2004 4.27 중국동포 정유홍(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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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있다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2002년부터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될 경우 5년간의 감옥행과 미화 2천불이 넘는 벌금형에, 태형까지 가하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가 물리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말해줍니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자 한다면, 책상머리에서 서류 작업을 통해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오랫동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요구사항이 뭔지 잘 알고 있는 지원 단체 관계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강한 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정부가 알았으면 합니다.
그래야만이 죽을 각오로 단속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정부도 그런 사람을 붙잡겠다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강제출국'을 피해 유명을 달리한 쿠스쿤 셀림씨와 같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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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체류 고용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출입국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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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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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