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문 사절합니다. 넣지 마세요"(2003,12,30) -주인 씀-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면서 어느 가게 문 앞에 써서 붙여 놓았더군요. 한 달 전에도 이렇게 써 놓았었고, 앞으로 신문을 넣으면 대금을 주지 않겠다고. 그래도 ㅈ일보와 지방 일간지가 배짱 좋게, 경쟁적으로 계속 넣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이 주인은 공직에 있을 때는 <한겨레>를 보았습니다. 중학 동기이기도 한 이 친구가 평생직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한동안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영업 가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소문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래도 심적으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신문을 보라'고 굳지 부탁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신문들만 구독해주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두 신문만 보지 말고 분명히 논조가 다른 진보적인 신문도 보라고 투입을 한지가 보름은 넘었을 것이다. 마침내 "모든 신문 사절합니다"라는 글을 읽고서 나는 단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신문은 투입해 놨더군요. 이 친구가 신문을 사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깊은 산 속에 있는 스님도 신문을 구독해 우편으로 받아 보는 세상에. 분명히 신문을 사절하는 데는 곡절이 있고 사연이 있을 겁니다.
언젠가 일본 사람이 쓴 <머리가 좋아지는 신문읽기>라는 책이 번역된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외교관으로 유명한 폴 크로델은 "당신의 애독서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신문과 성서'라고 대답. 경건한 카톨릭 신자였던 클로델이 책중의 책이라는 <성서>와 함께 책도 아닌 <신문>을 들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겠죠. 누구든 한 권의 애독서는 있기 마련이고, 그러나 만약에 이 세상에서 신문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문이 있어 이 사회를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신문은 현대인의 주식이며,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 등의 미디어는 부식에 해당한다"라고도 합니다. 흔히'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말과 같이, 하나의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발전적으로 사물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기도 하죠. 이 능력을 나의 것으로 발휘하노라면 추리력, 판단력, 창조력, 상상력, 기획력 등 오늘날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지식과 능력을 동시에 체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은 생활의 필수품이기도 합니다. 그런 데 이 신문을 어떤 독자들은 보수적인 사고로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작은 사건' 하나를 이렇게 기록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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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중 경 고 !
섬뜩하게 큰 창끝 같은 글씨체다/ 컴컴한 새벽, 길가 단독주택 철대문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제 신문 머릿기사로는 /"강남 재산세 최고 7배 인상" 그리고 오른 쪽엔/ "최대표, 노대통령에 지상토론 제의" 박스기사 /이 집 대문 앞을 지나다가 처음 투입해봤다/ 내용을 좀 읽어보시고 구독신청을 해달라는 뜻! /그러나 궁금하지도 않은지, 펴보지도 않은 채,
칼라 음식점 광고 뒷면 하얀 여백에 협박처럼/ 엄 중 경 고!/ 한겨레 사절!! /신문 위에 놓인 이 글씨가 위협적이고 살벌해/ 얼른 집어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지/ 사흘 전에는 중3 어머니가 고등학교 진학하는/ 아들의 논술걱정하며, 아들이 어디선가 듣고/ <한겨레>구독을 신청한다는 전화가 왔었거늘/ 신문배달 경력 15년 지나도록 이렇게 불길하고/ 소름끼치는 문구의 경고는 처음이다/ 내게 경고 한 것인지,'한겨레'에 경고한 것인지/ 글씨체를 보면 고등교육은 받았을 법한 데/ 국과수에 글씨감정 좀 의뢰해 볼거나/ 도대체 나이는 몇 살아나 먹은 사람일까/ 무슨 뜻으로 '엄 중 경 고' 하였을까/ 신문 넣지 말라는 단순한 거부반응은 아니지/ 여기 20여 미터거리에 20여 년 구두수선 하는/ 후배가 빗자루로 새벽 주변을 청소하고 있어/ 엄 중 경 고! 협박장 같은 것을 보여 주었더니/ 개가 웃을 지경이라며, 그 사람의 머리 속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이상한 사람이라네/ 지난 5월에 이사온 집이라 궁금하다네/ 나는 잘 아는 우편배달부에게 물어 보았더니/ 읍내의 토박이로 쉰 살 넘었을 토호세력/ 엄 중 경 고!!라고 광고지 이면에 쓴 글 보면/ 언제까지 보수언론에 길들여진 독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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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기 것을 지키려고만 하지 상대방의 변화하는 모습을 제대로 볼 줄을 모릅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적 불행이고, 비정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이혼의 문턱에서, 아니 이혼을 한 사람도 '변화의 진리'를 실천함으로 새롭게 재결합하여 행복을 찾았다는 사람들을 케이비에스 아침마당에서 오늘 아침에 보았습니다. 인생은 끝없는 변화를 추구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엄밀히 따져보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수언론만 고집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동전의 양면성과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저 하늘을 나는 새의 좌우날개와 같은 것일진대, 어찌하여 보수적인 우만 병적으로 고집하고, 진보적인 좌는 터부시하고, 아니 이상한 사상처럼 생각하고 있을까요. 위의 중3학생도 진보언론을 알고 고등학교 진학하면 논술 걱정되어 선택하는데, 이제 고2학년이 될 여학생은 신문 읽을 것을 생각 못하고 겨울 방학 때 삼국지 읽을 것만 생각하고 있을까. 일단은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대학시험 합격이 우선 아닐까요. 진학에 도움이 되는, 머리가 좋아지는 '신문 읽기'를 선생님이나 선배, 부모들이 상담하듯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상황은 이러하거늘 인생을 깨달았어야 할 50대가 누구에게 엄 중 경 고 !를 하는 것입니까. 그 처세가 졸렬하기만 합니다. 나도 50대이고 배운 것 없고, 돈도 없고 해서 15년 동안 꼭두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만 해 왔지만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피해서 신문배달을 못한다고 하지만 결코 나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혼자서 기진맥진 새벽을 뛰어다니지만 여기서 좌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참 힘드는 것은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5~6층을 올라 갈 때면 지옥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형벌만 같습니다. 이러다가 발목이라도 삐끗하여 다치면 여기서 끝장입니다. 어쩌면 곡예사 같은 오늘의 내 인생이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한해를 이렇게 보내고 맙니다. 좌우지간 거절하지 않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이만 두서없이 줄일까합니다.
첫댓글꼴통 인간은 역시 꼴통대로삽니다. 변화가 일어나는것을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맹목적으로 사물들을 보고 도대체 왜 사누? 생각하고 사고하고 머리를 잘 돌리면서 회전력도 키우고 좀 멋지게 신명나게 살아야 될텐데...부정적으로만 바라보니...원...쯧쯧...멍충이는 지가 멍충이인지를 모르고지내니....
첫댓글 꼴통 인간은 역시 꼴통대로삽니다. 변화가 일어나는것을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맹목적으로 사물들을 보고 도대체 왜 사누? 생각하고 사고하고 머리를 잘 돌리면서 회전력도 키우고 좀 멋지게 신명나게 살아야 될텐데...부정적으로만 바라보니...원...쯧쯧...멍충이는 지가 멍충이인지를 모르고지내니....
ㅋㅋㅋ '이제 고2학년이 될 여학생은 신문 읽을 것을 생각 못하고 겨울 방학 때 삼국지 읽을 것만 생각하고 있을까.' 이 여학생이 바로 접니다.. 할아버지~ 너무 창피해요~ ㅠ.ㅠ